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현업을 쉬고 있다 보니 그간 내가 살아 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95년 2월부터 쉼없이 달려온 시절, 사실 94년 4학년 5월쯤에 면접을 보았고, 2학기부터는 미리 주 2회 출근을 했으니, 실질적으로 업무를 배우고 수행한 기간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마포구 신수동에 있던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고개 넘어 아현동으로 넘어오면, 당시 5호선 애오개 역 바로 앞에 있던 회사 건물에 30분이면 도착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풋내기 신입사원 (예정자)에게 대리,과장님들의 웃음이 쏟아졌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귀여움을 받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시절. 그때, 옆 자리에서 근무하시면서 아침 방송으로 영어 한마디 강의를 하시던, 작은 누이와 동갑이었던 이대 영문과 출신 박 수정 대리님의 그 환한 웃음도 기억난다. 나는 나대로, 주 2회, 과목당 20만원 하면 월 40만원 쯤 벌던 아르바이트에 비할 수 없던 거액(?)을 받으면서 업무를 배운다는 생각에 기뻤던,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시절.
해외영업 업무를 지원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
하나는, 국민학교 때 보았던 달력의 사진 한 장과, 당시 TV에서 방영되던 대우그룹 광고.
달력에는 북유럽 청춘 커플의 사진이 있었다. 둘이서 어깨 동무를 하고 카메라를 향하던 푸른 눈동자. 나는 그걸 보면서, 더 넓고 다른 세상이 있었구나,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어디선가 똑같이 살고 있겠네? 궁금해졌다.
대우그룹 광고는 내게는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김우중 회장이 직접 나오시기도 하고, 그래픽으로 지구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면서, “경제영토의 확장” 이런 멘트를 들려 주기도 했다. 과학기술원 출신의 배순훈 회장이 나와서 “TANK주의”를 주장하시면서 안경 쓴 냉철해 보이는 인상으로, 우리 나라 전자제조업체가 얼마나 지금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지를 담담히 설명하시던 광고.
이 두 가지가, 혁명가를 꿈꾸던 청년의 가슴에 그야말로 불을 지폈다. 진정한 사랑은,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입혀 주고, 잘 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그야말로 단순한 명제의 실현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 척박한 자원 빈국 대한민국에서, 해외에서 판로를 뚫고, 자원도 확보하고, 그래서 이러한 Cycling의 규모를 더 확대할 수 있다면, 이건 먹을 거리와 옷과 집과 일자리를 다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 들며, 세상을 꿈꾸라!
원래 경제학 전공, 경영학 부전공이었던 나는 마지막 2학기 때 남은 학점들을 다 영어공부에 쏟아 부었다. 원래부터 그 학교는 1학년때부터 원어민 강의를 필수로 들어야 했던 곳이긴 했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고급 영문해석, 무역영어, 이런 과목들을 신청해서 정말 두꺼웠던 그 책들을 싹 다 읽고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당시에는 집에 PC가 너무 구식이여서, 문서 작성을 위한 spread sheet를 구동할 수 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당시 문서 작성에 쓰던 프로그램들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용산 PC조립상가를 찾아 다니면서, 새 PC를 구해서 당시 회사 고참들이 쓰던 Quattro Pro라는 프로그램을 깔아서 연습도 하던, 그야말로 초짜 신입사원 예정자의 분투의 날들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원래 Excel 같은 수식 계산 프로그램이었지만, 당시에는 MS Office 가 없던 시절이었고, 문서 양식을 정교하게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이 썼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95년 대우그룹 전자계열사 입사자 1번으로 입사했다. 동기들은 약 200명 쯤 되었던 것 같다. 첫 부서는 영상사업부 TV해외영업5팀, 일명 유럽팀. 서유럽 주요 국가 및 당시 SNDF(Sweden, Norway, Denmark, Finland) 라고 부르던 북유럽 국가에 대한 Brand sales 및 OEM 업무였다. 영어 서한을 써서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L/C (Letter of Credit)를 확인해서 처리하고, 공장과 협업하고, 여의도의 디자인팀과 협의하고, 가끔씩은 외환팀에 대금 수취 여부를 확인하고, 서울역 앞 대우빌딩의 연구소와 협의하고, 구미공장에 가서 생산현황을 점검하고, 구미역 앞의 유명했던 싱글벙글 복집(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을 거둬들여서 일자리도 주고 공부도 지원하던 고마운 곳) 에서 저녁먹고 심야 기차를 타고 올라 오거나, 저녁 무렵에 현지와 통화 가능한 시간이 되면 현안들을 협의하고, 그러다가 무슨 서류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면, 8~9시간 차이나는 고객사가 보내 줄 때까지, 그 불꺼진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면, 집에 오는 시간은 빨라야 밤 11시였다. 저녁 7시 뉴스를 집에서 보는 것은 환상, 9시 뉴스는 꿈, 12시 마감뉴스가 현실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나와 같은 처지의 동기들과 좁은 복도 계단 옆 항아리 재떨이 앞에서, 멀리 보이는 마포구 아파트의 환하게 불켜진 광경들을 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 쉬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억눌렀던 기억.
그러다 보니, 해외영업 업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어떤 자세와 자질이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 봤던 것 같은데, 요약해보면,
– 우선 해외영업도 영업이다 보니, 사람과 생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것은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Must. 남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려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수이다.
– 어학은 필수. 쓰는 서한의 한 단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정확한 표현과, 행간의 의미를 고려한 문구들, Text의 순서를 조율하는 Writing능력이 중요하고, 원어민까지는 못되어도 통화 때 쓰는 표현과 단어를 상대방은 아주 쉽게 알아 차린다는 것.
– 꼼꼼해야 한다. 오타 하나가 전체 문서의 신뢰성을 떨어 뜨리고, 부장님이 나에게 재떨이를 던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L/C 조항의 수많은 항목들 중 하나라도 검토를 놓치면,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공장에서 만들어서 실어 보낸 컨테이너 몇 개 분량의 금액을 못 받을 수도 있다.
– Multitasking이 필요하다. 한번에 하나씩의 일만 해서는, 동시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해야 한다.
– 체력도 필요하다. 남미같은 곳에 필요한 48시간 이상의 비행 직후 바로 미팅을 하거나, 장거리 운전을 통한 이동이 동반되는 경우, 졸거나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은 방심해 보이는 내게 테이블에서 더 tough한 조건을 내밀기 쉽다.
–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다. 물갈이를 자주 하거나, 먹는 것을 가리면, 환영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본인이 힘들다. 프랑스의 저녁 정찬 시, 후식으로 나오는 각종 치즈류는 정말 내게도 냄새 자체도 너무 힘들었지만, 나는 웃으며 꾸역꾸역 다 먹었었다!
– Biz는 존중되어야 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그래서 가급적이면 “Friend” 혹은 “Amigo”가 될 것.
– 무엇보다도, 혼자 비행기 타는 일을 좋아할 것. 무거운 캐리어 두개쯤과 양복 슈트, 선물 꾸러미 등을 들고도, 좁은 비행기 창밖으로 황홀하게 지는 대기권의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을 사랑할 것.
– 담배는 가끔 윤활제가 된다. 미팅 중간에, 서로 싸우다가도 Smoking break! 라고 외치고 나와서, 흡연장소에 가면 같이 따라나온 다른 사람이 온갖 내밀한 얘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아마 상황이 바뀌었을 듯.
내게 인상적이었던 일본 NEC 중년 간부의 수첩에는 이런 모든 사항들이 빼곡히 메모가 되어 있었다. 당시는 누구나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만들었던 시절, 그 유명했던 프랭클린 다이어리는 아니었지만, 온갖 업무 정보와, 외워야 할 지표들과, 연락처들을 너무도 정밀하게 Filing했던 NEC 임원의 다이어리가 생각난다. 이런 정보 자원에 대한 자신만의 꼼꼼한 활용방식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수용성도 중요하겠다. 요즘처럼 AI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에는 Chat GPT나 Gemini를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5P라고 불리는 것들. Product, Price, Proposal, People, Politics.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더 정리해야 할 정도로 해외영업에 중요하다.
오랜만에 나의 옛 다이어리를 펼쳐 보니, 왠 걸? 거액의 지폐가 그 안에 있네?
아마도 출장 때 쓰지 않고 남은 돈을 그냥 끼워 놓았던 것 같은데, 오호, 그리워라! 그 시절이!
진성민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helasttrumpet


잠깐 현업을 쉬고 있다 보니 그간 내가 살아 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95년 2월부터 쉼없이 달려온 시절, 사실 94년 4학년 5월쯤에 면접을 보았고, 2학기부터는 미리 주 2회 출근을 했으니, 실질적으로 업무를 배우고 수행한 기간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마포구 신수동에 있던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고개 넘어 아현동으로 넘어오면, 당시 5호선 애오개 역 바로 앞에 있던 회사 건물에 30분이면 도착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풋내기 신입사원 (예정자)에게 대리,과장님들의 웃음이 쏟아졌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귀여움을 받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시절. 그때, 옆 자리에서 근무하시면서 아침 방송으로 영어 한마디 강의를 하시던, 작은 누이와 동갑이었던 이대 영문과 출신 박 수정 대리님의 그 환한 웃음도 기억난다. 나는 나대로, 주 2회, 과목당 20만원 하면 월 40만원 쯤 벌던 아르바이트에 비할 수 없던 거액(?)을 받으면서 업무를 배운다는 생각에 기뻤던,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시절.
해외영업 업무를 지원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
하나는, 국민학교 때 보았던 달력의 사진 한 장과, 당시 TV에서 방영되던 대우그룹 광고.
달력에는 북유럽 청춘 커플의 사진이 있었다. 둘이서 어깨 동무를 하고 카메라를 향하던 푸른 눈동자. 나는 그걸 보면서, 더 넓고 다른 세상이 있었구나,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어디선가 똑같이 살고 있겠네? 궁금해졌다.
대우그룹 광고는 내게는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처럼 들렸다. 김우중 회장이 직접 나오시기도 하고, 그래픽으로 지구 전체가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면서, “경제영토의 확장” 이런 멘트를 들려 주기도 했다. 과학기술원 출신의 배순훈 회장이 나와서 “TANK주의”를 주장하시면서 안경 쓴 냉철해 보이는 인상으로, 우리 나라 전자제조업체가 얼마나 지금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지를 담담히 설명하시던 광고.
이 두 가지가, 혁명가를 꿈꾸던 청년의 가슴에 그야말로 불을 지폈다. 진정한 사랑은,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입혀 주고, 잘 자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그야말로 단순한 명제의 실현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 척박한 자원 빈국 대한민국에서, 해외에서 판로를 뚫고, 자원도 확보하고, 그래서 이러한 Cycling의 규모를 더 확대할 수 있다면, 이건 먹을 거리와 옷과 집과 일자리를 다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 들며, 세상을 꿈꾸라!
원래 경제학 전공, 경영학 부전공이었던 나는 마지막 2학기 때 남은 학점들을 다 영어공부에 쏟아 부었다. 원래부터 그 학교는 1학년때부터 원어민 강의를 필수로 들어야 했던 곳이긴 했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고급 영문해석, 무역영어, 이런 과목들을 신청해서 정말 두꺼웠던 그 책들을 싹 다 읽고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당시에는 집에 PC가 너무 구식이여서, 문서 작성을 위한 spread sheet를 구동할 수 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당시 문서 작성에 쓰던 프로그램들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용산 PC조립상가를 찾아 다니면서, 새 PC를 구해서 당시 회사 고참들이 쓰던 Quattro Pro라는 프로그램을 깔아서 연습도 하던, 그야말로 초짜 신입사원 예정자의 분투의 날들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원래 Excel 같은 수식 계산 프로그램이었지만, 당시에는 MS Office 가 없던 시절이었고, 문서 양식을 정교하게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이 썼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95년 대우그룹 전자계열사 입사자 1번으로 입사했다. 동기들은 약 200명 쯤 되었던 것 같다. 첫 부서는 영상사업부 TV해외영업5팀, 일명 유럽팀. 서유럽 주요 국가 및 당시 SNDF(Sweden, Norway, Denmark, Finland) 라고 부르던 북유럽 국가에 대한 Brand sales 및 OEM 업무였다. 영어 서한을 써서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L/C (Letter of Credit)를 확인해서 처리하고, 공장과 협업하고, 여의도의 디자인팀과 협의하고, 가끔씩은 외환팀에 대금 수취 여부를 확인하고, 서울역 앞 대우빌딩의 연구소와 협의하고, 구미공장에 가서 생산현황을 점검하고, 구미역 앞의 유명했던 싱글벙글 복집(고아나 버려진 아이들을 거둬들여서 일자리도 주고 공부도 지원하던 고마운 곳) 에서 저녁먹고 심야 기차를 타고 올라 오거나, 저녁 무렵에 현지와 통화 가능한 시간이 되면 현안들을 협의하고, 그러다가 무슨 서류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면, 8~9시간 차이나는 고객사가 보내 줄 때까지, 그 불꺼진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면, 집에 오는 시간은 빨라야 밤 11시였다. 저녁 7시 뉴스를 집에서 보는 것은 환상, 9시 뉴스는 꿈, 12시 마감뉴스가 현실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나와 같은 처지의 동기들과 좁은 복도 계단 옆 항아리 재떨이 앞에서, 멀리 보이는 마포구 아파트의 환하게 불켜진 광경들을 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 쉬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억눌렀던 기억.
그러다 보니, 해외영업 업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어떤 자세와 자질이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 봤던 것 같은데, 요약해보면,
– 우선 해외영업도 영업이다 보니, 사람과 생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것은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Must. 남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려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수이다.
– 어학은 필수. 쓰는 서한의 한 단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정확한 표현과, 행간의 의미를 고려한 문구들, Text의 순서를 조율하는 Writing능력이 중요하고, 원어민까지는 못되어도 통화 때 쓰는 표현과 단어를 상대방은 아주 쉽게 알아 차린다는 것.
– 꼼꼼해야 한다. 오타 하나가 전체 문서의 신뢰성을 떨어 뜨리고, 부장님이 나에게 재떨이를 던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L/C 조항의 수많은 항목들 중 하나라도 검토를 놓치면,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공장에서 만들어서 실어 보낸 컨테이너 몇 개 분량의 금액을 못 받을 수도 있다.
– Multitasking이 필요하다. 한번에 하나씩의 일만 해서는, 동시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이것도 하면서 저것도 해야 한다.
– 체력도 필요하다. 남미같은 곳에 필요한 48시간 이상의 비행 직후 바로 미팅을 하거나, 장거리 운전을 통한 이동이 동반되는 경우, 졸거나 피곤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은 방심해 보이는 내게 테이블에서 더 tough한 조건을 내밀기 쉽다.
–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다. 물갈이를 자주 하거나, 먹는 것을 가리면, 환영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본인이 힘들다. 프랑스의 저녁 정찬 시, 후식으로 나오는 각종 치즈류는 정말 내게도 냄새 자체도 너무 힘들었지만, 나는 웃으며 꾸역꾸역 다 먹었었다!
– Biz는 존중되어야 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그래서 가급적이면 “Friend” 혹은 “Amigo”가 될 것.
– 무엇보다도, 혼자 비행기 타는 일을 좋아할 것. 무거운 캐리어 두개쯤과 양복 슈트, 선물 꾸러미 등을 들고도, 좁은 비행기 창밖으로 황홀하게 지는 대기권의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을 사랑할 것.
– 담배는 가끔 윤활제가 된다. 미팅 중간에, 서로 싸우다가도 Smoking break! 라고 외치고 나와서, 흡연장소에 가면 같이 따라나온 다른 사람이 온갖 내밀한 얘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아마 상황이 바뀌었을 듯.
내게 인상적이었던 일본 NEC 중년 간부의 수첩에는 이런 모든 사항들이 빼곡히 메모가 되어 있었다. 당시는 누구나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만들었던 시절, 그 유명했던 프랭클린 다이어리는 아니었지만, 온갖 업무 정보와, 외워야 할 지표들과, 연락처들을 너무도 정밀하게 Filing했던 NEC 임원의 다이어리가 생각난다. 이런 정보 자원에 대한 자신만의 꼼꼼한 활용방식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수용성도 중요하겠다. 요즘처럼 AI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에는 Chat GPT나 Gemini를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5P라고 불리는 것들. Product, Price, Proposal, People, Politics.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더 정리해야 할 정도로 해외영업에 중요하다.
오랜만에 나의 옛 다이어리를 펼쳐 보니, 왠 걸? 거액의 지폐가 그 안에 있네?
아마도 출장 때 쓰지 않고 남은 돈을 그냥 끼워 놓았던 것 같은데, 오호, 그리워라! 그 시절이!
진성민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helasttrump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