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인도에 친구 결혼식을 갔는데, 그게 내 마지막 여행이 될 줄 몰랐다.
당시 아시아인의 입국 심사는 터무니없이 길어졌고,
어딜 가도 당당했던 대한민국 여권보다 중동 거주비자가 더 큰 효력을 발휘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아부다비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로스터(비행 스케줄)의 빈칸은 점점 길어졌다.
어느 날부터 마트와 약국을 제외하곤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친구들과 영상통화로 요가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2주를 버텼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졌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내게 잘 맞았다.
팀으로 움직이고, 섬세함과 온기가 결과를 바꾸는 일.
나는 그 일을 좋아했고 꽤 잘했다.
다만 성장의 방향을 그리기 어려웠다.
단순한 자격요건과 반복되는 업무는 생각을 느슨하게 만들었고,
대화의 깊이가 얕아지는 순간이 잦았다.
내가 원하는 배움의 속도와는 달랐다.
처음부터 6년을 비행할 생각은 아니었다.
해외 생활을 좋아하던 나는 ‘3~5년쯤 비행하며 다음에 살 나라를 정하자’고 계획했다.
마음에 드는 도시가 몇 군데 생겼지만 다른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거기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외국어 실력과 서비스직 경험뿐이었고,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감이 왔다.
해외 생활에 언어는 필수지만, 결정적인 이직과 생계를 위해선 기술이 필요했다.
물론 겁이 안 난 건 아니다.
걱정은 how보다 what에 있었다.
무엇을 배울지가 더 큰 문제였다.
6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생각이 해이해진 나는 늘 뒷전으로 미뤘다.
그리고 결국, 회사 인원의 3분의 2가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이 왔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 메일을 받는 순간, 진짜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 순간 즐기며 비행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세계를 누볐다.
아쉬움보다 선명한 문장이 앞섰다.
“이제 움직여야 할 때다.”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2020년 7월 1일 귀국.
그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6년 동안 달려왔으니 회복과 준비의 시간을 가지자.
쉬면서 어떤 전문 기술을 배울지 결정하기로 했다.
다시 해외에 나갈 생각이었기에, 언어의 장벽 없이 어디서든 쓸 수 있는 기술이면 좋겠다.
비행에서 느꼈던 정성적인 리워드보다 눈에 보이는 정량적 결과물이 있으면 더 좋겠다.
조건을 좁혀가던 어느 날,
TV에서 “이제는 IT가 대세”라는 말이 흘렀다.
문득 떠올랐다.
또래에 비해 나는 컴퓨터를 잘 다뤘다.
중학교 수행평가 때 나모 웹에디터로 혼자 독보적인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었다.
어라? 나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프로그래밍 언어도 결국 컴퓨터와의 의사소통 아닌가.
유레카. 그렇게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목표로 두고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주위에선 걱정했다.
왜 굳이 ‘지금까지의 나’를 떠나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려 하냐고.
내 언어 능력과 승무원 경험을 살리면 새로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초보가 된다는 건 체면과 자존심을 함께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였고,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이 있었다.
정부지원교육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4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엔 실습과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오류 메시지와 씨름하는 밤이 길었지만,
화면 어딘가에 “Hello”가 찍히던 첫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환대받는 기분이었다.
귀국 후 9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웹 퍼블리셔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닫힌 하늘의 문은
내게 새로운 방향을 알려줬다.
하늘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 덕분에, 웬만한 변수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기내에서 겪은 낯선 상황들은 어떤 순간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했다.
다양한 배경의 승객과 나눴던 대화는 디자이너·개발자·기획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왜 전혀 다른 길로 가냐고?
나는 내 인생의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될 것을 믿는다.
지금은 전혀 연결되지 않아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내 모든 경험이 하나가 되어 빛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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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인도에 친구 결혼식을 갔는데, 그게 내 마지막 여행이 될 줄 몰랐다.
당시 아시아인의 입국 심사는 터무니없이 길어졌고,
어딜 가도 당당했던 대한민국 여권보다 중동 거주비자가 더 큰 효력을 발휘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아부다비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로스터(비행 스케줄)의 빈칸은 점점 길어졌다.
어느 날부터 마트와 약국을 제외하곤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친구들과 영상통화로 요가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2주를 버텼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졌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내게 잘 맞았다.
팀으로 움직이고, 섬세함과 온기가 결과를 바꾸는 일.
나는 그 일을 좋아했고 꽤 잘했다.
다만 성장의 방향을 그리기 어려웠다.
단순한 자격요건과 반복되는 업무는 생각을 느슨하게 만들었고,
대화의 깊이가 얕아지는 순간이 잦았다.
내가 원하는 배움의 속도와는 달랐다.
처음부터 6년을 비행할 생각은 아니었다.
해외 생활을 좋아하던 나는 ‘3~5년쯤 비행하며 다음에 살 나라를 정하자’고 계획했다.
마음에 드는 도시가 몇 군데 생겼지만 다른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거기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외국어 실력과 서비스직 경험뿐이었고,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감이 왔다.
해외 생활에 언어는 필수지만, 결정적인 이직과 생계를 위해선 기술이 필요했다.
물론 겁이 안 난 건 아니다.
걱정은 how보다 what에 있었다.
무엇을 배울지가 더 큰 문제였다.
6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생각이 해이해진 나는 늘 뒷전으로 미뤘다.
그리고 결국, 회사 인원의 3분의 2가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이 왔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 메일을 받는 순간, 진짜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 순간 즐기며 비행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세계를 누볐다.
아쉬움보다 선명한 문장이 앞섰다.
“이제 움직여야 할 때다.”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2020년 7월 1일 귀국.
그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6년 동안 달려왔으니 회복과 준비의 시간을 가지자.
쉬면서 어떤 전문 기술을 배울지 결정하기로 했다.
다시 해외에 나갈 생각이었기에, 언어의 장벽 없이 어디서든 쓸 수 있는 기술이면 좋겠다.
비행에서 느꼈던 정성적인 리워드보다 눈에 보이는 정량적 결과물이 있으면 더 좋겠다.
조건을 좁혀가던 어느 날,
TV에서 “이제는 IT가 대세”라는 말이 흘렀다.
문득 떠올랐다.
또래에 비해 나는 컴퓨터를 잘 다뤘다.
중학교 수행평가 때 나모 웹에디터로 혼자 독보적인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었다.
어라? 나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프로그래밍 언어도 결국 컴퓨터와의 의사소통 아닌가.
유레카. 그렇게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목표로 두고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주위에선 걱정했다.
왜 굳이 ‘지금까지의 나’를 떠나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려 하냐고.
내 언어 능력과 승무원 경험을 살리면 새로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초보가 된다는 건 체면과 자존심을 함께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였고,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이 있었다.
정부지원교육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4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엔 실습과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오류 메시지와 씨름하는 밤이 길었지만,
화면 어딘가에 “Hello”가 찍히던 첫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환대받는 기분이었다.
귀국 후 9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웹 퍼블리셔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닫힌 하늘의 문은
내게 새로운 방향을 알려줬다.
하늘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 덕분에, 웬만한 변수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기내에서 겪은 낯선 상황들은 어떤 순간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했다.
다양한 배경의 승객과 나눴던 대화는 디자이너·개발자·기획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왜 전혀 다른 길로 가냐고?
나는 내 인생의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될 것을 믿는다.
지금은 전혀 연결되지 않아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내 모든 경험이 하나가 되어 빛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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