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네 번의 문 두드림,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문
꽤 오랫동안 브런치를 방치했다. 카툰 브런치북을 띄엄띄엄 올리긴 했지만, 연재일은 지키지 못했고, 새로 개설한 또 다른 브런치북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브런치를 방치한 것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그간 내게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에서의 두 번째 이직이다.
첫 번째 이직을 할 때도 브런치를 잠시 쉬었다. 탑티어가 아닌 평범한 엔지니어로서 미국에서 이직을 시도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그 기간만큼은 ‘글쓰기’에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했다. HR 콜, 인터뷰, 협상 등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었겠지만, 감정의 파동이 너무 커서 글로 옮기기가 버거웠다. 어쩌면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건, 그 순간마다 분출되던 내 민낯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이번 이직도 계획적이지 않았다. 언제나 기회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은 평소에, 어떻게 준비를 해두느냐에 달려있다… 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준비를 해 둔 것도 없었다. 다만 ‘언젠가 저 회사를 꼭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는 오래 품고 있었다.
브런치에 ‘NVIDIA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25년 동안 보아온 외부자의 의견’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동안 학계, 업계에서 경험했던 NVIDIA에 대한 간접 경험에, 개인 의견을 더했다. 낚시성 제목 탓인지 바이럴이 꽤 돼서 많은 이들이 읽어 주었던 것 같다.
*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라 내부자가 된 연유로 해당 글은 내렸다.
그 글을 쓰면서 느꼈다. 아, 나는 이 회사를 정말 가고 싶어 했구나. 거의 창립 시절부터 지켜봐 온 입장에서, 왜 그토록 특별한 회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Green Team에는 어떤 DNA가 흐르기에 광속(Speed of Light)으로 혁신을 거듭하며, 업계 1위를 지속해 나가는 걸까. 외부자의 시선으로 분석해 본 이유들—사람, 기술, 연구-사업화 연계, 마케팅과 생태계, 리더십—그 모든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보고 싶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이유 없이 오래도록 가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아키텍트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학원, 삼성, 인텔, AMD를 거치는 동안, NVIDIA는 항상 ‘따라잡고 싶은 레퍼런스’였다. 그 막연한 동경은, GPU가 태어나기도 전, 미국 대학과 기업들이 발표한 그래픽 가속기 논문을 힘겹게 읽어내리던 석사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게 꿈이라면, 참 오래된 꿈이었다.
그 꿈을 백일몽으로 끝내기 싫었던 나는 실제로 커리어를 걸쳐 NVIDIA에 여러 번 노크를 했다. 고백하자면 이번 NVIDIA 입사는 단번에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얻은 결과였다.
1) 처음은 박사를 졸업하던 시점이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지원했고 인터뷰 보자는 연락이 왔다. 20여 년 전이었고, NVIDIA도 지금만큼 큰 회사도 아니었기에, 신분도 없는 해외 인력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폰스크린에서 광탈. 영어도 짧았던 내게 ‘입’코딩이라는 전대미문의 관문은 너무 생소했고, 높기만 했다.
2) 삼성 재직 시절, NVIDIA Korea사에서 CUDA 엔지니어 지원 제안이 와서 응했다. 미국 본사의 VP/엔지니어와 전화 면접을 장시간 가졌는데, 기술 Q/A에서 여러 번 넘어졌고, 결과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그간 GPU 아키텍처 연구를 했어도, CUDA 응용 개발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3) 미국으로 건너온 뒤 인텔에서 그래픽스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GPU 아키텍트 포지션으로 연락을 받았다.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아키텍트들과도 협업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어링 매니저는 내 이력서의 논문과 특허 목록을 보며, “자네는 연구자이지 아키텍트 팀보다는 NVIDIA Research 쪽이 맞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쪽에서도 연락은 없었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노크를 하던 시점 이래로, NVIDIA는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질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고, 입사 문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동기간 나도 업계에서 짬빱을 먹다 보니, 이직이 상대적으로 쉬운 직급은 진작 지나버렸다. 이미 터미널 레벨에 다다른 상태였고, 한 단계 위로 오르려면 개별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를 벗어나 영혼을 끓어모아 일을 해야 했다. 도약을 하려면 사내 승진이 아니라 이직 외에는 답이 없었다. 인텔에서 AMD로 직군으로 바꿔 이직하고, 공식적으로 아키텍트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어쩌면 내 엔지니어 커리어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기다렸다.
AMD에서 2년을 넘긴 시점, 아키텍트 직군이 시장에서 희소가치가 있었던지, G사, M사와 같은 빅테크에서 면접 제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만 GPU가 아닌 NPU 직군이었다. 역시 AI 가속기가 화두였다. 그중에 M사 그래픽스 아키텍트 직군도 있어서 시험 삼아 지원도 해보았지만 역시 광탈이었다.
준비가 부족했다. 아니 준비를 제대로 안 했다.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GPU/그래픽스로 꾸려왔던 내 경력 경로에 M사가 포함되면 궁극적으로 가고자 했던 NVIDIA와는 멀어질 것만 같았다. M사는 광고, SNS로 큰 빅테크였고,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AI 및 그래픽스 실리콘을 직접 개발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통적인 반도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개발 프로세스가 정착이 안되어 있을 것이고, 해당 회사의 경력은 향후 NVIDIA 진입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는 변명이고, 결과적으로 내가 부족했던 것이 맞다.
그러던 차, 유구한 역사를 가진 A사의 GPU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다리던 NVIDIA가 아니었지만, A사라면 내가 가꿔온 경력 경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A사의 HR과 소통하던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시도하는 이직, 나도 한번 오퍼 여러 개 받아서 네고 빡세게 해 보자는 미친 생각.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NVIDIA를 내가 직접 두드리자. LinkedIn에 뜬 NVIDIA 구인 공고를 확인했고, 마침 핏과 직급이 잘 맞아 보이는 ‘Principal Graphics Hardware Architect’ 포지션을 확인했다.
온라인으로 지원하면 우선순위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학회에서 만나 알고 있던 지인 J에게 레퍼럴을 부탁했다. J는 흔쾌히 화답했다. J는 지인이었기에 일단은 ‘강한 추천’이긴 했지만, 소속이 GPU 아키텍처팀이 아니라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별도의 코멘트를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 지인에게 받는 ‘강한 추천’과 모르는 이에게 받는 ‘약한 추천’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지인이 없는 경우에 강한 추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사람> 288p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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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럴을 통한 별도의 링크를 통해 온라인으로 지원했다. 그러던 와중에 진행하던 A사는 채용하려는 직군이 아키텍트가 아니라 모델링 엔지니어라며, 아키텍트 직군은 향후에 공고가 나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아키텍트 업무 중에 모델링도 있지만, 본업을 아키텍트로 지켜가고자 했던 나는 모델링 엔지니어 직군 인터뷰 제안을 정중히 고사했다.
결국 야심 차게 꿈꿨던 ‘멀티 오퍼 네고’는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NVIDIA?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연락도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배추를 세기 시작했다.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네 번의 포기 끝에,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집중했다. 그때, 잊었다고 생각한 문이, 조용히 다시 열렸다.
두 달이 되어가던 시점 뜬금없이 연락이 온 것이다.
#2
‘팀에서 당신의 이력에 흥미를 보인다.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달라’
HR부터 첫 연락이 오기까지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사실 연락이 없자, 2-3주 차 즈음부터는 싹 잊고 현생을 살았다. ‘AMD도 충분히 좋은 회사잖아’라고 자위하며. 나는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면서 이직을 종종 시도하곤 했다. 이직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은 많았지만,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실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부분 인터뷰 단계까지는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부분의 경우가 ‘나의 지원’이 아니라 ‘HR의 제안’으로 시작된 인바운드 채용(inbound recruiting)이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 인바운드 채용과 아웃바운드 채용(outbound recruiting)의 차이와 장단점에 대해서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사람> 172p를 참고하기 바란다.
기쁨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 준비를 하려면 또다시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솔직히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미 마음을 접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기세 싸움이다. 이직을 시도하는 순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문을 향해 나설 때면 늘 초조해지고, 그 문을 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열쇠를 깎는다. 그 기간 일상도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스스로와의 싸움이 무르익었을 때, 인터뷰는 그 흐름 속에서 치러져야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활시위는 언젠가 놔야 한다. 계속 당기기만 해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두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나는 이미 타고 있던 외줄에서 내려왔고, 그렇게 단념했다. 이젠 점심시간에도 면접 준비 대신, 브런치 카툰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웃긴 건, 내려놓으니 오히려 편해졌다는 것이다. ‘NVIDIA라니. 어차피 또 떨어질 텐데. 잘됐어. 인터뷰 준비로 마음고생 안 해도 되잖아?’ 이런 자존감 낮은 자의 정신승리, 자기 합리화를 산산이 부서지게 한 것이 바로 ‘인터뷰 보자는 연락’이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인터뷰 본다고 잃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경험이 쌓이지요”
‘미국 이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인데 인터뷰 봐도 될까요?’라는 커뮤니티 고민 글에 나는 마치 현자인양 이런 댓글을 달았다. 같은 상황이 도래한 나는 정작 초연하지 못했다. 내가 남에게 쉽게 말하던 조언이 내겐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사전 체념은 생각보다 컸다. 인터뷰를 보고 떨어진다면, 잃는 것이 없을 리 없었다. 준비에 들인 시간, 그리고 그보다 더 깊게 패일 자존감이었다.
결국 다시 그 긴장감의 동굴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를 그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건 불안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속에 품어온 그 회사에 대한 동경이었다. 나는 HR 직원의 메일에, 최대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담았고, 2주의 여유기간을 둔 인터뷰 가능 일자들을 답변했다. 바로 다음날 세명의 면접관 이름과 함께 최종 인터뷰 일정을 통보받았다.
공교롭게도 3인의 면접관 A, B, C의 이름이 모두 익숙했다.
A는 내가 인텔에 재직하던 시절 유관 부서의 팀장이었다. 직접 함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매니저를 통해 약간의 안면은 있었다. 반가운 이름이었지만, 인터뷰어로 통보받기 전까지 A가 NVIDIA로 이직을 한 사실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B는 대학원 시절, 일본 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때 나의 멘토와 함께 공동 연구를 하던 인사였다. 멘토가 썼던 논문에서 공동 저자로 등재되었던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가 졸업하고 NVIDIA로 입사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온라인상에서의 그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인터뷰어로 통보받게 되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C의 이름을 마주한 순간,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내가 20여 년 전 대학원에 처음 진학했을 때, 사수가 이 분야의 핵심이라며 읽으라 줬던 논문의 저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나 아는 선구적인 논문이었다. 나는 이 논문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고, 석사,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쓸 때도 몇 번이고 C의 논문을 인용했다.
디스팅귀시드(distinguished) 엔지니어 셋의 이름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박제되어 있던 대학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독해력, 배경 지식 탓에 힘겹게 논문을 읽어 내려가던 풋내기 연구자였던 나는 ‘언젠가 나도 미국’이라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리고, 그 논문들을 써내던 저자들이 정착한 회사, NVIDIA에 대한 선망도 자라났다.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그 꿈의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2주간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매일 저녁 최선을 다해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지원한 아키텍트 직군이 내 이력, 현재 업무와도 적합도가 높았지만, 혹여나 모를 돌발질문에 대비해 다양하게 준비했다. 아키텍처에 관한 학부, 대학원 수준의 기초부터, 최신 표준화, 제품, 기업 트렌드까지 싹 다시 머리에 채워 넣었다. 업계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 그 핵심 내용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다시 불러냈다.
또한 고직급 직군이기 때문에, 분명히 시장의 미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같이 추상적인 대화도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GPT를 활용해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각 질문에 나만의 답변을 준비했다. 또한 A, B, C 면접관에 대해 GPT에게 프롬프트를 주고, 각자의 배경에 맞춘 최적의 질문들도 준비해 두었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인터뷰 전략을 세웠다. 면접관에 대한 내 익숙함을 자연스럽되 과하지 않게 노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는 일종의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이었다. 예전에 모 빅테크 인터뷰를 볼 때였다. 면접관과의 간접적인 인연을, 다짜고짜 면접 시작 시에 언급했다. ‘잘 봐달라’까지는 아니지만, 면접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하고자 했던 의도였다. 하지만 그 면접관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퉁명스럽게 ‘그러냐?’라고만 했고, 바로 질문으로 넘어갔다. 한 줌도 안 되는 ‘mutual friends’의 인연을, 그것도 인터뷰 시작에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나는 낙하산 아니라고!
그래서 이번엔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보고 ‘그럼 혹시 누구 아냐?’라고 묻기 전에 절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인연에 기대 인터뷰를 보고자 하는 인상은 철저히 배제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익숙함, 사적인 기억은 인터뷰 세션 마지막에 남기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다. 마지막에 언급하면 인터뷰의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오마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A-Z까지 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운명의 인터뷰 날을 맞았다.
#3
인터뷰 당일. 나는 의외로 떨리지 않았다. 인터뷰를 잘 준비해서도, 경험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설명하기 힘든 일종의 평안함이 있었다. 어차피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전날까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은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비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최선을 다해 답하자.”
그리고 마음으로 빌었다. 인터뷰 후 후회만은 남지 않게 해달라고.
A, B, C. 세 명의 인터뷰어를 연달아 만났다. 모두와 간접적인 인연이 있었지만, 애초 다짐대로 인터뷰 중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말미에만 살짝 언급했다. “사실은 당신을 짧게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GPU 연구를 시작할 때 읽었던 논문이 바로 당신의 논문입니다.” A는 반색하며 웃었고, C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적인 인연에 기대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간접 네트워크를 살리는 신의 한 수였다.
A와 B의 인터뷰는 무난했다. 그들은 내 지식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 질문을 던졌고, 추상화 수준(abstraction level)도 높았다. 디렉터급 고경력자답게 디테일보다는 큰 그림 중심이었다. 간혹 모르는 영역이 나와도 유사 경험을 엮어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었다. 세션이 끝날 즈음엔 오히려 나도 모르게 상기돼 있었다. 막힘 없이 ‘무난’했고, A는 자신이 던진 함정 질문을 깔끔히 피한 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비워두었던 마음에 기대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마지막 인터뷰어 C를 만났다. NVIDIA 초창기 멤버이자 셋 중 가장 경력이 긴 엔지니어였다. 그의 질문도 A, B와 비슷하게 ‘천상계’에 머물 거라 생각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 인상 좋은 노년의 엔지니어는 내 과거 프로젝트에 호기심을 보였다. 고맙다. 내 과거를 물어봐주어. 내 이력에 대한 질문만큼 답하기 쉬운 것이 있을까. 이런 질문은 주도권을 인터뷰어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고, 인터뷰어는 잘 모르는 분야니까. 신나게 대답했다.
내 첫 대답이 끝나자, 그는 질문지를 펼치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꿨다. 본게임의 시작이었다. 그가 준비한 질문은 총 5개. 단계별로 난이도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천상계에만 머무실 줄 알았던 C는 연옥과 지옥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만렙 레이드 보스였다. 그의 질문은 어느 하나도 뭉뚱그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첫 번째 문제에서 나는 그대로 무너졌다.
A와 B의 퀘스트처럼 무난할 거라 방심했던 나는, 질문의 의도와 맥락을 놓쳤다. 난이도 순이라 가장 쉬운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실제로 활용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종이에 메모를 하며 천천히 답을 끌어내려했지만, 고개를 숙이는 순간 줌 화면 너머의 아이컨택은 끊어졌다. 말은 꼬였고, 논리는 흐트러졌다. C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이 실망인지, 의아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첫 타에서 점수를 잃었다는 건 분명했다.
10분 가까이 허우적대던 나를 보고, 결국 그는 정답을 알려주었다. 답을 들었을 때, 나는 허탈했다.
‘이런, 그 쉬운 걸…’
눈앞의 넓은 길을 두고 쓸데없이 좁고 험한 길로 들어간 꼴이었다. 어렵게 생각하다 스스로 자충수에 빠졌던 것이다.
“망했다”
이전 세션을 마치고 가졌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든 질문을 일사천리로 돌파해도 될까 말까 한 인터뷰.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놓쳤으니, 역전은 불가능해 보였다. 순간 마음속이 차갑게 체념으로 가득 찼다. 오늘 난 침대에서 이불킥을 대차게 찰 것이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후회로 밤을 지새우겠지.
‘아, 망했네요. 결과는 안 봐도 뻔하겠죠? 죄송합니다. 인터뷰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라며 자리를 일어설 수는 없었기에, 멋쩍게 웃었다. ‘제가 어렵게 생각했군요’
인터뷰는 끝나지 않았고 그다음 질문을 받아야 했다. 첫 번째 문제를 놓친 나는 속으로는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질문을 거치며 나는 나도 모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어찌어찌 그 단계별 퀘스트를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아키텍처, 때로는 알고리즘, 때로는 그래픽스. 종잡을 수 없는 관문들을 통과하면서 나는 C와 다시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번 대차게 넘어졌다가, 쩔뚝거리며 일어선뒤, 조금씩 걸음을 옮긴 셈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C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전. 가장 난도 높은 마지막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
‘만렙 레이드 보스’같던 인터뷰어는 그렇게 다음 문제를 던졌다. 남은 시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것은 내가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었다.
“XXX라는 제한된 상황아래에서 YYY를 위해, 최적의 ZZZ를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뭐죠?”
문제를 듣자마자 그 ‘고려사항’ 하나가 즉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AAA입니다”
“좋습니다. 또요..”
연속 질문. 면접 시 제일 듣기 싫은, 내 지식의 하한이 어딘지를 보고자 하는 질문이다. 첫 대답만으로 얄팍한 내 지식의 깊이를 감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만난 그 어떤 면접관도 ‘불완전한 답’만으로는 문제를 끝내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후보자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면접관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할 수밖에 없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
머리를 쥐어짰다.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릅니다…’라는 대답을 하자니, 천신만고 끝에 끌어올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 같아 너무나 주저되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답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과거 면접자/면접관으로서의 경험상, ‘어설픈 대답’은 차라리 아니한 것보다 못했다. 어설픈 대답으로,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연속 질문에서 정체가 드러나 신뢰도만 바닥을 친다. 게다가 내가 인터뷰를 보고 있는 회사는 ‘기술적 정직성(technical earnest)’를 가장 중요시하는 NVIDIA.
“그 경우 KKK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KKK를 하기 위해 QQQ를 고려해서 이렇게 저렇게 설계해 볼 수 있고… “
가불기에 걸린 상황에,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냈다. 문제와 최대한 유사한 다른 상황을 제시해 이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었다. 답을 하면서도 면접관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란 걸.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맞는 말이긴 한데. KKK는 XXX의 한 예일뿐이죠. 그건 특수한 경우고, 이 문제가 원하는 건 일반화된 대답입니다.”
역시 마지막 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핵심에 다다르지 못하면 내가 내놓은 답은 그에게 ‘동문서답’과 다름없을 뿐이었다.
면접관과 아이컨택이 끊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며 다시 펜과 종이를 꺼냈다. 몇몇 키워드를 써내려 갔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그리고 정적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면접관에게 문제에 관한 몇몇 질문을 던졌다. 그럼에도 그가 원하는 정답을 끝내 생각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결국 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그렇게 하기 싫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려던 순간, 불현듯 몇 달 전 RTL 엔지니어 D와 협업하던 일이 떠올랐다. D는 내가 아키텍처로 설계했던 A블록을 구현 중이었다. 최적의 구조로 구현하기 원했던 D는 내게 A의 특정한 한 파라미터 값을 요청했다. 그리고 난 그 최적값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입력을 조합하여 재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할 때 적용한 지표가 바로… 내가 지금 답해야 할 그 대답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평균 MMM율(率)입니다. MMM은 LLL와 OOO를 이용해서 구할 수 있죠.”
“맞습니다. 그럼 MMM와 앞에서 대답하신 AAA를 이용해 수식을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난 잠시의 고민을 한 뒤 최종 수식을 완성했다. 인터뷰어가 원했던 바로 그 답이었다. 연신 굳은 표정이었던 그는 환하게 웃었다.
“맞아요! 그게 이 문제의 정답입니다!”
그렇게 난 어렵사리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생각해 보면 그 마지막 답은 이미 내 안에, 내 과거 경험치의 범주 내에 있었다. 도중에 냈던 동문서답 같던 대답, 그리고 종이와 연필로 했던 사고(思考)의 시간, 그리고 정적을 피하려 면접관에게 던졌던 역질문… 그 모든 과정이 내 기억 어딘가에 묻혀있던 그 진주를 꺼낼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면접 시간 2분 남았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있나요?”
마지막 코멘트를 하던 인터뷰의 얼굴엔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가식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은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질문들이 많이 있었지만 남은 시간은 거의 없었기에, 질문을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다행이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서.
“질문보다는 감사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20년 전 대학원에 처음 진학하며 그래픽스 하드웨어 분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자였습니다.
그때, 지도 교수가 이분야의 핵심 논문이라고 읽어보라 주셨던 논문이 있었죠. 바로 면접관님께서 쓰셨던 CCC논문이죠. 저는 그 논문을 어렵사리 읽어가며 조금씩 연구라는 것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처음으로 잡았던 연구주제가 DDD였고, 석사 때 읽었던 CCC가 제 논문의 핵심 인용 논문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이 분야에 선구적인 연구를 하시고 길을 닦아주셨기에, 저 같은 후배 연구자가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그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자신의 논문을 읽었던 업계의 후배로부터, 오마쥬에 가까운 상찬을 들으니 보람과 흐뭇한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라는 말을 했고, 우리는 좋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가쁜 큰 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1시간이 영겁의 시간 같았던 그 인터뷰를 끝냈을 때, 나를 옥죄던 모든 긴장감은 사라졌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다. 잘한 것일까? 인터뷰를 무사히, 좋은 분위기에서 마쳤지만, 첫 문제를 놓고 저질렀던 치명적이었던 실수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남은 것은 잠잠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NVIDIA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한 달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동안 나는 마음을 비운채 업무에 집중하려 했다. 쉽지는 않았다. 마지막 면접관의 첫 문제를 통과하지 못했던 내 실수가 발목을 잡았던 것이었을까. 1주, 2주, 3주째.. 걱정과 기대감에 연락을 기다렸으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4주째가 넘어갔을 때 나는 단념했다. 그리고 깨끗이 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달의 기간 동안 나는 참 절박했다. 이미 난 충분히 감사한 업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꿈꾸던, 하지만 감히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던, 그 회사의 턱밑까지 다가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간절하게 했다.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로부터 또 몇 주 뒤였다. 심정을 정리하고 일상에 몰입하던 어느 날, 인터뷰를 보았던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 그렇게 나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 단계로 진행하자는. 그 메일을 열었던 순간, 나는 기쁨에 앞서,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졌다. 오랜 기다림은 환희를 내지를 기력마저 앗아갔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 기회가 생긴 것에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예정되어 있던 출장을 다녀온 뒤, NVIDIA의 다음 인터뷰 절차를 밟았다. 팀의 디렉터를, 그리고 그 며칠 뒤 VP를 만났고, 이들과 또 한차례의 천상계와 연옥을 오가는 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오퍼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은 조금 있었지만 AMD에 퇴사를 통보하고, NVIDIA로 이직하는 절차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두 회사는 경쟁사였고 큰 틀에서는 같은 GPU 범주였다. 하지만 다른 블록을 책임지는 부서로 이직을 하는 것을 설득해, AMD 매니저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퇴사에 대한 반박 불가한 사유, 설득, 카운터 오퍼 제시, 정중한 고사. 그리고 난 퇴사까지 2주가 아닌 3주 유예기간을 두었고, 그 기간 동안 그간 해도던 업무를 최대한 자세하게 문서화했다. 그리고 성심껏 인수인계를 했다. 그 모든 과정이 판박이였다. AMD로 이직하며 인텔을 퇴사하던 그때처럼 난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처신했다.
그리고 선망하던 NVIDIA에 입사했다. 생각해 보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미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회사의 회장은 외부에서 알려진 이미지보다 훨씬 유쾌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왜 직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사내에서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의 일정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하는 한국의 기사들을 읽으며 묘한 감정에 젖었다.
커리어 내내 그저 레퍼런스로만 바라보던 회사. 그 회사에 실제로 입사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가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능력만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인터뷰의 마지막 문제. 완전히 멈춰버린 머릿속에서, 거의 포기하려던 순간, 마치 오래 묵혀두었던 서랍이 스스로 열리듯 한 경험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 흐름을 나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분명 은혜였다.
가끔은 ‘내가 해냈다’는 마음이 스칠 때가 있다. 스스로를 조금 포장해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다 그날을 떠올리면 금세 조용해진다. 막다른 벽 앞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길이 열리던 그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만렙 고수처럼 스스로를 포장해 자기 계발서를 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는 어떤 조직에서도 큰 기술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꾸준히 일하던 엔지니어였을 뿐이다. 그런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실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분명히 내 앞을 비추어준 흐름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순간까지 지켜진 발걸음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은혜’라는 단어 말고는 딱 맞는 표현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겸손해진다. 그리고 감사해진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선망했던 것은 ‘NVIDIA’라는 회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은혜를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의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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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네 번의 문 두드림,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은 문
꽤 오랫동안 브런치를 방치했다. 카툰 브런치북을 띄엄띄엄 올리긴 했지만, 연재일은 지키지 못했고, 새로 개설한 또 다른 브런치북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브런치를 방치한 것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그간 내게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에서의 두 번째 이직이다.
첫 번째 이직을 할 때도 브런치를 잠시 쉬었다. 탑티어가 아닌 평범한 엔지니어로서 미국에서 이직을 시도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그 기간만큼은 ‘글쓰기’에 마음의 여유를 두지 못했다. HR 콜, 인터뷰, 협상 등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었겠지만, 감정의 파동이 너무 커서 글로 옮기기가 버거웠다. 어쩌면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건, 그 순간마다 분출되던 내 민낯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 이번 이직도 계획적이지 않았다. 언제나 기회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그 기회를 잡는 것은 평소에, 어떻게 준비를 해두느냐에 달려있다… 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준비를 해 둔 것도 없었다. 다만 ‘언젠가 저 회사를 꼭 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는 오래 품고 있었다.
브런치에 ‘NVIDIA는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25년 동안 보아온 외부자의 의견’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동안 학계, 업계에서 경험했던 NVIDIA에 대한 간접 경험에, 개인 의견을 더했다. 낚시성 제목 탓인지 바이럴이 꽤 돼서 많은 이들이 읽어 주었던 것 같다.
*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라 내부자가 된 연유로 해당 글은 내렸다.
그 글을 쓰면서 느꼈다. 아, 나는 이 회사를 정말 가고 싶어 했구나. 거의 창립 시절부터 지켜봐 온 입장에서, 왜 그토록 특별한 회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Green Team에는 어떤 DNA가 흐르기에 광속(Speed of Light)으로 혁신을 거듭하며, 업계 1위를 지속해 나가는 걸까. 외부자의 시선으로 분석해 본 이유들—사람, 기술, 연구-사업화 연계, 마케팅과 생태계, 리더십—그 모든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직접 보고 싶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이유 없이 오래도록 가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아키텍트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학원, 삼성, 인텔, AMD를 거치는 동안, NVIDIA는 항상 ‘따라잡고 싶은 레퍼런스’였다. 그 막연한 동경은, GPU가 태어나기도 전, 미국 대학과 기업들이 발표한 그래픽 가속기 논문을 힘겹게 읽어내리던 석사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게 꿈이라면, 참 오래된 꿈이었다.
그 꿈을 백일몽으로 끝내기 싫었던 나는 실제로 커리어를 걸쳐 NVIDIA에 여러 번 노크를 했다. 고백하자면 이번 NVIDIA 입사는 단번에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얻은 결과였다.
1) 처음은 박사를 졸업하던 시점이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지원했고 인터뷰 보자는 연락이 왔다. 20여 년 전이었고, NVIDIA도 지금만큼 큰 회사도 아니었기에, 신분도 없는 해외 인력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 결과는 폰스크린에서 광탈. 영어도 짧았던 내게 ‘입’코딩이라는 전대미문의 관문은 너무 생소했고, 높기만 했다.
2) 삼성 재직 시절, NVIDIA Korea사에서 CUDA 엔지니어 지원 제안이 와서 응했다. 미국 본사의 VP/엔지니어와 전화 면접을 장시간 가졌는데, 기술 Q/A에서 여러 번 넘어졌고, 결과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다. 그간 GPU 아키텍처 연구를 했어도, CUDA 응용 개발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다.
3) 미국으로 건너온 뒤 인텔에서 그래픽스 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GPU 아키텍트 포지션으로 연락을 받았다.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아키텍트들과도 협업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어링 매니저는 내 이력서의 논문과 특허 목록을 보며, “자네는 연구자이지 아키텍트 팀보다는 NVIDIA Research 쪽이 맞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쪽에서도 연락은 없었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노크를 하던 시점 이래로, NVIDIA는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질 만큼 눈부시게 성장했고, 입사 문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동기간 나도 업계에서 짬빱을 먹다 보니, 이직이 상대적으로 쉬운 직급은 진작 지나버렸다. 이미 터미널 레벨에 다다른 상태였고, 한 단계 위로 오르려면 개별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를 벗어나 영혼을 끓어모아 일을 해야 했다. 도약을 하려면 사내 승진이 아니라 이직 외에는 답이 없었다. 인텔에서 AMD로 직군으로 바꿔 이직하고, 공식적으로 아키텍트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어쩌면 내 엔지니어 커리어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기다렸다.
AMD에서 2년을 넘긴 시점, 아키텍트 직군이 시장에서 희소가치가 있었던지, G사, M사와 같은 빅테크에서 면접 제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만 GPU가 아닌 NPU 직군이었다. 역시 AI 가속기가 화두였다. 그중에 M사 그래픽스 아키텍트 직군도 있어서 시험 삼아 지원도 해보았지만 역시 광탈이었다.
준비가 부족했다. 아니 준비를 제대로 안 했다. 마음이 크게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GPU/그래픽스로 꾸려왔던 내 경력 경로에 M사가 포함되면 궁극적으로 가고자 했던 NVIDIA와는 멀어질 것만 같았다. M사는 광고, SNS로 큰 빅테크였고,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AI 및 그래픽스 실리콘을 직접 개발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통적인 반도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개발 프로세스가 정착이 안되어 있을 것이고, 해당 회사의 경력은 향후 NVIDIA 진입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는 변명이고, 결과적으로 내가 부족했던 것이 맞다.
그러던 차, 유구한 역사를 가진 A사의 GPU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다리던 NVIDIA가 아니었지만, A사라면 내가 가꿔온 경력 경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A사의 HR과 소통하던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 시도하는 이직, 나도 한번 오퍼 여러 개 받아서 네고 빡세게 해 보자는 미친 생각.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NVIDIA를 내가 직접 두드리자. LinkedIn에 뜬 NVIDIA 구인 공고를 확인했고, 마침 핏과 직급이 잘 맞아 보이는 ‘Principal Graphics Hardware Architect’ 포지션을 확인했다.
온라인으로 지원하면 우선순위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학회에서 만나 알고 있던 지인 J에게 레퍼럴을 부탁했다. J는 흔쾌히 화답했다. J는 지인이었기에 일단은 ‘강한 추천’이긴 했지만, 소속이 GPU 아키텍처팀이 아니라 하이어링 매니저에게 별도의 코멘트를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 지인에게 받는 ‘강한 추천’과 모르는 이에게 받는 ‘약한 추천’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지인이 없는 경우에 강한 추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사람> 288p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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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럴을 통한 별도의 링크를 통해 온라인으로 지원했다. 그러던 와중에 진행하던 A사는 채용하려는 직군이 아키텍트가 아니라 모델링 엔지니어라며, 아키텍트 직군은 향후에 공고가 나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아키텍트 업무 중에 모델링도 있지만, 본업을 아키텍트로 지켜가고자 했던 나는 모델링 엔지니어 직군 인터뷰 제안을 정중히 고사했다.
결국 야심 차게 꿈꿨던 ‘멀티 오퍼 네고’는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NVIDIA?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연락도 없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배추를 세기 시작했다. 한 포기, 두 포기, 세 포기… 네 번의 포기 끝에,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집중했다. 그때, 잊었다고 생각한 문이, 조용히 다시 열렸다.
두 달이 되어가던 시점 뜬금없이 연락이 온 것이다.
#2
‘팀에서 당신의 이력에 흥미를 보인다.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달라’
HR부터 첫 연락이 오기까지 거의 두 달이 걸렸다. 사실 연락이 없자, 2-3주 차 즈음부터는 싹 잊고 현생을 살았다. ‘AMD도 충분히 좋은 회사잖아’라고 자위하며. 나는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면서 이직을 종종 시도하곤 했다. 이직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적은 많았지만,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실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부분 인터뷰 단계까지는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부분의 경우가 ‘나의 지원’이 아니라 ‘HR의 제안’으로 시작된 인바운드 채용(inbound recruiting)이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 인바운드 채용과 아웃바운드 채용(outbound recruiting)의 차이와 장단점에 대해서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사람> 172p를 참고하기 바란다.
기쁨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 준비를 하려면 또다시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 솔직히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미 마음을 접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기세 싸움이다. 이직을 시도하는 순간,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관문을 향해 나설 때면 늘 초조해지고, 그 문을 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열쇠를 깎는다. 그 기간 일상도 긴장감으로 채워진다. 스스로와의 싸움이 무르익었을 때, 인터뷰는 그 흐름 속에서 치러져야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활시위는 언젠가 놔야 한다. 계속 당기기만 해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두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나는 이미 타고 있던 외줄에서 내려왔고, 그렇게 단념했다. 이젠 점심시간에도 면접 준비 대신, 브런치 카툰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고 있었다. 웃긴 건, 내려놓으니 오히려 편해졌다는 것이다. ‘NVIDIA라니. 어차피 또 떨어질 텐데. 잘됐어. 인터뷰 준비로 마음고생 안 해도 되잖아?’ 이런 자존감 낮은 자의 정신승리, 자기 합리화를 산산이 부서지게 한 것이 바로 ‘인터뷰 보자는 연락’이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인터뷰 본다고 잃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경험이 쌓이지요”
‘미국 이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인데 인터뷰 봐도 될까요?’라는 커뮤니티 고민 글에 나는 마치 현자인양 이런 댓글을 달았다. 같은 상황이 도래한 나는 정작 초연하지 못했다. 내가 남에게 쉽게 말하던 조언이 내겐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사전 체념은 생각보다 컸다. 인터뷰를 보고 떨어진다면, 잃는 것이 없을 리 없었다. 준비에 들인 시간, 그리고 그보다 더 깊게 패일 자존감이었다.
결국 다시 그 긴장감의 동굴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를 그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건 불안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속에 품어온 그 회사에 대한 동경이었다. 나는 HR 직원의 메일에, 최대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담았고, 2주의 여유기간을 둔 인터뷰 가능 일자들을 답변했다. 바로 다음날 세명의 면접관 이름과 함께 최종 인터뷰 일정을 통보받았다.
공교롭게도 3인의 면접관 A, B, C의 이름이 모두 익숙했다.
A는 내가 인텔에 재직하던 시절 유관 부서의 팀장이었다. 직접 함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매니저를 통해 약간의 안면은 있었다. 반가운 이름이었지만, 인터뷰어로 통보받기 전까지 A가 NVIDIA로 이직을 한 사실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B는 대학원 시절, 일본 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때 나의 멘토와 함께 공동 연구를 하던 인사였다. 멘토가 썼던 논문에서 공동 저자로 등재되었던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가 졸업하고 NVIDIA로 입사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온라인상에서의 그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인터뷰어로 통보받게 되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C의 이름을 마주한 순간,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내가 20여 년 전 대학원에 처음 진학했을 때, 사수가 이 분야의 핵심이라며 읽으라 줬던 논문의 저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분야 연구자라면 누구나 아는 선구적인 논문이었다. 나는 이 논문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고, 석사,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쓸 때도 몇 번이고 C의 논문을 인용했다.
디스팅귀시드(distinguished) 엔지니어 셋의 이름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떨림이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박제되어 있던 대학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독해력, 배경 지식 탓에 힘겹게 논문을 읽어 내려가던 풋내기 연구자였던 나는 ‘언젠가 나도 미국’이라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리고, 그 논문들을 써내던 저자들이 정착한 회사, NVIDIA에 대한 선망도 자라났다. 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그 꿈의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2주간은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매일 저녁 최선을 다해 면접 준비에 몰두했다. 지원한 아키텍트 직군이 내 이력, 현재 업무와도 적합도가 높았지만, 혹여나 모를 돌발질문에 대비해 다양하게 준비했다. 아키텍처에 관한 학부, 대학원 수준의 기초부터, 최신 표준화, 제품, 기업 트렌드까지 싹 다시 머리에 채워 넣었다. 업계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 그 핵심 내용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다시 불러냈다.
또한 고직급 직군이기 때문에, 분명히 시장의 미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같이 추상적인 대화도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GPT를 활용해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각 질문에 나만의 답변을 준비했다. 또한 A, B, C 면접관에 대해 GPT에게 프롬프트를 주고, 각자의 배경에 맞춘 최적의 질문들도 준비해 두었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인터뷰 전략을 세웠다. 면접관에 대한 내 익숙함을 자연스럽되 과하지 않게 노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는 일종의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이었다. 예전에 모 빅테크 인터뷰를 볼 때였다. 면접관과의 간접적인 인연을, 다짜고짜 면접 시작 시에 언급했다. ‘잘 봐달라’까지는 아니지만, 면접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하고자 했던 의도였다. 하지만 그 면접관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퉁명스럽게 ‘그러냐?’라고만 했고, 바로 질문으로 넘어갔다. 한 줌도 안 되는 ‘mutual friends’의 인연을, 그것도 인터뷰 시작에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나는 낙하산 아니라고!
그래서 이번엔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보고 ‘그럼 혹시 누구 아냐?’라고 묻기 전에 절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인연에 기대 인터뷰를 보고자 하는 인상은 철저히 배제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익숙함, 사적인 기억은 인터뷰 세션 마지막에 남기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다. 마지막에 언급하면 인터뷰의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오마쥬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A-Z까지 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운명의 인터뷰 날을 맞았다.
#3
인터뷰 당일. 나는 의외로 떨리지 않았다. 인터뷰를 잘 준비해서도, 경험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설명하기 힘든 일종의 평안함이 있었다. 어차피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전날까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은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비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는 건 최선을 다해 답하자.”
그리고 마음으로 빌었다. 인터뷰 후 후회만은 남지 않게 해달라고.
A, B, C. 세 명의 인터뷰어를 연달아 만났다. 모두와 간접적인 인연이 있었지만, 애초 다짐대로 인터뷰 중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말미에만 살짝 언급했다. “사실은 당신을 짧게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GPU 연구를 시작할 때 읽었던 논문이 바로 당신의 논문입니다.” A는 반색하며 웃었고, C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적인 인연에 기대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간접 네트워크를 살리는 신의 한 수였다.
A와 B의 인터뷰는 무난했다. 그들은 내 지식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 질문을 던졌고, 추상화 수준(abstraction level)도 높았다. 디렉터급 고경력자답게 디테일보다는 큰 그림 중심이었다. 간혹 모르는 영역이 나와도 유사 경험을 엮어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었다. 세션이 끝날 즈음엔 오히려 나도 모르게 상기돼 있었다. 막힘 없이 ‘무난’했고, A는 자신이 던진 함정 질문을 깔끔히 피한 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비워두었던 마음에 기대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마지막 인터뷰어 C를 만났다. NVIDIA 초창기 멤버이자 셋 중 가장 경력이 긴 엔지니어였다. 그의 질문도 A, B와 비슷하게 ‘천상계’에 머물 거라 생각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 인상 좋은 노년의 엔지니어는 내 과거 프로젝트에 호기심을 보였다. 고맙다. 내 과거를 물어봐주어. 내 이력에 대한 질문만큼 답하기 쉬운 것이 있을까. 이런 질문은 주도권을 인터뷰어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고, 인터뷰어는 잘 모르는 분야니까. 신나게 대답했다.
내 첫 대답이 끝나자, 그는 질문지를 펼치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꿨다. 본게임의 시작이었다. 그가 준비한 질문은 총 5개. 단계별로 난이도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천상계에만 머무실 줄 알았던 C는 연옥과 지옥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만렙 레이드 보스였다. 그의 질문은 어느 하나도 뭉뚱그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첫 번째 문제에서 나는 그대로 무너졌다.
A와 B의 퀘스트처럼 무난할 거라 방심했던 나는, 질문의 의도와 맥락을 놓쳤다. 난이도 순이라 가장 쉬운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실제로 활용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종이에 메모를 하며 천천히 답을 끌어내려했지만, 고개를 숙이는 순간 줌 화면 너머의 아이컨택은 끊어졌다. 말은 꼬였고, 논리는 흐트러졌다. C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이 실망인지, 의아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첫 타에서 점수를 잃었다는 건 분명했다.
10분 가까이 허우적대던 나를 보고, 결국 그는 정답을 알려주었다. 답을 들었을 때, 나는 허탈했다.
‘이런, 그 쉬운 걸…’
눈앞의 넓은 길을 두고 쓸데없이 좁고 험한 길로 들어간 꼴이었다. 어렵게 생각하다 스스로 자충수에 빠졌던 것이다.
“망했다”
이전 세션을 마치고 가졌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든 질문을 일사천리로 돌파해도 될까 말까 한 인터뷰.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놓쳤으니, 역전은 불가능해 보였다. 순간 마음속이 차갑게 체념으로 가득 찼다. 오늘 난 침대에서 이불킥을 대차게 찰 것이다. 그리고 가슴을 치며 후회로 밤을 지새우겠지.
‘아, 망했네요. 결과는 안 봐도 뻔하겠죠? 죄송합니다. 인터뷰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라며 자리를 일어설 수는 없었기에, 멋쩍게 웃었다. ‘제가 어렵게 생각했군요’
인터뷰는 끝나지 않았고 그다음 질문을 받아야 했다. 첫 번째 문제를 놓친 나는 속으로는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질문을 거치며 나는 나도 모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어찌어찌 그 단계별 퀘스트를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아키텍처, 때로는 알고리즘, 때로는 그래픽스. 종잡을 수 없는 관문들을 통과하면서 나는 C와 다시 조금씩 소통하기 시작했다. 한번 대차게 넘어졌다가, 쩔뚝거리며 일어선뒤, 조금씩 걸음을 옮긴 셈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C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전. 가장 난도 높은 마지막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
‘만렙 레이드 보스’같던 인터뷰어는 그렇게 다음 문제를 던졌다. 남은 시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것은 내가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었다.
“XXX라는 제한된 상황아래에서 YYY를 위해, 최적의 ZZZ를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뭐죠?”
문제를 듣자마자 그 ‘고려사항’ 하나가 즉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AAA입니다”
“좋습니다. 또요..”
연속 질문. 면접 시 제일 듣기 싫은, 내 지식의 하한이 어딘지를 보고자 하는 질문이다. 첫 대답만으로 얄팍한 내 지식의 깊이를 감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동안 내가 만난 그 어떤 면접관도 ‘불완전한 답’만으로는 문제를 끝내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후보자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면접관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할 수밖에 없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
머리를 쥐어짰다.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릅니다…’라는 대답을 하자니, 천신만고 끝에 끌어올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 같아 너무나 주저되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답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과거 면접자/면접관으로서의 경험상, ‘어설픈 대답’은 차라리 아니한 것보다 못했다. 어설픈 대답으로,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연속 질문에서 정체가 드러나 신뢰도만 바닥을 친다. 게다가 내가 인터뷰를 보고 있는 회사는 ‘기술적 정직성(technical earnest)’를 가장 중요시하는 NVIDIA.
“그 경우 KKK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KKK를 하기 위해 QQQ를 고려해서 이렇게 저렇게 설계해 볼 수 있고… “
가불기에 걸린 상황에,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냈다. 문제와 최대한 유사한 다른 상황을 제시해 이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었다. 답을 하면서도 면접관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란 걸.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맞는 말이긴 한데. KKK는 XXX의 한 예일뿐이죠. 그건 특수한 경우고, 이 문제가 원하는 건 일반화된 대답입니다.”
역시 마지막 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핵심에 다다르지 못하면 내가 내놓은 답은 그에게 ‘동문서답’과 다름없을 뿐이었다.
면접관과 아이컨택이 끊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며 다시 펜과 종이를 꺼냈다. 몇몇 키워드를 써내려 갔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그리고 정적이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면접관에게 문제에 관한 몇몇 질문을 던졌다. 그럼에도 그가 원하는 정답을 끝내 생각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결국 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그렇게 하기 싫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려던 순간, 불현듯 몇 달 전 RTL 엔지니어 D와 협업하던 일이 떠올랐다. D는 내가 아키텍처로 설계했던 A블록을 구현 중이었다. 최적의 구조로 구현하기 원했던 D는 내게 A의 특정한 한 파라미터 값을 요청했다. 그리고 난 그 최적값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입력을 조합하여 재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할 때 적용한 지표가 바로… 내가 지금 답해야 할 그 대답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평균 MMM율(率)입니다. MMM은 LLL와 OOO를 이용해서 구할 수 있죠.”
“맞습니다. 그럼 MMM와 앞에서 대답하신 AAA를 이용해 수식을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난 잠시의 고민을 한 뒤 최종 수식을 완성했다. 인터뷰어가 원했던 바로 그 답이었다. 연신 굳은 표정이었던 그는 환하게 웃었다.
“맞아요! 그게 이 문제의 정답입니다!”
그렇게 난 어렵사리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생각해 보면 그 마지막 답은 이미 내 안에, 내 과거 경험치의 범주 내에 있었다. 도중에 냈던 동문서답 같던 대답, 그리고 종이와 연필로 했던 사고(思考)의 시간, 그리고 정적을 피하려 면접관에게 던졌던 역질문… 그 모든 과정이 내 기억 어딘가에 묻혀있던 그 진주를 꺼낼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면접 시간 2분 남았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있나요?”
마지막 코멘트를 하던 인터뷰의 얼굴엔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가식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들은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질문들이 많이 있었지만 남은 시간은 거의 없었기에, 질문을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다행이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서.
“질문보다는 감사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20년 전 대학원에 처음 진학하며 그래픽스 하드웨어 분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자였습니다.
그때, 지도 교수가 이분야의 핵심 논문이라고 읽어보라 주셨던 논문이 있었죠. 바로 면접관님께서 쓰셨던 CCC논문이죠. 저는 그 논문을 어렵사리 읽어가며 조금씩 연구라는 것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처음으로 잡았던 연구주제가 DDD였고, 석사 때 읽었던 CCC가 제 논문의 핵심 인용 논문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이 분야에 선구적인 연구를 하시고 길을 닦아주셨기에, 저 같은 후배 연구자가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그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자신의 논문을 읽었던 업계의 후배로부터, 오마쥬에 가까운 상찬을 들으니 보람과 흐뭇한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다”라는 말을 했고, 우리는 좋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가쁜 큰 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1시간이 영겁의 시간 같았던 그 인터뷰를 끝냈을 때, 나를 옥죄던 모든 긴장감은 사라졌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왔다. 잘한 것일까? 인터뷰를 무사히, 좋은 분위기에서 마쳤지만, 첫 문제를 놓고 저질렀던 치명적이었던 실수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남은 것은 잠잠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NVIDIA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한 달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동안 나는 마음을 비운채 업무에 집중하려 했다. 쉽지는 않았다. 마지막 면접관의 첫 문제를 통과하지 못했던 내 실수가 발목을 잡았던 것이었을까. 1주, 2주, 3주째.. 걱정과 기대감에 연락을 기다렸으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4주째가 넘어갔을 때 나는 단념했다. 그리고 깨끗이 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달의 기간 동안 나는 참 절박했다. 이미 난 충분히 감사한 업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꿈꾸던, 하지만 감히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던, 그 회사의 턱밑까지 다가갔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간절하게 했다. 한 발자국만 더 디디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로부터 또 몇 주 뒤였다. 심정을 정리하고 일상에 몰입하던 어느 날, 인터뷰를 보았던 기억조차 희미해질 무렵, 그렇게 나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 단계로 진행하자는. 그 메일을 열었던 순간, 나는 기쁨에 앞서,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졌다. 오랜 기다림은 환희를 내지를 기력마저 앗아갔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 기회가 생긴 것에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예정되어 있던 출장을 다녀온 뒤, NVIDIA의 다음 인터뷰 절차를 밟았다. 팀의 디렉터를, 그리고 그 며칠 뒤 VP를 만났고, 이들과 또 한차례의 천상계와 연옥을 오가는 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오퍼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은 조금 있었지만 AMD에 퇴사를 통보하고, NVIDIA로 이직하는 절차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두 회사는 경쟁사였고 큰 틀에서는 같은 GPU 범주였다. 하지만 다른 블록을 책임지는 부서로 이직을 하는 것을 설득해, AMD 매니저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퇴사에 대한 반박 불가한 사유, 설득, 카운터 오퍼 제시, 정중한 고사. 그리고 난 퇴사까지 2주가 아닌 3주 유예기간을 두었고, 그 기간 동안 그간 해도던 업무를 최대한 자세하게 문서화했다. 그리고 성심껏 인수인계를 했다. 그 모든 과정이 판박이였다. AMD로 이직하며 인텔을 퇴사하던 그때처럼 난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처신했다.
그리고 선망하던 NVIDIA에 입사했다. 생각해 보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미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회사의 회장은 외부에서 알려진 이미지보다 훨씬 유쾌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왜 직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사내에서 그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의 일정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하는 한국의 기사들을 읽으며 묘한 감정에 젖었다.
커리어 내내 그저 레퍼런스로만 바라보던 회사. 그 회사에 실제로 입사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가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능력만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인터뷰의 마지막 문제. 완전히 멈춰버린 머릿속에서, 거의 포기하려던 순간, 마치 오래 묵혀두었던 서랍이 스스로 열리듯 한 경험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 흐름을 나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분명 은혜였다.
가끔은 ‘내가 해냈다’는 마음이 스칠 때가 있다. 스스로를 조금 포장해보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러다 그날을 떠올리면 금세 조용해진다. 막다른 벽 앞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길이 열리던 그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만렙 고수처럼 스스로를 포장해 자기 계발서를 내기도 했지만, 실제로 나는 어떤 조직에서도 큰 기술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꾸준히 일하던 엔지니어였을 뿐이다. 그런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실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분명히 내 앞을 비추어준 흐름이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순간까지 지켜진 발걸음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은혜’라는 단어 말고는 딱 맞는 표현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겸손해진다. 그리고 감사해진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선망했던 것은 ‘NVIDIA’라는 회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은혜를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의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예나빠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airt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