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은 단순했지만, 질문은 달라야 했다
29살,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사실 그 시작은 단순했다.
회사가 싫었다. (사실 회사보다는 사람이겠지…) 환경이 힘들었고, 그래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 결심을 하고 난 뒤, 다음날부터는 “어떤 회사로 옮겨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취업난이 한창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매해 비슷한 말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가족들은 늘 똑같은 말을 해주셨다.
“원래 처음엔 다 힘든 거야. 어렵지.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
“거기서 또 적응하고 열심히 다니면 좋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질문은 다르게 해야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을 단순히 벗어나려는 게 아닌, 어떤 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극복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고 나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를 옮기더라도 어떤 포지션으로 옮기는지?
내가 했던 일과 연관성을 둘 건지 새로운 일을 할 건지? 새로운 일이라면 왜 관심을 가졌는지?
그때는 미처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나는 왜 이직을 고민했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사회초년생이었고, 당연히 시야는 좁았다. 결국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매일 마주했던 풍경은 마트였다. 진열대와 행사장, 그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
내가 접하는 외부인들은 대부분 식품 쪽 영업담당자들이었고, 간혹 축·수산 담당자들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 선택지는 식품 영업 분야로만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안에서 길을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퇴근을 하면 job 포털 사이트를 켜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면접의 언어 앞에서 작아지다
직장을 다니며 이력서를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면접은 평일에 진행이 되기에, 주말근무가 메인인
마트 같은 경우에는 연차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건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장에 앉으면 늘 같은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지금 직장에는 다니고 계신 거죠?”
“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요?”
솔직한 마음은 단순했다. “여기가 싫어서.” 하지만 그것을 면접의 언어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그냥 말끝을 흐리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면접관 앞에서는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돌이켜보면 정말 실수도 많았다. 회사명을 잘못 적어서 민망한 순간을 만들기도 했고, 블라인드 면접임에도 무심코 이름을 말해버린 적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왜 그만두려는지에 대한 나 스스로의 답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정작 나 자신에게도 명확한 이유가 없었으니, 면접에서 대답을 잇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 순간마다 나는 당황했고,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급하게 도망치듯 옮기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내몰았다.
지원했던 회사들의 결과는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상반기 내내 떨어졌다. 가지고 있던 영어 점수도 만료됐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는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 친하게 지내던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담당님 다니면서 시험 보러 다녀. 그거 다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치열하게 준비해 보자는 생각에, 점장님께 그만둔다고 말씀드리고 이직을 준비했다.
긴 회사생활은 아니었지만 퇴사 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입사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워낙 회사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려서 그런지 몰라도 인사팀과 지역 담당자, 주변 선배님들, 점장님들과도 점심이나 저녁을 많이 먹었었다. 본인의 매장으로 오라고 하신 분들도 있었고, 늦은 나이에 이직이 쉽지 않을 거라고 응원해 주는 분들도 있었고, 우리 농산팀의 여직원분들은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있었다. 아쉬움보다는 약간의 긴장감과 걱정을 가지고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사, 그리고 본격 준비의 시간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제출하는 영어성적을 다시 취득하였고, 가고 싶은 회사를 적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마트와 관련된 회사들을 찾았고 회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서류가 합격이 된 곳은 면접을 보러 다녔고, 쉽지 않은 취준생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면접에서 좀 쉽지 않았던 이유가,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허를 찌르는 질문이 많았고, 단순히 사이트에서 예상 질문만 찾은 나머지 깊게 생각을 하지 못했고 면접관 분들께 전에 회사의 이력을 질문을 받을 시 했다는 것은 많았지만, 어떤 고민을 거쳐서 그 과정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답을 쉽게 내지 못했다.
“OO 지원자분은 한 게 너무 많은데, 이걸 입사한 지 1년 만에 다 이룬 건가요.”
“네, 처음해 보는 일이 많았고 버겁기도 했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흠… 너무 짧은 시간인데…”
뭔가 더 콤팩트한 것이 필요했다. ‘내가 한 게 많습니다’가 아닌, 무엇을 배웠고 이 회사에서 어떻게 활용하겠다. 여기의 비즈니스 모델을 주축으로 운영하는 사업단에 내가 적재적소의 인재다! 한 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취업사이트에 가입해서 사람들끼리 모이는 면접 스터디에 들어갔다. 확실히 당시에 모임을 주도했던 인사팀을 지원하셨던 남자분이 진두지휘하며 우릴 이끌어 주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단히 많은 것을 경험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준비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실제 면접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서로 시뮬레이션해 보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스터디가 가르쳐준 것 (집단지성의 힘)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같은 회사를 공부해도 사람마다 접근 방식이 다 달랐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자료와 시각이 쏟아졌고, 똑같은 질문에도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 그 차이 속에서 나는 겸손해졌다. 혼자 준비할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세계였다.
집단지성의 힘은 대단했다.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내니, 한 사람이 낼 수 없는 깊이가 생겼다. 그때 느꼈다. 앞으로도 소통의 힘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의 내가 ‘조직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도 늘 떠오르는 출발점이 되었다.
면접장에서 느낀 회사의 공기
그리고 면접을 다니는 동안 자연스럽게 회사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나는 걸 보면, 채용 과정의 프로세스나 지원자 경험(포지셔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안내 메일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시간 약속을 지켰는지.
처음 마주친 직원의 인사 한마디, 대기 자리의 물 한 컵과 명찰 하나.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압박인지 대화인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는지.
결과는 언제쯤 알려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는지.
떨어졌다는 소식에도 “와줘서 고맙다”는 한 줄이 있었는지.
별것 아닌 디테일 같지만, 그런 것들이 그 회사의 공기를 만들었다. 채용은 사람을 뽑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지원자에게는 그 회사와의 첫인상이었다.
그 작디작은 디테일들이 말해 주는 건 결국 그 회사의 사람다운 온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되고 싶어, 자기소개를 이렇게 준비했다.
(사실 상대방의 기억에 남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세상에는 소중한 ‘금’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맛을 살리는 소금, 아름다움을 뽐내는 황금,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입니다. 저는 이번 하반기 OOO에 지원한 OOO입니다. 이 ‘지금’을 배움과 성장으로 증명해 조직에 기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뭔가 관심을 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나에게 멋있었던 문장이었다. 그때 같이 면접을 본 동기들이 아직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임팩트는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하냐”며 농담도 던졌으니 꽤 웃기기도 했나 보다.
짧은 시간에 많이 좌절도 했고, 합격만 시켜주면 정말 몸과 마음을 다해 다 갈아 넣겠습니다 하고 매일 기도했고, 면접 시 활용하려고 했던 말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 나 자신을 바보처럼 생각했던 몇 개월이 지나고, 결과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 아쉽게도, OOO 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되어…
– 안녕하세요. 이번 최종면접에서 OOO 님을…
많은 낙방도 있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O 씨 맞으시죠?”
“네!”
“네, 여기는 OO 인사팀입니다. 최종 합격 되셔서 전화드렸고, 입사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우와 정말요! 너무 감사합니다! 당연히 가야죠!!!”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직접 연락이 왔고,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 몇 군데 최종 결과가 남아 있었지만 바로 간다고 말씀드렸고, 그날의 기쁨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경력은 2년도 안 됐기 때문에 경력직으로 지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빠른 눈치와 수용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먼저 다가가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다.
그 모든 게 첫 직장이 내게 남겨준 아주 큰 자산이었다.
합격의 순간, 다시 시작선으로
스물아홉 살, 나는 다시 신입사원으로 새로운 길을 시작했다.
마트에서 일하던 때와는 다른 회사 생활은 또 다른 시련이자 도전, 그리고 성장의 시간이었다.
Super 커뮤니케이터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dsceo
결심은 단순했지만, 질문은 달라야 했다
29살,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사실 그 시작은 단순했다.
회사가 싫었다. (사실 회사보다는 사람이겠지…) 환경이 힘들었고, 그래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그 결심을 하고 난 뒤, 다음날부터는 “어떤 회사로 옮겨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취업난이 한창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매해 비슷한 말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가족들은 늘 똑같은 말을 해주셨다.
“원래 처음엔 다 힘든 거야. 어렵지.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
“거기서 또 적응하고 열심히 다니면 좋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질문은 다르게 해야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을 단순히 벗어나려는 게 아닌, 어떤 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극복할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고 나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를 옮기더라도 어떤 포지션으로 옮기는지?
내가 했던 일과 연관성을 둘 건지 새로운 일을 할 건지? 새로운 일이라면 왜 관심을 가졌는지?
그때는 미처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나는 왜 이직을 고민했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사회초년생이었고, 당연히 시야는 좁았다. 결국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매일 마주했던 풍경은 마트였다. 진열대와 행사장, 그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
내가 접하는 외부인들은 대부분 식품 쪽 영업담당자들이었고, 간혹 축·수산 담당자들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 선택지는 식품 영업 분야로만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안에서 길을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퇴근을 하면 job 포털 사이트를 켜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면접의 언어 앞에서 작아지다
직장을 다니며 이력서를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면접은 평일에 진행이 되기에, 주말근무가 메인인
마트 같은 경우에는 연차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건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면접이었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장에 앉으면 늘 같은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지금 직장에는 다니고 계신 거죠?”
“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나요?”
솔직한 마음은 단순했다. “여기가 싫어서.” 하지만 그것을 면접의 언어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그냥 말끝을 흐리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면접관 앞에서는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돌이켜보면 정말 실수도 많았다. 회사명을 잘못 적어서 민망한 순간을 만들기도 했고, 블라인드 면접임에도 무심코 이름을 말해버린 적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왜 그만두려는지에 대한 나 스스로의 답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정작 나 자신에게도 명확한 이유가 없었으니, 면접에서 대답을 잇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 순간마다 나는 당황했고,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급하게 도망치듯 옮기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내몰았다.
지원했던 회사들의 결과는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상반기 내내 떨어졌다. 가지고 있던 영어 점수도 만료됐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때는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 친하게 지내던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담당님 다니면서 시험 보러 다녀. 그거 다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치열하게 준비해 보자는 생각에, 점장님께 그만둔다고 말씀드리고 이직을 준비했다.
긴 회사생활은 아니었지만 퇴사 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입사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워낙 회사 게시판에 글을 많이 올려서 그런지 몰라도 인사팀과 지역 담당자, 주변 선배님들, 점장님들과도 점심이나 저녁을 많이 먹었었다. 본인의 매장으로 오라고 하신 분들도 있었고, 늦은 나이에 이직이 쉽지 않을 거라고 응원해 주는 분들도 있었고, 우리 농산팀의 여직원분들은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있었다. 아쉬움보다는 약간의 긴장감과 걱정을 가지고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사, 그리고 본격 준비의 시간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제출하는 영어성적을 다시 취득하였고, 가고 싶은 회사를 적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마트와 관련된 회사들을 찾았고 회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서류가 합격이 된 곳은 면접을 보러 다녔고, 쉽지 않은 취준생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면접에서 좀 쉽지 않았던 이유가,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허를 찌르는 질문이 많았고, 단순히 사이트에서 예상 질문만 찾은 나머지 깊게 생각을 하지 못했고 면접관 분들께 전에 회사의 이력을 질문을 받을 시 했다는 것은 많았지만, 어떤 고민을 거쳐서 그 과정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답을 쉽게 내지 못했다.
“OO 지원자분은 한 게 너무 많은데, 이걸 입사한 지 1년 만에 다 이룬 건가요.”
“네, 처음해 보는 일이 많았고 버겁기도 했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흠… 너무 짧은 시간인데…”
뭔가 더 콤팩트한 것이 필요했다. ‘내가 한 게 많습니다’가 아닌, 무엇을 배웠고 이 회사에서 어떻게 활용하겠다. 여기의 비즈니스 모델을 주축으로 운영하는 사업단에 내가 적재적소의 인재다! 한 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취업사이트에 가입해서 사람들끼리 모이는 면접 스터디에 들어갔다. 확실히 당시에 모임을 주도했던 인사팀을 지원하셨던 남자분이 진두지휘하며 우릴 이끌어 주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단히 많은 것을 경험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준비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실제 면접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서로 시뮬레이션해 보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스터디가 가르쳐준 것 (집단지성의 힘)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같은 회사를 공부해도 사람마다 접근 방식이 다 달랐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자료와 시각이 쏟아졌고, 똑같은 질문에도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 그 차이 속에서 나는 겸손해졌다. 혼자 준비할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세계였다.
집단지성의 힘은 대단했다.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내니, 한 사람이 낼 수 없는 깊이가 생겼다. 그때 느꼈다. 앞으로도 소통의 힘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의 내가 ‘조직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도 늘 떠오르는 출발점이 되었다.
면접장에서 느낀 회사의 공기
그리고 면접을 다니는 동안 자연스럽게 회사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기억나는 걸 보면, 채용 과정의 프로세스나 지원자 경험(포지셔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안내 메일이 얼마나 친절했는지, 시간 약속을 지켰는지.
처음 마주친 직원의 인사 한마디, 대기 자리의 물 한 컵과 명찰 하나.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압박인지 대화인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는지.
결과는 언제쯤 알려주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는지.
떨어졌다는 소식에도 “와줘서 고맙다”는 한 줄이 있었는지.
별것 아닌 디테일 같지만, 그런 것들이 그 회사의 공기를 만들었다. 채용은 사람을 뽑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지원자에게는 그 회사와의 첫인상이었다.
그 작디작은 디테일들이 말해 주는 건 결국 그 회사의 사람다운 온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되고 싶어, 자기소개를 이렇게 준비했다.
(사실 상대방의 기억에 남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세상에는 소중한 ‘금’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맛을 살리는 소금, 아름다움을 뽐내는 황금,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입니다. 저는 이번 하반기 OOO에 지원한 OOO입니다. 이 ‘지금’을 배움과 성장으로 증명해 조직에 기여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뭔가 관심을 받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나에게 멋있었던 문장이었다. 그때 같이 면접을 본 동기들이 아직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임팩트는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하냐”며 농담도 던졌으니 꽤 웃기기도 했나 보다.
짧은 시간에 많이 좌절도 했고, 합격만 시켜주면 정말 몸과 마음을 다해 다 갈아 넣겠습니다 하고 매일 기도했고, 면접 시 활용하려고 했던 말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 나 자신을 바보처럼 생각했던 몇 개월이 지나고, 결과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 아쉽게도, OOO 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되어…
– 안녕하세요. 이번 최종면접에서 OOO 님을…
많은 낙방도 있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2012년 10월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O 씨 맞으시죠?”
“네!”
“네, 여기는 OO 인사팀입니다. 최종 합격 되셔서 전화드렸고, 입사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우와 정말요! 너무 감사합니다! 당연히 가야죠!!!”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직접 연락이 왔고,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 몇 군데 최종 결과가 남아 있었지만 바로 간다고 말씀드렸고, 그날의 기쁨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경력은 2년도 안 됐기 때문에 경력직으로 지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빠른 눈치와 수용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먼저 다가가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다.
그 모든 게 첫 직장이 내게 남겨준 아주 큰 자산이었다.
합격의 순간, 다시 시작선으로
스물아홉 살, 나는 다시 신입사원으로 새로운 길을 시작했다.
마트에서 일하던 때와는 다른 회사 생활은 또 다른 시련이자 도전, 그리고 성장의 시간이었다.
Super 커뮤니케이터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dsce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