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기때의 성공방식
예전 고도 성장기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임원은 그야말로 집안의 최고 자랑이었습니다. 얼마 전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대기업 임원이나 부장이라는 타이틀은 곧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훈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인사팀장이 김 부장에게 이런 뼈아픈 농담을 던집니다. “형, 뭐 좀 돼?”
그렇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밀레니엄 시대를 거치며 직장 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크게 변했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계획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가장 크게 바뀐 건 바로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기업 임원으로 퇴사하면 회사가 목 좋은 곳에 휴대폰 대리점도 내주고,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도 내주고, 그 전 시대에는 한적한 국도변에 주유소도 차려주곤 했습니다. 회사가 내 인생의 노후까지 책임져주니 회사에 내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이것이 1960년대생 선배들까지 이어지던 임원들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생이 40대가 되어 ‘젊은 임원’이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지금의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그들은 철저한 계약직이며, 일 년 일 년 당장의 실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오너는 늘 10년 뒤의 거창한 장기 플랜을 이야기하지만, 파리 목숨인 임원은 당장 올해의 단기 실적을 내야만 생존합니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은 장기 플랜을 세울 때 맥O지나 보스O컨설팅 같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가 짜준 시나리오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 그럴싸한 외부의 근거 없이는 오너를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설령 설득하려 해도 장기 플랜은 결국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끌어올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당장 올해의 실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임원 입장에서는 선뜻 나서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그 컨설팅 시나리오에 맞춰 아래 직원들에게도 단기적이고 팍팍한 지시들이 내려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시대상 파악
중소기업인의 인생 계획을 이야기하며 왜 대기업 이야기부터 꺼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대기업 성장 위주로 정부의 정책이 맞춰져 발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우리 사회를 읽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대기업의 결정 하나에 수많은 중소기업과 협력업체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정책입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앞으로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에는 구내식당을 빼고, 통근 버스를 없애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 거대한 기관 하나가 내부에서 독점하던 수요를 지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으로 강제로 풀어서 바깥의 생태계를 돌리겠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이 톱니바퀴 같은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떤 비율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2023년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의 분포를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공무원 및 공공부문이 약 5%, 대기업 직원이 약 10%, 중소기업 직원이 약 65%, 그리고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상공인이 약 20%를 차지합니다.
예전의 인생 스토리는 꽤 직관적이었습니다. 대기업 직원은 임원이나 팀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거나, 아니면 퇴사해서 대기업에서 배운 선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을 창업하거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던 기존의 룰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기업에 입사해서 시스템을 배운 인재들이 중소기업으로 넘어가거나 창업을 하는 이른바 ‘인력 낙수 효과’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중소기업에 들어가 피눈물 나게 고생하며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그걸 스펙 삼아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과거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빚어낸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온통 청년들을 대기업에 보내려 하다 보니, 대기업에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리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독려했습니다. 그러자 대기업은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생신입을 뽑아 긴 시간 가르치는 대신, 중소기업에서 쓸 만하게 일머리를 익힌 1~3년 차 직원들을 신규 채용이라는 이름으로 싹쓸이해 가는 구조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지원 제도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어쨌든 현재 신입 채용 시장의 문이 이토록 좁아진 결정적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장관급의 고위 인사가 한 대기업에 방문해서 일장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당신네 회사는 포털 사이트보다 IT 직원이 적냐, 외주를 주지 말고 전부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내재화하라고 호통을 쳤죠. 듣기엔 참 좋은 말 같지만, 이는 건설 회사에 가서 미장이나 전기 공사 인부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안고 가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미장 기술자가 필요한 시기가 있고 전기 기술자가 필요한 시기가 따로 있는데, 공사가 있든 없든 모든 기술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건설 단가는 천정부지로 솟구치게 됩니다. IT 업계의 생태계도 이와 똑같은데 말이죠.
어찌 되었든 세상의 룰은 이렇게 변해버렸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낙수 효과는 메말랐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인 6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생존을 넘어 단단한 인생 플랜을 짜야 할까요?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뒤로 미루겠습니다. 창업은 나중에 관련 업계에서 경험을 쌓고 시장 조사를 거친 뒤에 도전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오롯이 중소기업 직원의 테크트리에만 집중해 보겠습니다.
실전 테크트리
중소기업 직원의 성장 공식도 첫 단추는 꽤 직관적입니다. 우선 입사할 때는 딱 하나만 보면 됩니다. 취업 포털 사이트의 기업 리뷰들에 사내 정치가 어쩌고, 야근이 어쩌고 하는 불평들이 널려 있어도 일단 무시하십시오. 오직 ‘월급이 밀렸다’는 치명적인 이야기만 없다면 과감히 입사하는 겁니다.
그리고 입사 초기에는 흔히들 말하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태도로 일하며 내 분야의 ‘만 시간의 법칙’을 채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한다고 계산해 보면 1년에 대략 2,000시간. 즉, 한 직무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밀도 있게 채웠을 때 비로소 일머리가 트이고 만 시간의 법칙이 완성됩니다. 본격적인 중소기업 생존 테크트리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입니다.
이 5년의 시간을 채우고 나면, 그때부터는 시야를 넓혀 내가 다니는 회사와 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 내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여지가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장이나 임원이 내 진가를 알아볼 안목을 갖추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어릴 적 방에 틀어박혀 딴짓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희한하게 엄마들은 방문 한 번 열어보지 않고도 귀신같이 그 사실을 알아채곤 했죠.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누가 진짜 일머리가 있는지, 누가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지 손바닥 보듯 훤히 보입니다. 만약 내가 만 시간을 채운 에이스임에도 회사의 비전이 보이지 않고 위에서 나를 끌어줄 안목조차 없다면, 주저하지 말고 대기업이나 다른 무대로 점프를 시도해야 합니다. 당장 실무에 투입할 인재가 고픈 대기업이나 잘나가는 회사 면접관의 눈에는, 중소기업 현장에서 제대로 구르며 실무 능력을 증명한 인재가 당연히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회사가 튼튼하고 비전이 보인다면 이 중소기업에서 끝까지 올라가 성공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경영진(C레벨)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사실 대기업의 이전 성공 스토리에서는 회사가 인생 2막까지 책임을 져주었지만, 그렇지 못한 지금은 중소기업의 C레벨이 오히려 더 생존력 강한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촘촘한 마이크로 매니징과 거대한 시스템 안에만 있다 보면 넓은 시야 확보가 안 되고 만나는 사회도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의 C레벨은, 하기에 따라서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오히려 더 많은 분야의 사람 및 일과 직접 부딪히며 접촉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 태운 당나귀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당나귀에게 사람들이 다들 인사를 하고 절을 하는데, 등에 탄 부처가 내리고 난 어느 날은 사람들의 매질만 날아들더랍니다. 거대한 타이틀이라는 부처가 등에서 내리고 나면 차가운 현실의 매질을 당해야 하는 게 직장인의 숙명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C레벨은 애초에 등에 부처를 태워본 적이 없으니, 훗날 험난한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매질을 당해도 거뜬히 버텨낼 강력한 힘과 맷집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제 직관적으로 5년 차 이후에 뭘 해야 하는지 설명 딱 두 가지만 하겠습니다.
첫째, 회사의 성적표인 재무제표를 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회계학을 깊이 파라는 뜻이 아닙니다. 회사가 외부감사 법인이라 자료가 공개되어 있다면 요즘 유행하는 AI에게 분석을 맡겨 돈의 흐름만 파악하면 됩니다.
요즘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회사 살림살이를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깨어있는 대표들이 많습니다. 최근 두쫀쿠(두바이 초콜릿 쫀득 쿠키)라는 디저트를 유행시킨 한 제과점 사장님이 힘들게 개발한 레시피를 대중에게 미련 없이 공개해 더 큰 성공을 거둔 일이 화제였죠. 이처럼 나 혼자 꽁꽁 숨겨두기보다, 회사의 경영 지표와 비전을 투명하게 직원과 나누는 회사가 진짜 성장하는 회사입니다. 이런 회사라면 내 청춘을 걸어볼 만합니다.
둘째, 내 직급보다 한 단계 위의 시선으로 일하며 눈치를 버려야 합니다. 내 자리가 과장이라면 차장의 눈으로, 부장이라면 임원의 눈으로 회사를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 모난 돌이 정 맞을까 두렵고, 동료들 눈치도 보일 겁니다. 미국 IT 업계 등 선진 분야를 보면 동양인들이 실무자로는 무척 많지만, 정작 C레벨에는 그 비율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를 예전 여성 직장인들이 겪던 유리 천장이 아닌, 동양인 특유의 문화적 한계를 뜻하는 ‘뱀부 실링(대나무 천장)’이라고 부릅니다. 주변 눈치를 보고 둥글둥글하게만 지내려다 리더십을 증명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죠.
우리 마음속에도 이런 뱀부 실링이 존재합니다. 착한 동료, 겸손한 후배라는 타이틀은 커리어를 위해 잠시 접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중소기업 대표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내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 내 위에서 나를 고용하지.”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대표들은 임원 자리에 적당히 무난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을 앉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해 내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죠. 일단 내가 잘되고 보는 게 우선입니다. 마음속 대나무 천장을 과감히 깨부숴야 중소기업의 꼭대기인 C레벨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C레벨의 시선을 장착하고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임원으로 성장하고 나면, 훗날 대기업으로 이직하든 내 사업을 창업하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창업의 본질은 자본, 동료, 고객 이 세 가지인데, 임원 자리까지 오르며 다져놓은 안목과 인재 네트워크가 그중 한 개 정도의 빈자리는 거뜬히 채워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의 중간중간 ‘테크트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보면, 처음에는 똑같이 일꾼 몇 명으로 시작하지만 어떤 테크트리를 타느냐에 따라 전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초반에 빠르게 공격을 갈 수도 있고, 기본 병력을 꾸준히 모으거나, 기계화 부대로 전환하거나, 공중전으로 갈 수도 있죠.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지만, 결국 그 모든 테크트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승리’입니다.
우리의 인생 설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한걸음에 모든 걸 이루려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을 거쳐 창업으로 가는 테크트리를 타든, 중소기업 내부에서 끝까지 올라가 성공하든, 아니면 중소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장 내 사업을 시작하든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실전에서는 결국 나만의 방식으로 승리하는 것이 최고니까요.
시대의 맥락을 읽어야 길이 보입니다. 누구의 기대에 맞추려 눈치 보는 마음속의 뱀부 실링을 제발 과감하게 깨부수십시오. 우리 사회의 65%를 차지하는 평범한 우리가, 중소기업이라는 치열한 생태계에서 단단하게 살아남아 기필코 본인만의 성공 스토리를 완성해 내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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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기때의 성공방식
예전 고도 성장기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임원은 그야말로 집안의 최고 자랑이었습니다. 얼마 전 웹툰과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대기업 임원이나 부장이라는 타이틀은 곧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훈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인사팀장이 김 부장에게 이런 뼈아픈 농담을 던집니다. “형, 뭐 좀 돼?”
그렇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밀레니엄 시대를 거치며 직장 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크게 변했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계획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가장 크게 바뀐 건 바로 평생 직장의 개념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기업 임원으로 퇴사하면 회사가 목 좋은 곳에 휴대폰 대리점도 내주고,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도 내주고, 그 전 시대에는 한적한 국도변에 주유소도 차려주곤 했습니다. 회사가 내 인생의 노후까지 책임져주니 회사에 내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이것이 1960년대생 선배들까지 이어지던 임원들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생이 40대가 되어 ‘젊은 임원’이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지금의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그들은 철저한 계약직이며, 일 년 일 년 당장의 실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오너는 늘 10년 뒤의 거창한 장기 플랜을 이야기하지만, 파리 목숨인 임원은 당장 올해의 단기 실적을 내야만 생존합니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은 장기 플랜을 세울 때 맥O지나 보스O컨설팅 같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가 짜준 시나리오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 그럴싸한 외부의 근거 없이는 오너를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설령 설득하려 해도 장기 플랜은 결국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끌어올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당장 올해의 실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임원 입장에서는 선뜻 나서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그 컨설팅 시나리오에 맞춰 아래 직원들에게도 단기적이고 팍팍한 지시들이 내려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시대상 파악
중소기업인의 인생 계획을 이야기하며 왜 대기업 이야기부터 꺼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대기업 성장 위주로 정부의 정책이 맞춰져 발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우리 사회를 읽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대기업의 결정 하나에 수많은 중소기업과 협력업체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정책입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앞으로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에는 구내식당을 빼고, 통근 버스를 없애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 거대한 기관 하나가 내부에서 독점하던 수요를 지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으로 강제로 풀어서 바깥의 생태계를 돌리겠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이 톱니바퀴 같은 사회 구조 안에서 우리는 어떤 비율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2023년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의 분포를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공무원 및 공공부문이 약 5%, 대기업 직원이 약 10%, 중소기업 직원이 약 65%, 그리고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상공인이 약 20%를 차지합니다.
예전의 인생 스토리는 꽤 직관적이었습니다. 대기업 직원은 임원이나 팀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거나, 아니면 퇴사해서 대기업에서 배운 선진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을 창업하거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던 기존의 룰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기업에 입사해서 시스템을 배운 인재들이 중소기업으로 넘어가거나 창업을 하는 이른바 ‘인력 낙수 효과’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중소기업에 들어가 피눈물 나게 고생하며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그걸 스펙 삼아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과거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빚어낸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온통 청년들을 대기업에 보내려 하다 보니, 대기업에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리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독려했습니다. 그러자 대기업은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생신입을 뽑아 긴 시간 가르치는 대신, 중소기업에서 쓸 만하게 일머리를 익힌 1~3년 차 직원들을 신규 채용이라는 이름으로 싹쓸이해 가는 구조를 만들어버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지원 제도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어쨌든 현재 신입 채용 시장의 문이 이토록 좁아진 결정적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장관급의 고위 인사가 한 대기업에 방문해서 일장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당신네 회사는 포털 사이트보다 IT 직원이 적냐, 외주를 주지 말고 전부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내재화하라고 호통을 쳤죠. 듣기엔 참 좋은 말 같지만, 이는 건설 회사에 가서 미장이나 전기 공사 인부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안고 가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미장 기술자가 필요한 시기가 있고 전기 기술자가 필요한 시기가 따로 있는데, 공사가 있든 없든 모든 기술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건설 단가는 천정부지로 솟구치게 됩니다. IT 업계의 생태계도 이와 똑같은데 말이죠.
어찌 되었든 세상의 룰은 이렇게 변해버렸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낙수 효과는 메말랐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인 6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생존을 넘어 단단한 인생 플랜을 짜야 할까요?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뒤로 미루겠습니다. 창업은 나중에 관련 업계에서 경험을 쌓고 시장 조사를 거친 뒤에 도전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오롯이 중소기업 직원의 테크트리에만 집중해 보겠습니다.
실전 테크트리
중소기업 직원의 성장 공식도 첫 단추는 꽤 직관적입니다. 우선 입사할 때는 딱 하나만 보면 됩니다. 취업 포털 사이트의 기업 리뷰들에 사내 정치가 어쩌고, 야근이 어쩌고 하는 불평들이 널려 있어도 일단 무시하십시오. 오직 ‘월급이 밀렸다’는 치명적인 이야기만 없다면 과감히 입사하는 겁니다.
그리고 입사 초기에는 흔히들 말하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태도로 일하며 내 분야의 ‘만 시간의 법칙’을 채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한다고 계산해 보면 1년에 대략 2,000시간. 즉, 한 직무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밀도 있게 채웠을 때 비로소 일머리가 트이고 만 시간의 법칙이 완성됩니다. 본격적인 중소기업 생존 테크트리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이때입니다.
이 5년의 시간을 채우고 나면, 그때부터는 시야를 넓혀 내가 다니는 회사와 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 내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여지가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장이나 임원이 내 진가를 알아볼 안목을 갖추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어릴 적 방에 틀어박혀 딴짓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때, 희한하게 엄마들은 방문 한 번 열어보지 않고도 귀신같이 그 사실을 알아채곤 했죠.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누가 진짜 일머리가 있는지, 누가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지 손바닥 보듯 훤히 보입니다. 만약 내가 만 시간을 채운 에이스임에도 회사의 비전이 보이지 않고 위에서 나를 끌어줄 안목조차 없다면, 주저하지 말고 대기업이나 다른 무대로 점프를 시도해야 합니다. 당장 실무에 투입할 인재가 고픈 대기업이나 잘나가는 회사 면접관의 눈에는, 중소기업 현장에서 제대로 구르며 실무 능력을 증명한 인재가 당연히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회사가 튼튼하고 비전이 보인다면 이 중소기업에서 끝까지 올라가 성공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경영진(C레벨)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사실 대기업의 이전 성공 스토리에서는 회사가 인생 2막까지 책임을 져주었지만, 그렇지 못한 지금은 중소기업의 C레벨이 오히려 더 생존력 강한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촘촘한 마이크로 매니징과 거대한 시스템 안에만 있다 보면 넓은 시야 확보가 안 되고 만나는 사회도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반해 중소기업의 C레벨은, 하기에 따라서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오히려 더 많은 분야의 사람 및 일과 직접 부딪히며 접촉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 태운 당나귀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당나귀에게 사람들이 다들 인사를 하고 절을 하는데, 등에 탄 부처가 내리고 난 어느 날은 사람들의 매질만 날아들더랍니다. 거대한 타이틀이라는 부처가 등에서 내리고 나면 차가운 현실의 매질을 당해야 하는 게 직장인의 숙명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C레벨은 애초에 등에 부처를 태워본 적이 없으니, 훗날 험난한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매질을 당해도 거뜬히 버텨낼 강력한 힘과 맷집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제 직관적으로 5년 차 이후에 뭘 해야 하는지 설명 딱 두 가지만 하겠습니다.
첫째, 회사의 성적표인 재무제표를 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회계학을 깊이 파라는 뜻이 아닙니다. 회사가 외부감사 법인이라 자료가 공개되어 있다면 요즘 유행하는 AI에게 분석을 맡겨 돈의 흐름만 파악하면 됩니다.
요즘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회사 살림살이를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깨어있는 대표들이 많습니다. 최근 두쫀쿠(두바이 초콜릿 쫀득 쿠키)라는 디저트를 유행시킨 한 제과점 사장님이 힘들게 개발한 레시피를 대중에게 미련 없이 공개해 더 큰 성공을 거둔 일이 화제였죠. 이처럼 나 혼자 꽁꽁 숨겨두기보다, 회사의 경영 지표와 비전을 투명하게 직원과 나누는 회사가 진짜 성장하는 회사입니다. 이런 회사라면 내 청춘을 걸어볼 만합니다.
둘째, 내 직급보다 한 단계 위의 시선으로 일하며 눈치를 버려야 합니다. 내 자리가 과장이라면 차장의 눈으로, 부장이라면 임원의 눈으로 회사를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 모난 돌이 정 맞을까 두렵고, 동료들 눈치도 보일 겁니다. 미국 IT 업계 등 선진 분야를 보면 동양인들이 실무자로는 무척 많지만, 정작 C레벨에는 그 비율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를 예전 여성 직장인들이 겪던 유리 천장이 아닌, 동양인 특유의 문화적 한계를 뜻하는 ‘뱀부 실링(대나무 천장)’이라고 부릅니다. 주변 눈치를 보고 둥글둥글하게만 지내려다 리더십을 증명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죠.
우리 마음속에도 이런 뱀부 실링이 존재합니다. 착한 동료, 겸손한 후배라는 타이틀은 커리어를 위해 잠시 접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중소기업 대표들이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내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 내 위에서 나를 고용하지.”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대표들은 임원 자리에 적당히 무난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을 앉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해 내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죠. 일단 내가 잘되고 보는 게 우선입니다. 마음속 대나무 천장을 과감히 깨부숴야 중소기업의 꼭대기인 C레벨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C레벨의 시선을 장착하고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임원으로 성장하고 나면, 훗날 대기업으로 이직하든 내 사업을 창업하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창업의 본질은 자본, 동료, 고객 이 세 가지인데, 임원 자리까지 오르며 다져놓은 안목과 인재 네트워크가 그중 한 개 정도의 빈자리는 거뜬히 채워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의 중간중간 ‘테크트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보면, 처음에는 똑같이 일꾼 몇 명으로 시작하지만 어떤 테크트리를 타느냐에 따라 전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초반에 빠르게 공격을 갈 수도 있고, 기본 병력을 꾸준히 모으거나, 기계화 부대로 전환하거나, 공중전으로 갈 수도 있죠.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지만, 결국 그 모든 테크트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승리’입니다.
우리의 인생 설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한걸음에 모든 걸 이루려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을 거쳐 창업으로 가는 테크트리를 타든, 중소기업 내부에서 끝까지 올라가 성공하든, 아니면 중소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곧장 내 사업을 시작하든 정해진 정답은 없습니다. 실전에서는 결국 나만의 방식으로 승리하는 것이 최고니까요.
시대의 맥락을 읽어야 길이 보입니다. 누구의 기대에 맞추려 눈치 보는 마음속의 뱀부 실링을 제발 과감하게 깨부수십시오. 우리 사회의 65%를 차지하는 평범한 우리가, 중소기업이라는 치열한 생태계에서 단단하게 살아남아 기필코 본인만의 성공 스토리를 완성해 내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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