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회생활의 농도
사회생활 첫 경험은 기간으로 따지면 짧았지만, 그 농도는 깊었다.
아침 7시 전에 출근해서 마감을 하고 집에 가면 자정에 가까웠다.
열정 넘치고 순수했던 나는, 그 누구보다 잘해보고 싶었다.
고객과 직원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은, 힘들면서도 즐거웠다.
기대했던 작은 성과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순간이 따뜻한 빛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20대의 젊은 나이였지만, 지치고 힘들 때에도 마치 각성제를 먹은 듯 나를 쉬지 않게 했다.
그 모든 경험은 결국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하루의 일과
(매장별로 조금 다르지만, 내 경험을 기준으로 적어본다.)
새벽이면 물건이 들어온다.
제일 먼저 오는 건 ‘일배 제품’. 두부, 햄, 어묵, 치즈, 우유 같은 매일 배달되는 것들이다.
협력업체 직원과 함께 분류해 진열한다.
그다음은 과일, 축·수산, 공산제품.
덩어리는 크지만,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는 건 과일이었다.
(축·수산과 공산제품은 재고 보충이나 행사 물량이 주를 이룬다. 삼겹살 행사, 계절 생선, 과자·음료 행사 같은 것들.)
과일 발주는 특히 까다로웠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 품목이 다르고, 과거 매출 데이터·행사 품목·인근 세대수 같은 정보를 분석해야 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자 행사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철 과일과 당도 검사
내가 주로 다뤘던 제철 과일은 이렇다.
– 봄(3~5월): 딸기, 하귤·황금향 등 감귤류, 하우스 수박, 매실, 참외
– 여름(6~8월): 복숭아, 자두, 체리, 포도(청포도·거봉 등), 블루베리, 수박, 멜론, 망고
– 가을(9~11월): 감(단감·홍시), 사과(아오리 → 홍로 → 부사), 배, 포도(샤인머스켓 포함), 석류, 밤, 대추
– 겨울(12~2월): 귤,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등 감귤류, 딸기(겨울부터 제철 시작), 키위, 파인애플,
저장/온실 샤인머스캣
요즘은 사계절 내내 과일을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제철 과일이 가장 맛있다.
“제철 과일을 먹으면 땅의 기운을 먹는다”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그리고 내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당도 검사’였다.
브릭스(Brix)라는 단위로 과즙 속 당분 비율을 재는 건데, 예를 들면 :
– *수박 : 평균 10~11 Brix 이상 / 맛있다고 느끼는 수준 12 Brix 이상
– 복숭아 : 평균 11~13 Brix 이상 / 맛있다고 느끼는 수준 13~14 Brix 이상
– 포도 : 평균 14~16 Brix 이상 / 맛있다고 느끼는 수준 16 Brix 이상
*수박의 평균 당도는 10~11 Brix다. 쉽게 말해, 시중에서 흔히 먹는 수박이 이 정도다.
하지만 평균이상의 당도를 넘으면 “올해 수박 잘 됐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이 달라진다.
검사 과정에서 시식(?)을 하는 재미도 있었다. 당도 검사를 위해 잘라낸 과일은 판매가 불가능했기에,
그 순간만큼은 공식적으로 맛볼 수 있었던 셈이다.
(피곤한 아침 스트레스가 달콤하게 사라지는 순간이랄까…?)
샘플링을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지만, 문제가 있으면 MD와 소통해 교체했다.
고가 과일일수록 브릭스 수치가 품질 보증처럼 쓰이니, 마트에서 보게 된다면 참고하면 좋다.
이렇게 당도 체크와 진열을 끝내면 오전 9시.
매장이 열리고, 나는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바빴다. 그 속에서 만난 고객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중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왜 비싼 매장 제품을 씁니까?”
매장 안에는 샵인샵 형태로 빵집이 있었고, 매장 밖에는 식당과 반찬가게들이 많았다.
나는 어느 날 빵집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빵집에서 쓰시는 과일이나 밀가루, 잼 같은 재료들을 저희 매장에서 구입하시면 시간도 절약되고
더 편하지 않을까요?”
사장님은 단호히 말했다.
“아니, 담당님. 매장 제품은 소매라 비싸잖아요.
우리는 식자재 마트에서 싸게 사는데 굳이 매장 걸 써야 합니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시장이 더 저렴했다.
하지만 그 당시 베이커리 매출도 워낙 낮았고, 사장님의 고객응대도 본사 모니터링에서는 좋지 않았다는 피드백이 있었기에 좀 더 매장에 관심을 가져주십사 말씀을 드린 게 시작이었다.
사실 매장 내 고객의 소리함에도 몇 번이나 제품의 맛이 좋지 않았다는 평가도 많았다.
(고객 중심보다는 자기 스타일대로만 만드는…)
매장 앞 식당 사장님들도 똑같이 말했다. “매장 물건은 비싸다.”
그리고 고객들은 “맛이 본인 입맛 위주다”라는 불만을 많았다.
나는 발상을 바꾸기로 했다. ‘비싸다’는 인식을 깨자, 대신 본인의 장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자.
그래서 동일하게 제안했다.
“필요할 때마다 매장에서 사세요. 대신 식자재 가격은 못 맞추지만, 최소한의 마진만 받고 드리겠습니다.
남는 시간은 신제품 개발에 쓰시고, 그 제품은 매장 전단에 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별도로 우수고객에게 SMS 발송 시 제품 할인혜택도 넣겠습니다. 물론 그 비용은 저희가 부담할게요.”
처음엔 나보다 점장님이 걱정했다.
“그렇게 하면 손해 아닐까?”
하지만 내 생각에는 올라갈 일만 남았지, 더 이상 떨어질 건 없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미비하지만, 사장님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많아질수록 매장이 달라질 거 같습니다.”
처음 한 달은 불편해하고 귀찮아하셨지만 두 달 정도 지나자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사장님들은 시장에 가지 않아도 됐고, 매장은 품목 매출이 늘었다.
무엇보다 사장님들이 메뉴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자연스럽게 직원들과 소통도 늘어나며 매장 분위기가 밝아졌다.
베이커리 사장님은 경쟁사 연구도 하고, 재료 함량을 늘려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처음으로 케이크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식당 사장님들도 다양한 메뉴를 내놓으며 손님이 늘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쉽게 포기하는 발언이나 예전의 부정적인 태도가 없어졌다.
“포도 안에 벌레가 있어요”
어느 날, 캐셔 직원이 급히 뛰어왔다.
“담당님, 큰일 났어요!”
어제 포도를 사간 고객이 박스 안에서 벌레가 나왔다며 항의한 것이다.
포도는 당이 많은 과일 중 하나로, 여름철에는 씻지 않고 냉장보관하는 게 좋다.
(씻으면 껍질의 보호막이 없어져 수분이 증발하고 쉽게 상함) 먹기 직전에만 씻는 게 좋은데, 생각해 보니
그냥 구매하시고 베란다나 식탁에 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통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드리지만, 단순 교환이 아니라, “직접 집으로 와서 가져가라”는 요청이었다.
알고 보니 포도를 드시려고 주방에서 세척 중에 벌레가 나와서 직접 가져가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주소를 확인하고 직접 가보았다. 집에 들어서자 시큼한 와인 냄새가 났다.
역시나 식탁 위에 포도상자가 있었고 (상자밑에는 포도알이 많이 터져 있었다.)
싱크대에 문제의 포도가 있었다.
고객님 여기에 벌레가 있는 건 가요?
고객은 두려워하며 말했다.
“벌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못 잡아요.”
아이 둘은 코를 막고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저씨, 치워주세요~”
(속으로 : 얘들아, 나 28살이야…)
사실 나도 벌레를 무서워했지만, 용기를 내어 확인했다.
결국 작은 초파리 두 마리. 그것도 죽은 상태였다.
“고객님, 죽어있는데요…?”
그러자 고객은 오히려 비명을 질렀다.
“꺄악! 치워주세요!”
휴지로 치워드리고, 포도를 씻어드렸다.
그리고 차근차근 상황을 말씀드렸다.
“상온 보관으로 당도가 떨어져서 벌레가 생긴 거 같습니다. 이건 세척했으니 문제는 없지만,
나중에 매장으로 오시면 동일한 새 상품으로 다시 드리겠습니다.”
고객님이 조금 예민하셨는지는 몰라도, 남은 제품은 못 먹겠다고 해서 바로 페기하고 편하게 매장 오셨을 때
저를 직접 찾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매장에 돌아왔다.
며칠 뒤, 고객님은 가족과 함께 매장에 찾아왔고,
포도를 새로 드리며, 나는 몇 가지 과일 보관 팁을 알려드렸다.
– 복숭아 → 신문지에 싸면 눌림 방지, 수분 유지
– 배·사과 → 비닐팩에 하나씩 넣어 냉장 보관하면 아삭함 유지
– 바나나 → 꼭지를 랩으로 감싸면 숙성 지연. 껍질을 벗겨 냉동하면 베이킹 재료로 활용 가능
(사실 그냥 바나나는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냉동하고 베이킹까지 하면 조금 힘들 것 같다.)
고객은 “사소한 것도 신경 써줘서 고맙다”며 단골이 되었고,
나중에는 옆 동네 과일가게 정보까지 알려주는 든든한 ‘정보원’이 되었다.
그 달 나는 ‘칭찬 사원’으로 뽑혔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이 직접 점장님께 찾아가 말했다고 한다.
“저분 때문에 이 매장에서 과일을 삽니다.”
귀찮을까 봐 더 신경 쓴 일이, 오히려 내 이름을 본사에 알린 계기가 됐다.
짧았지만 농도 짙은 그 시간은 단순히 과일을 다루던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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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회생활의 농도
사회생활 첫 경험은 기간으로 따지면 짧았지만, 그 농도는 깊었다.
아침 7시 전에 출근해서 마감을 하고 집에 가면 자정에 가까웠다.
열정 넘치고 순수했던 나는, 그 누구보다 잘해보고 싶었다.
고객과 직원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은, 힘들면서도 즐거웠다.
기대했던 작은 성과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순간이 따뜻한 빛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20대의 젊은 나이였지만, 지치고 힘들 때에도 마치 각성제를 먹은 듯 나를 쉬지 않게 했다.
그 모든 경험은 결국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하루의 일과
(매장별로 조금 다르지만, 내 경험을 기준으로 적어본다.)
새벽이면 물건이 들어온다.
제일 먼저 오는 건 ‘일배 제품’. 두부, 햄, 어묵, 치즈, 우유 같은 매일 배달되는 것들이다.
협력업체 직원과 함께 분류해 진열한다.
그다음은 과일, 축·수산, 공산제품.
덩어리는 크지만,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는 건 과일이었다.
(축·수산과 공산제품은 재고 보충이나 행사 물량이 주를 이룬다. 삼겹살 행사, 계절 생선, 과자·음료 행사 같은 것들.)
과일 발주는 특히 까다로웠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 품목이 다르고, 과거 매출 데이터·행사 품목·인근 세대수 같은 정보를 분석해야 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자 행사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철 과일과 당도 검사
내가 주로 다뤘던 제철 과일은 이렇다.
– 봄(3~5월): 딸기, 하귤·황금향 등 감귤류, 하우스 수박, 매실, 참외
– 여름(6~8월): 복숭아, 자두, 체리, 포도(청포도·거봉 등), 블루베리, 수박, 멜론, 망고
– 가을(9~11월): 감(단감·홍시), 사과(아오리 → 홍로 → 부사), 배, 포도(샤인머스켓 포함), 석류, 밤, 대추
– 겨울(12~2월): 귤,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등 감귤류, 딸기(겨울부터 제철 시작), 키위, 파인애플,
저장/온실 샤인머스캣
요즘은 사계절 내내 과일을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제철 과일이 가장 맛있다.
“제철 과일을 먹으면 땅의 기운을 먹는다”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그리고 내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당도 검사’였다.
브릭스(Brix)라는 단위로 과즙 속 당분 비율을 재는 건데, 예를 들면 :
– *수박 : 평균 10~11 Brix 이상 / 맛있다고 느끼는 수준 12 Brix 이상
– 복숭아 : 평균 11~13 Brix 이상 / 맛있다고 느끼는 수준 13~14 Brix 이상
– 포도 : 평균 14~16 Brix 이상 / 맛있다고 느끼는 수준 16 Brix 이상
*수박의 평균 당도는 10~11 Brix다. 쉽게 말해, 시중에서 흔히 먹는 수박이 이 정도다.
하지만 평균이상의 당도를 넘으면 “올해 수박 잘 됐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이 달라진다.
검사 과정에서 시식(?)을 하는 재미도 있었다. 당도 검사를 위해 잘라낸 과일은 판매가 불가능했기에,
그 순간만큼은 공식적으로 맛볼 수 있었던 셈이다.
(피곤한 아침 스트레스가 달콤하게 사라지는 순간이랄까…?)
샘플링을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지만, 문제가 있으면 MD와 소통해 교체했다.
고가 과일일수록 브릭스 수치가 품질 보증처럼 쓰이니, 마트에서 보게 된다면 참고하면 좋다.
이렇게 당도 체크와 진열을 끝내면 오전 9시.
매장이 열리고, 나는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바빴다. 그 속에서 만난 고객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중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왜 비싼 매장 제품을 씁니까?”
매장 안에는 샵인샵 형태로 빵집이 있었고, 매장 밖에는 식당과 반찬가게들이 많았다.
나는 어느 날 빵집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빵집에서 쓰시는 과일이나 밀가루, 잼 같은 재료들을 저희 매장에서 구입하시면 시간도 절약되고
더 편하지 않을까요?”
사장님은 단호히 말했다.
“아니, 담당님. 매장 제품은 소매라 비싸잖아요.
우리는 식자재 마트에서 싸게 사는데 굳이 매장 걸 써야 합니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시장이 더 저렴했다.
하지만 그 당시 베이커리 매출도 워낙 낮았고, 사장님의 고객응대도 본사 모니터링에서는 좋지 않았다는 피드백이 있었기에 좀 더 매장에 관심을 가져주십사 말씀을 드린 게 시작이었다.
사실 매장 내 고객의 소리함에도 몇 번이나 제품의 맛이 좋지 않았다는 평가도 많았다.
(고객 중심보다는 자기 스타일대로만 만드는…)
매장 앞 식당 사장님들도 똑같이 말했다. “매장 물건은 비싸다.”
그리고 고객들은 “맛이 본인 입맛 위주다”라는 불만을 많았다.
나는 발상을 바꾸기로 했다. ‘비싸다’는 인식을 깨자, 대신 본인의 장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자.
그래서 동일하게 제안했다.
“필요할 때마다 매장에서 사세요. 대신 식자재 가격은 못 맞추지만, 최소한의 마진만 받고 드리겠습니다.
남는 시간은 신제품 개발에 쓰시고, 그 제품은 매장 전단에 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별도로 우수고객에게 SMS 발송 시 제품 할인혜택도 넣겠습니다. 물론 그 비용은 저희가 부담할게요.”
처음엔 나보다 점장님이 걱정했다.
“그렇게 하면 손해 아닐까?”
하지만 내 생각에는 올라갈 일만 남았지, 더 이상 떨어질 건 없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미비하지만, 사장님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많아질수록 매장이 달라질 거 같습니다.”
처음 한 달은 불편해하고 귀찮아하셨지만 두 달 정도 지나자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사장님들은 시장에 가지 않아도 됐고, 매장은 품목 매출이 늘었다.
무엇보다 사장님들이 메뉴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자연스럽게 직원들과 소통도 늘어나며 매장 분위기가 밝아졌다.
베이커리 사장님은 경쟁사 연구도 하고, 재료 함량을 늘려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처음으로 케이크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식당 사장님들도 다양한 메뉴를 내놓으며 손님이 늘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쉽게 포기하는 발언이나 예전의 부정적인 태도가 없어졌다.
“포도 안에 벌레가 있어요”
어느 날, 캐셔 직원이 급히 뛰어왔다.
“담당님, 큰일 났어요!”
어제 포도를 사간 고객이 박스 안에서 벌레가 나왔다며 항의한 것이다.
포도는 당이 많은 과일 중 하나로, 여름철에는 씻지 않고 냉장보관하는 게 좋다.
(씻으면 껍질의 보호막이 없어져 수분이 증발하고 쉽게 상함) 먹기 직전에만 씻는 게 좋은데, 생각해 보니
그냥 구매하시고 베란다나 식탁에 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통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드리지만, 단순 교환이 아니라, “직접 집으로 와서 가져가라”는 요청이었다.
알고 보니 포도를 드시려고 주방에서 세척 중에 벌레가 나와서 직접 가져가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주소를 확인하고 직접 가보았다. 집에 들어서자 시큼한 와인 냄새가 났다.
역시나 식탁 위에 포도상자가 있었고 (상자밑에는 포도알이 많이 터져 있었다.)
싱크대에 문제의 포도가 있었다.
고객님 여기에 벌레가 있는 건 가요?
고객은 두려워하며 말했다.
“벌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못 잡아요.”
아이 둘은 코를 막고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저씨, 치워주세요~”
(속으로 : 얘들아, 나 28살이야…)
사실 나도 벌레를 무서워했지만, 용기를 내어 확인했다.
결국 작은 초파리 두 마리. 그것도 죽은 상태였다.
“고객님, 죽어있는데요…?”
그러자 고객은 오히려 비명을 질렀다.
“꺄악! 치워주세요!”
휴지로 치워드리고, 포도를 씻어드렸다.
그리고 차근차근 상황을 말씀드렸다.
“상온 보관으로 당도가 떨어져서 벌레가 생긴 거 같습니다. 이건 세척했으니 문제는 없지만,
나중에 매장으로 오시면 동일한 새 상품으로 다시 드리겠습니다.”
고객님이 조금 예민하셨는지는 몰라도, 남은 제품은 못 먹겠다고 해서 바로 페기하고 편하게 매장 오셨을 때
저를 직접 찾아달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매장에 돌아왔다.
며칠 뒤, 고객님은 가족과 함께 매장에 찾아왔고,
포도를 새로 드리며, 나는 몇 가지 과일 보관 팁을 알려드렸다.
– 복숭아 → 신문지에 싸면 눌림 방지, 수분 유지
– 배·사과 → 비닐팩에 하나씩 넣어 냉장 보관하면 아삭함 유지
– 바나나 → 꼭지를 랩으로 감싸면 숙성 지연. 껍질을 벗겨 냉동하면 베이킹 재료로 활용 가능
(사실 그냥 바나나는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냉동하고 베이킹까지 하면 조금 힘들 것 같다.)
고객은 “사소한 것도 신경 써줘서 고맙다”며 단골이 되었고,
나중에는 옆 동네 과일가게 정보까지 알려주는 든든한 ‘정보원’이 되었다.
그 달 나는 ‘칭찬 사원’으로 뽑혔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이 직접 점장님께 찾아가 말했다고 한다.
“저분 때문에 이 매장에서 과일을 삽니다.”
귀찮을까 봐 더 신경 쓴 일이, 오히려 내 이름을 본사에 알린 계기가 됐다.
짧았지만 농도 짙은 그 시간은 단순히 과일을 다루던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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