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나와서 뭐 해?


그렇게 내 커리어는 방황과 사유의 시간을 거쳐 조용히 시작되었다.



그해, 나는 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2013년이었다. 첫 취업을 준비하던 해.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업은 성실하게 들었지만 졸업하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고민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막연히, 어디든 되겠지. 취업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안일함을 품은 학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맞닥뜨린 취업 전선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현실적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연달아 물을 먹었다.


정답이라고 믿었던 길

그때의 나는 ‘건축과 졸업생은 대기업 건설사’라는 어디선가 듣고 익숙해진 공식을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다. 고시를 준비하는 몇몇을 제외하고 동기들이 쓰는 회사, 선배들이 가는 회사 모두 다 대기업 건설사였다. 그 흐름 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원서를 써 내려갔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나에게 묻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답으로 삼았다. 그게 나한테도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반기, 하반기. 최종에서 내 이름은 번번이 지워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허탈함이었다. 다른 것보다 왜 떨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내 안의 질문을 깨운 한 문장

H건설사 임원면접에서였다.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다. “현장에 나가면, 여자로서 어떤 장점이 있을 것 같나?” 당황스러웠다. 깊이 생각할 새도 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클리셰한 문장을 소리 내어 말했다. “섬세함으로 현장 디테일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탈락 소식을 들었다.

그 질문은 한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불쾌했다기보다, 묘하게 마음을 잡아끌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이 내 속을 천천히 헤집었다. 그제야 아주 단순한 생각 주머니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진짜 현장을 가고 싶은 걸까?’


늦게 도착한 질문들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지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현장에 가고 싶어?”

“해외 토목·건축 현장으로 발령 나면 괜찮아?”

“안전모, 스틸토, 새벽 체조… 그 일상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어?”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어떤 사회인이 되고 싶은지 되묻는 진심 어린 대화를 나와해 본 적이 없었다. 사회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위 질문들에 무조건 “응.”이라고 답하려 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근데 자신은 없어.”

그 조용한 목소리 속에, 여태 애써 외면해 온 진실이 숨어 있었음을 그때 알았다.


시선을 돌리자 보이기 시작한 길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살고 싶은지 뒤늦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설사만이 길은 아니었다. 내가 배운 ‘건축’이라는 언어는 다른 곳에서도 쓰일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곳이 상업용 부동산이라는 세계였다. 서울 도심의 오피스에서 일하며 건축 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부동산·건설·금융’의 흐름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곳. 그 세계를 천천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는 상시모집이라 인턴부터 지원했고, 한국 대기업의 자회사 형태로 존재하는 회사들도 하나, 둘씩 조사해 나갔다.


내 커리어의 첫 문이 열린 순간

그렇게 찾아 들어간 회사는 토종 한국 상업용 부동산 회사였다. 기업 규모도, 조직 분위기도, 이전까지 바라보던 대기업 건설사와는 달랐다. 조금 더 유연했고, 활기찼다.

물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은 아니었기에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할 때마다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를 졸업한 딸이 이름도 생소한 중견기업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니,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길’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선택한 길이어서인지, 이곳이 건설사보다 내게 더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의 커리어는 방황과 사유의 시간을 지나 조용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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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커리어는 방황과 사유의 시간을 거쳐 조용히 시작되었다.



그해, 나는 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2013년이었다. 첫 취업을 준비하던 해.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업은 성실하게 들었지만 졸업하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고민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막연히, 어디든 되겠지. 취업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안일함을 품은 학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맞닥뜨린 취업 전선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현실적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연달아 물을 먹었다.


정답이라고 믿었던 길

그때의 나는 ‘건축과 졸업생은 대기업 건설사’라는 어디선가 듣고 익숙해진 공식을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다. 고시를 준비하는 몇몇을 제외하고 동기들이 쓰는 회사, 선배들이 가는 회사 모두 다 대기업 건설사였다. 그 흐름 속에서 나도 자연스럽게 원서를 써 내려갔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나에게 묻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답으로 삼았다. 그게 나한테도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반기, 하반기. 최종에서 내 이름은 번번이 지워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허탈함이었다. 다른 것보다 왜 떨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내 안의 질문을 깨운 한 문장

H건설사 임원면접에서였다.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다. “현장에 나가면, 여자로서 어떤 장점이 있을 것 같나?” 당황스러웠다. 깊이 생각할 새도 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클리셰한 문장을 소리 내어 말했다. “섬세함으로 현장 디테일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탈락 소식을 들었다.

그 질문은 한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불쾌했다기보다, 묘하게 마음을 잡아끌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이 내 속을 천천히 헤집었다. 그제야 아주 단순한 생각 주머니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진짜 현장을 가고 싶은 걸까?’


늦게 도착한 질문들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지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현장에 가고 싶어?”

“해외 토목·건축 현장으로 발령 나면 괜찮아?”

“안전모, 스틸토, 새벽 체조… 그 일상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어?”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어떤 사회인이 되고 싶은지 되묻는 진심 어린 대화를 나와해 본 적이 없었다. 사회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위 질문들에 무조건 “응.”이라고 답하려 했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근데 자신은 없어.”

그 조용한 목소리 속에, 여태 애써 외면해 온 진실이 숨어 있었음을 그때 알았다.


시선을 돌리자 보이기 시작한 길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살고 싶은지 뒤늦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설사만이 길은 아니었다. 내가 배운 ‘건축’이라는 언어는 다른 곳에서도 쓰일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곳이 상업용 부동산이라는 세계였다. 서울 도심의 오피스에서 일하며 건축 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부동산·건설·금융’의 흐름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곳. 그 세계를 천천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는 상시모집이라 인턴부터 지원했고, 한국 대기업의 자회사 형태로 존재하는 회사들도 하나, 둘씩 조사해 나갔다.


내 커리어의 첫 문이 열린 순간

그렇게 찾아 들어간 회사는 토종 한국 상업용 부동산 회사였다. 기업 규모도, 조직 분위기도, 이전까지 바라보던 대기업 건설사와는 달랐다. 조금 더 유연했고, 활기찼다.

물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은 아니었기에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할 때마다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를 졸업한 딸이 이름도 생소한 중견기업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니,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길’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선택한 길이어서인지, 이곳이 건설사보다 내게 더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의 커리어는 방황과 사유의 시간을 지나 조용히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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