인도에 출장갔을 때 이야기이다. 세 가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해외영업 업무를 20년 넘게 해 온 상태에서도 몰랐던 사실들을 배운 날들이었다. 인도라는 나라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업무를 하던간에 결국은 사람과 같이 어울려서 일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나라와 공동체의 역사와 관습이 결국은 그 사람에게는 체화되어 있음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서로 솔직히 마음을 여는 대화가 가능하고, 정확한 실상 파악이 될 것 같다.
첫번째 기억. 어느 휴일날, 관공서가 다 문닫고 쉬다보니, 하루 종일 호텔방에서 노트북과 씨름하던 나도 택시를 빌려 타고, 시내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호텔에 부탁했더니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기사 한 분이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차를 가지고 왔다. 우리나라 처럼 지붕에 “Taxi”라고 쓰여져 있지는 않았고, 그냥 평범한 승용차처럼 보였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은근히 데려가는 상점들 몇 군데도 들러서 구경도 하고 평범하게 지낸 오전이었다.



인도는 힌두교, 이슬람, 불교,시크교, 기독교 심지어 유대교도 허용되는 나라이다.
점심 시간이 되어 깨끗해 보이는 식당 한 군데를 찾았다. 혼자 먹기가 좀 그래서, 기사에게 같이 가서 먹자고 하니까,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오기 전에 바로 밥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상하네? 나와 같이 서너 시간을 돌아다녔고,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왜 괜찮다고만 하지? 아마도 외국사람인 나와 같이 들어가서 먹는 것이 좀 어색해서 그런가 싶어서, 다시 한 번 권유를 해보았다. 오후 5시까지 예약이 되어 있으니 아직도 서너시간 남았는데, 돌아 다니려면 밥을 먹어야 하지 않냐, 나 혼자 먹기도 쑥스럽고 하니 같이 먹읍시다 설득을 해서 식당에 같이 들어갔다.
택시 기사의 윗 옷은 하얀색 유니폼이었고, 명찰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고, 식당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면서 우리 둘을 보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메뉴를 고르고, 기사가 종업원을 불러서 힌디어로 주문을 하면서, 둘이 뭔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메뉴만 주문하면 되지 왜 이렇게 서로 대화를 길게 할까 싶었다. 종업원이 서서 앉아 있는 기사를 내려다 보며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 표정이 약간 의아심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는 웃었는데, 왜 지금은 표정이 이렇게 굳어 있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기사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기사는 계속해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나 종업원과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음식이 나와서 서로 덜어 먹는 중간에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나 역시 다른 테이블의 식당 손님들이 우리 둘을 힐끗힐끗 바라본다는 것을 감지했다. 아, 내가 뭔가 잘못했나보다. 그냥 혼자 먹을 걸 그랬나?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기사에게 물었다.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게 있나요? 왜 당신은 그렇게 편하게 식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지요? 식당 종업원과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나요? 기사는 그제야 내게 대답했다. “기사가 손님과, 그것도 외국인 손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거든요.” 나는, 카스트 제도가 엄격한 인도사회에서, 가끔씩은 직업선택의 자유까지도 카스트에 의해 제약되는 그 엄격한 신분제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대로, 기사에게 같이 식사할 것을 강요한 셈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왜 힐끔힐끔 기사를 쳐다보았는지, 종업원이 왜 기사에게 그렇게 오래 여러가지를 물어봤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오후에도 기사와 일정을 같이 하고, 나중에 헤어지면서 미안한 마음에 팁을 좀 주면서, 미안했다고 얘기를 했다. 기사의 흰 색 유니폼과 명찰이 내게는 마치 군대에서의 계급장처럼 느껴졌다. 보면 작대기 하나, 혹은 네개로 이등병인지 병장인지를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두번째 일화는, Agra에 있는 타지마할 (Taj Mahal)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이다. 계약 때문에 대표님을 모시고 간 터라서, 짬나는 시간에 델리에서 그리 멀지않은 Agra를 방문해 보기로 하고, 호텔에서 내어 준 택시를 타고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늘 그렇다시피, 도로는 차량 뿐만 아니라, 각양 각색의 오토바이, 자전거, 소달구지, 리어카, 또 많은 수의 릭샤 (그들은 Three wheeler라고 부른다. 앞 바퀴 하나, 뒷 바퀴 두 개라서 붙인 이름같다.)들로 혼잡하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는 좀체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기사는 서두르는 것 처럼 보였고, 가뜩이나 조마조마하게 조수석에 앉아서 온갖 요란한 경적음들과 차의 흔들림에 불안해하던 내 예감처럼, 속도를 줄이지 못한 택시가 바로 앞에 가던 릭샤 한 대의 뒷부분을 세게 들이받고 말았다. 다행히 충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릭샤 뒷 부분의 밑쪽이 찌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다. 릭샤에도 두세명이 타고 있었고, 릭샤가 앞으로 밀려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기 때문에, 릭샤 운전자나 승객들이 다쳤다고 항의하면 문제가 복잡해 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차를 세우고, 택시 기사를 따라 나도 내려서 릭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쳤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테니 릭샤 수리비나 위로금조로 현금을 주고 해결하자, 내가 지금 갖고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더라? 이런 생각으로 택시 기사와 릭샤 운전자가 얘기를 나누는 걸 들어보려고 가까이 갔는데, 왠 걸? 택시 기사가 다짜고짜 터번을 감아 쓴 릭샤 운전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왜 릭샤 운전자를 타박하고, 거의 야단치다시피 고성을 지르는 건가?
결국 상황은, 택시 기사가 릭샤 운전자를 야단치다시피(?) 윽박지르고, 파손된 부분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없이, 각자 다시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릭샤 운전자 역시 택시 기사에게 처음에는 양 손을 내저어 가며 뭔가 항의하는듯이 보였지만, 아무런 조치없이 다시 릭샤를 몰아서 사라졌고, 타고 있던 사람들 역시 택시 기사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핸들을 잡은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우리가 잘못해서 릭샤가 일부 파손되었는데, 수리비라도 줘야 하는것 아닌가요? 왜 그냥 보냈어요?”
기사의 대답은 놀라왔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경적을 울렸는데도 비키지 않은 저 릭샤 잘못입니다.”
그 도로 상황에서는 비킬 수도 없었을 뿐더러, 경적은 거의 모든 차들이 다 울리기 때문에 릭샤 운전자가 자기에게 울리는 경적이라고 인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릭샤가 일부 찌그러졌는데도, 택시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마음이 매우 안좋았지만, 일단 목적지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택시 기사보고 앞으로는 속도도 줄이고 좀 조심하자 라고 말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델리의 유명 호텔 택시 기사는, 길거리의 소위 “릭샤꾼”들보다는 상위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Fort Agra


세번째 일화는 하이데라바드 (Hyderabad)의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인도 현지 파트너회사의 60대 중반 사장님과 그 회사에 미팅 목적으로 방문했다. 어찌보면 내가 Buyer였기 때문에, 통상적인 개념으로는, Seller인 그 회사 대표가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인사하고 맞이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안내받은 대표실 내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 둘은 거의 30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다. 비서는 곧 온다고만 말할 뿐 왜 늦는지, 언제 오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나는 파트너회사 사장님께 이런 일이 통상 인도에서 있는 일인가를 물었다. 그분은, “영국식 문화에 익숙한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좀체 없는 일입니다.” 라고만 짧게 대답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거의 40분씩이나 우리를 기다리게 한 그 회사의 대표는, 들어와서 의례적인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는 테이블 가운데 위치한 본인의 의자에 비딱하게 앉아서 얘기를 시작했다. 너무 늦었음에도 미안해 보이는 기색도 없었고, 목받침이 있는 그 의자를 뒤로 젖혀서 반쯤 눕다시피 이야기하는 그 태도가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일정 부분의 물량 때문에, 일정이 촉박하여 나로서는 딱히 대안이 마땅치 않음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Seller’s position에 괘념치 않고, 마치 본인의 현지 협력업체를 대하는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인보다 훨씬 연장자이고, 최종 고객사이던 인도항공청 (AAI: Airport Authority of India)의 고위 간부까지 지낸 나의 현지 파트너 회사 사장님에게도 말뽄새가 불량했다. 그럼에도 현지 파트너 사장님도 크게 불만없는 듯, 목소리도 작아졌고, 대부분의 대화는 나와 그 회사 대표간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속마음을 털어 놓는 대화를 나눈 후에야 이 모든 일들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도사람들의 이름 자체에는, 지역이나 가문의 직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속한 카스트 제도상의 신분이 그대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명함만 주고 받고도, 대략적으로 상대방이 어느 신분 제도에 속하는지, 출신 지역이 어디인지, 사용언어가 무엇일지 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일단 나보다 하위 카스트 소속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공식적인 직함과 위치에 상관없이, 대화 자체의 주도권을 갖게 되기 쉽다. 나의 현지 파트너회사 사장님은 파키스탄의 카라치 태생이고, 이름 자체가 인도식 이름이 아니라 파키스탄 이름이었기 때문에, 현지 회사 대표는 이미 사전 미팅에서 파트너 회사 사장님을 만났을 때부터, 본인의 주도권을 당연시하고 미팅에 임했던 것. 나의 그 추측은 이후에도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Anand, Arvind, Patel, 이런 이름들은 아마도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 것 인지, 유독 고위층 인사들 이름에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식적인 직책과 직함 너머에, 우리같은 외국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완고한 사회적 제도와 관습이 자리잡고, 그것이 암묵적으로 사회구조를 왜곡시키는 것 아닐까? 우리 눈에는 “왜곡”으로 보일지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그것조차도 전체적으로 이미 동의된 하나의 운영원리와, 오랜 역사를 통해 구체화된 하나의 신념처럼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미팅 테이블에서의 공식적인 대화와 논의 너머에는, 내가 알지 못하던 그들만의 관계, 그들 사이에서만 작동하던 원칙들이 있었고, 내게 그것은 알면서도 대응할 수 없었던 일종의 벽이었던 셈이다. 그 벽을 무너뜨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 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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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출장갔을 때 이야기이다. 세 가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 해외영업 업무를 20년 넘게 해 온 상태에서도 몰랐던 사실들을 배운 날들이었다. 인도라는 나라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업무를 하던간에 결국은 사람과 같이 어울려서 일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나라와 공동체의 역사와 관습이 결국은 그 사람에게는 체화되어 있음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서로 솔직히 마음을 여는 대화가 가능하고, 정확한 실상 파악이 될 것 같다.
첫번째 기억. 어느 휴일날, 관공서가 다 문닫고 쉬다보니, 하루 종일 호텔방에서 노트북과 씨름하던 나도 택시를 빌려 타고, 시내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호텔에 부탁했더니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기사 한 분이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차를 가지고 왔다. 우리나라 처럼 지붕에 “Taxi”라고 쓰여져 있지는 않았고, 그냥 평범한 승용차처럼 보였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은근히 데려가는 상점들 몇 군데도 들러서 구경도 하고 평범하게 지낸 오전이었다.



인도는 힌두교, 이슬람, 불교,시크교, 기독교 심지어 유대교도 허용되는 나라이다.
점심 시간이 되어 깨끗해 보이는 식당 한 군데를 찾았다. 혼자 먹기가 좀 그래서, 기사에게 같이 가서 먹자고 하니까,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오기 전에 바로 밥을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상하네? 나와 같이 서너 시간을 돌아다녔고,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왜 괜찮다고만 하지? 아마도 외국사람인 나와 같이 들어가서 먹는 것이 좀 어색해서 그런가 싶어서, 다시 한 번 권유를 해보았다. 오후 5시까지 예약이 되어 있으니 아직도 서너시간 남았는데, 돌아 다니려면 밥을 먹어야 하지 않냐, 나 혼자 먹기도 쑥스럽고 하니 같이 먹읍시다 설득을 해서 식당에 같이 들어갔다.
택시 기사의 윗 옷은 하얀색 유니폼이었고, 명찰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고, 식당 종업원이 메뉴판을 갖다 주면서 우리 둘을 보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메뉴를 고르고, 기사가 종업원을 불러서 힌디어로 주문을 하면서, 둘이 뭔가 얘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메뉴만 주문하면 되지 왜 이렇게 서로 대화를 길게 할까 싶었다. 종업원이 서서 앉아 있는 기사를 내려다 보며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 표정이 약간 의아심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는 웃었는데, 왜 지금은 표정이 이렇게 굳어 있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기사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기사는 계속해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나 종업원과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음식이 나와서 서로 덜어 먹는 중간에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나 역시 다른 테이블의 식당 손님들이 우리 둘을 힐끗힐끗 바라본다는 것을 감지했다. 아, 내가 뭔가 잘못했나보다. 그냥 혼자 먹을 걸 그랬나?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기사에게 물었다.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게 있나요? 왜 당신은 그렇게 편하게 식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지요? 식당 종업원과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나요? 기사는 그제야 내게 대답했다. “기사가 손님과, 그것도 외국인 손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거든요.” 나는, 카스트 제도가 엄격한 인도사회에서, 가끔씩은 직업선택의 자유까지도 카스트에 의해 제약되는 그 엄격한 신분제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 생각대로, 기사에게 같이 식사할 것을 강요한 셈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왜 힐끔힐끔 기사를 쳐다보았는지, 종업원이 왜 기사에게 그렇게 오래 여러가지를 물어봤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오후에도 기사와 일정을 같이 하고, 나중에 헤어지면서 미안한 마음에 팁을 좀 주면서, 미안했다고 얘기를 했다. 기사의 흰 색 유니폼과 명찰이 내게는 마치 군대에서의 계급장처럼 느껴졌다. 보면 작대기 하나, 혹은 네개로 이등병인지 병장인지를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두번째 일화는, Agra에 있는 타지마할 (Taj Mahal)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이다. 계약 때문에 대표님을 모시고 간 터라서, 짬나는 시간에 델리에서 그리 멀지않은 Agra를 방문해 보기로 하고, 호텔에서 내어 준 택시를 타고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늘 그렇다시피, 도로는 차량 뿐만 아니라, 각양 각색의 오토바이, 자전거, 소달구지, 리어카, 또 많은 수의 릭샤 (그들은 Three wheeler라고 부른다. 앞 바퀴 하나, 뒷 바퀴 두 개라서 붙인 이름같다.)들로 혼잡하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는 좀체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기사는 서두르는 것 처럼 보였고, 가뜩이나 조마조마하게 조수석에 앉아서 온갖 요란한 경적음들과 차의 흔들림에 불안해하던 내 예감처럼, 속도를 줄이지 못한 택시가 바로 앞에 가던 릭샤 한 대의 뒷부분을 세게 들이받고 말았다. 다행히 충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릭샤 뒷 부분의 밑쪽이 찌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다. 릭샤에도 두세명이 타고 있었고, 릭샤가 앞으로 밀려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기 때문에, 릭샤 운전자나 승객들이 다쳤다고 항의하면 문제가 복잡해 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차를 세우고, 택시 기사를 따라 나도 내려서 릭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쳤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테니 릭샤 수리비나 위로금조로 현금을 주고 해결하자, 내가 지금 갖고 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더라? 이런 생각으로 택시 기사와 릭샤 운전자가 얘기를 나누는 걸 들어보려고 가까이 갔는데, 왠 걸? 택시 기사가 다짜고짜 터번을 감아 쓴 릭샤 운전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왜 릭샤 운전자를 타박하고, 거의 야단치다시피 고성을 지르는 건가?
결국 상황은, 택시 기사가 릭샤 운전자를 야단치다시피(?) 윽박지르고, 파손된 부분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없이, 각자 다시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릭샤 운전자 역시 택시 기사에게 처음에는 양 손을 내저어 가며 뭔가 항의하는듯이 보였지만, 아무런 조치없이 다시 릭샤를 몰아서 사라졌고, 타고 있던 사람들 역시 택시 기사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핸들을 잡은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우리가 잘못해서 릭샤가 일부 파손되었는데, 수리비라도 줘야 하는것 아닌가요? 왜 그냥 보냈어요?”
기사의 대답은 놀라왔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경적을 울렸는데도 비키지 않은 저 릭샤 잘못입니다.”
그 도로 상황에서는 비킬 수도 없었을 뿐더러, 경적은 거의 모든 차들이 다 울리기 때문에 릭샤 운전자가 자기에게 울리는 경적이라고 인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릭샤가 일부 찌그러졌는데도, 택시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마음이 매우 안좋았지만, 일단 목적지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택시 기사보고 앞으로는 속도도 줄이고 좀 조심하자 라고 말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델리의 유명 호텔 택시 기사는, 길거리의 소위 “릭샤꾼”들보다는 상위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Fort Agra


세번째 일화는 하이데라바드 (Hyderabad)의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인도 현지 파트너회사의 60대 중반 사장님과 그 회사에 미팅 목적으로 방문했다. 어찌보면 내가 Buyer였기 때문에, 통상적인 개념으로는, Seller인 그 회사 대표가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인사하고 맞이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안내받은 대표실 내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 둘은 거의 30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다. 비서는 곧 온다고만 말할 뿐 왜 늦는지, 언제 오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나는 파트너회사 사장님께 이런 일이 통상 인도에서 있는 일인가를 물었다. 그분은, “영국식 문화에 익숙한 상류층 사람들에게는 좀체 없는 일입니다.” 라고만 짧게 대답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거의 40분씩이나 우리를 기다리게 한 그 회사의 대표는, 들어와서 의례적인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는 테이블 가운데 위치한 본인의 의자에 비딱하게 앉아서 얘기를 시작했다. 너무 늦었음에도 미안해 보이는 기색도 없었고, 목받침이 있는 그 의자를 뒤로 젖혀서 반쯤 눕다시피 이야기하는 그 태도가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일정 부분의 물량 때문에, 일정이 촉박하여 나로서는 딱히 대안이 마땅치 않음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Seller’s position에 괘념치 않고, 마치 본인의 현지 협력업체를 대하는 듯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인보다 훨씬 연장자이고, 최종 고객사이던 인도항공청 (AAI: Airport Authority of India)의 고위 간부까지 지낸 나의 현지 파트너 회사 사장님에게도 말뽄새가 불량했다. 그럼에도 현지 파트너 사장님도 크게 불만없는 듯, 목소리도 작아졌고, 대부분의 대화는 나와 그 회사 대표간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속마음을 털어 놓는 대화를 나눈 후에야 이 모든 일들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도사람들의 이름 자체에는, 지역이나 가문의 직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속한 카스트 제도상의 신분이 그대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명함만 주고 받고도, 대략적으로 상대방이 어느 신분 제도에 속하는지, 출신 지역이 어디인지, 사용언어가 무엇일지 등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일단 나보다 하위 카스트 소속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공식적인 직함과 위치에 상관없이, 대화 자체의 주도권을 갖게 되기 쉽다. 나의 현지 파트너회사 사장님은 파키스탄의 카라치 태생이고, 이름 자체가 인도식 이름이 아니라 파키스탄 이름이었기 때문에, 현지 회사 대표는 이미 사전 미팅에서 파트너 회사 사장님을 만났을 때부터, 본인의 주도권을 당연시하고 미팅에 임했던 것. 나의 그 추측은 이후에도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Anand, Arvind, Patel, 이런 이름들은 아마도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 것 인지, 유독 고위층 인사들 이름에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식적인 직책과 직함 너머에, 우리같은 외국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완고한 사회적 제도와 관습이 자리잡고, 그것이 암묵적으로 사회구조를 왜곡시키는 것 아닐까? 우리 눈에는 “왜곡”으로 보일지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그것조차도 전체적으로 이미 동의된 하나의 운영원리와, 오랜 역사를 통해 구체화된 하나의 신념처럼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미팅 테이블에서의 공식적인 대화와 논의 너머에는, 내가 알지 못하던 그들만의 관계, 그들 사이에서만 작동하던 원칙들이 있었고, 내게 그것은 알면서도 대응할 수 없었던 일종의 벽이었던 셈이다. 그 벽을 무너뜨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 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뿐.
진성민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helasttrump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