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후기


취업준비생의 아로마

평소 와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봄직한 단어인 ‘아로마’와 ‘부케’. 마치 사람에게도, 사회생활에도 적용이 가능한 것 같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포도의 품종에 따라 결정되는 아로마를 가지고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 과정을 통해 부케로 이끌어내는, 그처럼 새로운 뜻을 가지고 면접에 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각자의 아로마를 한껏 품고 있다. 과연 그 아로마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면접의 관건이라 생각한다.


형식적인 질문과 형식적인 대답들

필자는 2010년 하반기 공채 시기에 20곳이 넘는 곳에 면접을 봤다. 짧은 시간, 협소한 공간이지만 수많은 면접관과 수많은 기업문화를 보는 계기가 스펙트럼을 넓혀주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인트로에 언급했던 것처럼 면접 스터디는 생각조차 안 했고 학원이나 과외는 상상도 못 했다. 스스로 하향지원이라고 생각했던 곳들부터 면접을 보면서 서서히 실력을 쌓아갔다. 몇 개의 기억나는 후기들을 이야기해보자 하는데 기업 내외부적인 이슈를 고려해 사명은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쭈뼛했던 첫 번째 면접을 시작으로 5-6번 정도 면접을 보고 나니 그다음부터 긴장감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면접장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의 레퍼토리도 생겨나니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급작스런 질문이나 흔히들 말하는 압박 질문들이 많아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는데 앞서 말한 자소서와 마찬가지로 회사마다 질문이 형식적이고 과하게 말하면 따분했다. 그런 질문에 최대한 차별화된 요소를 넣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애썼지만 스스로 생각하기도 탐탁지 않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또 해당 기업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업계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신 것 같은 분들의 질문 수준이 기대 이하인 경우도 정말 많았다.


5만 원짜리 말다툼

그러던 즈음에 모 건설회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조별 면접 시스템이었는데 한 조에 4-5명 정도가 한 번에 들어가고 면접자 수와 면접관 수도 비슷했다. 해당 면접과의 악연은 대기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11시 면접 예정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밀리면서 면접이 연기되어 점심시간을 건너뛰었고 대기장에서 2시까지 3시간을 기다렸다. 먼저 일찍 도착해서 대기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4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대기장의 분위기도 다들 맥이 빠진 분위기였고 필자는 화도 많이 났다. 고작 신입사원 면접시간을 3시간씩 지연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일까, 일은 제대로 할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 들어간 면접장에서는 의외로 색다른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바로 ‘회계’관련 수강의 깊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필자는 경영학 전공인데) 모든 기업에 회계/재무 직군은 배제하고 영업이나 기획, 마케팅에 지원했던 터라 대학 때 회계 관련 수업을 적게 들은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몰라 당황했다. 지원한 직군에 포커스를 맞춰 생각한 바대로 대답을 했는데 해당 면접관에게서는 질문이 아닌 질책이 돌아왔다. “경영학도로 기본이 안된 건 아닌지”,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등의 인신공격성 압박 질문이 돌아왔다.

사실 융통성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대기실에서 4시간가량의 대기는 이미 마음속에서 해당 기업이 나에게서 탈락을 먹은 터라, ‘면접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해 4시간 기다리게 한 것이 더 기본이 안된 거 아닌가요’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으니 오죽 당황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 속에 우리 조는 전원 탈락. 주변 지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마녀사냥까지 당하고 정말 불쾌하게 면접장을 나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만 다른 지원자분들에게 까지 피해를 입힐 것 이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했던 지원자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면접비 5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다른 면접 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면접비. 급여로 보상을 하는 회사 문화를 들었던 터라 회사 문화에 대해 이해가 되기도 했고 입사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은 면접자가 회사를 고르는 자리도 된다.


워너비 게임회사

위압적이고 거친 건설회사 면접을 보고 극히 대비되는 곳이 있었다. 모 게임 회사.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이었고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예상치 못하게 면접의 기회를 갖게 되어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회사 사옥을 통해 들어갈 때부터 기대조차 못한 복지환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해당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실에서부터 긴장감이 커져만 갔다.

게임 회사답게 지원부서 직군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관련 질문들이 정말 많았다. 함께 했던 지원자들도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 많았다. 특히 해당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흥미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어지는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진 정보로는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흥미와 관심도가 떨어진 지원자로 보였을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가장 당황한 질문은 해당 게임의 레벨을 물어보시는 질문이었는데, 아이디 조차 없던 나로서는 다른 미사여구로 포장해보려 해도 모자람이 컸다. 역시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기업의 사업분야가 명확한 곳을 지원할 때에는 아무리 지원부서라 하더라도 해당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가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심은 늘 금물.


인적성 테스트와 논술 시험, 운

이번 track의 마지막 스토리는 논술 시험이다. 면접 스토리에 잇기는 딱 들어맞지 않지만 그저 재밌는 이야기로 첨언하고자 한다. 연이어 몇 개의 면접 탈락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많은 곳을 지원하다 보니 면접 일정이나 인적성 시험이 겹치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스케줄을 잘 조율하고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모 은행권 회사의 인적성스케줄을 다른 회사와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다른 회사를 포기하고 모 은행권의 인정석 시험장으로 향했다. 가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 일화는 지금도 낯 뜨겁기도 하고 한편에는 웃음이 나기도 하는 이야기이다. 인적성 시험장으로 향해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착석했는데 무엇인가 그 공간의 분위기가 그동안 참석했던 곳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지원자들이 자리에서 대부분 신문 혹은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기업의 문화가 있고 그에 유사한 지원자들이 많이 지원자들이 지원한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인적성 테스트인 줄 알고 참석했던 곳은 바로 논술 시험장이었다. 해당 회사는 인적성이 없이 논술로 테스트를 하는 곳이 었는데,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오는 바람에 어떤 시험이 정확히 이루어지는지 그만 잊어버리고 사인펜 하나 들고 태연히 앉아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나 보던 긴 논술 시험지를 받는 순간 스스로 실소를 뱉었다. ‘하, 망했다.’ 사인펜으로 이름부터 써 내려갈까 하다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감독관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펜을 빌렸다. 수많은 시선이 낯 뜨겁게 느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빌린 푸른색 펜으로 질문을 선택하고 서술해 나갔다. 시작부터 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정도로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다녀와서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다들 웃어넘기고 부모님께는 가볍게 혼도 났는데, 결과는 웬걸 합격이었다. 운칠기삼.


부산 촌놈의 절박함

수많은 기업들에 제대로 된 이해도 조차 없이 지원한다는 것은 돌이켜 보면 스스로에게는 시간낭비요, 기회를 잃을 다른 경쟁자를 생각하면 이기적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리 절박했던 이유가 바로 인트로에서 소개드렸던 출신과 환경의 제약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나는 서울에 연고가 없이 말 그대로 서울로 유학을 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다가오는 것도 모두 거절하고 살았던 것 같다. 흔히 말해 셀프 아웃사이더가 되어 지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닫혔던 마음은 열리게 되었고 뒤섞여 서울 살이를 하다 군대를 다녀왔다. (재미없는 군대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어쩌면 영원히 미루고) 본가에서 한 달 정도 쉬다가 취업 준비를 명목으로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원룸텔을 하나 잡았다. 1년 정도 쉬엄쉬엄 천천히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마련해둔 자금은 빨리 떨어져 나갔고 취업이 시급했다. 한 달에 50만 원이라는 월세마저 못 내게 생겼으니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며 자소서를 기계처럼 써냈다. 서울 살이 6개월 만에 취업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시 본가로 내려가야 할 판이라 절박했다. 적어도 부모님은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누구의 것일까 그 화려한 거리는

취업준비를 하던 초반에는 근자감과 달리 하도 탈락의 고배를 많이 마셔, 그만 잠을 잘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술을 마셔도 마찬가지라 약에 의존까지 하려고 했는데 수면제는 처방용 약이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해서, 약국의 수면유도제로 그나마 잠에 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자동차 회사, 그야말로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서 면접 기회를 주었다.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차근차근 잘 준비했고 서투르지만 영어 면접도 준비했다. 성격 탓인지 너무 절박하면 긴장하기 십상이라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고 가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실수는 없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처음 하는 영어면접은 더더욱 서툴렀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왔나 싶을 정도로 멍한 상태로 나왔다.

예상외로 합격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지만 그날은 감이 왔다. 아 여긴 안 되겠구나. 씁쓸하면서도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는지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화려한 거리가 보였다. 멋진 광경에 눈과 마음을 뺏기면서도 거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한 칸짜리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진탕 술을 마셨던 것이 아마 그날이었던 것 같다. 이미 멋진 곳에서 멋진 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잘해나가는 친구를 앞에 앉혀두고 하소연을 수없이 했다. 생각 보니 원룸텔을 구하기 전에 그 친구 집에서 신세도 많이 졌다. (얼마 전 오랜 시간 고생하고 득녀한 그 친구에게 아기 신발 한 켤레를 선물했는데 별도로 새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음날 숙취에 눈을 떠보니 술 취한 와중에도 노트북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던지 노트북을 꼭 안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을 다잡고 남은 것들을 준비하면서 그 화려한 거리가 자꾸 떠올랐다. 나도 할 수 있다.


기쁘지 않았던 최종 합격

결국 11월이 다되어가던 어느 날 모 시중은행의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빡빡한 면접이었다. 면접 일정이 조별로 면접관과 같이 하루 일과를 같이 하는 여정이라, 오전부터 저녁 가까이까지 함께 했고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 1차는 합격했고 2차 임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임원면접도 다수의 면접자들이 들어갔는데, 이날이 아직도 선명히 생각난다. 같은 질문을 순서대로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다른 면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 대답을 준비하고 생각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서 군 생활의 사례를 기초로 한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앞 면접자가 그만 유사한 내용을 발표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는지 면접관이 두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보고는 내가 당황한 이유를 알아차렸던 것 같다.

“자, 시간을 드릴 테니 좀 더 생각해보고 답변 하시라”고 하시고 다음 차례 사람으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대답하실지 기대가 된다”라고 하셨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 자체가 관심이요,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맞습니다. 너무 유사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일함에 있어서도 거짓으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업무에 임하겠다는 방식으로 대답하고는 내 답변을 마지막으로 면접이 종료되었다. 잘한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앞 면접자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시간이 지나 최종 발표가 되었는데 합격이었다. 웬걸 기쁘지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분은 좋았는데 몇 번 겪어본 해당 기업문화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덜컥 겁부터 났다. 아직도 합격 이메일이 남아 있는데 11월 중순에 합격을 하고 11월 말에 연수원에 입소를 해야 하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다른 백화점도 한 군데 합격을 해서 말 그대로 선택을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돈보다 마음 가는 곳으로

최종 합격을 두 군데 해놓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관심 있던 소비재 회사의 최종 면접을 하나 앞두고 있었는데, 합격한 곳이 있다 보니 보험이 있다는 생각에 엄청 든든했고 면접을 임하는 태도가 달랐다. 면접장에 도착해 보니 지난번 놓쳤던 그 화려했던 거리가 멀리 보였다. ‘아 같은 지역이구나’ 싶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회장을 포함한 임원 면접을 보는데 그때도 다수의 면접자들과 함께 보는 방식이었다. 여러 질문들을 지내고 마지막 질문 차례에서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취지의 질문이었고 쟁쟁한 경쟁자들의 답변이 이어져갔다. 중간쯤이었던 내 차례에서 말씀드린 건 “다 잘한다, 그동안 살면서 못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사소한 일도 없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 해낼 수 있다”라고 얘기했는데 그만 거기서 제동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답변에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추가 질문이 들어왔다. 다 어떤 걸 구체적으로 말하느냐, “외국어는 어떠냐”, “해외 경험이 없어 보이는데 옆에 이민후 돌아온 사람보다 외국어들 더 잘하느냐” 등등. “그동안 공부할 기회와 마음이 없었는데 필요하다고 하시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실력을 올려내겠다”라고 했다. 너무 무책임한 답변이라며 방금 설명한 내용들을 그럼 영어로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잠깐의 침묵과 긴장이 흐르고 서투르지만 당당히 “To…”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합격했음을 직감했다. 가장 높아 보였던 사람이 “그만, 왜 그렇게 괴롭히고 그래” 하고 다음 사람으로 질문이 넘어갔다. 등으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속으로는 보험이 있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왜 또 새삼 긴장하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최종 합격을 받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었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그리 절박하다가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고민되다 보니 그 상황마저 부담스러웠다. 이런저런 고민을 부모님과 대화하며 풀어나가는 도중에 스스로 어떤 걸 더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돈보다는 마음이 더 끌리는 곳을 선택하자” (아마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걸 지도 모른다.)



면접장에서의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내놓으라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사람이 가진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논리의 과정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면접자는 올받은 태도와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해내야하고 무엇보다도 실력의 자신감과 입사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안월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hellomon


취업준비생의 아로마

평소 와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봄직한 단어인 ‘아로마’와 ‘부케’. 마치 사람에게도, 사회생활에도 적용이 가능한 것 같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포도의 품종에 따라 결정되는 아로마를 가지고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 과정을 통해 부케로 이끌어내는, 그처럼 새로운 뜻을 가지고 면접에 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각자의 아로마를 한껏 품고 있다. 과연 그 아로마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면접의 관건이라 생각한다.


형식적인 질문과 형식적인 대답들

필자는 2010년 하반기 공채 시기에 20곳이 넘는 곳에 면접을 봤다. 짧은 시간, 협소한 공간이지만 수많은 면접관과 수많은 기업문화를 보는 계기가 스펙트럼을 넓혀주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인트로에 언급했던 것처럼 면접 스터디는 생각조차 안 했고 학원이나 과외는 상상도 못 했다. 스스로 하향지원이라고 생각했던 곳들부터 면접을 보면서 서서히 실력을 쌓아갔다. 몇 개의 기억나는 후기들을 이야기해보자 하는데 기업 내외부적인 이슈를 고려해 사명은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쭈뼛했던 첫 번째 면접을 시작으로 5-6번 정도 면접을 보고 나니 그다음부터 긴장감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면접장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의 레퍼토리도 생겨나니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급작스런 질문이나 흔히들 말하는 압박 질문들이 많아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는데 앞서 말한 자소서와 마찬가지로 회사마다 질문이 형식적이고 과하게 말하면 따분했다. 그런 질문에 최대한 차별화된 요소를 넣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애썼지만 스스로 생각하기도 탐탁지 않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또 해당 기업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업계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신 것 같은 분들의 질문 수준이 기대 이하인 경우도 정말 많았다.


5만 원짜리 말다툼

그러던 즈음에 모 건설회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조별 면접 시스템이었는데 한 조에 4-5명 정도가 한 번에 들어가고 면접자 수와 면접관 수도 비슷했다. 해당 면접과의 악연은 대기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11시 면접 예정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밀리면서 면접이 연기되어 점심시간을 건너뛰었고 대기장에서 2시까지 3시간을 기다렸다. 먼저 일찍 도착해서 대기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4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대기장의 분위기도 다들 맥이 빠진 분위기였고 필자는 화도 많이 났다. 고작 신입사원 면접시간을 3시간씩 지연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일까, 일은 제대로 할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 들어간 면접장에서는 의외로 색다른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바로 ‘회계’관련 수강의 깊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필자는 경영학 전공인데) 모든 기업에 회계/재무 직군은 배제하고 영업이나 기획, 마케팅에 지원했던 터라 대학 때 회계 관련 수업을 적게 들은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몰라 당황했다. 지원한 직군에 포커스를 맞춰 생각한 바대로 대답을 했는데 해당 면접관에게서는 질문이 아닌 질책이 돌아왔다. “경영학도로 기본이 안된 건 아닌지”,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등의 인신공격성 압박 질문이 돌아왔다.

사실 융통성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대기실에서 4시간가량의 대기는 이미 마음속에서 해당 기업이 나에게서 탈락을 먹은 터라, ‘면접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해 4시간 기다리게 한 것이 더 기본이 안된 거 아닌가요’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으니 오죽 당황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 속에 우리 조는 전원 탈락. 주변 지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마녀사냥까지 당하고 정말 불쾌하게 면접장을 나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만 다른 지원자분들에게 까지 피해를 입힐 것 이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했던 지원자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면접비 5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다른 면접 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면접비. 급여로 보상을 하는 회사 문화를 들었던 터라 회사 문화에 대해 이해가 되기도 했고 입사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은 면접자가 회사를 고르는 자리도 된다.


워너비 게임회사

위압적이고 거친 건설회사 면접을 보고 극히 대비되는 곳이 있었다. 모 게임 회사.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이었고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예상치 못하게 면접의 기회를 갖게 되어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회사 사옥을 통해 들어갈 때부터 기대조차 못한 복지환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해당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실에서부터 긴장감이 커져만 갔다.

게임 회사답게 지원부서 직군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관련 질문들이 정말 많았다. 함께 했던 지원자들도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 많았다. 특히 해당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흥미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어지는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진 정보로는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흥미와 관심도가 떨어진 지원자로 보였을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가장 당황한 질문은 해당 게임의 레벨을 물어보시는 질문이었는데, 아이디 조차 없던 나로서는 다른 미사여구로 포장해보려 해도 모자람이 컸다. 역시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기업의 사업분야가 명확한 곳을 지원할 때에는 아무리 지원부서라 하더라도 해당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가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심은 늘 금물.


인적성 테스트와 논술 시험, 운

이번 track의 마지막 스토리는 논술 시험이다. 면접 스토리에 잇기는 딱 들어맞지 않지만 그저 재밌는 이야기로 첨언하고자 한다. 연이어 몇 개의 면접 탈락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많은 곳을 지원하다 보니 면접 일정이나 인적성 시험이 겹치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스케줄을 잘 조율하고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모 은행권 회사의 인적성스케줄을 다른 회사와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다른 회사를 포기하고 모 은행권의 인정석 시험장으로 향했다. 가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 일화는 지금도 낯 뜨겁기도 하고 한편에는 웃음이 나기도 하는 이야기이다. 인적성 시험장으로 향해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착석했는데 무엇인가 그 공간의 분위기가 그동안 참석했던 곳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지원자들이 자리에서 대부분 신문 혹은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기업의 문화가 있고 그에 유사한 지원자들이 많이 지원자들이 지원한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인적성 테스트인 줄 알고 참석했던 곳은 바로 논술 시험장이었다. 해당 회사는 인적성이 없이 논술로 테스트를 하는 곳이 었는데,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오는 바람에 어떤 시험이 정확히 이루어지는지 그만 잊어버리고 사인펜 하나 들고 태연히 앉아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나 보던 긴 논술 시험지를 받는 순간 스스로 실소를 뱉었다. ‘하, 망했다.’ 사인펜으로 이름부터 써 내려갈까 하다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감독관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펜을 빌렸다. 수많은 시선이 낯 뜨겁게 느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빌린 푸른색 펜으로 질문을 선택하고 서술해 나갔다. 시작부터 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정도로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다녀와서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다들 웃어넘기고 부모님께는 가볍게 혼도 났는데, 결과는 웬걸 합격이었다. 운칠기삼.


부산 촌놈의 절박함

수많은 기업들에 제대로 된 이해도 조차 없이 지원한다는 것은 돌이켜 보면 스스로에게는 시간낭비요, 기회를 잃을 다른 경쟁자를 생각하면 이기적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리 절박했던 이유가 바로 인트로에서 소개드렸던 출신과 환경의 제약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나는 서울에 연고가 없이 말 그대로 서울로 유학을 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다가오는 것도 모두 거절하고 살았던 것 같다. 흔히 말해 셀프 아웃사이더가 되어 지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닫혔던 마음은 열리게 되었고 뒤섞여 서울 살이를 하다 군대를 다녀왔다. (재미없는 군대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어쩌면 영원히 미루고) 본가에서 한 달 정도 쉬다가 취업 준비를 명목으로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원룸텔을 하나 잡았다. 1년 정도 쉬엄쉬엄 천천히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마련해둔 자금은 빨리 떨어져 나갔고 취업이 시급했다. 한 달에 50만 원이라는 월세마저 못 내게 생겼으니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며 자소서를 기계처럼 써냈다. 서울 살이 6개월 만에 취업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시 본가로 내려가야 할 판이라 절박했다. 적어도 부모님은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누구의 것일까 그 화려한 거리는

취업준비를 하던 초반에는 근자감과 달리 하도 탈락의 고배를 많이 마셔, 그만 잠을 잘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술을 마셔도 마찬가지라 약에 의존까지 하려고 했는데 수면제는 처방용 약이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해서, 약국의 수면유도제로 그나마 잠에 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자동차 회사, 그야말로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서 면접 기회를 주었다.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차근차근 잘 준비했고 서투르지만 영어 면접도 준비했다. 성격 탓인지 너무 절박하면 긴장하기 십상이라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고 가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실수는 없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처음 하는 영어면접은 더더욱 서툴렀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왔나 싶을 정도로 멍한 상태로 나왔다.

예상외로 합격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지만 그날은 감이 왔다. 아 여긴 안 되겠구나. 씁쓸하면서도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는지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화려한 거리가 보였다. 멋진 광경에 눈과 마음을 뺏기면서도 거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한 칸짜리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진탕 술을 마셨던 것이 아마 그날이었던 것 같다. 이미 멋진 곳에서 멋진 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잘해나가는 친구를 앞에 앉혀두고 하소연을 수없이 했다. 생각 보니 원룸텔을 구하기 전에 그 친구 집에서 신세도 많이 졌다. (얼마 전 오랜 시간 고생하고 득녀한 그 친구에게 아기 신발 한 켤레를 선물했는데 별도로 새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음날 숙취에 눈을 떠보니 술 취한 와중에도 노트북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던지 노트북을 꼭 안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을 다잡고 남은 것들을 준비하면서 그 화려한 거리가 자꾸 떠올랐다. 나도 할 수 있다.


기쁘지 않았던 최종 합격

결국 11월이 다되어가던 어느 날 모 시중은행의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빡빡한 면접이었다. 면접 일정이 조별로 면접관과 같이 하루 일과를 같이 하는 여정이라, 오전부터 저녁 가까이까지 함께 했고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 1차는 합격했고 2차 임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임원면접도 다수의 면접자들이 들어갔는데, 이날이 아직도 선명히 생각난다. 같은 질문을 순서대로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다른 면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 대답을 준비하고 생각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서 군 생활의 사례를 기초로 한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앞 면접자가 그만 유사한 내용을 발표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는지 면접관이 두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보고는 내가 당황한 이유를 알아차렸던 것 같다.

“자, 시간을 드릴 테니 좀 더 생각해보고 답변 하시라”고 하시고 다음 차례 사람으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대답하실지 기대가 된다”라고 하셨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 자체가 관심이요,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맞습니다. 너무 유사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일함에 있어서도 거짓으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업무에 임하겠다는 방식으로 대답하고는 내 답변을 마지막으로 면접이 종료되었다. 잘한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앞 면접자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시간이 지나 최종 발표가 되었는데 합격이었다. 웬걸 기쁘지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분은 좋았는데 몇 번 겪어본 해당 기업문화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덜컥 겁부터 났다. 아직도 합격 이메일이 남아 있는데 11월 중순에 합격을 하고 11월 말에 연수원에 입소를 해야 하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다른 백화점도 한 군데 합격을 해서 말 그대로 선택을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돈보다 마음 가는 곳으로

최종 합격을 두 군데 해놓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관심 있던 소비재 회사의 최종 면접을 하나 앞두고 있었는데, 합격한 곳이 있다 보니 보험이 있다는 생각에 엄청 든든했고 면접을 임하는 태도가 달랐다. 면접장에 도착해 보니 지난번 놓쳤던 그 화려했던 거리가 멀리 보였다. ‘아 같은 지역이구나’ 싶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회장을 포함한 임원 면접을 보는데 그때도 다수의 면접자들과 함께 보는 방식이었다. 여러 질문들을 지내고 마지막 질문 차례에서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취지의 질문이었고 쟁쟁한 경쟁자들의 답변이 이어져갔다. 중간쯤이었던 내 차례에서 말씀드린 건 “다 잘한다, 그동안 살면서 못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사소한 일도 없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 해낼 수 있다”라고 얘기했는데 그만 거기서 제동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답변에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추가 질문이 들어왔다. 다 어떤 걸 구체적으로 말하느냐, “외국어는 어떠냐”, “해외 경험이 없어 보이는데 옆에 이민후 돌아온 사람보다 외국어들 더 잘하느냐” 등등. “그동안 공부할 기회와 마음이 없었는데 필요하다고 하시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실력을 올려내겠다”라고 했다. 너무 무책임한 답변이라며 방금 설명한 내용들을 그럼 영어로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잠깐의 침묵과 긴장이 흐르고 서투르지만 당당히 “To…”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합격했음을 직감했다. 가장 높아 보였던 사람이 “그만, 왜 그렇게 괴롭히고 그래” 하고 다음 사람으로 질문이 넘어갔다. 등으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속으로는 보험이 있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왜 또 새삼 긴장하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최종 합격을 받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었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그리 절박하다가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고민되다 보니 그 상황마저 부담스러웠다. 이런저런 고민을 부모님과 대화하며 풀어나가는 도중에 스스로 어떤 걸 더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돈보다는 마음이 더 끌리는 곳을 선택하자” (아마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걸 지도 모른다.)



면접장에서의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내놓으라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사람이 가진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논리의 과정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면접자는 올받은 태도와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해내야하고 무엇보다도 실력의 자신감과 입사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안월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hellomon

Unpublish ON
previous arrow
next 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