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대리는 왜 이직했을까 (1)


왜 퇴사 했을까. 사장도 묻고 부사장도 묻고 팀장도 물었다. 모두가 궁금했고, 의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실은 나 스스로가 가장 의아했다. 그렇게 원하던 ‘취업’을 하고, 사회초년생이 받기에 높은 연봉과, 그토록 되고 싶던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내 자리를 가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가진 직장인이 되었는데. 버티고 버텨 어린 나이에 ‘대리’라는 직급도 달았는데 왜 결국 퇴사를 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꽤나 신중한 사람이다. 하다못해 매일 아침 어떤 양말을 신을지 고민하는 순간에도. 특히 어떤 대상이나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신중하다.

그런 나에게 생계 수단인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은 엄청난 고민 끝의 결과였다. 자그마치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실제로 퇴사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업무를 바꾸기도 했고, 팀원이 바뀌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퇴사를 결심했던 것은 입사한 지 한 달이 안 되었을 때다. 사무실 막내이자 신입사원인 나에게는 탕비실 정리도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직원들이 먹을 수 있게 간식거리들을 채우고, 과자는 나름대로 각을 맞추어 줄 세우고, 냉장고에는 500ml 생수를 3줄 정도로 줄 맞춰 정렬했다. 출근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업무였다. 아침 8시부터 오전에 한 번, 오후 서너 번 정도 빈 틈이 없도록 수시로 관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나를 불러 말했다.

여름씨, 탕비실 안보죠? 하기 싫어요?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내가 할 테니까.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지, 여름씨가 하는지 안 하는지 보고, 내가 채우고, 그럼 두 번 일해야 되잖아.


어안이 벙벙했다.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지..? 하기 싫냐고..? 그럴 리가..

“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땐 나를 혼내기 위해 하는 말이란 걸 몰랐다. 들으면서 기분이 나빴는데,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하기 싫어 보였나? 뭔가 잘못했나 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과자가 다 채워져 있었는데.. 근데 하기 싫으면 말하라니..? 왜 말을 그렇게 하시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생각해 보면, 정말 후배가 탕비실 정리를 더 잘하기를 바랐다면, (사실 같은 직원인데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고 탕비실 정리를 전담시키고 이렇게 갈구는 것도 나쁘다) 그냥 가볍게 “탕비실이 좀 비어있던데 조금 더 신경 써줘요~” 정도만 얘기하면 된다. (후배한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굉장히 꼰대 같다)

흔히 말해 ‘갈굼’이나 하기 싫냐는 둥 비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후배에게 원하는 바를 간단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 좁은 탕비실 안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자미의 눈을 하고 손가락질하며 기분 나쁜 티를 낼 필요는 없었다. 나보다 한두 살 더 많은 나이에 어디서 그런 걸 배웠을까 생각해 보면 그도 그의 윗 선배에게 그런 가르침을 받은 건 아닐까 싶다만.

아무튼 이 일을 시작으로 나는 종종 혼났고, 업무 지적이 아니라 말 같지도 않은 걸로 혼이 날 때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급기야 퇴사하고 싶어졌다. ‘내가 그렇게 일을 못하나…’ ‘나 때문에 선배가 스트레스받고 힘든가 보다.’


‘나는 이 회사와, 이 일과 맞지 않나 보다.’

그렇게 결론 내렸고, 퇴사하고 싶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한층 더 강해졌고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내가 너무 착했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는 말을 그때 믿게 됐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그만큼 내가 혼날만했으니까 그랬던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기에 더 괴로웠고, 지금보다 어리고 미숙했던 내가 그것을 겪기는 버거웠다. 하지만 그 직원은 회사 내에서 이미 많은 문제가 있었고, 다른 직원들과도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힘들어서, ‘그녀의 잘못이 100%는 아니었을 거다’라는 착한 말은 쓰다가 지웠다.



엄마에게 전화해 매일같이 우는 소리를 했다.

“엄마, 나 퇴사하고 싶어. 너무 힘들어. 선배가 싫고, 내가 일을 못하는 거 같아.”

엄마는 사람 때문에 퇴사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했다. 일이 힘든 건 처음이라 그렇고, 나아질 거고,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했다. 나는 직장생활 3달 차였고, 엄마는 20년 차였기에 엄마말을 들었다.

‘그런 건가. 어차피 어딜 가든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한 두 명씩 있는 걸까.

내가 너무 약한 걸까.’



지금은 직장인 3명 중 1명은 ‘사람 때문에‘ 퇴사한다는 걸 안다. ‘사람’은 너무 중요하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 좋으면 버틴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실감했을 것이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고를 수는 없기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할 만큼 스트레스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충분한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그 상황에서 그 인물에 최대한 영향받지 않고 업무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이 너무 스트레스라 매일 울적하다면, 그 회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결론적으로 내가 퇴사한 이유는 그것은 아니다. 그녀는 결국 얼마 후의 시간이 흐른 뒤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존버가 답이다’를 실천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많은 아픔을 겪은 과거의 나에게, 뒤늦은 심심한 위로와 공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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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퇴사 했을까. 사장도 묻고 부사장도 묻고 팀장도 물었다. 모두가 궁금했고, 의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실은 나 스스로가 가장 의아했다. 그렇게 원하던 ‘취업’을 하고, 사회초년생이 받기에 높은 연봉과, 그토록 되고 싶던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내 자리를 가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가진 직장인이 되었는데. 버티고 버텨 어린 나이에 ‘대리’라는 직급도 달았는데 왜 결국 퇴사를 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꽤나 신중한 사람이다. 하다못해 매일 아침 어떤 양말을 신을지 고민하는 순간에도. 특히 어떤 대상이나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신중하다.

그런 나에게 생계 수단인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은 엄청난 고민 끝의 결과였다. 자그마치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실제로 퇴사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업무를 바꾸기도 했고, 팀원이 바뀌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 퇴사를 결심했던 것은 입사한 지 한 달이 안 되었을 때다. 사무실 막내이자 신입사원인 나에게는 탕비실 정리도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직원들이 먹을 수 있게 간식거리들을 채우고, 과자는 나름대로 각을 맞추어 줄 세우고, 냉장고에는 500ml 생수를 3줄 정도로 줄 맞춰 정렬했다. 출근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업무였다. 아침 8시부터 오전에 한 번, 오후 서너 번 정도 빈 틈이 없도록 수시로 관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나를 불러 말했다.

여름씨, 탕비실 안보죠? 하기 싫어요? 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내가 할 테니까.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지, 여름씨가 하는지 안 하는지 보고, 내가 채우고, 그럼 두 번 일해야 되잖아.


어안이 벙벙했다.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지..? 하기 싫냐고..? 그럴 리가..

“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땐 나를 혼내기 위해 하는 말이란 걸 몰랐다. 들으면서 기분이 나빴는데,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하기 싫어 보였나? 뭔가 잘못했나 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과자가 다 채워져 있었는데.. 근데 하기 싫으면 말하라니..? 왜 말을 그렇게 하시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생각해 보면, 정말 후배가 탕비실 정리를 더 잘하기를 바랐다면, (사실 같은 직원인데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고 탕비실 정리를 전담시키고 이렇게 갈구는 것도 나쁘다) 그냥 가볍게 “탕비실이 좀 비어있던데 조금 더 신경 써줘요~” 정도만 얘기하면 된다. (후배한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굉장히 꼰대 같다)

흔히 말해 ‘갈굼’이나 하기 싫냐는 둥 비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후배에게 원하는 바를 간단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 좁은 탕비실 안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자미의 눈을 하고 손가락질하며 기분 나쁜 티를 낼 필요는 없었다. 나보다 한두 살 더 많은 나이에 어디서 그런 걸 배웠을까 생각해 보면 그도 그의 윗 선배에게 그런 가르침을 받은 건 아닐까 싶다만.

아무튼 이 일을 시작으로 나는 종종 혼났고, 업무 지적이 아니라 말 같지도 않은 걸로 혼이 날 때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급기야 퇴사하고 싶어졌다. ‘내가 그렇게 일을 못하나…’ ‘나 때문에 선배가 스트레스받고 힘든가 보다.’


‘나는 이 회사와, 이 일과 맞지 않나 보다.’

그렇게 결론 내렸고, 퇴사하고 싶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한층 더 강해졌고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내가 너무 착했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는 말을 그때 믿게 됐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그만큼 내가 혼날만했으니까 그랬던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기에 더 괴로웠고, 지금보다 어리고 미숙했던 내가 그것을 겪기는 버거웠다. 하지만 그 직원은 회사 내에서 이미 많은 문제가 있었고, 다른 직원들과도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힘들어서, ‘그녀의 잘못이 100%는 아니었을 거다’라는 착한 말은 쓰다가 지웠다.



엄마에게 전화해 매일같이 우는 소리를 했다.

“엄마, 나 퇴사하고 싶어. 너무 힘들어. 선배가 싫고, 내가 일을 못하는 거 같아.”

엄마는 사람 때문에 퇴사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했다. 일이 힘든 건 처음이라 그렇고, 나아질 거고,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했다. 나는 직장생활 3달 차였고, 엄마는 20년 차였기에 엄마말을 들었다.

‘그런 건가. 어차피 어딜 가든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한 두 명씩 있는 걸까.

내가 너무 약한 걸까.’



지금은 직장인 3명 중 1명은 ‘사람 때문에‘ 퇴사한다는 걸 안다. ‘사람’은 너무 중요하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 좋으면 버틴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실감했을 것이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고를 수는 없기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퇴사를 고민할 만큼 스트레스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충분한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그 상황에서 그 인물에 최대한 영향받지 않고 업무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이 너무 스트레스라 매일 울적하다면, 그 회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결론적으로 내가 퇴사한 이유는 그것은 아니다. 그녀는 결국 얼마 후의 시간이 흐른 뒤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나는 자유로워졌다. ‘존버가 답이다’를 실천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많은 아픔을 겪은 과거의 나에게, 뒤늦은 심심한 위로와 공감을 건네본다.


여름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sgd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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