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지 않았던 이동
나는 다시 영업 현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계획했던 이동은 아니었고, 특별한 각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조직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선배들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며 응원의 말을 건넸고,
그렇게 나는 한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발령을 받자마자 지점장님과 팀원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본부에서의 경험을 여기서 잘 녹여달라”는 따뜻한 말도 함께 들었다. 그 말 덕분인지,
처음 출근할 때는 생각보다 큰 부담 없이 새로운 환경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원래는 훨씬 더 긴장하고 부담을 느끼는 게 맞았던 하루하루의 시작이었다.
본부는 전국을 바라보는 자리였다. 제품을 공지하고,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고, 마케팅과 협의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었다. 반면, 필드(지점) 영업은 전혀 달랐다. 한 지역의 매장을 책임지는 영업사원이자,
매장에서 근무하시는 여직원분들과 함께 호흡하며 각기 다른 성향의 매장 바이어, 매장 담당자들과 직접 부딪히는 자리였다.
전국 이슈가 아닌,
지금 이 매장, 이 지역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되는 곳.
어쩌면 이곳은 온전히 개인기의 무대였다고 표현해도 맞을 것 같다.
같은 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본부에서의 프로세스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점의 일은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세심해야 했다.
이런 비유가 떠올랐다.
본부의 일이 헬리콥터에서 약을 뿌려 숲 전체를 관리하는 일이라면,
지점의 일은 나무 하나하나에 붙은 벌레를 직접 찾아 제거하는 일이었다.
한 매장에서 행사를 진행하려면 옆의 작은 슈퍼, 중형 마트, 대형 할인점의 가격을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본부에서 동일한 가격을 내려주더라도 지역 특성에 맞게 더 잘 팔 수 있도록 추가 판촉을 기획하고,
본부·마케팅과 개별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현장은 훨씬 더 치열했다
내가 담당했던 지역은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남부와 경기 동부 일대였다.
직거래와 위탁대리점을 함께 맡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행사 시즌이 되면 특정 카테고리의 판매가 유독 강했다.
지역 행사가 있을 때는 HMR, 국수류, 소스류의 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고, 그만큼 가격 경쟁력과 진열 위치를 두고 경쟁도 치열했다. 전국 행사와 달리, POG가 아닌 일반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매장 바이어와의 소통,
그리고 매장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동이 중요했다.
어느 날은,
경쟁사 담당자가 직접 매장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아, 여긴 정말 치열한 곳이구나.’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속도와 판단의 차이
회의 분위기 또한 완전히 달랐다. 본부에서는 사전 자료 조사, 유관부서 협의, 정리된 어젠다를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지점은 달랐다.
“이 대리님, 지금 잠깐 시간 되세요?”
“아, 네!”
“이건 이 매장 전달해 주시고, 저건 저 매장으로 바로 연결해 주세요.”
지점은 보통 지점장, 영업 담당자, 그리고 여직원들을 관리하는 여팀장으로 구성된다. 한 지점에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여직원들이 근무하기 때문에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월요일마다 실적을 점검하고, 담당별 달성률과 이슈를 확인한 뒤 곧바로 매장으로 나가 하루에 2~5개 매장을 돌며 소통했다.
현장에서 만난 진짜 ‘사람’
본부에 있을 때도 사내 강의에서 늘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여직원, 남직원분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부모님입니다. 절대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했고, 훨씬 더 진심이었다.
처음 매장에 갔을 때, 한 여직원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담당님, 반가워요. 우선 매장 한 바퀴 다 돌아보고 이야기하시죠.”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내가 매장을 알아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히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고, 의견을 제시하고 바이어와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분은 경쟁사에 밀리면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고, 이기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알고 보니 전국 1등을 두 번이나 했던, 회사 역사와도 같은 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결국 남은 건 진심이었다
본부와 현장은 확실히 다르다. 사람의 수도 다르고, 결도 다르다. 판단이 느리면 밀리고, 센스와 현장 감각이 필수인 자리다. 하지만 두 곳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일을 대하는 진심”
27살에 매장에서 과일을 팔며 한 매장을 담당했고,
29살에는 본부에서 전국을 보았고,
35살에는 다시 대리점과 매장을 맡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늘 객관적으로 고민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특별한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때그때 주어진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태도가 가장 거칠게 시험받는 일을 맡게 된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시작된, 한 매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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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지 않았던 이동
나는 다시 영업 현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계획했던 이동은 아니었고, 특별한 각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조직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선배들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며 응원의 말을 건넸고,
그렇게 나는 한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발령을 받자마자 지점장님과 팀원분들께 인사를 드렸고,
“본부에서의 경험을 여기서 잘 녹여달라”는 따뜻한 말도 함께 들었다. 그 말 덕분인지,
처음 출근할 때는 생각보다 큰 부담 없이 새로운 환경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원래는 훨씬 더 긴장하고 부담을 느끼는 게 맞았던 하루하루의 시작이었다.
본부는 전국을 바라보는 자리였다. 제품을 공지하고, 수요와 공급을 조율하고, 마케팅과 협의하며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었다. 반면, 필드(지점) 영업은 전혀 달랐다. 한 지역의 매장을 책임지는 영업사원이자,
매장에서 근무하시는 여직원분들과 함께 호흡하며 각기 다른 성향의 매장 바이어, 매장 담당자들과 직접 부딪히는 자리였다.
전국 이슈가 아닌,
지금 이 매장, 이 지역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되는 곳.
어쩌면 이곳은 온전히 개인기의 무대였다고 표현해도 맞을 것 같다.
같은 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본부에서의 프로세스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점의 일은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세심해야 했다.
이런 비유가 떠올랐다.
본부의 일이 헬리콥터에서 약을 뿌려 숲 전체를 관리하는 일이라면,
지점의 일은 나무 하나하나에 붙은 벌레를 직접 찾아 제거하는 일이었다.
한 매장에서 행사를 진행하려면 옆의 작은 슈퍼, 중형 마트, 대형 할인점의 가격을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본부에서 동일한 가격을 내려주더라도 지역 특성에 맞게 더 잘 팔 수 있도록 추가 판촉을 기획하고,
본부·마케팅과 개별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현장은 훨씬 더 치열했다
내가 담당했던 지역은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남부와 경기 동부 일대였다.
직거래와 위탁대리점을 함께 맡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행사 시즌이 되면 특정 카테고리의 판매가 유독 강했다.
지역 행사가 있을 때는 HMR, 국수류, 소스류의 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고, 그만큼 가격 경쟁력과 진열 위치를 두고 경쟁도 치열했다. 전국 행사와 달리, POG가 아닌 일반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매장 바이어와의 소통,
그리고 매장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동이 중요했다.
어느 날은,
경쟁사 담당자가 직접 매장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아, 여긴 정말 치열한 곳이구나.’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다.
속도와 판단의 차이
회의 분위기 또한 완전히 달랐다. 본부에서는 사전 자료 조사, 유관부서 협의, 정리된 어젠다를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지점은 달랐다.
“이 대리님, 지금 잠깐 시간 되세요?”
“아, 네!”
“이건 이 매장 전달해 주시고, 저건 저 매장으로 바로 연결해 주세요.”
지점은 보통 지점장, 영업 담당자, 그리고 여직원들을 관리하는 여팀장으로 구성된다. 한 지점에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여직원들이 근무하기 때문에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월요일마다 실적을 점검하고, 담당별 달성률과 이슈를 확인한 뒤 곧바로 매장으로 나가 하루에 2~5개 매장을 돌며 소통했다.
현장에서 만난 진짜 ‘사람’
본부에 있을 때도 사내 강의에서 늘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여직원, 남직원분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부모님입니다. 절대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했고, 훨씬 더 진심이었다.
처음 매장에 갔을 때, 한 여직원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담당님, 반가워요. 우선 매장 한 바퀴 다 돌아보고 이야기하시죠.”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내가 매장을 알아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히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고, 의견을 제시하고 바이어와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분은 경쟁사에 밀리면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고, 이기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알고 보니 전국 1등을 두 번이나 했던, 회사 역사와도 같은 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결국 남은 건 진심이었다
본부와 현장은 확실히 다르다. 사람의 수도 다르고, 결도 다르다. 판단이 느리면 밀리고, 센스와 현장 감각이 필수인 자리다. 하지만 두 곳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일을 대하는 진심”
27살에 매장에서 과일을 팔며 한 매장을 담당했고,
29살에는 본부에서 전국을 보았고,
35살에는 다시 대리점과 매장을 맡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늘 객관적으로 고민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특별한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때그때 주어진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태도가 가장 거칠게 시험받는 일을 맡게 된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시작된, 한 매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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