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이야기


1. 문화의 실체는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오래전 있었던 일이다. 한 직원이 나를 찾아와, 잠깐 차 한잔 나누고 싶다고 했다.

“회사에 능력 있고, 함께 일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데… 결국 다 떠나고 있어요.
너무 안타까워서 고민 끝에 이렇게 말씀드리게 됐습니다.”

직원은 회사의 문제를 짚어주었다. 우리 조직의 문화,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까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 순간, 내 안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정말 직원들은 모든 걸 알고 있었구나.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몰랐던 게 아니었구나.”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 과연 조직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우리 것이 아닌 문화는, 단단해질 수 없다

많은 기업이 “우리만의 조직문화를 만들자”라고 외치지만, 실상은 이미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는 ‘우리가 닮고 싶은 기업’을 기준으로 문화를 만들려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구호나 문구, 이상적인 문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걸어온 여정 속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반복되어 왔는지, 우리만의 성공방정식은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며 찾아가는 내부 관점의 과정이어야 한다.

멋진 말, 그럴싸한 문장으로 문화를 포장하면 오히려 구성원들의 공감을 잃는다.

왜일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건 우리 얘기가 아닌데?’
‘현실과는 거리가 먼데?’
‘그냥 대표가 만들고 싶은 분위기겠지.’

많은 기업이 조직문화 정의에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경영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그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드러난다

조직문화의 결과는 내부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경영진과 리더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가에 달려 있다.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 조직문화가 이상해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문화 점검이 필요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뭔가 잘 안 풀릴 때 우리는 너무 쉽게 ‘문화 탓’을 한다. 그리고 다시 구호를 바꾸고, 규정을 새로 만들고, 행동 강령을 정리한다.

과연 그것이 해법일까?


문화는 잘못이 없다.

문화가 이상하다는 말은 사실 조직의 방식이 일관되지 않거나,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보면, 대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경영진이 현실보다는 이상적인 모습을 앞세운다.

구성원은 그 이상에 공감하지 못한다.

결국 문화는 ‘강요’처럼 느껴지고, 사람들은 입을 닫는다.

문화는 제도나 규정으로 통제할 수 없다. 문화를 세우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현장의 온도를 읽어내는 감각이다.


문화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

조직문화는 구성원의 참여 없이 작동할 수 없다.

경영자가 혼자 정립하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요즘은 다양성을 강조하고, AI도 조직문화 분석에 활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AI도 알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말하지 않는 직원의 마음이다. 그들은 왜 입을 열지 않는 걸까?, 왜 우리가 만든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 걸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조직 내부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출발점은 ‘현실의 인정’이다

조직문화가 바로 서기 위한 첫걸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구성원과 함께 이야기하려는 조직이라면, 직원들도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조직이라면, 입을 닫는 사람만 늘어갈 것이다.

출발점이 ‘우리’로부터가 아니라면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우선은 조직 내부의 현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고 출발점으로 돌아가보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 때문에 입을 열지 않고 있고 무엇 때문에 다가오지 않는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문화를 정의하고 직원들에게 전달했는데 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을까?

문화는 글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다.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과 함께 느끼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정말, 우리 안에서 출발했는가?

부족한 현재의 조직의 상황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먼저 마음을 열고 구성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직원들은 입을 열고 조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2. 당장 줄여야 할 것을 먼저 찾아라.

“아, 너무 바쁘네요. 회사에만 나오면 정신이 없습니다.”


예전 한 고객사의 경영진과 이야기 나누던 중, 자주 들었던 말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회의들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는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대표님의 허락을 얻어 실제 회의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회의에 참관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인상 깊었던 건, 회의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 매번 가장 많이 이야기하던 대표님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왜 ‘정신이 없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루가 마무리될 즈음,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항상 대표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의견을 듣고 싶은 건지, 의사결정을 하는 건지에 따라 참석자들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혹시 기대하시는 역할이 있으신가요?”

“모든 회의가 정시에 시작하거나 끝나는 경우가 없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결정되지 못한 채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는 회의도 많던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조금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음 대화를 기약했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내가 던진 질문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인원’, ‘시간’, ‘횟수’ — 단 3가지 관점이었다.

이 단순한 세 가지를 줄이기만 해도, 회의는 훨씬 더 담백하고 유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일터는 어떤가?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 과감히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일이 늘어나고
더 바빠지는 구조에 빠져 있진 않은가?


결국 일은 많아졌고, 투입된 자원도 늘었지만 정작 달라진 건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에 자주 빠진다. 특히 조직문화나 변화를 다룰 땐, 더 많은 시도와 활동을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해진 답이 없고 연관된 요소가 많기에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무언가를 더하지 않으면 뒤처진 것 같은 마음이 우리를 자꾸 ‘추가’의 유혹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반대로 묻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

이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우리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일들 중 단지 생각 없이 쌓아두기만 한 리스트는 없는가?

진짜 중요한 건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일 수 있다.

문제는 회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불필요한 회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다. 일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료를 더 만들고, 말을 더 하고, 보고를 자주 한다고 일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조직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채우는 일’에 익숙하다.
시간표를 채우고, 보고서를 채우고, 인력을 채우고, 책임을 채운다.

그러나 진짜 탁월한 조직은 그 반대의 길을 간다. 과감히 비우고, 단순하게 만들고, 본질만 남기려 한다.

일이 많다는 말속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백이 숨어 있다.

그 고백을 마주할 수 있어야, 조직도, 일도, 사람도 가벼워질 수 있다.


더하지 않는 용기.
덜어내는 선택.
그것이 바로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이다.


3. 문화로 사람을 홀리려고 하지 마라.

요즘 기업들을 보면 규모에 상관없이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은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비전이 담긴 포스터, 슬로건, 일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회사의 근무공간과 복리후생을 어필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영상들을 보면, 겉보기엔 참 멋지고, 다른 회사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회사로 보일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묻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장치일 뿐인 걸까?


‘보여주기’에 진심인 조직들

언제부터인가 기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와 역할이 중요해지고, 근무하는 환경과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지가 회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면서 기업들은 하나같이 외부에 있는 사람의 반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즘 MZ는 문화에 반응해요.”
“우리도 있어 보이는 조직으로 보여야 해요. 뭔가 그럴싸한 것! ”
“일만 시켜선 안 되잖아요, 뭔가 더 있어야죠.”

그 결과 사무실은 예쁘게 꾸며지고, 슬로건은 멋지게 걸리고, 타운홀에서는 리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소통’이라는 이유로 한자리에 모여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좁혀가는 자리인 만큼 ‘타운홀’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모이는 것만으로 의미를 갖는 단계’가 지나가면 이제 구성원들의 머릿속에는 많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게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건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활동들이 실제 자신의 일과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저 “좋은 회사처럼 보여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조직 안에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구성원들이 눈치채면서부터 구성원들에게 ‘조직문화’라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오게 된다.


컬처비, 문화의 탈을 쓴 선동

예전 TV를 보며, 사이비 종교나 집단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엉뚱한 사상에 빠지게 되는 걸까?

흔희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면의 불안감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삶의 답을 찾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할 때.. 그 틈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그럴듯한 말’과 ‘아늑한 공간’이 좀처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조직문화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불확실한 비즈니스 상황 속에서의 불안함, 반복되는 답답한 커뮤니케이션 속에서의 조직구조의 허술함, 애매한 역할 구조 속에서 서로 간의 갈등이 점점 쌓여만 가는 순간. ‘문화라는 이름의 포장으로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잠식시키고, 멋들어진 이미지로 탈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조직을 ‘사이비’가 아닌 ‘컬처비(Culturebee)’라고 부르고 싶다. 겉으로는 문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성원을 선동하고 조종하려는 구조이다.

컬처비 조직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문화 활동이 늘어날수록 실무자들의 업무는 더 과중해진다.

자율을 말하면서도 ‘이 문화는 참여해야지’라는 강요가 있다.

문화 활동으로 인해 ‘일의 본질’이 흐려진다.

구성원들이 내부 문제를 지적할수록 “우린 원팀이잖아”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이해해야지” 눌러버린다.


<표. 사이비 종교와 ‘컬처비 조직의 유사점>

결국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실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묻지 않은 채,
“이런 것도 안 해주는 회사보단 낫잖아?”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럴싸한 이야기와 포장으로 사람을 묶으려는 문화는 사이비가 빠르게 몰입자를 만드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문화는 사람을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환경이어야 하는데, 일부 조직은 화려한 이미지, 감성적 메시지, ‘우리끼리만 통하는 코드’로 구성원을 묶으려 한다.

그건 결국 ‘내면의 자율성’을 뺏고, ‘외부 자극’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이다. 당장은 활발해 보이지만, 결국은 쉽게 지치고 빠져나가게 되는 속성을 갖게 된다.


‘열정’은 홀림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은 홀려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요즘의 구성원들은 더욱 그렇다. 일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감성적 자극이나 단기적인 환상이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주도권
내가 여기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나의 가치와 조직의 방향이 이어져 있다는 실감에서 나온다.

멋진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회의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고, 굿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의견이 존중받고 실제로 반영되는 경험이다.


문화는 ‘홀림’이 아니라 ‘호흡’이다

좋은 조직문화는 사람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용히 만들어줄 뿐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
실패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 공간
불필요한 걸 줄이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하되, 각자의 걸음으로 갈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이 진짜 ‘우리 다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그럴듯한 포장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진심이다.

사람을 홀리는 문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문화는 그 조직을 지속가능한 생태계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겉모습으로 설득된 사람은, 겉모습이 바뀌면 떠난다.
멋진 포장을 벗겨도 남는 것, 그게 진짜 문화다.


4. 남아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회사

“○○님도 결국 떠났대요.”

한동안 말없이 그 말을 곱씹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잠시 조용해졌지만, 이내 누군가가 “부럽다…”는 말을 꺼냈고, 몇몇은 웃으며 “나도 이직 준비 좀 해야겠다”는 말을 던지기 시작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축하의 말이 이어지고, 부러운 눈빛이 따라붙는 풍경.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어쩌다 퇴사가 ‘해방’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된 걸까. 한 사람이 떠난다는 건 분명 조직에 중요한 일인데,

왜 이토록 가볍게, 당연한 일처럼 소비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까.

“남아 있는 내가… 괜히 바보가 된 것 같아.”

퇴사는 선택, 그런데 왜 위안처럼 여겨질까

퇴사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떠나는 사람을 모두가 ‘축하’하게 되었고, 남아 있는 사람은 조용히 마음속 허탈함을 삼킨다.

“나만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너무 오래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하면, 조직의 공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소리 없이 이탈하고, 남은 이들은 점점 말을 줄인다.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을 바라봐야 할 때

잘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아무 말 없이 버텨주고, 여전히 자신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한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팀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던 그들이 점점 무표정해질 때, 그건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니다.

조직이 놓치고 있는 사인은, 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있다.

남는다는 건 무언가를 지켜낸다는 뜻인데

회사를 떠나려면 여러 가지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아 있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감정 노동’이 따른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래도 이 조직이 좋아서, 혹은 아직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남는 사람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고, 무언가를 말해도 돌아오는 게 없고, 자꾸 ‘너만 너무 예민한 거야’라는 반응만 돌아온다면, 그들의 마음도 결국은 지치게 된다.

남는다는 건,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건 지키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게 된다.

나만 남은 것 같다는 기분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부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이미 당신도 꽤 많이 지쳐 있는 것이다.

‘일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줄어든 것 같고’
‘회의에서 말할수록 내 말만 튕겨져 나가는 기분이고’
‘예전엔 같이 고민하던 사람들인데, 이젠 다들 침묵하고’

그럴수록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까?”

사람들은 지쳐서 떠나는 게 아니다.

떠나야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에, 남아야 할 이유가 더는 없다고 느껴질 때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아주 단순한 질문

퇴사율을 낮추기 위한 복지나 분위기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조직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거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왜 머물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가?”

조직은 종종 떠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해석을 붙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남은 사람의 눈빛이 흐려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는 것이다. 그 눈빛 속엔 분명 어떤 말이 숨어 있다.

남아 있는 사람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좋은 조직은, 떠나는 사람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남아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만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도록

내가 여기에 있는 게 팀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도록

오늘 하루도 내 성장 안에 있다고 느껴지도록

이 세 가지가 지켜진다면,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다면, 지금 이 조직에서 내가 지켜내고 싶은 건 무엇인지, 그걸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볼 시간이다. 그리고 리더라면, 조용히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놓인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헤아려야 한다.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조직
바로 그런 곳이,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간다.


5. 체계에 목숨 걸지 마라.

“우리 조직은 아직 체계가 없어요.”
“이걸 해결하려면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해요.”
“아니야 이거 먼저 R&R부터 다시 정해야 해요”
“아니야 그전에 프로세스부터 먼저 정리하고 진행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조직 안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마치 체계만 갖추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체계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체계가 있는데도 혼란스러운 조직도 있다

‘체계가 잘 잡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가장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조직을 손꼽으라면 아마도 ‘군 조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군 생활을 떠올려보면 회사에서 겪는 혼란이 거의 없다.

흔히 회사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질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거 누가 해야 하는 일이지?”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업무 매뉴얼은 어디에 있지?”

군에 입대를 하면 절차대로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
나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변이 움직이기에 나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느낌이 들정도로 말이다.

군대는 철저 한 체계와 명확한 역할 정의가 있다. 모든 업무는 작은 일들도 단위로 나뉘어 있고, 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다 정해져 있기에 업무의 중복이나 혼선이 없다. 그리고 업무수행방식을 기록한 업무 매뉴얼 또한 자세하게 정리가 되어있기에 전역을 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무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군 조직 안에서는 앞으로가 예측 가능했다. 연간 진행되는 큰 사이클을 인지하고 있기에 각 시기별 무엇을 해야 할지 대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체계는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점점 체계를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의 기반이 된다.

우리의 조직은 어떤가?
매일 같이 변화를 외치면서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들은 많지만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라고 묻는 다면 글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직에서 생각하고 있는 체계 역시 큰 맥락에서는 군 조직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결국 체계란 일을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행동과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최적화하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왜 조직은 체계적으로 일하자 강조하고 외치지만 어려운 것일까?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군이라는 조직은 상명하복의 특수성이 있기에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만들어 놓은 흐름대로 일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조직이 만들어진 목적자체부터 강한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하고 있는 조직은 어떠한가?
단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운영될 수 없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다.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한 구조이기에 단 한 사람의 판단이나 기준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기업의 성장단계에 따라 리더의 철학, 구성원의 경험, 맡은 역할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게 정의된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목표를 이루는 방식까지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것은 현실 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결정의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완벽한 체계가 결정까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체계는 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하는 절차를 약속하고 그 절차에 따라 회의록을 남기고 자료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일을 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업무 매뉴얼에 수정사항을 반영하여 처리하며 일을 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체계에 목숨을 걸며 일하는 조직은 오히려 판단과 실행의 유연성을 잃기 쉬울 수 있다.


우리 조직의 체계는 정말로 사람의 판단과 역량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사람의 생각과 창의성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체계에 너무 의존하기보다, 그 체계 안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마련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체계의 완성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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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의 실체는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오래전 있었던 일이다. 한 직원이 나를 찾아와, 잠깐 차 한잔 나누고 싶다고 했다.

“회사에 능력 있고, 함께 일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데… 결국 다 떠나고 있어요.
너무 안타까워서 고민 끝에 이렇게 말씀드리게 됐습니다.”

직원은 회사의 문제를 짚어주었다. 우리 조직의 문화,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까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 순간, 내 안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정말 직원들은 모든 걸 알고 있었구나.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몰랐던 게 아니었구나.”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 과연 조직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우리 것이 아닌 문화는, 단단해질 수 없다

많은 기업이 “우리만의 조직문화를 만들자”라고 외치지만, 실상은 이미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는 ‘우리가 닮고 싶은 기업’을 기준으로 문화를 만들려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구호나 문구, 이상적인 문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걸어온 여정 속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는지, 어떤 판단 기준이 반복되어 왔는지, 우리만의 성공방정식은 무엇이었는지를 성찰하며 찾아가는 내부 관점의 과정이어야 한다.

멋진 말, 그럴싸한 문장으로 문화를 포장하면 오히려 구성원들의 공감을 잃는다.

왜일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건 우리 얘기가 아닌데?’
‘현실과는 거리가 먼데?’
‘그냥 대표가 만들고 싶은 분위기겠지.’

많은 기업이 조직문화 정의에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경영자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그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드러난다

조직문화의 결과는 내부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경영진과 리더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가에 달려 있다.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 조직문화가 이상해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문화 점검이 필요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뭔가 잘 안 풀릴 때 우리는 너무 쉽게 ‘문화 탓’을 한다. 그리고 다시 구호를 바꾸고, 규정을 새로 만들고, 행동 강령을 정리한다.

과연 그것이 해법일까?


문화는 잘못이 없다.

문화가 이상하다는 말은 사실 조직의 방식이 일관되지 않거나,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보면, 대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경영진이 현실보다는 이상적인 모습을 앞세운다.

구성원은 그 이상에 공감하지 못한다.

결국 문화는 ‘강요’처럼 느껴지고, 사람들은 입을 닫는다.

문화는 제도나 규정으로 통제할 수 없다. 문화를 세우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현장의 온도를 읽어내는 감각이다.


문화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

조직문화는 구성원의 참여 없이 작동할 수 없다.

경영자가 혼자 정립하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요즘은 다양성을 강조하고, AI도 조직문화 분석에 활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AI도 알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말하지 않는 직원의 마음이다. 그들은 왜 입을 열지 않는 걸까?, 왜 우리가 만든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 걸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관점을 바꿔야 한다.

조직 내부를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출발점은 ‘현실의 인정’이다

조직문화가 바로 서기 위한 첫걸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구성원과 함께 이야기하려는 조직이라면, 직원들도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조직이라면, 입을 닫는 사람만 늘어갈 것이다.

출발점이 ‘우리’로부터가 아니라면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우선은 조직 내부의 현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고 출발점으로 돌아가보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 때문에 입을 열지 않고 있고 무엇 때문에 다가오지 않는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문화를 정의하고 직원들에게 전달했는데 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을까?

문화는 글로 정의된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다.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과 함께 느끼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정말, 우리 안에서 출발했는가?

부족한 현재의 조직의 상황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먼저 마음을 열고 구성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직원들은 입을 열고 조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2. 당장 줄여야 할 것을 먼저 찾아라.

“아, 너무 바쁘네요. 회사에만 나오면 정신이 없습니다.”


예전 한 고객사의 경영진과 이야기 나누던 중, 자주 들었던 말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회의들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는지, 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대표님의 허락을 얻어 실제 회의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회의에 참관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인상 깊었던 건, 회의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 매번 가장 많이 이야기하던 대표님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왜 ‘정신이 없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루가 마무리될 즈음,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항상 대표님이 가장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의견을 듣고 싶은 건지, 의사결정을 하는 건지에 따라 참석자들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혹시 기대하시는 역할이 있으신가요?”

“모든 회의가 정시에 시작하거나 끝나는 경우가 없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결정되지 못한 채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는 회의도 많던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대표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조금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음 대화를 기약했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내가 던진 질문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인원’, ‘시간’, ‘횟수’ — 단 3가지 관점이었다.

이 단순한 세 가지를 줄이기만 해도, 회의는 훨씬 더 담백하고 유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일터는 어떤가?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 과감히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일이 늘어나고
더 바빠지는 구조에 빠져 있진 않은가?


결국 일은 많아졌고, 투입된 자원도 늘었지만 정작 달라진 건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더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에 자주 빠진다. 특히 조직문화나 변화를 다룰 땐, 더 많은 시도와 활동을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해진 답이 없고 연관된 요소가 많기에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무언가를 더하지 않으면 뒤처진 것 같은 마음이 우리를 자꾸 ‘추가’의 유혹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반대로 묻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

이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우리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일들 중 단지 생각 없이 쌓아두기만 한 리스트는 없는가?

진짜 중요한 건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일 수 있다.

문제는 회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불필요한 회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다. 일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료를 더 만들고, 말을 더 하고, 보고를 자주 한다고 일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조직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채우는 일’에 익숙하다.
시간표를 채우고, 보고서를 채우고, 인력을 채우고, 책임을 채운다.

그러나 진짜 탁월한 조직은 그 반대의 길을 간다. 과감히 비우고, 단순하게 만들고, 본질만 남기려 한다.

일이 많다는 말속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백이 숨어 있다.

그 고백을 마주할 수 있어야, 조직도, 일도, 사람도 가벼워질 수 있다.


더하지 않는 용기.
덜어내는 선택.
그것이 바로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이다.


3. 문화로 사람을 홀리려고 하지 마라.

요즘 기업들을 보면 규모에 상관없이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은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비전이 담긴 포스터, 슬로건, 일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회사의 근무공간과 복리후생을 어필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영상들을 보면, 겉보기엔 참 멋지고, 다른 회사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회사로 보일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묻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장치일 뿐인 걸까?


‘보여주기’에 진심인 조직들

언제부터인가 기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와 역할이 중요해지고, 근무하는 환경과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는지가 회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면서 기업들은 하나같이 외부에 있는 사람의 반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즘 MZ는 문화에 반응해요.”
“우리도 있어 보이는 조직으로 보여야 해요. 뭔가 그럴싸한 것! ”
“일만 시켜선 안 되잖아요, 뭔가 더 있어야죠.”

그 결과 사무실은 예쁘게 꾸며지고, 슬로건은 멋지게 걸리고, 타운홀에서는 리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소통’이라는 이유로 한자리에 모여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좁혀가는 자리인 만큼 ‘타운홀’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모이는 것만으로 의미를 갖는 단계’가 지나가면 이제 구성원들의 머릿속에는 많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게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건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활동들이 실제 자신의 일과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저 “좋은 회사처럼 보여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조직 안에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구성원들이 눈치채면서부터 구성원들에게 ‘조직문화’라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오게 된다.


컬처비, 문화의 탈을 쓴 선동

예전 TV를 보며, 사이비 종교나 집단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엉뚱한 사상에 빠지게 되는 걸까?

흔희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면의 불안감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삶의 답을 찾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할 때.. 그 틈을 파고드는 ‘누군가의 그럴듯한 말’과 ‘아늑한 공간’이 좀처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조직문화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불확실한 비즈니스 상황 속에서의 불안함, 반복되는 답답한 커뮤니케이션 속에서의 조직구조의 허술함, 애매한 역할 구조 속에서 서로 간의 갈등이 점점 쌓여만 가는 순간. ‘문화라는 이름의 포장으로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잠식시키고, 멋들어진 이미지로 탈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조직을 ‘사이비’가 아닌 ‘컬처비(Culturebee)’라고 부르고 싶다. 겉으로는 문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성원을 선동하고 조종하려는 구조이다.

컬처비 조직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문화 활동이 늘어날수록 실무자들의 업무는 더 과중해진다.

자율을 말하면서도 ‘이 문화는 참여해야지’라는 강요가 있다.

문화 활동으로 인해 ‘일의 본질’이 흐려진다.

구성원들이 내부 문제를 지적할수록 “우린 원팀이잖아”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이해해야지” 눌러버린다.


<표. 사이비 종교와 ‘컬처비 조직의 유사점>

결국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실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묻지 않은 채,
“이런 것도 안 해주는 회사보단 낫잖아?”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럴싸한 이야기와 포장으로 사람을 묶으려는 문화는 사이비가 빠르게 몰입자를 만드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문화는 사람을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환경이어야 하는데, 일부 조직은 화려한 이미지, 감성적 메시지, ‘우리끼리만 통하는 코드’로 구성원을 묶으려 한다.

그건 결국 ‘내면의 자율성’을 뺏고, ‘외부 자극’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이다. 당장은 활발해 보이지만, 결국은 쉽게 지치고 빠져나가게 되는 속성을 갖게 된다.


‘열정’은 홀림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은 홀려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 요즘의 구성원들은 더욱 그렇다. 일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감성적 자극이나 단기적인 환상이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주도권
내가 여기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나의 가치와 조직의 방향이 이어져 있다는 실감에서 나온다.

멋진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회의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고, 굿즈보다 중요한 것은 내 의견이 존중받고 실제로 반영되는 경험이다.


문화는 ‘홀림’이 아니라 ‘호흡’이다

좋은 조직문화는 사람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용히 만들어줄 뿐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
실패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 공간
불필요한 걸 줄이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하되, 각자의 걸음으로 갈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이 진짜 ‘우리 다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조직문화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그럴듯한 포장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진심이다.

사람을 홀리는 문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돕는 문화는 그 조직을 지속가능한 생태계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겉모습으로 설득된 사람은, 겉모습이 바뀌면 떠난다.
멋진 포장을 벗겨도 남는 것, 그게 진짜 문화다.


4. 남아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회사

“○○님도 결국 떠났대요.”

한동안 말없이 그 말을 곱씹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잠시 조용해졌지만, 이내 누군가가 “부럽다…”는 말을 꺼냈고, 몇몇은 웃으며 “나도 이직 준비 좀 해야겠다”는 말을 던지기 시작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축하의 말이 이어지고, 부러운 눈빛이 따라붙는 풍경.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어쩌다 퇴사가 ‘해방’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된 걸까. 한 사람이 떠난다는 건 분명 조직에 중요한 일인데,

왜 이토록 가볍게, 당연한 일처럼 소비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까.

“남아 있는 내가… 괜히 바보가 된 것 같아.”

퇴사는 선택, 그런데 왜 위안처럼 여겨질까

퇴사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떠나는 사람을 모두가 ‘축하’하게 되었고, 남아 있는 사람은 조용히 마음속 허탈함을 삼킨다.

“나만 아직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너무 오래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하면, 조직의 공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소리 없이 이탈하고, 남은 이들은 점점 말을 줄인다.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을 바라봐야 할 때

잘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아무 말 없이 버텨주고, 여전히 자신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한때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팀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던 그들이 점점 무표정해질 때, 그건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니다.

조직이 놓치고 있는 사인은, 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있다.

남는다는 건 무언가를 지켜낸다는 뜻인데

회사를 떠나려면 여러 가지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아 있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감정 노동’이 따른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래도 이 조직이 좋아서, 혹은 아직 뭔가 해낼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남는 사람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고, 무언가를 말해도 돌아오는 게 없고, 자꾸 ‘너만 너무 예민한 거야’라는 반응만 돌아온다면, 그들의 마음도 결국은 지치게 된다.

남는다는 건,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건 지키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게 된다.

나만 남은 것 같다는 기분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부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이미 당신도 꽤 많이 지쳐 있는 것이다.

‘일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줄어든 것 같고’
‘회의에서 말할수록 내 말만 튕겨져 나가는 기분이고’
‘예전엔 같이 고민하던 사람들인데, 이젠 다들 침묵하고’

그럴수록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이제 나도 떠나야 할까?”

사람들은 지쳐서 떠나는 게 아니다.

떠나야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전에, 남아야 할 이유가 더는 없다고 느껴질 때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아주 단순한 질문

퇴사율을 낮추기 위한 복지나 분위기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조직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거다.

“지금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왜 머물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가?”

조직은 종종 떠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해석을 붙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남은 사람의 눈빛이 흐려지고 있다는 걸 눈치채는 것이다. 그 눈빛 속엔 분명 어떤 말이 숨어 있다.

남아 있는 사람이 초라해지지 않도록

좋은 조직은, 떠나는 사람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남아 있는 사람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만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도록

내가 여기에 있는 게 팀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도록

오늘 하루도 내 성장 안에 있다고 느껴지도록

이 세 가지가 지켜진다면,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다면, 지금 이 조직에서 내가 지켜내고 싶은 건 무엇인지, 그걸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볼 시간이다. 그리고 리더라면, 조용히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놓인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헤아려야 한다.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조직
바로 그런 곳이,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간다.


5. 체계에 목숨 걸지 마라.

“우리 조직은 아직 체계가 없어요.”
“이걸 해결하려면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해요.”
“아니야 이거 먼저 R&R부터 다시 정해야 해요”
“아니야 그전에 프로세스부터 먼저 정리하고 진행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조직 안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마치 체계만 갖추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체계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체계가 있는데도 혼란스러운 조직도 있다

‘체계가 잘 잡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가장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조직을 손꼽으라면 아마도 ‘군 조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군 생활을 떠올려보면 회사에서 겪는 혼란이 거의 없다.

흔히 회사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질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거 누가 해야 하는 일이지?”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업무 매뉴얼은 어디에 있지?”

군에 입대를 하면 절차대로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
나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변이 움직이기에 나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느낌이 들정도로 말이다.

군대는 철저 한 체계와 명확한 역할 정의가 있다. 모든 업무는 작은 일들도 단위로 나뉘어 있고, 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다 정해져 있기에 업무의 중복이나 혼선이 없다. 그리고 업무수행방식을 기록한 업무 매뉴얼 또한 자세하게 정리가 되어있기에 전역을 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무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군 조직 안에서는 앞으로가 예측 가능했다. 연간 진행되는 큰 사이클을 인지하고 있기에 각 시기별 무엇을 해야 할지 대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체계는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점점 체계를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의 기반이 된다.

우리의 조직은 어떤가?
매일 같이 변화를 외치면서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들은 많지만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라고 묻는 다면 글쎄…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직에서 생각하고 있는 체계 역시 큰 맥락에서는 군 조직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결국 체계란 일을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행동과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최적화하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왜 조직은 체계적으로 일하자 강조하고 외치지만 어려운 것일까?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군이라는 조직은 상명하복의 특수성이 있기에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만들어 놓은 흐름대로 일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조직이 만들어진 목적자체부터 강한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하고 있는 조직은 어떠한가?
단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운영될 수 없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다.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한 구조이기에 단 한 사람의 판단이나 기준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기업의 성장단계에 따라 리더의 철학, 구성원의 경험, 맡은 역할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게 정의된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목표를 이루는 방식까지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것은 현실 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결국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결정의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완벽한 체계가 결정까지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체계는 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하는 절차를 약속하고 그 절차에 따라 회의록을 남기고 자료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일을 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업무 매뉴얼에 수정사항을 반영하여 처리하며 일을 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체계에 목숨을 걸며 일하는 조직은 오히려 판단과 실행의 유연성을 잃기 쉬울 수 있다.


우리 조직의 체계는 정말로 사람의 판단과 역량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사람의 생각과 창의성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체계에 너무 의존하기보다, 그 체계 안에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마련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체계의 완성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Motivator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mingue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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