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업 업무를 처음 시작할 때, 회사 선배님들이 내게 물었던 첫 질문이 기억난다. “너 혼자 나가서 볼펜 한 자루 팔 수 있겠냐?” (보고 싶은 김성우 대리님!) 나는 당시는 그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조차 하지 못했었다. 당시에 이해하기로는, 파는 물건의 종류와 가치를 불문하고, 해외영업 업무 역시 Sales의 일종이며, 무역의 여러가지 복잡한 절차와, 매 단계에서 이뤄지는 내/외부적인 협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각각의 활동에 수반되는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철저히 익히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입사전부터 확보되어 있던 거래처들을 할당받아서 단순히 Follow up하는 것 외에, 스스로 거래처를 개척하고, 판로를 확보하며, 거래의 구조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점에 가장 큰 촛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30여년이 지나고 나니 나 역시 해외영업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해 줄 수 있는 질문과 조언이 생기는 것 같다.
1. “맨땅에 헤딩”하는 일을 할 자신이 있나요?
좀 점잖지 못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말은 해외영업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내가 제일 먼저 묻고 싶은 말이다. 아주 오래 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백과사전이나 (당연히 12권 혹은 18권 등의 대 전집) 아동문학 전집 등을 팔던 책 장수는, 마다하는 어머니들에게 책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권유하고, 나중에는 설득해서 결국 그 책을 어떤 집의 책장에 들어 앉히는데 성공하곤 했다. 물론, 며칠 혹은 몇 달의 인내심과 각 집의 어머니들이 보인 태도와 관심의 정도에 주목하고, 얘깃거리를 준비하는 등의 치밀한 준비가 있었을 터이다.
해외영업 역시, 그와 비슷하게, 고객을 찾고, 방문하거나 연락할 때 마다 효과적인 설득을 해서, 나중에는 내가 팔고 싶은 제품과 서비스를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일인데, 시작점은 역시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구에게 처음 찾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Business는 Sales를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의 단어이지만, 어떤 형식이든 Sales라는 행위가 없는 Business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Sales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찾아 다니던 그 책장수처럼, 실질적으로 발품을 팔고, 모르던 사람과 만나 대화하고, 효과적인 설득을 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하는 일련의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해외영업 역시, 처음 어떻게 잠재 고객을 발굴할 것인가, 어떤 노력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에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문서작성이나 프리젠테이션 기술, 미팅과 협상의 기술, 세부적인 무역실무나 어학실력 등은 모두 그 이후의 일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척후병처럼 맨 앞에 나아가서, 결국 길을 내려는 도전 의지와 실행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끼리 서로들 푸념 혹은 격려처럼 하던 말들처럼,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해외영업의 단초를 열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도전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2. 작은 민간 외교관
해외에 초기에 출장을 다닐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고, 낯선데서 오는 새로움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싶고, 의욕적으로 알아보고 공부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함에도 아마 낯선 환경에서 오는 실수와 한국식 사고방식/행동방식으로 나를 만났던 외국 사람들을 당황시켰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야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다른 나라와 문화가 신기하고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내가 다른 나라에서 하는 작은 행동과 말들은, 나를 만났던 그 나라의 시민들에게, 나 개인이 아닌 우리나라를 각인시키는 측면이 있다. 가끔씩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Ugly Korean들도 있듯이, 내가 하는 크고 작은 말과 행동은, 한국사람을 만난 적이 별로 없었을 그 나라 사람에게 나 개인에 대한 기억보다는 “Korea”에 대한 기억으로 남기 쉽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점잖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그러면서도 Sharp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되도록 T.P.O. (Time, Place, Occasion)에 맞춰서 복장부터 신경쓰고, 매일 아침 호텔방을 나설 때에는 객실청소해주시는 분들의 Tip으로 1달러 짜리 지폐라도 침대위에 놓아둔다거나, 짐을 옮겨주는 벨보이에게도 작은 지폐를 쥐어 드리려고 했었다. 되도록 웃으려고 노력하고, 미팅에서는 최대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문서의 완결성을 거듭 점검하고,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그들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찾아서 입밖으로 소리내어 외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한미정상회담에서 대통령님이 하신 표현, “당신이 peacemaker가 되시면 나는 pacemaker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라는 표현은 요즘 말로 소위 라임(Rhyme)까지 맞추어 준비한 최고의 시의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싶다.
이러한 노력들은, 나중에 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식을 저변에 확대시키고, 나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해서, 해외영업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또 친구를 만드는 시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소위 “국뽕”에 차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가서는 갑질에 준하는 행동을 하고, 미국이나 서유럽에 가서는 주눅들거나 부러워하는 그런 행동들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당당함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행동한다면, 지금 유럽에 만연해 있는 인종주의의 차가운 시선속에서도, “아, 역시 Korean들은 대단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질과 능력은 세계시민들 랭킹에서 최상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나본 숱한 국적과 인종들 사이에서 단연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적능력과 상황파악/대처능력은 최상위권이다. 여담이지만, 체했을 때 옷핀으로 손톱 윗부분을 따서 핏방울을 내거나, 손바닥 가운데를 세게 누르는 것, 심지어 급할 때 현장에서 바느질을 직접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매우 신기해 한다. 우리는 중학교때부터 이런 걸 아는데 하면, 정말 놀란다~!)
3. 친구, 학생 그리고 순례자가 될 것
해외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다면, 해외영업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 더구나 그 친구가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에 쓴 글 (“해외영업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해외영업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brunch.co.kr)) 에서 보았듯이, 해외영업 업무의 정보의 불확실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친구만들기는, 나의 열린 마음과 개방적인 시선에서 시작된다. 나이, 성별, 외모, 종교, 신분, 사회적 위치 등을 가리지 않고, 그저 “Can you give me a Cigarette?” 하며 다가오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담배 한 개피 나눠피다 보면, 이런 저런 얘기가 시작되고, 국내에서보다 의외로 더 쉽게 편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된다. (註: 유럽같은 곳은 담배값이 비싸서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던데, 잘못해서 어른으로 보이는 덩치 큰 청소년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다가는 잘못하면 경찰에 신고될 수 있다는 것도 조심!)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내가 모르는 주제와 상황을 알게 되고, 이것을 찾아보다 보면, 그날 만났던 사람이 속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책이나 TV들에는 잘 나오지 않는 내밀한 그들만의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이해하게 된다. 누구는, 내 앞에서 자기 회사의 정책과 경영진들 흉을 보기도 하고, 누구는 자기 나라 대통령(혹은 총리)을 원망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엄격한 이슬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압박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은, 내가 국외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들은 실제로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기도 하지만, 실제 그 나라의 시장상황과, 접근 방식에 대한 정보와 시사점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먼저 좋은 친구가 될 것!
그리고 절대로 나의 주관적 의견을 대놓고 피력하지 말 것. 내가 자라고 배워 오고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환경에서 형성된 내 의견과 경험은, 그들에게는 역시 그저 낯설고 신기할 뿐이기 때문에, 나의 잣대로 그 나라와 사회와 내가 만나는 회사들을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나는 그 나라를 잠시 스쳐가는 순례자일 뿐이다 라는 태도를 가지면, 약속을 자주 뒤집거나, 약속 시간에 늦은 일을 당연히 하는 등의 경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이자 기회로 남는다.



4. 지구별을 여행하는 사람 & 세계 시민
자꾸 출장을 다니다 보면, 환승공항에서 두 번 이상을 마주치게 되는 기이한 인연도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이상하게 꼭 공항에 몇 군데 있지도 않는 흡연장소에서 마추치게 되기도 한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이 금연의 시대에!) 그렇게 해서 명함 교환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들처럼 손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갑자기 맞이해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잘 따라하는 나를 보고 웃으며 그들이 마음을 열었던 적도 있다. 집으로 초대받아 저녁을 대접받는 최고의 환대를 위해서 옷을 차려입고 그의 아내를 위한 큰 꽃다발까지 사들고 갔는데, 귀한 음식이니 나 혼자 다 먹어야 한다고 접시에 가득 담아 준 “소뇌찜” (말 그대로 소의 뇌를 양념과 함께 쪄 낸 것)을 보고는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던 그 찰나의 짧은 순간, 요리한 그의 아내를 생각해서 맛있다는 표정으로 먹어주는 내게, 나중에 그 친구가 한 말, “나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음식이야”.

어느 나라에서는, 당시에 내전으로 고통받던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을 만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옆, 작은 관목들이 자라는 풀밭에서, 덮고 있던 외투들과 작은 담요들로 추위를 막으면서 아침에 휴게소 광장에 나와 일종의 구걸을 하던, 어떤 아저씨와 그가 안고 있던 큰 눈망울의 아기를 보았었다. 현지인 친구를 통해서 약 십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지폐를 드렸더니, 너무도 좋아하던 그 얼굴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서 시리아라는 빛나는 문명을 구가했던 나라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우리는 토요일 일요일이 주말이지만, 어느 나라는 수,목을 쉬기도 하고, 어디는 금,토를 쉬기도 한다. 내가 쉴 때 업무가 중지되고, 그들이 쉴 때 업무가 중지되면, 우리는 일주일에 거의 사흘만 서로 일을 하는 셈이 되는데,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거기에 시차가 차례대로, 3시간, 5시간, 9시간, 미국과는 거의 13시간 나기 때문에, 결국 주7일 24시간 Standby하지 않으면 해외영업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노트북과 핸폰을 쥐고 살다시피 하면서, 스트레스 관리도 잘 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핸폰에서 띵동 소리가 나면, 또 무슨 메일이 왔을까, Brahim이 드디어 기다리던 답변을 보낸건가 아니면 Kishu가 보낸 건가, 궁금해서 결국 다시 일어나 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는 그런 시간들은, 자신의 건강관리,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탑승 대기 시간에 돌아보던 서점들에서는 당시 Reuters가 발간하던 “OUR WORLD NOW 201*” 이라는 사진집이 있었다. 전문 사진기자들이 세계 각지의 각 사안에 대한 취재과정에서 찍은 고품질의 사진들을 전면에 한 장씩 배치한 아주 단순하고도 심도깊은 생각을 주던 사진집이었는데, 아쉽게도 이제는 발간하지 않지만, 그런 사진 한 장이 주는 여러가지 생각거리들과, 관점의 확대는 해외영업맨으로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겠고, 동시에 나 자신의 시야 자체를 넓혀주는 귀한 학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동 시대에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속에서,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배워가며, 겪어 가며 사는 것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해외영업 업무는 힘든만큼 나중에 추억할 일이 많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註) 표지 사진은, 어떤 작은 나라에 있는 우리 대사관의 응접실 벽 사진.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밖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우리 세대는 생각하지 않을까? 해외에 나가면 컵라면 하나도 그렇게 소중하듯이, 나가보면 우리 나라가 그래도 얼마나 좋은 나라이고, 고마운 곳인지 알게 된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겠지만.
진성민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helasttrumpet
해외영업 업무를 처음 시작할 때, 회사 선배님들이 내게 물었던 첫 질문이 기억난다. “너 혼자 나가서 볼펜 한 자루 팔 수 있겠냐?” (보고 싶은 김성우 대리님!) 나는 당시는 그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조차 하지 못했었다. 당시에 이해하기로는, 파는 물건의 종류와 가치를 불문하고, 해외영업 업무 역시 Sales의 일종이며, 무역의 여러가지 복잡한 절차와, 매 단계에서 이뤄지는 내/외부적인 협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각각의 활동에 수반되는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철저히 익히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입사전부터 확보되어 있던 거래처들을 할당받아서 단순히 Follow up하는 것 외에, 스스로 거래처를 개척하고, 판로를 확보하며, 거래의 구조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점에 가장 큰 촛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30여년이 지나고 나니 나 역시 해외영업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해 줄 수 있는 질문과 조언이 생기는 것 같다.
1. “맨땅에 헤딩”하는 일을 할 자신이 있나요?
좀 점잖지 못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 말은 해외영업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내가 제일 먼저 묻고 싶은 말이다. 아주 오래 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백과사전이나 (당연히 12권 혹은 18권 등의 대 전집) 아동문학 전집 등을 팔던 책 장수는, 마다하는 어머니들에게 책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권유하고, 나중에는 설득해서 결국 그 책을 어떤 집의 책장에 들어 앉히는데 성공하곤 했다. 물론, 며칠 혹은 몇 달의 인내심과 각 집의 어머니들이 보인 태도와 관심의 정도에 주목하고, 얘깃거리를 준비하는 등의 치밀한 준비가 있었을 터이다.
해외영업 역시, 그와 비슷하게, 고객을 찾고, 방문하거나 연락할 때 마다 효과적인 설득을 해서, 나중에는 내가 팔고 싶은 제품과 서비스를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일인데, 시작점은 역시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구에게 처음 찾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Business는 Sales를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의 단어이지만, 어떤 형식이든 Sales라는 행위가 없는 Business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Sales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찾아 다니던 그 책장수처럼, 실질적으로 발품을 팔고, 모르던 사람과 만나 대화하고, 효과적인 설득을 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하는 일련의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해외영업 역시, 처음 어떻게 잠재 고객을 발굴할 것인가, 어떤 노력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에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문서작성이나 프리젠테이션 기술, 미팅과 협상의 기술, 세부적인 무역실무나 어학실력 등은 모두 그 이후의 일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척후병처럼 맨 앞에 나아가서, 결국 길을 내려는 도전 의지와 실행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끼리 서로들 푸념 혹은 격려처럼 하던 말들처럼,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해외영업의 단초를 열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도전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2. 작은 민간 외교관
해외에 초기에 출장을 다닐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고, 낯선데서 오는 새로움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싶고, 의욕적으로 알아보고 공부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함에도 아마 낯선 환경에서 오는 실수와 한국식 사고방식/행동방식으로 나를 만났던 외국 사람들을 당황시켰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야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다른 나라와 문화가 신기하고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내가 다른 나라에서 하는 작은 행동과 말들은, 나를 만났던 그 나라의 시민들에게, 나 개인이 아닌 우리나라를 각인시키는 측면이 있다. 가끔씩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Ugly Korean들도 있듯이, 내가 하는 크고 작은 말과 행동은, 한국사람을 만난 적이 별로 없었을 그 나라 사람에게 나 개인에 대한 기억보다는 “Korea”에 대한 기억으로 남기 쉽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점잖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그러면서도 Sharp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되도록 T.P.O. (Time, Place, Occasion)에 맞춰서 복장부터 신경쓰고, 매일 아침 호텔방을 나설 때에는 객실청소해주시는 분들의 Tip으로 1달러 짜리 지폐라도 침대위에 놓아둔다거나, 짐을 옮겨주는 벨보이에게도 작은 지폐를 쥐어 드리려고 했었다. 되도록 웃으려고 노력하고, 미팅에서는 최대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문서의 완결성을 거듭 점검하고,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그들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찾아서 입밖으로 소리내어 외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한미정상회담에서 대통령님이 하신 표현, “당신이 peacemaker가 되시면 나는 pacemaker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라는 표현은 요즘 말로 소위 라임(Rhyme)까지 맞추어 준비한 최고의 시의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싶다.
이러한 노력들은, 나중에 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식을 저변에 확대시키고, 나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해서, 해외영업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또 친구를 만드는 시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소위 “국뽕”에 차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가서는 갑질에 준하는 행동을 하고, 미국이나 서유럽에 가서는 주눅들거나 부러워하는 그런 행동들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당당함과 자부심을 잃지 않고 행동한다면, 지금 유럽에 만연해 있는 인종주의의 차가운 시선속에서도, “아, 역시 Korean들은 대단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질과 능력은 세계시민들 랭킹에서 최상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나본 숱한 국적과 인종들 사이에서 단연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적능력과 상황파악/대처능력은 최상위권이다. 여담이지만, 체했을 때 옷핀으로 손톱 윗부분을 따서 핏방울을 내거나, 손바닥 가운데를 세게 누르는 것, 심지어 급할 때 현장에서 바느질을 직접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매우 신기해 한다. 우리는 중학교때부터 이런 걸 아는데 하면, 정말 놀란다~!)
3. 친구, 학생 그리고 순례자가 될 것
해외에서 친구를 만들 수 있다면, 해외영업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 더구나 그 친구가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에 쓴 글 (“해외영업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해외영업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brunch.co.kr)) 에서 보았듯이, 해외영업 업무의 정보의 불확실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친구만들기는, 나의 열린 마음과 개방적인 시선에서 시작된다. 나이, 성별, 외모, 종교, 신분, 사회적 위치 등을 가리지 않고, 그저 “Can you give me a Cigarette?” 하며 다가오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담배 한 개피 나눠피다 보면, 이런 저런 얘기가 시작되고, 국내에서보다 의외로 더 쉽게 편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된다. (註: 유럽같은 곳은 담배값이 비싸서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던데, 잘못해서 어른으로 보이는 덩치 큰 청소년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다가는 잘못하면 경찰에 신고될 수 있다는 것도 조심!)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내가 모르는 주제와 상황을 알게 되고, 이것을 찾아보다 보면, 그날 만났던 사람이 속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책이나 TV들에는 잘 나오지 않는 내밀한 그들만의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이해하게 된다. 누구는, 내 앞에서 자기 회사의 정책과 경영진들 흉을 보기도 하고, 누구는 자기 나라 대통령(혹은 총리)을 원망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엄격한 이슬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압박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은, 내가 국외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들은 실제로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기도 하지만, 실제 그 나라의 시장상황과, 접근 방식에 대한 정보와 시사점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먼저 좋은 친구가 될 것!
그리고 절대로 나의 주관적 의견을 대놓고 피력하지 말 것. 내가 자라고 배워 오고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환경에서 형성된 내 의견과 경험은, 그들에게는 역시 그저 낯설고 신기할 뿐이기 때문에, 나의 잣대로 그 나라와 사회와 내가 만나는 회사들을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나는 그 나라를 잠시 스쳐가는 순례자일 뿐이다 라는 태도를 가지면, 약속을 자주 뒤집거나, 약속 시간에 늦은 일을 당연히 하는 등의 경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이자 기회로 남는다.



4. 지구별을 여행하는 사람 & 세계 시민
자꾸 출장을 다니다 보면, 환승공항에서 두 번 이상을 마주치게 되는 기이한 인연도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이상하게 꼭 공항에 몇 군데 있지도 않는 흡연장소에서 마추치게 되기도 한다. (참고로, 나는 아직도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이 금연의 시대에!) 그렇게 해서 명함 교환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들처럼 손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갑자기 맞이해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잘 따라하는 나를 보고 웃으며 그들이 마음을 열었던 적도 있다. 집으로 초대받아 저녁을 대접받는 최고의 환대를 위해서 옷을 차려입고 그의 아내를 위한 큰 꽃다발까지 사들고 갔는데, 귀한 음식이니 나 혼자 다 먹어야 한다고 접시에 가득 담아 준 “소뇌찜” (말 그대로 소의 뇌를 양념과 함께 쪄 낸 것)을 보고는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던 그 찰나의 짧은 순간, 요리한 그의 아내를 생각해서 맛있다는 표정으로 먹어주는 내게, 나중에 그 친구가 한 말, “나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음식이야”.

어느 나라에서는, 당시에 내전으로 고통받던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을 만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옆, 작은 관목들이 자라는 풀밭에서, 덮고 있던 외투들과 작은 담요들로 추위를 막으면서 아침에 휴게소 광장에 나와 일종의 구걸을 하던, 어떤 아저씨와 그가 안고 있던 큰 눈망울의 아기를 보았었다. 현지인 친구를 통해서 약 십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지폐를 드렸더니, 너무도 좋아하던 그 얼굴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서 시리아라는 빛나는 문명을 구가했던 나라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우리는 토요일 일요일이 주말이지만, 어느 나라는 수,목을 쉬기도 하고, 어디는 금,토를 쉬기도 한다. 내가 쉴 때 업무가 중지되고, 그들이 쉴 때 업무가 중지되면, 우리는 일주일에 거의 사흘만 서로 일을 하는 셈이 되는데,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거기에 시차가 차례대로, 3시간, 5시간, 9시간, 미국과는 거의 13시간 나기 때문에, 결국 주7일 24시간 Standby하지 않으면 해외영업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노트북과 핸폰을 쥐고 살다시피 하면서, 스트레스 관리도 잘 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핸폰에서 띵동 소리가 나면, 또 무슨 메일이 왔을까, Brahim이 드디어 기다리던 답변을 보낸건가 아니면 Kishu가 보낸 건가, 궁금해서 결국 다시 일어나 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는 그런 시간들은, 자신의 건강관리,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탑승 대기 시간에 돌아보던 서점들에서는 당시 Reuters가 발간하던 “OUR WORLD NOW 201*” 이라는 사진집이 있었다. 전문 사진기자들이 세계 각지의 각 사안에 대한 취재과정에서 찍은 고품질의 사진들을 전면에 한 장씩 배치한 아주 단순하고도 심도깊은 생각을 주던 사진집이었는데, 아쉽게도 이제는 발간하지 않지만, 그런 사진 한 장이 주는 여러가지 생각거리들과, 관점의 확대는 해외영업맨으로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겠고, 동시에 나 자신의 시야 자체를 넓혀주는 귀한 학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동 시대에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속에서,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배워가며, 겪어 가며 사는 것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해외영업 업무는 힘든만큼 나중에 추억할 일이 많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註) 표지 사진은, 어떤 작은 나라에 있는 우리 대사관의 응접실 벽 사진.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밖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우리 세대는 생각하지 않을까? 해외에 나가면 컵라면 하나도 그렇게 소중하듯이, 나가보면 우리 나라가 그래도 얼마나 좋은 나라이고, 고마운 곳인지 알게 된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겠지만.
진성민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helasttrump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