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좋아했던 회사 앞 메타세콰이어 나무길
나는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배를 탔다가(항해사 3년 6개월 회고), 갑자기 새우를 키운다며 사업을 벌였다가(흰다리새우 양식 사업 회고록), 사업 추진에 실패하고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었다. 어제 첫 개발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을 하게 되면서 회고록을 남겨본다.
국비학원 시절
2022년 9월 경에 사업을 정리하고 웹 개발자로 둔갑하기 위해 국비학원을 알아보았다. SSAFY(싸피)라고 삼성에서 하는 국비학원이 있길래 한 달 정도 준비했는데 입학시험에서 시원하게 떨어졌다. 저 6개월마다 있는 싸피 입학시험에 N수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시간이 아까워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다른 적당한 교육을 신청해 들었다.
당시 10만 개발자 양병설이라며 국가에서 코딩 관련 교육에 한해 국비교육 지원금 500만원 제한을 풀어줬는데, 이 학원도 거기에 탑승해 자연어니 머신러닝이니 하는 키워드를 섞어 세금을 쌍끌이 하는 학원 중 하나였다. 인당 지원금이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고급 교육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원 수업이 별 영양가가 없다고 느껴져 비대면 수업을 음소거 한 채 유명한 온라인 강의를 결제해 혼자 공부했다.
약 5개월 과정 중 마지막 한 달은 팀 프로젝트를 했는데, 팀원들과 함께 매일 새벽까지 열심히 해서 최우수상을 받고 교육을 수료했다. 당시 심사위원 분들이 당장 서비스로 내도 될 것 같다고 칭찬해 주셨고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팀원 분도 계셨다. 하지만 수익이 없는 초기 구간을 버텨낼 돈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취업으로 뛰어들었다.
해병대식 개발자 취업
교육을 수료하고 이력서를 돌렸다. 나는 여자친구(현 아내)와 함께 대전에 정착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전에 있는 개발회사를 알아보았다. 채용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쓰는 화면 상단에 통계적으로 합격률이 높은 단어와 낮은 단어 목록이 나열돼 있었다. 무슨 성능이니 설계니 하는 단어를 쓰면 더 잘 붙여주고, 열정이나 도전 같은 단어를 쓰면 떨어진다는 힌트였다. 참으로 한국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불합격 전용 단어를 써서 취업을 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이 샘솟았다. 나는 이력서에 “무슨 일이든 악으로 깡으로 열심히 할 테니 제발 뽑아만 주십시오! 악!”에 가까운 해병대식 악바리 문구를 적어서 열 곳 정도 돌렸다. 운 좋게 두 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첫 개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내가 취업을 할 즈음 지원금 폭탄 투하의 결과로 10만 개발자 취준생이 채용시장에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가 악화해 투자금으로 연명하던 적자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신입 채용문이 꽁꽁 닫혔다. 서울 쪽은 영세 개발 회사의 일자리조차 1000:1의 경쟁률을 보일만큼 취업 지옥도가 펼쳐졌다. 항해사가 되어 세계여행 좀 하나 했더니 코로나가 터지고, 새우양식장을 지어볼까 했더니 자재비가 폭등하다가, 이제 꿈꿔왔던 개발자가 되려고 보니 개발자의 몸값이 곤두박질치는 모양새였다. 혹시 내가 또 직종을 바꾸게 될 경우 이곳 브런치에 공지를 할 테니 꼭 구독하여 대비하시기 바란다.
눈 떠보니 로봇 개발자
입사할 때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악소리를 냈던 탓일까, 웹개발자로 입사했던 내가 어느새 로보틱스 개발자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이 길이 괜찮을까 고민도 했지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 하자는 자세로 정말 뭐든 열심히 했다. 웹 사이트 UI를 개발하는 프론트엔드(React)부터 서버를 개발하는 백엔드(Node.js), 로보틱스( ROS2)를 거쳐 로봇의 모터를 다루기 위한 산업용 통신(EtherCAT, CANopen)에 더해 모바일 앱(React-Native), 데스크탑 앱(Electron) 개발까지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넓은 범위를 다뤘다. 개발 언어만 5가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개발을 넘어 기획, 일정관리, 견적작업, 제안서 작성, 과제 보고서 작성, 특허출원, PPT 제작, 클라이언트 대응, 단기 외주 등 거의 모든 업무를 다 커버하게 되었다.
나는 분 단위로 내가 무슨 업무를 했는지 일지에 기록하는데, 이 데이터에 의하면 1년 차 때는 업무 시간의 약 30%를 비개발 업무에 사용했고 2년 차부터는 이 비중이 60%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프로젝트만 10개가 넘어갔다. 노션에 거의 모든 디테일을 전부 기록해 가며 맥락 전환으로 인한 정보 손실과 인지적 마찰을 최소화하려 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개발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개발과 무관한 일에 큰 성과가 터졌기 때문이다. 왜 자꾸 장사가 잘 되는데?
관뚜껑을 박차고 부활한 항해사 커리어
내 커리어에 대한 의문은 날로 깊어졌지만 그래도 근무 여건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던 어느 날, 대전에서 해양 관련 데이터를 다루는 한 회사의 경력직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직접 바다를 누볐던 내 과거와 잘 맞는 것 같아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았다. 다행히 내 항해사 경력을 긍정적으로 봐주셨고, 나도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제부로 나의 첫 개발 회사를 퇴사했다.
사실 지금 회사를 너무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 측도 많이 아쉬워했고, 나도 비전공자였던 나를 받아준 고마운 회사인 만큼 미안함이 있었다. 내가 퇴사를 취소하는 꿈까지 꾸셨다고 하니 이보다 더 서운해해 주실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 혹시나 내가 오갈 데 없어지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더니 부디 나가서 고초를 겪고 돌아오길 바란다는 웃픈 농담도 건네주셨다.
스티브 잡스 형님은 삶의 경험들이 의미 있게 이어지는 것을 ‘Connecting the dots’라고 표현했다. 나는 사실 굳이 삶의 경험들이 이어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주의지만, 이어질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내 항해사 경력이 가끔 수다 떨 때나 푸는 이야기보따리에서 직업적인 의미를 가지게 돼서 기쁘다. 내 휘뚜루마뚜루 라이프가 또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진다.
최은규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chldmsrb95

내가 좋아했던 회사 앞 메타세콰이어 나무길
나는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배를 탔다가(항해사 3년 6개월 회고), 갑자기 새우를 키운다며 사업을 벌였다가(흰다리새우 양식 사업 회고록), 사업 추진에 실패하고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었다. 어제 첫 개발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을 하게 되면서 회고록을 남겨본다.
국비학원 시절
2022년 9월 경에 사업을 정리하고 웹 개발자로 둔갑하기 위해 국비학원을 알아보았다. SSAFY(싸피)라고 삼성에서 하는 국비학원이 있길래 한 달 정도 준비했는데 입학시험에서 시원하게 떨어졌다. 저 6개월마다 있는 싸피 입학시험에 N수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시간이 아까워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다른 적당한 교육을 신청해 들었다.
당시 10만 개발자 양병설이라며 국가에서 코딩 관련 교육에 한해 국비교육 지원금 500만원 제한을 풀어줬는데, 이 학원도 거기에 탑승해 자연어니 머신러닝이니 하는 키워드를 섞어 세금을 쌍끌이 하는 학원 중 하나였다. 인당 지원금이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고급 교육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원 수업이 별 영양가가 없다고 느껴져 비대면 수업을 음소거 한 채 유명한 온라인 강의를 결제해 혼자 공부했다.
약 5개월 과정 중 마지막 한 달은 팀 프로젝트를 했는데, 팀원들과 함께 매일 새벽까지 열심히 해서 최우수상을 받고 교육을 수료했다. 당시 심사위원 분들이 당장 서비스로 내도 될 것 같다고 칭찬해 주셨고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팀원 분도 계셨다. 하지만 수익이 없는 초기 구간을 버텨낼 돈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취업으로 뛰어들었다.
해병대식 개발자 취업
교육을 수료하고 이력서를 돌렸다. 나는 여자친구(현 아내)와 함께 대전에 정착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대전에 있는 개발회사를 알아보았다. 채용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쓰는 화면 상단에 통계적으로 합격률이 높은 단어와 낮은 단어 목록이 나열돼 있었다. 무슨 성능이니 설계니 하는 단어를 쓰면 더 잘 붙여주고, 열정이나 도전 같은 단어를 쓰면 떨어진다는 힌트였다. 참으로 한국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불합격 전용 단어를 써서 취업을 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이 샘솟았다. 나는 이력서에 “무슨 일이든 악으로 깡으로 열심히 할 테니 제발 뽑아만 주십시오! 악!”에 가까운 해병대식 악바리 문구를 적어서 열 곳 정도 돌렸다. 운 좋게 두 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고, 첫 개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내가 취업을 할 즈음 지원금 폭탄 투하의 결과로 10만 개발자 취준생이 채용시장에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가 악화해 투자금으로 연명하던 적자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신입 채용문이 꽁꽁 닫혔다. 서울 쪽은 영세 개발 회사의 일자리조차 1000:1의 경쟁률을 보일만큼 취업 지옥도가 펼쳐졌다. 항해사가 되어 세계여행 좀 하나 했더니 코로나가 터지고, 새우양식장을 지어볼까 했더니 자재비가 폭등하다가, 이제 꿈꿔왔던 개발자가 되려고 보니 개발자의 몸값이 곤두박질치는 모양새였다. 혹시 내가 또 직종을 바꾸게 될 경우 이곳 브런치에 공지를 할 테니 꼭 구독하여 대비하시기 바란다.
눈 떠보니 로봇 개발자
입사할 때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악소리를 냈던 탓일까, 웹개발자로 입사했던 내가 어느새 로보틱스 개발자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이 길이 괜찮을까 고민도 했지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 하자는 자세로 정말 뭐든 열심히 했다. 웹 사이트 UI를 개발하는 프론트엔드(React)부터 서버를 개발하는 백엔드(Node.js), 로보틱스( ROS2)를 거쳐 로봇의 모터를 다루기 위한 산업용 통신(EtherCAT, CANopen)에 더해 모바일 앱(React-Native), 데스크탑 앱(Electron) 개발까지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넓은 범위를 다뤘다. 개발 언어만 5가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개발을 넘어 기획, 일정관리, 견적작업, 제안서 작성, 과제 보고서 작성, 특허출원, PPT 제작, 클라이언트 대응, 단기 외주 등 거의 모든 업무를 다 커버하게 되었다.
나는 분 단위로 내가 무슨 업무를 했는지 일지에 기록하는데, 이 데이터에 의하면 1년 차 때는 업무 시간의 약 30%를 비개발 업무에 사용했고 2년 차부터는 이 비중이 60%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프로젝트만 10개가 넘어갔다. 노션에 거의 모든 디테일을 전부 기록해 가며 맥락 전환으로 인한 정보 손실과 인지적 마찰을 최소화하려 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개발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개발과 무관한 일에 큰 성과가 터졌기 때문이다. 왜 자꾸 장사가 잘 되는데?
관뚜껑을 박차고 부활한 항해사 커리어
내 커리어에 대한 의문은 날로 깊어졌지만 그래도 근무 여건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살던 어느 날, 대전에서 해양 관련 데이터를 다루는 한 회사의 경력직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직접 바다를 누볐던 내 과거와 잘 맞는 것 같아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았다. 다행히 내 항해사 경력을 긍정적으로 봐주셨고, 나도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제부로 나의 첫 개발 회사를 퇴사했다.
사실 지금 회사를 너무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 측도 많이 아쉬워했고, 나도 비전공자였던 나를 받아준 고마운 회사인 만큼 미안함이 있었다. 내가 퇴사를 취소하는 꿈까지 꾸셨다고 하니 이보다 더 서운해해 주실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 혹시나 내가 오갈 데 없어지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더니 부디 나가서 고초를 겪고 돌아오길 바란다는 웃픈 농담도 건네주셨다.
스티브 잡스 형님은 삶의 경험들이 의미 있게 이어지는 것을 ‘Connecting the dots’라고 표현했다. 나는 사실 굳이 삶의 경험들이 이어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주의지만, 이어질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내 항해사 경력이 가끔 수다 떨 때나 푸는 이야기보따리에서 직업적인 의미를 가지게 돼서 기쁘다. 내 휘뚜루마뚜루 라이프가 또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진다.
최은규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chldmsrb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