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조명 아래, 처음 마주한 환호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컨퍼런스 당일, 나는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꺼내 입고 양재동의 행사장으로 향했다.
‘우와… 어마어마하구나.’
행사장의 규모와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담당자를 만나 대기석에 앉으며 긴장감이 밀려왔다.
행사는 프로그램에 맞춰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헤어디자이너 분들이 무대 직전 다시 헤어와 의상을 손봐주고,
동선 점검과 시간 체크까지—
몇 달 동안 철저하게 준비해온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제 내 차례.
면접 때보다 더 떨렸다. 부모님이 스쳐갔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대 위로 올라간 순간 잠시 얼어붙었지만, 강당을 가득 채운 환호가 얼어 있던 나를 천천히 녹여주었다.
‘이제… 시작해 보자.’
(아래는 그날의 발표 장면을 담은 실제 사진입니다.
저를 포함해 함께했던 분들의 얼굴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이 순간이 내 안의 작은 씨앗이 되었다.

떨렸지만, 참 감사했던 무대.
행사가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나를 컨택했던 담당자와 팀원들이 누구보다 기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저 감사했다.
성과의 주인은 늘 우리였고, 책임은 늘 나였다
다음 날 출근하자, 행사에 계셨던 영업본부 실장님이
“OO가 그렇게 열정 넘치고 파이팅 있는 친구인 줄 몰랐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건네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잘해서 된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의 추천, 누군가의 응원, 누군가의 연결, 누군가의 도움…
그 모든 마음이 쌓여서 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뿐이다.
반대로, 만약 내가 부족했다면
그건 준비가 덜 된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겐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 혼자 만든 결과”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과의 주인은 ‘우리’였고, 부족함의 책임은 ‘나’였다.
겉으로는 내가 걸어온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깔아준 작은 마음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혼자 잘난 사람이 아니라,
함께여서 더 멀리 갈 수 있었던 사람으로.
Super 커뮤니케이터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dsceo
뜨거운 조명 아래, 처음 마주한 환호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컨퍼런스 당일, 나는 면접 때 입었던 정장을 꺼내 입고 양재동의 행사장으로 향했다.
‘우와… 어마어마하구나.’
행사장의 규모와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담당자를 만나 대기석에 앉으며 긴장감이 밀려왔다.
행사는 프로그램에 맞춰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헤어디자이너 분들이 무대 직전 다시 헤어와 의상을 손봐주고,
동선 점검과 시간 체크까지—
몇 달 동안 철저하게 준비해온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제 내 차례.
면접 때보다 더 떨렸다. 부모님이 스쳐갔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대 위로 올라간 순간 잠시 얼어붙었지만, 강당을 가득 채운 환호가 얼어 있던 나를 천천히 녹여주었다.
‘이제… 시작해 보자.’
(아래는 그날의 발표 장면을 담은 실제 사진입니다.
저를 포함해 함께했던 분들의 얼굴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이 순간이 내 안의 작은 씨앗이 되었다.

떨렸지만, 참 감사했던 무대.
행사가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나를 컨택했던 담당자와 팀원들이 누구보다 기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저 감사했다.
성과의 주인은 늘 우리였고, 책임은 늘 나였다
다음 날 출근하자, 행사에 계셨던 영업본부 실장님이
“OO가 그렇게 열정 넘치고 파이팅 있는 친구인 줄 몰랐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건네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잘해서 된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의 추천, 누군가의 응원, 누군가의 연결, 누군가의 도움…
그 모든 마음이 쌓여서 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뿐이다.
반대로, 만약 내가 부족했다면
그건 준비가 덜 된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겐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 혼자 만든 결과”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과의 주인은 ‘우리’였고, 부족함의 책임은 ‘나’였다.
겉으로는 내가 걸어온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깔아준 작은 마음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혼자 잘난 사람이 아니라,
함께여서 더 멀리 갈 수 있었던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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