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리더와의 낯선 만남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발령받은 곳에 첫 출근했던 날이.
내 인생 첫 리더와의 첫 만남이었다. 전날 간단히 전화드리고, 아침 7시에 매장에 도착했다.
나름 일찍 도착했지만 매장은 이미 분주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근엄한 표정의 분이 계셨다. 인사를 드리자,
“이번 신입사원인가요?”
“네, 맞습니다!”
“옷 갈아입고 같이 진열합시다. 연수 때 뭐 하는지는 배웠죠?”
사실 조금 황당했다. 이름이나 사는 곳, 간단한 근황을 묻는 게 먼저일 줄 알았다. 하지만 어쨌든 일하러 온 것이니 일부터 하는 법! 정장을 갈아입고 과일, 야채, 일배 제품 등을 진열했다.
(이후로는 정장을 입고 출근한 적이 없다. 매장에서 정장은 꽤 어색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9시 전에 아침 조회를 했다. 점장님은 가운데 서 계셨고, 좌우로 담당들과 여직원 25명 정도가 서 있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늘부터 OO점으로 오게 된 OOO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수가 이어졌고, 특히 환영해 주던 다섯 명의 여사원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그들의 새 담당이었다. 오랜 공백 끝에 담당이 생겨서 기뻐했던 것이다.
점장님과의 원포인트 레슨
점장님은 과일 담당 경력이 길었고, 본사 CS팀을 거쳐 매장 점장으로 내려온 분이었다. 처음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경험담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셨고, 특히 과일 발주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게 지시했다.
“연수 때 배우지 않았어요? 이걸 왜 몰라요?”
이 말은 나를 가장 속상하게 했다. 연수에서는 책으로만 대충 훑었을 뿐, 실제 프로그램은 다뤄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다짐했다. “나는 절대 후배에게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점장님은 과일 쪽은 능숙했지만, 다른 카테고리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근부터 퇴근까지 과일과 야채 원포인트 레슨만 반복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가 커졌다.
공산 선배의 따뜻한 조언
그럴 때마다 나를 도와준 분이 있었다. 공산 담당 선배였다.
“점장님요, 연수 막 끝내고 바로 온 아가 어찌 다 기억하겠습니까,
제가 알려줄 테니, 지금은 그냥 놔두이소.”
그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선배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였는데, 그 목소리만 들어도 괜히 안심이 됐다.
“OO담당님, 점장 좀 짜증 나지에?
“아.. 아닙니다!”
“뭐 또 아닌겨 나도 짜증 나는데~~~ 다행히 공산 쪽은 내가 많이 알아가~
내한테는 그런 거 좀 적기는 한데. 그냥 그러려니 하소.”
그때 당시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마웠다. 그냥 내 기분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위안이 되는 기분은
그때 당시 처음 느껴봤다.
“그 담당님은 대학교 졸업한고요?”
“네 졸업하고 바로 입사했습니다.”
“열심히 살았네, 내는 일반 매장에서 고기 자르다가 회사원으로 들어와서 할 생각 없냐고 해서 들어왔수.
내 머리는 똑똑하지는 않은데 경험이 많으니까 내가 아는 건 알려주게.”
“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는 단순히 업무만 알려준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줬다. 데이터 보는 법, 발주 방식, 협력업체와 소통하는 법, 여사원 관리, 회사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무엇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같이 술을 먹을 때마다 공부할걸 그랬다는 선배님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멋지고 대단한 분이었다.
짧은 2년 동안 나는 이 선배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의 나를 만든 큰 자산이 되었다.
다섯 명의 여전사들
내가 담당하던 팀에는 다섯 명의 여사원이 있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 A여사원 : 손이 빠르고 진열을 잘하지만 실수가 많다.
– B여사원 : 매장 안팎, 손님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위기 메이커’.
– C여사원 : 나이가 가장 많아 중립적인 역할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신 거 같다.)
– D여사원 : 꼼꼼하고 가정적이며 책임감 있는 스타일.
– E여사원 : 파견직이지만 쌀 *도정 전문가. 고객 신뢰가 두터움.
*도정 : 벼에서 껍질과 겉껍질층을 벗겨내는 작업, 먹기 좋은 흰쌀로 만드는 과정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쌀은 대부분 도정된 상태가 기본이며, 소비자 취향에 따라 현미,
반 도정미 등 도정 정도를 선택이 가능하다.
(도정하면 소화와 흡수가 쉬워서 누구나 먹을 수 있고, 밥맛의 단맛이 살아난다.)
이들은 능력도 뛰어났지만, 갈등도 잦았다.
– 아침 조회 때마다 ‘내일은 누가 오전 근무냐 (오전 근무는 오픈 준비부터 진열까지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로 말다툼이 시작되곤 했다. 서로 먼저 나서기는 싫고, 눈치만 보던 순간이 자주 있었다.
– A여사원이 발주를 잘못 넣어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매장이 오픈하고 나서도 진열을 한 적이
많았고, 그때의 불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B여사원이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는 걸 두고, ‘일은 안 하고 수다만 떤다’는 질투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 C여사원은 ‘담당님 중간에서 매번 말리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라는 부담을 토로했다.
– D여사원은 일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직접 고쳐버려서, 동료들이 “우리 일 믿질 못한다’는 불만을
갖기도 했다.
-E여사원은 도정 전문가로 오셨지만, 왜 파견직이 우리보다 대접을 받느냐는 질투 섞인 말이 오가기도 했다.
갈등을 푸는 방법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때 공산 선배가 다시 조언을 해주었다.
“별거 없는 거 아이가? 사원들 단점 이야기해 봤자 답 없다. 장점을 계속 이야기해 봐라.
네가 조명 비춰주고, 사원들이 주인공이 되면 된다.”
그 말이 유레카 같았다. 그래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는 대신,
각자의 장점을 강조하며 별명을 붙여 불렀다.
– A여사원 → 속도의 여왕
– B여사원 → 고객 응대의 달인
– C여사원 → 균형 잡힌 중재자
– D여사원 → 생활력 강한 책임자
– E여사원 → 현장 전문가
별명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강점을 다시 확인하는 신호였다.
“아, 나는 이런 점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각자가 느끼면서 갈등이 잦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보다 눈치도 덜 보고, 편하게 얘기하는 기운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각자가 잘하는 일을 맡아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가끔 싸움은 났다. 하지만 예전처럼 오래가지는 않았다.)
작은 칭찬과 인정이 팀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갈등은 줄고, 팀워크가 싹트기 시작했다.
리더십을 배우다
점장님은 내게 “반면교사”였다.
공산 선배와 여사원들은 내게 “함께 성장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지금도 믿는다.
리더는 화려한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을 밝혀주는 조명 감독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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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리더와의 낯선 만남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발령받은 곳에 첫 출근했던 날이.
내 인생 첫 리더와의 첫 만남이었다. 전날 간단히 전화드리고, 아침 7시에 매장에 도착했다.
나름 일찍 도착했지만 매장은 이미 분주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근엄한 표정의 분이 계셨다. 인사를 드리자,
“이번 신입사원인가요?”
“네, 맞습니다!”
“옷 갈아입고 같이 진열합시다. 연수 때 뭐 하는지는 배웠죠?”
사실 조금 황당했다. 이름이나 사는 곳, 간단한 근황을 묻는 게 먼저일 줄 알았다. 하지만 어쨌든 일하러 온 것이니 일부터 하는 법! 정장을 갈아입고 과일, 야채, 일배 제품 등을 진열했다.
(이후로는 정장을 입고 출근한 적이 없다. 매장에서 정장은 꽤 어색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9시 전에 아침 조회를 했다. 점장님은 가운데 서 계셨고, 좌우로 담당들과 여직원 25명 정도가 서 있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늘부터 OO점으로 오게 된 OOO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수가 이어졌고, 특히 환영해 주던 다섯 명의 여사원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그들의 새 담당이었다. 오랜 공백 끝에 담당이 생겨서 기뻐했던 것이다.
점장님과의 원포인트 레슨
점장님은 과일 담당 경력이 길었고, 본사 CS팀을 거쳐 매장 점장으로 내려온 분이었다. 처음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경험담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셨고, 특히 과일 발주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게 지시했다.
“연수 때 배우지 않았어요? 이걸 왜 몰라요?”
이 말은 나를 가장 속상하게 했다. 연수에서는 책으로만 대충 훑었을 뿐, 실제 프로그램은 다뤄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다짐했다. “나는 절대 후배에게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점장님은 과일 쪽은 능숙했지만, 다른 카테고리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근부터 퇴근까지 과일과 야채 원포인트 레슨만 반복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가 커졌다.
공산 선배의 따뜻한 조언
그럴 때마다 나를 도와준 분이 있었다. 공산 담당 선배였다.
“점장님요, 연수 막 끝내고 바로 온 아가 어찌 다 기억하겠습니까,
제가 알려줄 테니, 지금은 그냥 놔두이소.”
그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선배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였는데, 그 목소리만 들어도 괜히 안심이 됐다.
“OO담당님, 점장 좀 짜증 나지에?
“아.. 아닙니다!”
“뭐 또 아닌겨 나도 짜증 나는데~~~ 다행히 공산 쪽은 내가 많이 알아가~
내한테는 그런 거 좀 적기는 한데. 그냥 그러려니 하소.”
그때 당시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마웠다. 그냥 내 기분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위안이 되는 기분은
그때 당시 처음 느껴봤다.
“그 담당님은 대학교 졸업한고요?”
“네 졸업하고 바로 입사했습니다.”
“열심히 살았네, 내는 일반 매장에서 고기 자르다가 회사원으로 들어와서 할 생각 없냐고 해서 들어왔수.
내 머리는 똑똑하지는 않은데 경험이 많으니까 내가 아는 건 알려주게.”
“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는 단순히 업무만 알려준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줬다. 데이터 보는 법, 발주 방식, 협력업체와 소통하는 법, 여사원 관리, 회사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무엇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같이 술을 먹을 때마다 공부할걸 그랬다는 선배님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멋지고 대단한 분이었다.
짧은 2년 동안 나는 이 선배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의 나를 만든 큰 자산이 되었다.
다섯 명의 여전사들
내가 담당하던 팀에는 다섯 명의 여사원이 있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 A여사원 : 손이 빠르고 진열을 잘하지만 실수가 많다.
– B여사원 : 매장 안팎, 손님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위기 메이커’.
– C여사원 : 나이가 가장 많아 중립적인 역할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신 거 같다.)
– D여사원 : 꼼꼼하고 가정적이며 책임감 있는 스타일.
– E여사원 : 파견직이지만 쌀 *도정 전문가. 고객 신뢰가 두터움.
*도정 : 벼에서 껍질과 겉껍질층을 벗겨내는 작업, 먹기 좋은 흰쌀로 만드는 과정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쌀은 대부분 도정된 상태가 기본이며, 소비자 취향에 따라 현미,
반 도정미 등 도정 정도를 선택이 가능하다.
(도정하면 소화와 흡수가 쉬워서 누구나 먹을 수 있고, 밥맛의 단맛이 살아난다.)
이들은 능력도 뛰어났지만, 갈등도 잦았다.
– 아침 조회 때마다 ‘내일은 누가 오전 근무냐 (오전 근무는 오픈 준비부터 진열까지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로 말다툼이 시작되곤 했다. 서로 먼저 나서기는 싫고, 눈치만 보던 순간이 자주 있었다.
– A여사원이 발주를 잘못 넣어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매장이 오픈하고 나서도 진열을 한 적이
많았고, 그때의 불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B여사원이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는 걸 두고, ‘일은 안 하고 수다만 떤다’는 질투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 C여사원은 ‘담당님 중간에서 매번 말리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라는 부담을 토로했다.
– D여사원은 일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직접 고쳐버려서, 동료들이 “우리 일 믿질 못한다’는 불만을
갖기도 했다.
-E여사원은 도정 전문가로 오셨지만, 왜 파견직이 우리보다 대접을 받느냐는 질투 섞인 말이 오가기도 했다.
갈등을 푸는 방법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때 공산 선배가 다시 조언을 해주었다.
“별거 없는 거 아이가? 사원들 단점 이야기해 봤자 답 없다. 장점을 계속 이야기해 봐라.
네가 조명 비춰주고, 사원들이 주인공이 되면 된다.”
그 말이 유레카 같았다. 그래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는 대신,
각자의 장점을 강조하며 별명을 붙여 불렀다.
– A여사원 → 속도의 여왕
– B여사원 → 고객 응대의 달인
– C여사원 → 균형 잡힌 중재자
– D여사원 → 생활력 강한 책임자
– E여사원 → 현장 전문가
별명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강점을 다시 확인하는 신호였다.
“아, 나는 이런 점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하고 각자가 느끼면서 갈등이 잦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보다 눈치도 덜 보고, 편하게 얘기하는 기운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각자가 잘하는 일을 맡아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가끔 싸움은 났다. 하지만 예전처럼 오래가지는 않았다.)
작은 칭찬과 인정이 팀의 공기를 바꿔놓았다. 갈등은 줄고, 팀워크가 싹트기 시작했다.
리더십을 배우다
점장님은 내게 “반면교사”였다.
공산 선배와 여사원들은 내게 “함께 성장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지금도 믿는다.
리더는 화려한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을 밝혀주는 조명 감독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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