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열풍입니다. 인류는 예전부터 달리기로 생존했는데 이제 와서 열풍이라니 느닷없죠.
저는 정확한 계기가 생각나진 않지만 어릴 적부터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긴 거리를 달리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휙휙 지나치는 풍경이 즐거웠고 성인이 되고서도 집 근처 호수공원을 자주 뛰었습니다.
주로 혼자서 뛰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달려왔고 몇 번의 러닝이 유행하고 외면받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 OpenAI ChatGPT 이미지 생성
그러다 최근 유례없는 러닝 붐이 생기면서 러닝 ‘크루’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저도 지역을 기반한 러닝 크루에 가입했습니다. 함께 뛰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큰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이런저런 장르의 대회도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관계와 집단의 힘이란 참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제 안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일축하자면 ‘타인의 달리기’를 하는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내 시간에 맞춰, 내가 원하는 코스를, 내가 달리고 싶은 만큼 뛰는 나의 달리기에서 동료의 시간과 속도 그리고 장소에 맞추는 달리기를 하는 빈도가 늘게 되죠.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전까지는 러닝 대회에 많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달리기는 달리는 순간의 즐거움이 목표이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고, 달리는 과정 전체가 숫자 몇 개로 귀결되고 평가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달리기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OpenAI ChatGPT 이미지 생성
동호인 활동에 있어서 대회와 완주 기록은 너무나 강력한 동기부여와 목표가 되어줍니다. 그 기준안에서 함께 훈련하기도 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도 하죠. 이 문화가 너무 당연한 그룹에서 저는 제가 “왜 달리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 조금씩 옅어짐을 느꼈습니다. 단체 활동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제가 정의한 달리기의 의미가 변색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던 환경이었을 뿐입니다. 이 환경에서 나의 달리기를 유지하려면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달리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식적으로 기억해 내고 경로를 보완해야 합니다.
디자인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은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작업자 본인은 물론 협업자 또한 과정의 골목에서 이 부분을 지속해서 상기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이 방식은 그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인가, 이 요소는 그 맥락에서 도움이 되는가 등 모든 결정은 한 지점을 뾰족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바쁜 일정 안에서 그것은 이상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살금살금 조여오는 마감의 압박에 본래의 목적을 잃고 관성적으로 디자인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모든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디자인 명세서(Design Statement, 이하 DS)를 작성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첫 삽을 뜨기 전에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한 번 더 확인하고 그 문제는 대략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지 구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벤치마크를 제외한다면 DS의 작성 시간은 2~3분 남짓이고 작업 초기에는 비교적 여유 시간이 있기에 무리 없이 작성할 수 있습니다.
DS를 사전에 작성하면 아래와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과제의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협업자와의 생각을 맞춰볼 수 있습니다.
간혹 DS에 기획자(혹은 PM)의 PRD에서 발췌한 문장을 그대로 적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자기가 이해한 방향을 확인하는 본래 취지를 잃게 됩니다. 작업자 본인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고 그것을 협업자와 상호 확인해 보는 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직접적인 얼라인이 일어납니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대로 업무를 펼치다가 뒤늦게 서로의 생각이 달랐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해법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의자’를 디자인하지 말고 ‘앉는 것’을 디자인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에 먼저 집중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아이데이션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 없이 곧바로 작업에 착수하면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형상이나 기획자가 제시한 Wireframe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디자인을 진행하는 데 있어 큰 제약사항과 걸림돌이 됩니다. 유연한 시도와 무수한 실패는 디자인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Customer Job에 따른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DS에는 문제정의뿐 아니라 가설 설정, 트레이드오프, 성과측정 지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솔루션이 가장 먼저 접근하고 사용자에게 소통해야 할 우선순위를 내포합니다. 프로젝트의 목적이 해당 화면의 Customer Job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위 항목들을 적어 보며 정보의 우선순위와 디자인의 위계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이것은 가장 중요한 과업을 방해하지 않는지 필요할 때마다 체크할 수 있습니다.
양식은 제가 그간 일하며 경험했던 PRD, 1Pager, PTBMAF등을 차용했습니다. 다만 디자이너가 실무 관점에서 필요한 부분만 담으려고 노력했고 각 항목의 작성 피로도를 최대한 낮추고 메시지의 명확성을 위해 단순하게 구성했습니다.

문제정의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간략히 기술합니다. 표피적 문제를 그대로 적기보다는 그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파고들어 가능한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 적습니다.
가설
이러이러한 방향성을 제공한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을 기술합니다.
지나치게 구체적인 솔루션을 언급하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베스트 벤치마크
유사한 문제를 이미 해결한 사례를 사전에 조사하고 가장 훌륭히 해결한 사례를 이유와 함께 첨부합니다.
트레이드 오프
솔루션을 적용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가치나 요소를 기술합니다. 그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이 솔루션이 취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지 평가합니다.
성과 측정 지표
어떤 지표를 봐야 이 솔루션이 문제해결을 효과적으로 했는지 정의합니다. 가능한 다른 변인의 영향이 적은 순수한 Metric을 선정합니다.
용어 정리(선택)
해당 프로젝트에 의해 새롭게 생성 되었거나 기존 레거시와 혼용되는 용어가 있다면 정리합니다. 용어 통일로 이해관계자의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입니다.
해당 양식은 프로젝트별로 생성되는 피그마 안에 한 페이지를 할당하여 마련해 둡니다.
(피그마를 열어야 볼 수 있으므로 엄밀히 이 글의 제목은 틀렸죠)
디자인 리뷰 전에 이 페이지를 먼저 살피며 온도를 맞추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주 잠깐의 싱크만으로도 본 리뷰에 들어가기 전 의미적인 환기가 되어주고 생각을 예열하기에도 좋습니다. 그뿐 아니라 피드백이 오가고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언제나 우선순위가 헷갈리거나 본질이 흐려진다 싶으면 이 페이지로 돌아와요. 몇 줄이 채 안 되는 이 문서는 길을 잃으려 할 때 의사 결정의 기준점이 되어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왜 이 길을 달리고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잃기 쉬운 질문과 대답에 자주 닿기 위해 삶의 곳곳에서 적용해 볼만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차PD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chalali
달리기 열풍입니다. 인류는 예전부터 달리기로 생존했는데 이제 와서 열풍이라니 느닷없죠.
저는 정확한 계기가 생각나진 않지만 어릴 적부터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긴 거리를 달리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휙휙 지나치는 풍경이 즐거웠고 성인이 되고서도 집 근처 호수공원을 자주 뛰었습니다.
주로 혼자서 뛰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달려왔고 몇 번의 러닝이 유행하고 외면받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 OpenAI ChatGPT 이미지 생성
그러다 최근 유례없는 러닝 붐이 생기면서 러닝 ‘크루’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저도 지역을 기반한 러닝 크루에 가입했습니다. 함께 뛰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큰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이런저런 장르의 대회도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관계와 집단의 힘이란 참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제 안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일축하자면 ‘타인의 달리기’를 하는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내 시간에 맞춰, 내가 원하는 코스를, 내가 달리고 싶은 만큼 뛰는 나의 달리기에서 동료의 시간과 속도 그리고 장소에 맞추는 달리기를 하는 빈도가 늘게 되죠.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전까지는 러닝 대회에 많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달리기는 달리는 순간의 즐거움이 목표이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고, 달리는 과정 전체가 숫자 몇 개로 귀결되고 평가되는 것은 제가 바라는 달리기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OpenAI ChatGPT 이미지 생성
동호인 활동에 있어서 대회와 완주 기록은 너무나 강력한 동기부여와 목표가 되어줍니다. 그 기준안에서 함께 훈련하기도 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도 하죠. 이 문화가 너무 당연한 그룹에서 저는 제가 “왜 달리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 조금씩 옅어짐을 느꼈습니다. 단체 활동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제가 정의한 달리기의 의미가 변색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던 환경이었을 뿐입니다. 이 환경에서 나의 달리기를 유지하려면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달리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식적으로 기억해 내고 경로를 보완해야 합니다.
디자인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은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작업자 본인은 물론 협업자 또한 과정의 골목에서 이 부분을 지속해서 상기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이 방식은 그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법인가, 이 요소는 그 맥락에서 도움이 되는가 등 모든 결정은 한 지점을 뾰족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바쁜 일정 안에서 그것은 이상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살금살금 조여오는 마감의 압박에 본래의 목적을 잃고 관성적으로 디자인하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모든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디자인 명세서(Design Statement, 이하 DS)를 작성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첫 삽을 뜨기 전에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한 번 더 확인하고 그 문제는 대략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지 구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벤치마크를 제외한다면 DS의 작성 시간은 2~3분 남짓이고 작업 초기에는 비교적 여유 시간이 있기에 무리 없이 작성할 수 있습니다.
DS를 사전에 작성하면 아래와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과제의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협업자와의 생각을 맞춰볼 수 있습니다.
간혹 DS에 기획자(혹은 PM)의 PRD에서 발췌한 문장을 그대로 적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자기가 이해한 방향을 확인하는 본래 취지를 잃게 됩니다. 작업자 본인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고 그것을 협업자와 상호 확인해 보는 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직접적인 얼라인이 일어납니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대로 업무를 펼치다가 뒤늦게 서로의 생각이 달랐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해법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의자’를 디자인하지 말고 ‘앉는 것’을 디자인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본질에 먼저 집중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아이데이션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 없이 곧바로 작업에 착수하면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형상이나 기획자가 제시한 Wireframe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디자인을 진행하는 데 있어 큰 제약사항과 걸림돌이 됩니다. 유연한 시도와 무수한 실패는 디자인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Customer Job에 따른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DS에는 문제정의뿐 아니라 가설 설정, 트레이드오프, 성과측정 지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솔루션이 가장 먼저 접근하고 사용자에게 소통해야 할 우선순위를 내포합니다. 프로젝트의 목적이 해당 화면의 Customer Job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위 항목들을 적어 보며 정보의 우선순위와 디자인의 위계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이것은 가장 중요한 과업을 방해하지 않는지 필요할 때마다 체크할 수 있습니다.
양식은 제가 그간 일하며 경험했던 PRD, 1Pager, PTBMAF등을 차용했습니다. 다만 디자이너가 실무 관점에서 필요한 부분만 담으려고 노력했고 각 항목의 작성 피로도를 최대한 낮추고 메시지의 명확성을 위해 단순하게 구성했습니다.

문제정의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간략히 기술합니다. 표피적 문제를 그대로 적기보다는 그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파고들어 가능한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 적습니다.
가설
이러이러한 방향성을 제공한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을 기술합니다.
지나치게 구체적인 솔루션을 언급하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베스트 벤치마크
유사한 문제를 이미 해결한 사례를 사전에 조사하고 가장 훌륭히 해결한 사례를 이유와 함께 첨부합니다.
트레이드 오프
솔루션을 적용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가치나 요소를 기술합니다. 그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이 솔루션이 취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지 평가합니다.
성과 측정 지표
어떤 지표를 봐야 이 솔루션이 문제해결을 효과적으로 했는지 정의합니다. 가능한 다른 변인의 영향이 적은 순수한 Metric을 선정합니다.
용어 정리(선택)
해당 프로젝트에 의해 새롭게 생성 되었거나 기존 레거시와 혼용되는 용어가 있다면 정리합니다. 용어 통일로 이해관계자의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입니다.
해당 양식은 프로젝트별로 생성되는 피그마 안에 한 페이지를 할당하여 마련해 둡니다.
(피그마를 열어야 볼 수 있으므로 엄밀히 이 글의 제목은 틀렸죠)
디자인 리뷰 전에 이 페이지를 먼저 살피며 온도를 맞추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주 잠깐의 싱크만으로도 본 리뷰에 들어가기 전 의미적인 환기가 되어주고 생각을 예열하기에도 좋습니다. 그뿐 아니라 피드백이 오가고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언제나 우선순위가 헷갈리거나 본질이 흐려진다 싶으면 이 페이지로 돌아와요. 몇 줄이 채 안 되는 이 문서는 길을 잃으려 할 때 의사 결정의 기준점이 되어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왜 이 길을 달리고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잃기 쉬운 질문과 대답에 자주 닿기 위해 삶의 곳곳에서 적용해 볼만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차PD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chalal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