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직원이 보낸 퇴사 메일


저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그렇지만 또 그렇게까지 메이저하지는 않은 금융권 공공기관 중 한 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제 일은 숫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분기별 실적, 달성률, 다음 분기의 목표. 숫자는 명쾌했고,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과정의 복잡함은 때로 희미해졌고, 평가는 소수점 아래 두 자리까지 정확하게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알던 세계의 질서였습니다.

올가을, 저는 인사부로 발령받았습니다. 제가 마주한 새로운 세계는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시간은 엑셀 시트처럼 평평하지 않았고, 마음의 무게는 계량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십수 년 치 평가 기록을 들여다볼 때, 한 줄의 고충 뒤에 숨은 고통을 마주할 때, 저는 종종 제가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탐사대원 같다고 느낍니다. 이곳의 공기, 언어, 중력은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이 낯섦을 길들이기 위한 저 자신의 생존법일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기록하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랜 습관 탓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인사(人事)를 궁금해합니다. 채용의 막후, 평가의 기준, 인사이동의 원칙 같은 것들. 때로는 단단한 벽처럼 느껴지는 그 결정들이 어떤 고민과 딜레마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이 기록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등장하는 모든 상황과 대화는 신원을 알아볼 수 없도록 익명화되고 재구성될 것입니다.

제가 담아내고 싶은 것은 정답이나 비판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는 딜레마의 무게, 제도를 운영하며 손끝으로 느끼는 실무의 감각입니다. 공정과 유연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원칙이라는 잣대와 현실이라는 땅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속에서 분투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과장 없이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질문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의 기록입니다. 제도와 사람 사이, 그 아득한 거리를 재어보는 조용한 관찰기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공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통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날의 냄새 : 기록의 무게

9월 초. 사무실의 온도는 2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이는 컴퓨터의 전원 버튼 불빛 아래, 랙(Rack)들이 내뿜는 미지근한 공기가 뺨에 와 닿았다.

낮고 규칙적으로 울리는 HR시스템의 구동음(駆動音)은 지난 8년간 익숙했던 숫자들의 세계와는 다른 종류의 언어처럼 들렸다.

이전 부서에서 나의 세계를 구성하던 것은 분기별 실적, 달성률, 다음 분기의 목표 같은 명쾌한 숫자였다. 엑셀 시트 위에서 합산되고, 평균 내어지고, 그래프로 그려지던 그 숫자들은 차갑지만 정직했다.

인사부로 발령받은 첫날, 나는 이 HR시스템 안에 약 1,000명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들의 입사일, 고과, 연봉, 교육 이력, 누군가의 기쁨과 다른 누군가의 곤란함이 모두 이곳의 서류와 파일 속에 기록되어 있었다.

부장님은 내게 인사정보시스템 접속 권한을 부여하며 말했다.

“이번에 복직하는 C씨 파일을 한번 열어보세요. 감을 익힐 겸.”

화면에는 ‘C씨’라는 익숙한 이름이 떴다. 몇 번 복도에서 마주치며 목례를 나눈 적 있는 얼굴. 어느날 육아휴직을 사용했던 그가 이번에 복직을 희망했다. 그의 사번을 클릭하자, 한 사람의 15년이 압축된 디지털 지층(地層)이 펼쳐졌다.

입사일, 최초 발령 부서, 승진 기록, 매 반기 매겨진 근무성적평정(S, A, B, C, D), 가족사항, 희망근무지, 이수했던 교육 목록, 심지어 과거에 받았던 경미한 수준의 징계 기록까지. 스크롤을 내릴수록 한 사람의 시간이 픽셀 단위로 분해되어 눈앞에 쌓였다.


이전 부서에서 다루던 숫자는 ‘결과’였다. 특정 기간의 성과를 요약한 스냅사진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숫자들은 한 사람의 ‘과정’ 그 자체였다.

어느 해의 ‘B’ 등급 옆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 ‘S’ 등급을 받았던 해, 그는 어떤 성취감에 잠 못 이루었을까. ‘팀장 리더십 과정’이라는 교육 기록 뒤에는 어떤 고민이 숨어 있었을까.

숫자는 여전히 숫자였지만, 그 행간에는 침묵하는 서사가 빼곡했다. 이전 부서의 숫자들이 평면 위에 놓인 점이었다면, 이곳의 숫자들은 깊이를 가진 우물이었다. 들여다볼수록 어둡고 아득했다.

나는 문득 인사카드가 빼곡하게 정렬되어있던 캐비닛에서 풍겨 나오던 오래된 종이와 토너 냄새를 떠올렸다. 그 냄새는 단순히 기록의 냄새가 아니었다. 천 명의 시간이 퇴적되며 만들어낸 고유한 체취였다.


내가 앞으로 만져야 할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의 무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우스를 쥔 손에 희미한 땀이 배었다.

딜레마는 명확했다. 시스템은 이 모든 기록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처리하라고 요구한다. 평가의 계량화, 보상의 차등화, 인력의 효율적 배치. 모든 것이 숫자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자존감과 연결되고, 한 가정의 내일과 맞닿아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공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과, 개별적 인간이 처한 현실 사이의 긴장. 그것이 앞으로 내가 짊어져야 할 업무의 본질인 듯했다.


나는 조용히 C씨의 파일을 닫았다. 아직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기록이었다. 그저 ‘처리’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신중하게 ‘이해’해야 할 한 사람의 역사였다. 잠깐의 휴식 후 사무실로 돌아오자, 아까와 같은 HR시스템의 낮은 구동음이 들렸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는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기계의 소음이 아니었다. 천 명의 시간을 쉬지 않고 기록하며 쌓아가는, 거대하고 조용한 숨소리였다. 시스템의 낮은 울음은, 밤새 계속될 것이다. C씨의 복직 근무지를 어디로 해야할까. 그가 희망하는 부서에는 이미 모든 자리가 차 있었다.

책상 위에는 ‘C씨’의 복직 신청서가 놓여 있었다. 각진 명조체로 인쇄된 ‘희망 부서’란에는 세 개의 부서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지만, 내 모니터 속 전사 조직도(T.O. 현황)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 곳 모두, 초록색(여유)이나 노란색(예정)이 아닌, 붉은색(만석)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C씨는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해 15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분이었다. 그의 과거 HR시스템 기록 카드에는 성실함을 증명하는 ‘S’와 ‘A’ 등급이 빼곡했다.

그랬던 그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 멈춰야만 했고, 이제 다시 트랙으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트랙의 풍경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는 ‘유사 직무’에 배치하는 것이 맞습니다.”

부장님의 말씀은 교과서처럼 명쾌했다. 하지만 C씨가 휴직 전 근무했던 팀은 작년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인해 다른 팀과 통폐합되었다. ‘유사 직무’라는 개념 자체가 안개처럼 희미해진 상황이었다.

희망 부서장들과의 통화는 예상대로였다. 보통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현업에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제안은 환영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직의 생리란 묘해서, 새로운 인력은 종종 새로운 사업과 추가 업무라는 ‘책임’을 동반했다.

각자의 목표 달성에 여념이 없는 부서장들에게, 오래 자리를 비워 적응 기간이 필요한 직원을 받아 새로운 판을 벌이는 것은 반가운 기회라기보다 부담스러운 변수에 가까웠다.

“좋은 분인 건 알지만, 지금 당장 T.O.가 없습니다.”,

“우리 팀 업무와는 결이 좀 다른데…”,

“오래 쉬셨으니 적응 기간도 필요할 테고…”

모두가 정중했지만, 그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딜레마는 명확했다. 회사는 그에게 ‘어떤 자리든’ 내어줄 수 있지만, 과연 그것이 다시 달리려는 사람에 대한 최선일까? 공석이 생긴 지방의 어느 부서로, 혹은 누구라도 대체 가능한 한직으로 그를 보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처리’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지난 15년과 앞으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배려’는 아닐 터였다. 나는 그의 복직 신청서를 단순한 서류가 아닌, 한 사람이 다시 시작하려는 ‘재시동 버튼’으로 느끼고 있었다.




며칠간 나는 퇴근 후에도 C씨의 과거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프로젝트 보고서, 그가 작성했던 기획안, 심지어는 신입사원 시절의 교육 이수 기록까지.

그러다 먼지 쌓인 과거 자료 속에서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10년 전, 그는 사내 ‘데이터 분석 전문가’ 양성 과정 1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던 기록이 있었다. 지금은 회사의 핵심 역량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기록까지 살피던 중, 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서를 발견했다. 그가 육아휴직 기간 중에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제출한 ‘자격증 취득 비용 지원 요청서’였다.

잊힌 과거의 역량과 현재의 노력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C씨는 멈춰있던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디지털전략팀으로 향했다. 보통 인력을 제안하면 마다할 부서는 없었다. 어느 팀이나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으니까. 하지만 디지털전략팀은 회사 내에서 일종의 ‘별종’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주 업무에 프로그램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금융이 본업인 우리 회사에 해당 역량을 갖춘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외부 전문가를 마음대로 채용할 수도 없어, 그들은 늘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반 직원을 배치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와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역시나 시큰둥했다.


“저희 팀에 맞는 인력이 내부에 있을 리가요. 일반 직원은 와도 저희가 맡길 업무가 마땅치 않습니다.”

나는 C씨의 과거 이력과 최근 취득한 자격증에 대해 설명했다. 무심코 서류를 넘기던 팀장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잠깐만요, 이 분이 휴직 중에 이 자격증을 땄다고요?”


며칠 후, 나는 C씨와 마주 앉았다. 희망 부서 배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실망감을 애써 외면했다. 대신 나는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C씨께서 10년 전에 데이터 분석가 과정을 수료하셨고, 최근 휴직 중에도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신 기록을 보았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역량입니다. 혹시 디지털전략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C씨의 잠재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잊고 있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희미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C씨의 복직 신청서 ‘배치 부서’란에 ‘디지털전략팀’이라고 적었다. 가장 어려운 방정식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가 새로운 팀에서 겪을 어려움, 내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책임 등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가장 올바른 첫발을 떼었다고 믿고 싶었다.

인사 업무란, 어쩌면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함께 그려 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HR시스템의 화면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시스템 속 기록들은 한 사람의 과거를 증명하는 명백한 사실의 집합체다.

우리는 그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때로는 판단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미래까지 재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C씨의 사례는 명확히 보여주었다.

10년 전의 낡은 교육 기록과 휴직 중에 취득한 자격증 사이, 그 아득한 시간의 강물 속에는, 시스템이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의지와 잠재력이 흐르고 있었다. 기록된 과거는 점들의 나열에 불과했지만, 그 점들을 연결하여 미래의 별자리를 그리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문득 조직과 개인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은 ‘효율’이라는 언어로 인력을 ‘배치’하려 하고, 개인은 ‘의미’라는 언어로 자신의 ‘역할’을 꿈꾼다.

C씨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월급이 나오는 ‘빈자리’가 아니라, 2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설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었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채 효율성의 논리만으로 그를 배치했다면, 우리는 한 명의 직원을 얻는 대신, 한 사람의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사 담당자란, 그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고 양쪽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최적의 번역어를 찾아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언제나 완벽한 번역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여전히 효율성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 너머의 가능성을 믿고, 효율의 언어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것이야말로 축적된 과거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자, 차가운 시스템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는 인사(人事)의 본질일 것이라 믿었다.



C씨의 복직 발령 공문이 결재 라인을 타고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내려앉았을 때, 나는 짧은 안도감과 함께 희미한 성취감을 느꼈다.

엉킨 실타래 같던 문제의 매듭 하나를 조심스럽게 풀어낸 기분. 책상 위 결재판에 가지런히 정리된 서류들은 더 이상 복잡한 과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이정표처럼 보였다.

인사 업무란 때로 이렇게 길을 찾아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깨달음에 잠시 취해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4시 15분. 한 주간의 소음이 잦아들고 사무실에 나른한 평온이 깃들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주말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며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추었고, 간간이 들리는 스테이플러 소리만이 공간의 정적을 가르고 있었다. 다음 주 교육 일정표를 정리하던 내 손길도 느긋해지던 바로 그 순간, 모니터 우측 하단에 소리 없이 팝업 된 이메일 알림창이 그 평온을 깨뜨렸다.

제목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0000부 000계장입니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은 더 짧았다.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실 때 뵙고 싶습니다.’

발신자는 입사 4개월 차 신입사원 E였다.

수많은 면담 요청 메일을 받아봤지만, 이렇게 짧고 건조한 문장은 드물었다. ‘안녕’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흔한 인사도, 면담 주제를 암시하는 어떠한 단어도 없었다.

마치 감정 없는 기계가 보낸 신호 같았다. 동시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가진 특유의 무게감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닐 거라는 묵직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인사 담당자로서의 지난 경험과 직감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 협조 요청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담당자로서 마주하는 첫 번째 ‘퇴사’의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확신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작게 내려앉았다. 짧은 문장 너머로 느껴지는 단호함. 지난 몇 달간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며 무뎌졌던 감각의 날이 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곧바로 HR시스템을 열어 ‘E사원’의 파일을 다시 띄웠다. 9월에 발령받은 나는 그의 채용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과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 신입사원 심화 연수에서 그의 모습을 본 기억이 선명했다. 당시 나는 연수 과정의 참관자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유독 눈에 띄었다.

발표를 할 때는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고, 조별 토의에서는 늘 부드럽게 웃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러면서도 논의가 길을 잃을 때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단단함도 갖추고 있었다. ‘참 괜찮은 신입이 들어왔구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었다.

시스템은 나의 기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올봄,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인재. 서류 전형 점수는 최상위권이었고, AI 역량검사 결과지에는 ‘높은 안정성’과 ‘성실성’이라는 단어가 선명했다.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그의 총명함과 의욕적인 태도를 칭찬했다. 그 단단했던 포부가 불과 넉 달 만에 흔들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스템은 그의 화려한 스펙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떠나려는 이유는 단 한 줄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팀장과 먼저 통화하는 것이 순서였다.

“팀장님, 인사팀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E사원 요즘 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요?”

수화기 너머 팀장의 목소리는 바쁘고 약간은 피곤해 보였다.

“E사원이요? 글쎄요… 조용하고,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잘해요. 별문제 없는 것 같은데…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니다, 팀장님. 그냥 신입사원들 잘 적응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중이라서요.”

짧은 통화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나는 한동안 팀장이 남긴 ‘별문제 없음’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제 몫의 일을 조용히 해내는 직원. 내가 8년간 몸담았던 숫자의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바로 저 ‘별문제 없음’의 상태였다.

예측과 결과가 어긋나지 않고, 어떠한 변수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 보고서의 모든 셀이 오차 없이 채워지고, 그래프의 모든 선이 예측한 궤도를 따라 흐르는, 그 고요하고 안정적인 질서.

하지만 사람의 일도 과연 그럴까. 한 사람의 성장을 ‘별문제 없음’이라는 다섯 글자로 요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서글픈 칭찬이자, 가장 잔인한 무관심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 몸속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애써 발굴했던 하나의 가능성, E사원이라는 이름에 담았던 희미한 기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서늘한 공동(空洞)만이 남았다.

팀장이 말한 ‘별문제 없음’이라는 단어가, 그 공동 속에서 의미 없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신입사원의 퇴사란 단순히 T.O.(정원) 하나가 비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기대와 책임의 한 조각이 그렇게 떨어져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정해진 역할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을 ‘존중’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하고, 서로에게 무심한 것을 ‘쿨함’이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팀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 성과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평범한, 그리고 바쁜 관리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 ‘문제’란 보고서에 명시해야 할 사건이나 사고, 혹은 시스템의 명백한 오류를 의미했을 터이다. 그의 분주한 레이더에 E사원은 아무런 경고 신호도 보내지 않은, 그래서 ‘별문제 없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이제 막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신입사원에게 ‘별문제 없음’은 때로 ‘아무런 연결도 없음’과 동의어일 수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안갯속에서, 아무도 나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지 않는 상태. 그것은 안정적인 평온이 아니라, 소리 없는 고립일 수 있다.

나는 E사원이 보낸 짧고 건조한 이메일이, 바로 그 고립의 한가운데서 보낸 마지막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팀장의 무심한 대답은, E사원이 팀 안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E사원에게 답장을 썼다. 딱딱한 면담실의 회색 테이블은 이 대화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통보와 설득을 위한 공간이지, 이해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E사원님,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다면 오늘 퇴근 후, 회사 근처 카페에서 잠시 볼 수 있을까요? 편하게 차라도 함께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약속 장소인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먼저 가 앉아 있었다. 낡은 나무 테이블, 커피 원두 볶는 냄새, 나직한 대화 소리. 적어도 이곳은 한 사람의 진심을 꺼내놓기에 더 나은 장소일 거라 믿었다.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E사원이 굳은 표정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갓 나온 신입사원 특유의 어색한 정장 차림. 하지만 넉 달 전, 최종 합격자 발표 후 부모님과 함께 기쁘게 회사 사옥을 찾아왔을 때의 그 생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연수 기간 내내 빛나던 눈은 희미하게 지쳐 보였고, 조금은 컸던 것 같던 양복은 이제 몸에 얼추 맞았지만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갑옷처럼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그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따뜻한 커피를 권하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이 오르는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창밖은 어느덧 완전히 어두워져, 카페의 불빛이 빗방울 맺힌 유리에 어지럽게 번지고 있었다.

심화 연수 때의 총명했던 그와, 지쳐 보이는 지금의 그 사이. 그 간극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불과 한 달 전, 나는 연수원 강당의 맨 뒷자리에서 그의 발표를 지켜봤었다. 그는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거창한 주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신입사원다운 풋풋한 열정과 함께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빛났고, 목소리에는 자신이 이 조직의 의미 있는 일부가 될 것이라는 단단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는 우리가 채용 과정에서 찾고자 했던 ‘인재상’의 완벽한 현신(現身)처럼 보였다.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가능성이 조직 안에서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는, 갓 심은 묘목이 채 뿌리내리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의 빛을 앗아갔을까. 무엇이 그의 단단했던 확신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업무가 맞지 않아서? 팀 분위기가 낯설어서? 그런 표면적인 이유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상실감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문득, 우리가 한 사람을 ‘채용’하는 행위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가 조직이라는 낯선 토양에 무사히 ‘뿌리내리는’ 과정을 너무나 당연하게, 어쩌면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채용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하나의 프로젝트다. 수많은 지원자 속에서 가장 빛나는 이력서를 골라내고, 몇 단계의 검증을 거쳐 마침내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 계약서에 서명이 끝나면, 조직의 관점에서 ‘획득’이라는 과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그것은 거대한 서사의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우리는 최고의 씨앗을 고르는 데에는 혈안이 된다. 어떤 품종인지, 얼마나 튼튼한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한다. 하지만 정작 그 씨앗이 심어질 밭의 상태는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고 있을까.

그 팀의 토양은 새로운 싹을 틔울 만큼 부드러운지, 기존의 나무들이 새로운 성장을 방해할 만큼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은지, 가드너 역할을 해야 할 리더는 물을 주는 법을 알고는 있는지와 같은 고민들을 얼마나 깊게 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저 ‘별문제 없음’이라는 무심한 말 뒤에 숨어, 씨앗이 스스로 척박한 땅을 뚫고 자라나 주기를 바라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씨앗은, 그저 나약한 품종일 뿐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의 고통은 과연 개인의 ‘성장통’ 문제인가, 아니면 그를 품어주지 못한 우리 조직의 ‘구조적인 병증’인가. E사원의 지친 얼굴은 내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기 퇴사를 너무 쉽게 개인의 ‘부적응’ 문제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그의 퇴사가 만일 그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의 공고한 ‘무관심’ 때문이라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바쁜 팀장일까, 제도를 설계한 인사부일까. 아니면 그 침묵을 용인한 조직 전체인가.

꼬리를 무는 끝이없는 질문의 끝에서 나는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이제 그 시스템의 일부였다. E사원의 얼굴 위로,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데려오는 것만이 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회색의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밭을 갈고 돌보는 것 또한 나의 책임이었다. 그것은 숫자로 기록되지도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 노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씨앗이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무겁게 깨닫고 있었다.

그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은 이제 단순히 한 개인의 퇴사 사유를 넘어, 내가 몸담은 이 조직과 나 자신을 향한 무거운 질문이 되어 돌아오고있었다.


김이 오르는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질문을 던진 사람의 숙명처럼, 그의 입이 열리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E사원은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낮고 건조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그는 서두를 떼고는 다시 말을 멈췄다.

“사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누가 저를 괴롭히거나, 부당한 일을 시킨 것도 아니고요.”

그의 이야기는 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가 겪은 넉 달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모든 감정이 희미하게 바래버린 ‘회색의 시간’이었다.

그는 배치받은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한 대리급 직원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했다. 인수인계 기간은 단 3일. 대리가 몇 년간 해왔던 복잡하고 방대한 업무를 파악하고 당장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신입사원인데, 마치 제가 그 대리님의 공백에 대한 책임을 일부 떠안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회사 인턴 경력이 있다고 저를 그 자리에 배치하신 것 같은데… 그 경력이 오히려 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깊은 좌절감이 묻어났다.

“다른 동기들은 대부분 경력이 없는 순수 신입이라, 차근차근 배우는 수습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만 경력직 수준의 성과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럽고 버거웠습니다. 물론 제가 유사한 경험이 있지만, 여기 업무와는 분명 다른 부분도 많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상위 기관 보고서 마감을 맞추고, 임원 지시 사항에 대한 기획안을 당장 만들어내길 기대하셨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제가 업무에 버벅댈 때마다, 저 때문에 부서 전체의 일이 늦어지고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매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팀의 입장을 그려보고 있었다.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 밀려드는 업무 속에서 조금이라도 관련 경험이 있는 신입에게 기대를 걸었을 터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경력이 있으니 빨리 적응하겠지’ 하는 조급함이 그를 배려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팀 입장에서는 즉시 전력감을 원했고, 그는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한 신입이었다.

그 간극이 바로 이 ‘회색의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E사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이 문제를 막지 못한 인사 담당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했다. 이대로 그를 보내는 것은, 나의 첫 번째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었다.

“E사원님이 느꼈을 압박감,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겁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그리고 나의 서툰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E사원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경력과 신입 사이, 그 모호한 경계에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주지 못한 저와 우리 조직의 과오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바로잡겠습니다. E사원님이 더 이상 ‘대체 인력’이 아닌, ‘성장하는 신입’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팀장님과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E사원님의 그 빛나던 시작이 너무 아깝습니다.”

나는 그가 입사 지원서에 썼던 문장을 상기시켰다.

“‘공공금융의 안정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기억합니다. 심화 연수 때 보여주었던 그 빛나는 눈을 기억합니다. 그 꿈을 여기서 다시 시작해 볼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를 믿어줄 수 없겠습니까?”

내 말에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심화 연수 때 보았던 그 총명한 빛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는 긴 침묵 끝에, 그러나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달만 일찍 과장님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아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셔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기분입니다. 전부 풀고 처음부터 다시 끼우지 않으면, 계속 어긋날 것만 같습니다. 제 마음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그의 비유는 명확했다. 더 이상의 설득은 무의미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나의 오만이 될 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들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내겠다며 만류했지만, 나는 그것만은 허락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이자, 나의 첫 번째 실패에 대한 값이었다.

카페를 나와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고층빌딩의 화려한 불빛이 길게 늘어선 길모퉁이에서 그는 짧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의 뒷모습이 저녁의 인파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손에 남은 것은 그의 미지근한 악수의 감촉과, 아직 출력되지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사직서의 존재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그의 사직서를 출력했다. 모니터 속 차가운 글자들이, 방금 전까지 내 앞에 앉아 있던 그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 위에 인쇄된 여섯 글자. ‘일신상의 사유’.

나는 그 상투적인 문구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 얼마나 편리하고도 잔인한 마침표인가. 그것은 조직의 시스템이 한 개인의 복잡다단한 서사를, 그의 아픔과 절망을 단 한 줄로 봉인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가 겪은 회색의 시간, 조직에 대한 부서진 기대, 그가 느꼈던 압박감에 대한 고백, 그 모든 것은 이 여섯 글자 뒤에 흔적도 없이 묻혀버릴 터였다. HR시스템은 그의 퇴사 코드를 기록할 것이고, 그는 또 하나의 차가운 통계 숫자가 되어 다음번 보고서의 한 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이면의 진짜 이야기를. 짧지만 선명했던 그의 빛나던 순간과, 그 빛이 꺼져가던 과정을. 그 상투적인 문구 아래 숨겨진 한 젊음의 상처와 우리가 미처 보듬어주지 못한 그의 여린 시작을.

나는 마우스 위에서 잠시 망설이다, 결재 버튼을 눌렀다. 클릭 한 번으로 그의 넉 달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제 막 무겁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결재란에 내 이름을 적었다.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서걱거렸다.

결재란에 내 이름을 적고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금요일 저녁의 사무실은 주말을 앞둔 안도감 대신 텅 빈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따라 HR시스템의 낮은 구동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퇴직 결재 문서를 상신하고, 시스템에 접속해 그의 상태를 재직에서 퇴사 예정으로 변경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한 사람이 4개월간 쌓아온 모든 기록은 그렇게 과거의 데이터가 되어버렸다.

그의 이름 옆에 있던 초록색 불이 회색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E사원이 남기고 간 차가운 커피 잔의 감촉이 아직도 손에 남아있는 듯했다.




조직은 채용을 자산의 획득(acquisition)으로 본다. 뛰어난 인재를 선발해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것. 특히 E사원처럼 약간의 경력을 가진 신입은 즉시 전력감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획득’된다. 그의 이력서에 적힌 몇 줄의 경험은 조직에게 그를 빠르게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자산으로 보이게 했다.

계약서에 서명이 끝나면, 조직의 관점에서 ‘획득’이라는 과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다. 시스템은 이 거래가 완결되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입사란 삶의 시작(beginning)이다. 설령 이전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그는 단순히 비어있는 대리의 자리를 채우러 온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이 조직에서 성장하고 기여하리라는 희망까지 모두 들고 이 낯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경력직 수준의 성과를 즉시 내라는 압박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안전하게 착륙하고 자신의 속도대로 이륙할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시간과 배려였다. 자신이 이곳에 속해 있다는 감각, 실수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의 어깨.

어쩌면 E사원의 비극은 바로 이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직은 그의 경력을 보고 성공적으로 ‘즉시 전력 자산’을 획득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과업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는 ‘경력직 같은 신입’이라는 어색한 경계 위에서 자신의 ‘시작’을 위한 발판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불안정한 시작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데에는 처참히 실패했다.

조직이 마련한 기대치와 그가 실제로 마주한 ‘회색의 시간’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깊고 서늘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경력은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으니, 과거 선배들이 툭툭 던지던 말들이 떠올랐다.

“요즘 친구들은 좀 편하게만 크려고 해. 원래 사람은 좀 압박을 받고 깨져봐야 단단해지고 제값을 하는 법이지. 마치 석탄이 압력을 받아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말야.”

한때는 나 역시 그 말을 당연한 진리처럼 여겼다. 조직이 주는 압박은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라고. 그 논리대로라면, E사원은 그저 압력을 견디지 못한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비유는 과연 타당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흔히들 석탄이 변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석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근원인 탄소(Carbon)다. 석탄은 식물 잔해가 변성된 것으로, 탄소를 주성분으로 하지만 다양한 불순물이 섞인 퇴적암에 가깝지 않은가.

그리고 그 탄소마저도 단순히 압력만 가한다고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 상태에서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려면, 순수한 탄소가 지하 깊은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온과 고압에 아주 오랜 시간 노출되어야만 한다.

압력뿐만 아니라, 재료의 순도, 적절한 온도, 그리고 결정이 형성될 충분한 시간이라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그 영롱한 결정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탄소는 그런 조건에 미치지 못해 그저 흑연이 되거나, 다른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잘못된 조건 속의 압력은 오히려 존재를 부서뜨릴 뿐이다.

E사원은 분명 가능성을 품은 원석이었다. 하지만 조직은 그에게 경력직 수준의 성과라는 과도한 압력만 가했을 뿐, 정작 그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부족한 인수인계, 적응 시간의 부재, 과도한 책임감과 같은 ‘불순물’들을 제거해주지 못했고 성장에 적합한 온도를 맞춰주는 것에 실패했다.

우리는 그저 척박한 환경 속에 원석을 던져두고, 스스로 빛나기를 바라고만 있었던 것이다. 일방적인 압력은 그를 빛나게 만들지 못했다. 그저 그를 부서뜨렸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했다. 그렇다면 조직이 기대하는 단 하나의 빛나는 ‘보석’이 되지 못한다면, 그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가.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단단해지고 똑같은 모양으로 빛나야만 하는 걸까.

아닐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원석이 같은 방식으로 세공되어 똑같은 모양의 보석이 될 필요는 없었다. 압력을 견뎌내는 방식도, 그 결과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존재는 압력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아닌, 기록을 남기는 부드러운 흑연으로 변모하여 섬세한 가치를 드러낼 수도 있고, 또 어떤 존재는 뜨거운 열을 내는 에너지원으로 타올라 조직에 다른 형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이 정해놓은 단 하나의 ‘성공’ 모델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그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이 어떤 형태로든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사원은 우리 회사가 기대했던 반짝이는 인재는 되지 못했지만, 그는 이 회색의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환경과 가치를 찾아 다른 곳에서 빛날 준비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이번 퇴사는 실패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조직의 기준으로는 실패일지 몰라도, 그의 인생에서는 중요한 배움이자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E사원의 퇴사 절차를 마무리하고 나는 인사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다. 나의 일은 단순히 압력을 가해 조직이 원하는 단 하나의 보석을 깎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이해하고, 그가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거나, 설령 다이아몬드가 되지 않더라도 그가 가진 최선의 모습, 그것이 흑연이든 무엇이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정원사에 가까웠다.

우리는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가능성을 보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모든 씨앗이 같은 꽃을 피울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유독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었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의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나의 설득은 서툴렀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실패였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나 개인의 실패이기만 할까.

나는 E사원을 떠나게 만든 회색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바쁜 팀장, 효율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 신입사원의 적응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암묵적인 분위기. 이 모든 것이 맞물려 E사원이라는 투명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E사원의 퇴사는 개인의 부적응이 아니라,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인 결함의 결과물이 아닐까. 나는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이곳에 왔는데, 정작 나 역시 그 시스템의 일부로서, 또 다른 E사원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얼마나 많은 신입사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회색의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을까. 그들의 침묵을, 우리는 또다시 ‘별문제 없음’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덮쳐왔다.

그날 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불 꺼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꺼진 천장은 높고 아득했고 불빛 아래 책상 위의 서류 더미와 꺼진 모니터들만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낮 동안의 소음이 모두 잦아든 사무실은 깊은 침묵에 잠겨,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비현실적으로 반짝였지만, 내 안은 E사원이 남기고 간 회색의 시간처럼 희미하고 고요했다. 나는 이 실패를 잊지 않겠다고, 아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사원의 퇴사는 내 업무 리스트에서 지워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새겨진 첫 번째 흉터였다. 그것을 단순히 조기 퇴사율이라는 차가운 숫자로 분류하고 다음 분기 보고서의 한 줄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별문제 없음’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르게 느낄 것이다. 그 평온해 보이는 표면 아래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침묵, 홀로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립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공감이 아니라, 어쩌면 시스템의 효율성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몸짓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효율성을 핑계로 한 사람의 의미를, 그의 존재 이유를 외면하는 편리함에 더 이상 기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신입사원의 손을 일일이 잡아줄 수도 없고, 모든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를 단번에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안갯속을 헤매는 누군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는 시도마저 포기하지는 않겠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의 존재가 단순한 숫자와 하나의 데이터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내가 마주한 첫 실패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앞으로 내가 더듬거리며 걸어가야 할 인사 담당자로서의 길이라고 믿었다.

E사원이 남긴 차가운 커피 잔의 무게를, 그 안에 담겨 있던 식어버린 열정의 온도를,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Just Be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5d44a01e27ae4d9


저는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그렇지만 또 그렇게까지 메이저하지는 않은 금융권 공공기관 중 한 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제 일은 숫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분기별 실적, 달성률, 다음 분기의 목표. 숫자는 명쾌했고,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과정의 복잡함은 때로 희미해졌고, 평가는 소수점 아래 두 자리까지 정확하게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알던 세계의 질서였습니다.

올가을, 저는 인사부로 발령받았습니다. 제가 마주한 새로운 세계는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시간은 엑셀 시트처럼 평평하지 않았고, 마음의 무게는 계량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십수 년 치 평가 기록을 들여다볼 때, 한 줄의 고충 뒤에 숨은 고통을 마주할 때, 저는 종종 제가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탐사대원 같다고 느낍니다. 이곳의 공기, 언어, 중력은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이 낯섦을 길들이기 위한 저 자신의 생존법일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기록하지 않고서는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랜 습관 탓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인사(人事)를 궁금해합니다. 채용의 막후, 평가의 기준, 인사이동의 원칙 같은 것들. 때로는 단단한 벽처럼 느껴지는 그 결정들이 어떤 고민과 딜레마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이 기록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등장하는 모든 상황과 대화는 신원을 알아볼 수 없도록 익명화되고 재구성될 것입니다.

제가 담아내고 싶은 것은 정답이나 비판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는 딜레마의 무게, 제도를 운영하며 손끝으로 느끼는 실무의 감각입니다. 공정과 유연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원칙이라는 잣대와 현실이라는 땅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속에서 분투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과장 없이 그려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정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질문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의 기록입니다. 제도와 사람 사이, 그 아득한 거리를 재어보는 조용한 관찰기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공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통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날의 냄새 : 기록의 무게

9월 초. 사무실의 온도는 2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이는 컴퓨터의 전원 버튼 불빛 아래, 랙(Rack)들이 내뿜는 미지근한 공기가 뺨에 와 닿았다.

낮고 규칙적으로 울리는 HR시스템의 구동음(駆動音)은 지난 8년간 익숙했던 숫자들의 세계와는 다른 종류의 언어처럼 들렸다.

이전 부서에서 나의 세계를 구성하던 것은 분기별 실적, 달성률, 다음 분기의 목표 같은 명쾌한 숫자였다. 엑셀 시트 위에서 합산되고, 평균 내어지고, 그래프로 그려지던 그 숫자들은 차갑지만 정직했다.

인사부로 발령받은 첫날, 나는 이 HR시스템 안에 약 1,000명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들의 입사일, 고과, 연봉, 교육 이력, 누군가의 기쁨과 다른 누군가의 곤란함이 모두 이곳의 서류와 파일 속에 기록되어 있었다.

부장님은 내게 인사정보시스템 접속 권한을 부여하며 말했다.

“이번에 복직하는 C씨 파일을 한번 열어보세요. 감을 익힐 겸.”

화면에는 ‘C씨’라는 익숙한 이름이 떴다. 몇 번 복도에서 마주치며 목례를 나눈 적 있는 얼굴. 어느날 육아휴직을 사용했던 그가 이번에 복직을 희망했다. 그의 사번을 클릭하자, 한 사람의 15년이 압축된 디지털 지층(地層)이 펼쳐졌다.

입사일, 최초 발령 부서, 승진 기록, 매 반기 매겨진 근무성적평정(S, A, B, C, D), 가족사항, 희망근무지, 이수했던 교육 목록, 심지어 과거에 받았던 경미한 수준의 징계 기록까지. 스크롤을 내릴수록 한 사람의 시간이 픽셀 단위로 분해되어 눈앞에 쌓였다.


이전 부서에서 다루던 숫자는 ‘결과’였다. 특정 기간의 성과를 요약한 스냅사진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숫자들은 한 사람의 ‘과정’ 그 자체였다.

어느 해의 ‘B’ 등급 옆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 ‘S’ 등급을 받았던 해, 그는 어떤 성취감에 잠 못 이루었을까. ‘팀장 리더십 과정’이라는 교육 기록 뒤에는 어떤 고민이 숨어 있었을까.

숫자는 여전히 숫자였지만, 그 행간에는 침묵하는 서사가 빼곡했다. 이전 부서의 숫자들이 평면 위에 놓인 점이었다면, 이곳의 숫자들은 깊이를 가진 우물이었다. 들여다볼수록 어둡고 아득했다.

나는 문득 인사카드가 빼곡하게 정렬되어있던 캐비닛에서 풍겨 나오던 오래된 종이와 토너 냄새를 떠올렸다. 그 냄새는 단순히 기록의 냄새가 아니었다. 천 명의 시간이 퇴적되며 만들어낸 고유한 체취였다.


내가 앞으로 만져야 할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의 무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우스를 쥔 손에 희미한 땀이 배었다.

딜레마는 명확했다. 시스템은 이 모든 기록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처리하라고 요구한다. 평가의 계량화, 보상의 차등화, 인력의 효율적 배치. 모든 것이 숫자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자존감과 연결되고, 한 가정의 내일과 맞닿아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공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과, 개별적 인간이 처한 현실 사이의 긴장. 그것이 앞으로 내가 짊어져야 할 업무의 본질인 듯했다.


나는 조용히 C씨의 파일을 닫았다. 아직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기록이었다. 그저 ‘처리’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신중하게 ‘이해’해야 할 한 사람의 역사였다. 잠깐의 휴식 후 사무실로 돌아오자, 아까와 같은 HR시스템의 낮은 구동음이 들렸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는 다르게 들렸다. 그것은 기계의 소음이 아니었다. 천 명의 시간을 쉬지 않고 기록하며 쌓아가는, 거대하고 조용한 숨소리였다. 시스템의 낮은 울음은, 밤새 계속될 것이다. C씨의 복직 근무지를 어디로 해야할까. 그가 희망하는 부서에는 이미 모든 자리가 차 있었다.

책상 위에는 ‘C씨’의 복직 신청서가 놓여 있었다. 각진 명조체로 인쇄된 ‘희망 부서’란에는 세 개의 부서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지만, 내 모니터 속 전사 조직도(T.O. 현황)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 곳 모두, 초록색(여유)이나 노란색(예정)이 아닌, 붉은색(만석)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C씨는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해 15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분이었다. 그의 과거 HR시스템 기록 카드에는 성실함을 증명하는 ‘S’와 ‘A’ 등급이 빼곡했다.

그랬던 그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 멈춰야만 했고, 이제 다시 트랙으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트랙의 풍경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는 ‘유사 직무’에 배치하는 것이 맞습니다.”

부장님의 말씀은 교과서처럼 명쾌했다. 하지만 C씨가 휴직 전 근무했던 팀은 작년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인해 다른 팀과 통폐합되었다. ‘유사 직무’라는 개념 자체가 안개처럼 희미해진 상황이었다.

희망 부서장들과의 통화는 예상대로였다. 보통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현업에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제안은 환영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직의 생리란 묘해서, 새로운 인력은 종종 새로운 사업과 추가 업무라는 ‘책임’을 동반했다.

각자의 목표 달성에 여념이 없는 부서장들에게, 오래 자리를 비워 적응 기간이 필요한 직원을 받아 새로운 판을 벌이는 것은 반가운 기회라기보다 부담스러운 변수에 가까웠다.

“좋은 분인 건 알지만, 지금 당장 T.O.가 없습니다.”,

“우리 팀 업무와는 결이 좀 다른데…”,

“오래 쉬셨으니 적응 기간도 필요할 테고…”

모두가 정중했지만, 그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딜레마는 명확했다. 회사는 그에게 ‘어떤 자리든’ 내어줄 수 있지만, 과연 그것이 다시 달리려는 사람에 대한 최선일까? 공석이 생긴 지방의 어느 부서로, 혹은 누구라도 대체 가능한 한직으로 그를 보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처리’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지난 15년과 앞으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배려’는 아닐 터였다. 나는 그의 복직 신청서를 단순한 서류가 아닌, 한 사람이 다시 시작하려는 ‘재시동 버튼’으로 느끼고 있었다.




며칠간 나는 퇴근 후에도 C씨의 과거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프로젝트 보고서, 그가 작성했던 기획안, 심지어는 신입사원 시절의 교육 이수 기록까지.

그러다 먼지 쌓인 과거 자료 속에서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10년 전, 그는 사내 ‘데이터 분석 전문가’ 양성 과정 1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던 기록이 있었다. 지금은 회사의 핵심 역량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기록까지 살피던 중, 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서를 발견했다. 그가 육아휴직 기간 중에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제출한 ‘자격증 취득 비용 지원 요청서’였다.

잊힌 과거의 역량과 현재의 노력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C씨는 멈춰있던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디지털전략팀으로 향했다. 보통 인력을 제안하면 마다할 부서는 없었다. 어느 팀이나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으니까. 하지만 디지털전략팀은 회사 내에서 일종의 ‘별종’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주 업무에 프로그램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금융이 본업인 우리 회사에 해당 역량을 갖춘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외부 전문가를 마음대로 채용할 수도 없어, 그들은 늘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반 직원을 배치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와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역시나 시큰둥했다.


“저희 팀에 맞는 인력이 내부에 있을 리가요. 일반 직원은 와도 저희가 맡길 업무가 마땅치 않습니다.”

나는 C씨의 과거 이력과 최근 취득한 자격증에 대해 설명했다. 무심코 서류를 넘기던 팀장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잠깐만요, 이 분이 휴직 중에 이 자격증을 땄다고요?”


며칠 후, 나는 C씨와 마주 앉았다. 희망 부서 배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실망감을 애써 외면했다. 대신 나는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C씨께서 10년 전에 데이터 분석가 과정을 수료하셨고, 최근 휴직 중에도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신 기록을 보았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역량입니다. 혹시 디지털전략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C씨의 잠재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잊고 있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희미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C씨의 복직 신청서 ‘배치 부서’란에 ‘디지털전략팀’이라고 적었다. 가장 어려운 방정식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가 새로운 팀에서 겪을 어려움, 내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책임 등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가장 올바른 첫발을 떼었다고 믿고 싶었다.

인사 업무란, 어쩌면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함께 그려 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HR시스템의 화면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시스템 속 기록들은 한 사람의 과거를 증명하는 명백한 사실의 집합체다.

우리는 그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때로는 판단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미래까지 재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C씨의 사례는 명확히 보여주었다.

10년 전의 낡은 교육 기록과 휴직 중에 취득한 자격증 사이, 그 아득한 시간의 강물 속에는, 시스템이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의지와 잠재력이 흐르고 있었다. 기록된 과거는 점들의 나열에 불과했지만, 그 점들을 연결하여 미래의 별자리를 그리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문득 조직과 개인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은 ‘효율’이라는 언어로 인력을 ‘배치’하려 하고, 개인은 ‘의미’라는 언어로 자신의 ‘역할’을 꿈꾼다.

C씨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월급이 나오는 ‘빈자리’가 아니라, 2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설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었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채 효율성의 논리만으로 그를 배치했다면, 우리는 한 명의 직원을 얻는 대신, 한 사람의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사 담당자란, 그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고 양쪽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최적의 번역어를 찾아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언제나 완벽한 번역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여전히 효율성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 너머의 가능성을 믿고, 효율의 언어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것이야말로 축적된 과거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자, 차가운 시스템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는 인사(人事)의 본질일 것이라 믿었다.



C씨의 복직 발령 공문이 결재 라인을 타고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내려앉았을 때, 나는 짧은 안도감과 함께 희미한 성취감을 느꼈다.

엉킨 실타래 같던 문제의 매듭 하나를 조심스럽게 풀어낸 기분. 책상 위 결재판에 가지런히 정리된 서류들은 더 이상 복잡한 과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이정표처럼 보였다.

인사 업무란 때로 이렇게 길을 찾아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깨달음에 잠시 취해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4시 15분. 한 주간의 소음이 잦아들고 사무실에 나른한 평온이 깃들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주말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며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추었고, 간간이 들리는 스테이플러 소리만이 공간의 정적을 가르고 있었다. 다음 주 교육 일정표를 정리하던 내 손길도 느긋해지던 바로 그 순간, 모니터 우측 하단에 소리 없이 팝업 된 이메일 알림창이 그 평온을 깨뜨렸다.

제목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0000부 000계장입니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은 더 짧았다.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실 때 뵙고 싶습니다.’

발신자는 입사 4개월 차 신입사원 E였다.

수많은 면담 요청 메일을 받아봤지만, 이렇게 짧고 건조한 문장은 드물었다. ‘안녕’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흔한 인사도, 면담 주제를 암시하는 어떠한 단어도 없었다.

마치 감정 없는 기계가 보낸 신호 같았다. 동시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가진 특유의 무게감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닐 거라는 묵직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인사 담당자로서의 지난 경험과 직감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 협조 요청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담당자로서 마주하는 첫 번째 ‘퇴사’의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확신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작게 내려앉았다. 짧은 문장 너머로 느껴지는 단호함. 지난 몇 달간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며 무뎌졌던 감각의 날이 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곧바로 HR시스템을 열어 ‘E사원’의 파일을 다시 띄웠다. 9월에 발령받은 나는 그의 채용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과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 신입사원 심화 연수에서 그의 모습을 본 기억이 선명했다. 당시 나는 연수 과정의 참관자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유독 눈에 띄었다.

발표를 할 때는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고, 조별 토의에서는 늘 부드럽게 웃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러면서도 논의가 길을 잃을 때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단단함도 갖추고 있었다. ‘참 괜찮은 신입이 들어왔구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었다.

시스템은 나의 기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올봄,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인재. 서류 전형 점수는 최상위권이었고, AI 역량검사 결과지에는 ‘높은 안정성’과 ‘성실성’이라는 단어가 선명했다.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그의 총명함과 의욕적인 태도를 칭찬했다. 그 단단했던 포부가 불과 넉 달 만에 흔들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스템은 그의 화려한 스펙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떠나려는 이유는 단 한 줄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팀장과 먼저 통화하는 것이 순서였다.

“팀장님, 인사팀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E사원 요즘 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요?”

수화기 너머 팀장의 목소리는 바쁘고 약간은 피곤해 보였다.

“E사원이요? 글쎄요… 조용하고,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잘해요. 별문제 없는 것 같은데…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니다, 팀장님. 그냥 신입사원들 잘 적응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중이라서요.”

짧은 통화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나는 한동안 팀장이 남긴 ‘별문제 없음’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제 몫의 일을 조용히 해내는 직원. 내가 8년간 몸담았던 숫자의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바로 저 ‘별문제 없음’의 상태였다.

예측과 결과가 어긋나지 않고, 어떠한 변수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 보고서의 모든 셀이 오차 없이 채워지고, 그래프의 모든 선이 예측한 궤도를 따라 흐르는, 그 고요하고 안정적인 질서.

하지만 사람의 일도 과연 그럴까. 한 사람의 성장을 ‘별문제 없음’이라는 다섯 글자로 요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서글픈 칭찬이자, 가장 잔인한 무관심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 몸속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애써 발굴했던 하나의 가능성, E사원이라는 이름에 담았던 희미한 기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서늘한 공동(空洞)만이 남았다.

팀장이 말한 ‘별문제 없음’이라는 단어가, 그 공동 속에서 의미 없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신입사원의 퇴사란 단순히 T.O.(정원) 하나가 비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기대와 책임의 한 조각이 그렇게 떨어져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정해진 역할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을 ‘존중’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하고, 서로에게 무심한 것을 ‘쿨함’이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팀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 성과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평범한, 그리고 바쁜 관리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 ‘문제’란 보고서에 명시해야 할 사건이나 사고, 혹은 시스템의 명백한 오류를 의미했을 터이다. 그의 분주한 레이더에 E사원은 아무런 경고 신호도 보내지 않은, 그래서 ‘별문제 없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이제 막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신입사원에게 ‘별문제 없음’은 때로 ‘아무런 연결도 없음’과 동의어일 수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안갯속에서, 아무도 나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지 않는 상태. 그것은 안정적인 평온이 아니라, 소리 없는 고립일 수 있다.

나는 E사원이 보낸 짧고 건조한 이메일이, 바로 그 고립의 한가운데서 보낸 마지막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팀장의 무심한 대답은, E사원이 팀 안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E사원에게 답장을 썼다. 딱딱한 면담실의 회색 테이블은 이 대화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통보와 설득을 위한 공간이지, 이해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E사원님,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다면 오늘 퇴근 후, 회사 근처 카페에서 잠시 볼 수 있을까요? 편하게 차라도 함께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약속 장소인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먼저 가 앉아 있었다. 낡은 나무 테이블, 커피 원두 볶는 냄새, 나직한 대화 소리. 적어도 이곳은 한 사람의 진심을 꺼내놓기에 더 나은 장소일 거라 믿었다.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E사원이 굳은 표정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갓 나온 신입사원 특유의 어색한 정장 차림. 하지만 넉 달 전, 최종 합격자 발표 후 부모님과 함께 기쁘게 회사 사옥을 찾아왔을 때의 그 생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연수 기간 내내 빛나던 눈은 희미하게 지쳐 보였고, 조금은 컸던 것 같던 양복은 이제 몸에 얼추 맞았지만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갑옷처럼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그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따뜻한 커피를 권하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이 오르는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창밖은 어느덧 완전히 어두워져, 카페의 불빛이 빗방울 맺힌 유리에 어지럽게 번지고 있었다.

심화 연수 때의 총명했던 그와, 지쳐 보이는 지금의 그 사이. 그 간극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불과 한 달 전, 나는 연수원 강당의 맨 뒷자리에서 그의 발표를 지켜봤었다. 그는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거창한 주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신입사원다운 풋풋한 열정과 함께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빛났고, 목소리에는 자신이 이 조직의 의미 있는 일부가 될 것이라는 단단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는 우리가 채용 과정에서 찾고자 했던 ‘인재상’의 완벽한 현신(現身)처럼 보였다.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가능성이 조직 안에서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는, 갓 심은 묘목이 채 뿌리내리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의 빛을 앗아갔을까. 무엇이 그의 단단했던 확신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업무가 맞지 않아서? 팀 분위기가 낯설어서? 그런 표면적인 이유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상실감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문득, 우리가 한 사람을 ‘채용’하는 행위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가 조직이라는 낯선 토양에 무사히 ‘뿌리내리는’ 과정을 너무나 당연하게, 어쩌면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채용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하나의 프로젝트다. 수많은 지원자 속에서 가장 빛나는 이력서를 골라내고, 몇 단계의 검증을 거쳐 마침내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 계약서에 서명이 끝나면, 조직의 관점에서 ‘획득’이라는 과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그것은 거대한 서사의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우리는 최고의 씨앗을 고르는 데에는 혈안이 된다. 어떤 품종인지, 얼마나 튼튼한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한다. 하지만 정작 그 씨앗이 심어질 밭의 상태는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고 있을까.

그 팀의 토양은 새로운 싹을 틔울 만큼 부드러운지, 기존의 나무들이 새로운 성장을 방해할 만큼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은지, 가드너 역할을 해야 할 리더는 물을 주는 법을 알고는 있는지와 같은 고민들을 얼마나 깊게 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저 ‘별문제 없음’이라는 무심한 말 뒤에 숨어, 씨앗이 스스로 척박한 땅을 뚫고 자라나 주기를 바라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씨앗은, 그저 나약한 품종일 뿐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의 고통은 과연 개인의 ‘성장통’ 문제인가, 아니면 그를 품어주지 못한 우리 조직의 ‘구조적인 병증’인가. E사원의 지친 얼굴은 내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기 퇴사를 너무 쉽게 개인의 ‘부적응’ 문제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그의 퇴사가 만일 그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의 공고한 ‘무관심’ 때문이라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바쁜 팀장일까, 제도를 설계한 인사부일까. 아니면 그 침묵을 용인한 조직 전체인가.

꼬리를 무는 끝이없는 질문의 끝에서 나는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이제 그 시스템의 일부였다. E사원의 얼굴 위로,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데려오는 것만이 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회색의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밭을 갈고 돌보는 것 또한 나의 책임이었다. 그것은 숫자로 기록되지도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 노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씨앗이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무겁게 깨닫고 있었다.

그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은 이제 단순히 한 개인의 퇴사 사유를 넘어, 내가 몸담은 이 조직과 나 자신을 향한 무거운 질문이 되어 돌아오고있었다.


김이 오르는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질문을 던진 사람의 숙명처럼, 그의 입이 열리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E사원은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낮고 건조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그는 서두를 떼고는 다시 말을 멈췄다.

“사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누가 저를 괴롭히거나, 부당한 일을 시킨 것도 아니고요.”

그의 이야기는 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가 겪은 넉 달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모든 감정이 희미하게 바래버린 ‘회색의 시간’이었다.

그는 배치받은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한 대리급 직원의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했다. 인수인계 기간은 단 3일. 대리가 몇 년간 해왔던 복잡하고 방대한 업무를 파악하고 당장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신입사원인데, 마치 제가 그 대리님의 공백에 대한 책임을 일부 떠안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회사 인턴 경력이 있다고 저를 그 자리에 배치하신 것 같은데… 그 경력이 오히려 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깊은 좌절감이 묻어났다.

“다른 동기들은 대부분 경력이 없는 순수 신입이라, 차근차근 배우는 수습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만 경력직 수준의 성과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너무 부담스럽고 버거웠습니다. 물론 제가 유사한 경험이 있지만, 여기 업무와는 분명 다른 부분도 많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상위 기관 보고서 마감을 맞추고, 임원 지시 사항에 대한 기획안을 당장 만들어내길 기대하셨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제가 업무에 버벅댈 때마다, 저 때문에 부서 전체의 일이 늦어지고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매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나는 머릿속으로 팀의 입장을 그려보고 있었다.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 밀려드는 업무 속에서 조금이라도 관련 경험이 있는 신입에게 기대를 걸었을 터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경력이 있으니 빨리 적응하겠지’ 하는 조급함이 그를 배려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팀 입장에서는 즉시 전력감을 원했고, 그는 아직 날개를 펴지 못한 신입이었다.

그 간극이 바로 이 ‘회색의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E사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이 문제를 막지 못한 인사 담당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했다. 이대로 그를 보내는 것은, 나의 첫 번째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었다.

“E사원님이 느꼈을 압박감,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니, 어쩌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겁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그리고 나의 서툰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E사원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경력과 신입 사이, 그 모호한 경계에서 적절한 기회와 시간을 주지 못한 저와 우리 조직의 과오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바로잡겠습니다. E사원님이 더 이상 ‘대체 인력’이 아닌, ‘성장하는 신입’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팀장님과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E사원님의 그 빛나던 시작이 너무 아깝습니다.”

나는 그가 입사 지원서에 썼던 문장을 상기시켰다.

“‘공공금융의 안정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기억합니다. 심화 연수 때 보여주었던 그 빛나는 눈을 기억합니다. 그 꿈을 여기서 다시 시작해 볼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를 믿어줄 수 없겠습니까?”

내 말에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심화 연수 때 보았던 그 총명한 빛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는 긴 침묵 끝에, 그러나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달만 일찍 과장님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더라면… 아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셔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기분입니다. 전부 풀고 처음부터 다시 끼우지 않으면, 계속 어긋날 것만 같습니다. 제 마음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그의 비유는 명확했다. 더 이상의 설득은 무의미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나의 오만이 될 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서를 들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내겠다며 만류했지만, 나는 그것만은 허락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이자, 나의 첫 번째 실패에 대한 값이었다.

카페를 나와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고층빌딩의 화려한 불빛이 길게 늘어선 길모퉁이에서 그는 짧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의 뒷모습이 저녁의 인파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손에 남은 것은 그의 미지근한 악수의 감촉과, 아직 출력되지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사직서의 존재감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그의 사직서를 출력했다. 모니터 속 차가운 글자들이, 방금 전까지 내 앞에 앉아 있던 그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 위에 인쇄된 여섯 글자. ‘일신상의 사유’.

나는 그 상투적인 문구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이 얼마나 편리하고도 잔인한 마침표인가. 그것은 조직의 시스템이 한 개인의 복잡다단한 서사를, 그의 아픔과 절망을 단 한 줄로 봉인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가 겪은 회색의 시간, 조직에 대한 부서진 기대, 그가 느꼈던 압박감에 대한 고백, 그 모든 것은 이 여섯 글자 뒤에 흔적도 없이 묻혀버릴 터였다. HR시스템은 그의 퇴사 코드를 기록할 것이고, 그는 또 하나의 차가운 통계 숫자가 되어 다음번 보고서의 한 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이면의 진짜 이야기를. 짧지만 선명했던 그의 빛나던 순간과, 그 빛이 꺼져가던 과정을. 그 상투적인 문구 아래 숨겨진 한 젊음의 상처와 우리가 미처 보듬어주지 못한 그의 여린 시작을.

나는 마우스 위에서 잠시 망설이다, 결재 버튼을 눌렀다. 클릭 한 번으로 그의 넉 달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제 막 무겁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결재란에 내 이름을 적었다.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서걱거렸다.

결재란에 내 이름을 적고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금요일 저녁의 사무실은 주말을 앞둔 안도감 대신 텅 빈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따라 HR시스템의 낮은 구동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퇴직 결재 문서를 상신하고, 시스템에 접속해 그의 상태를 재직에서 퇴사 예정으로 변경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한 사람이 4개월간 쌓아온 모든 기록은 그렇게 과거의 데이터가 되어버렸다.

그의 이름 옆에 있던 초록색 불이 회색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E사원이 남기고 간 차가운 커피 잔의 감촉이 아직도 손에 남아있는 듯했다.




조직은 채용을 자산의 획득(acquisition)으로 본다. 뛰어난 인재를 선발해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것. 특히 E사원처럼 약간의 경력을 가진 신입은 즉시 전력감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획득’된다. 그의 이력서에 적힌 몇 줄의 경험은 조직에게 그를 빠르게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자산으로 보이게 했다.

계약서에 서명이 끝나면, 조직의 관점에서 ‘획득’이라는 과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다. 시스템은 이 거래가 완결되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입사란 삶의 시작(beginning)이다. 설령 이전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그는 단순히 비어있는 대리의 자리를 채우러 온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이 조직에서 성장하고 기여하리라는 희망까지 모두 들고 이 낯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경력직 수준의 성과를 즉시 내라는 압박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안전하게 착륙하고 자신의 속도대로 이륙할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시간과 배려였다. 자신이 이곳에 속해 있다는 감각, 실수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의 어깨.

어쩌면 E사원의 비극은 바로 이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직은 그의 경력을 보고 성공적으로 ‘즉시 전력 자산’을 획득했다고 생각하고 다음 과업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는 ‘경력직 같은 신입’이라는 어색한 경계 위에서 자신의 ‘시작’을 위한 발판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불안정한 시작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데에는 처참히 실패했다.

조직이 마련한 기대치와 그가 실제로 마주한 ‘회색의 시간’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깊고 서늘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경력은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으니, 과거 선배들이 툭툭 던지던 말들이 떠올랐다.

“요즘 친구들은 좀 편하게만 크려고 해. 원래 사람은 좀 압박을 받고 깨져봐야 단단해지고 제값을 하는 법이지. 마치 석탄이 압력을 받아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말야.”

한때는 나 역시 그 말을 당연한 진리처럼 여겼다. 조직이 주는 압박은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라고. 그 논리대로라면, E사원은 그저 압력을 견디지 못한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비유는 과연 타당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흔히들 석탄이 변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석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근원인 탄소(Carbon)다. 석탄은 식물 잔해가 변성된 것으로, 탄소를 주성분으로 하지만 다양한 불순물이 섞인 퇴적암에 가깝지 않은가.

그리고 그 탄소마저도 단순히 압력만 가한다고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 상태에서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려면, 순수한 탄소가 지하 깊은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온과 고압에 아주 오랜 시간 노출되어야만 한다.

압력뿐만 아니라, 재료의 순도, 적절한 온도, 그리고 결정이 형성될 충분한 시간이라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비로소 그 영롱한 결정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탄소는 그런 조건에 미치지 못해 그저 흑연이 되거나, 다른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잘못된 조건 속의 압력은 오히려 존재를 부서뜨릴 뿐이다.

E사원은 분명 가능성을 품은 원석이었다. 하지만 조직은 그에게 경력직 수준의 성과라는 과도한 압력만 가했을 뿐, 정작 그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부족한 인수인계, 적응 시간의 부재, 과도한 책임감과 같은 ‘불순물’들을 제거해주지 못했고 성장에 적합한 온도를 맞춰주는 것에 실패했다.

우리는 그저 척박한 환경 속에 원석을 던져두고, 스스로 빛나기를 바라고만 있었던 것이다. 일방적인 압력은 그를 빛나게 만들지 못했다. 그저 그를 부서뜨렸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했다. 그렇다면 조직이 기대하는 단 하나의 빛나는 ‘보석’이 되지 못한다면, 그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가.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단단해지고 똑같은 모양으로 빛나야만 하는 걸까.

아닐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원석이 같은 방식으로 세공되어 똑같은 모양의 보석이 될 필요는 없었다. 압력을 견뎌내는 방식도, 그 결과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존재는 압력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아닌, 기록을 남기는 부드러운 흑연으로 변모하여 섬세한 가치를 드러낼 수도 있고, 또 어떤 존재는 뜨거운 열을 내는 에너지원으로 타올라 조직에 다른 형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이 정해놓은 단 하나의 ‘성공’ 모델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그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이 어떤 형태로든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사원은 우리 회사가 기대했던 반짝이는 인재는 되지 못했지만, 그는 이 회색의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환경과 가치를 찾아 다른 곳에서 빛날 준비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에게 이번 퇴사는 실패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조직의 기준으로는 실패일지 몰라도, 그의 인생에서는 중요한 배움이자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E사원의 퇴사 절차를 마무리하고 나는 인사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다. 나의 일은 단순히 압력을 가해 조직이 원하는 단 하나의 보석을 깎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이해하고, 그가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거나, 설령 다이아몬드가 되지 않더라도 그가 가진 최선의 모습, 그것이 흑연이든 무엇이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정원사에 가까웠다.

우리는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가능성을 보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모든 씨앗이 같은 꽃을 피울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유독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었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의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나의 설득은 서툴렀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실패였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나 개인의 실패이기만 할까.

나는 E사원을 떠나게 만든 회색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바쁜 팀장, 효율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 신입사원의 적응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암묵적인 분위기. 이 모든 것이 맞물려 E사원이라는 투명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E사원의 퇴사는 개인의 부적응이 아니라,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인 결함의 결과물이 아닐까. 나는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이곳에 왔는데, 정작 나 역시 그 시스템의 일부로서, 또 다른 E사원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얼마나 많은 신입사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회색의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을까. 그들의 침묵을, 우리는 또다시 ‘별문제 없음’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덮쳐왔다.

그날 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불 꺼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꺼진 천장은 높고 아득했고 불빛 아래 책상 위의 서류 더미와 꺼진 모니터들만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낮 동안의 소음이 모두 잦아든 사무실은 깊은 침묵에 잠겨,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비현실적으로 반짝였지만, 내 안은 E사원이 남기고 간 회색의 시간처럼 희미하고 고요했다. 나는 이 실패를 잊지 않겠다고, 아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사원의 퇴사는 내 업무 리스트에서 지워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새겨진 첫 번째 흉터였다. 그것을 단순히 조기 퇴사율이라는 차가운 숫자로 분류하고 다음 분기 보고서의 한 줄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별문제 없음’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르게 느낄 것이다. 그 평온해 보이는 표면 아래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침묵, 홀로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립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공감이 아니라, 어쩌면 시스템의 효율성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몸짓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효율성을 핑계로 한 사람의 의미를, 그의 존재 이유를 외면하는 편리함에 더 이상 기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물론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신입사원의 손을 일일이 잡아줄 수도 없고, 모든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를 단번에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안갯속을 헤매는 누군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는 시도마저 포기하지는 않겠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의 존재가 단순한 숫자와 하나의 데이터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내가 마주한 첫 실패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앞으로 내가 더듬거리며 걸어가야 할 인사 담당자로서의 길이라고 믿었다.

E사원이 남긴 차가운 커피 잔의 무게를, 그 안에 담겨 있던 식어버린 열정의 온도를,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Just Be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5d44a01e27ae4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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