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부장의 조언
작년 9월 회사를 옮겼다. 사실 원래는 이직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전 직장은 내게 어쩌면 벅찬 회사 중 하나였다. 학사경고를 두 번 받고 인턴·학보사 경험도 전무했던 내게 밥벌이 기회를 줬다. 회사에서 퇴사자가 많아져 6개월 동안 출입처가 3~4번 교체되고 어느 부장한테 육성으로 쌍욕을 먹고 온갖 짬처리를 당하고 부서장이 차장으로 강등되고 등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이 일을 경험하고 남들처럼 사회생활하면서 살고 있다.
실은 여러 선배들로부터 ‘열심히해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나름 좋은 회사다”, “업계에 나름대로 인지도도 있다”, “공채가 오래 회사를 다녀야 하는데 이리저리 나가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던 선배들은 술에 꽤나 취할 때가 되면 “빠르게 이직해라”고 진심을 털어놨다. 술 취하면 진심이 나오는 법이다. 나름대로 후배를 아끼는 그들만의 방식이겠다.
결정적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건 일요일 부서장과의 점심 식사에서다. 작년 이 맘때 쯤으로 기억한다. 몇 개월 전 부장에서 팀장으로 직급이 강등된 그는 그날따라 눈이 몹시 부어있는 상태였다. 흰자위과 빨갛게 충열돼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닌지 싶었다. 전날 크게 울었던 걸까, 무슨 병에 걸렸던 걸까. 가뜩이나 그가 편집국장으로부터 찍혔다는 말이 요 며칠새 회사 내에서 떠들석하게 돌았다.
‘박 기자는 기자 계속할 거야?’
잽인 줄 알고 앞에 있는 손으로 툭 받으려고 했는데 훅이 들어와 머리골이 띵한 상태랄까. 평상시에 혼잣말하면서 나름 심오한 생각들도 많이 했었는데 하필 이건 생각을 못했었다. 이 일을 계속할 건지에 대해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것 자체를 머릿 속에 떠올린 적이 없다.
다른 일을 하려면 기자 일을 관두고 취업 준비를 또 해야 하는데 취업난에 좀처럼 쉽겠나. 시간만 허비하고 이래저래 낭인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든다. ‘좋아서 만나냐, 만나고 있으니 만나지.’ 어느 집안 안주인께서 바깥양반과 헤어지지 않는 이유가 떠올랐다.
“넵. 그냥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뭐 이래저래 적성에도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고요.”
“그럼 딴 곳 알아봐.”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눈이 충열된 직장 상사. 회사에서 찍혔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점심식사 때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말한다. ‘넵 알겠습니다’ 정도로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대화를 다른 주제로 넘기기도 애매했다. 조용히 순대국을 퍼 먹었다.
집에 돌아와 아랑 카페에 들어갔다. 언론판 사람인 혹은 링커리어로 이해하면 된다. 나는 원래 어느 사이트든 자동 로그인을 해 둔다. 오랜만에 들어가서인지 새롭게 로그인을 해야 했다. 채용정보방을 확인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곳에 무차별적으로 지원서를 남발하던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직장보다 더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곳, 급여 수준이 좋은 곳을 선택해 지원서를 썼다. 그중 하나가 지금 회사다.
②1년만 자소서 작성
다음 카페 아랑에서 채용 공고방에 들어갔다. 인턴이나 단기 계약직을 뽑는다는 공고가 게재돼 있었으나 직장에 다니고 있는 만큼 굳이 클릭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업계 인지도가 높거나 급여 수준이 높은 곳만 찾으면 됐다. 대체로 인지도와 급여 수준은 비례한다. 합집합(OR)과 교집합(AND)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A회사와 B회사의 수습기자 채용 공고문을 확인했다. 사이트에 들어가 자기소개서 문항을 확인하고 쓸 채비에 들어섰다. 뭐라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면접관은 기자 일을 멀쩡히 하고 있는 내가 수습기자로 입사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할테다. 기자 일을 왜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으면서 굳이 연차를 깎아 수습기자로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써야 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몇 시간 전 점심식사에서 빨간 눈의 부장이 이직하라고 했다. 까라면 까는 게 이 업계 문화 아닌가. 그래서 이직한다’고 쓰면 당연히 안 된다. 이런저런 말을 지어내야 했다. 다행히 당시 다른 회사 수습기자로 입사한 동기인 형이 한 명 있었다. 그 형에게 물어 자기소개서를 받았다.
내용은 대개 비슷하게 작성했다. 기자 일을 하고 있지만 한 가지 갈증이 있었다. 정말로 나는 일을 잘하고 싶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 그러기 위해 일 잘하는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A회사와 B회사는 좋은 선배가 있다. 그래서 지원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A회사는 경어로, B회사는 평어로 썼다.
두 곳 다 서류에 붙었다. 나름 1년 일한 게 도움이 됐겠거니 싶었다. 나름 우쭐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얼마 전 어느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언론사들은 웬만하면 서류를 다 붙여준다고 한다. 자기소개서를 깔끔하게 쓰기만 하면 된다는 후문이다. 평어로, 단문으로 쓰면 깔끔하게 보인다. GPT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아보자.
③필기시험 참패
조선미디어그룹의 온라인 경제매체인 A회사의 필기 시험은 8월 24일 토요일 진행됐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3000원짜리 손풍기를 들고 이마에 흐른 땀을 식히며 집에서 나섰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소는 서울역 인근의 어느 빌딩 5층과 6층이었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필기시험 논제를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언론사의 동료 기자를 만났다. 취재 현장에서 만났으면 자연스러웠을 사이였지만 이날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뭔가 어색했다. 간단히 서로의 건투를 빌었다. 여담으로 내가 건투를 빈 그 기자는 약 한 시간 뒤, 필기 시험이 시작된 지 약 5분이 흘렀을 무렵 자리를 떠났다. 신분증을 놓고 왔던 것.
필기 시험은 상식과 논술로 구성된다. 각 배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논술이 중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논술은 두 가지 논제 중 하나를 택해서 1000~1400자 분량으로 작성하는 거였다. 첫 번째 논제는 개고기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적절하느냐였고 두 번째 논제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에 대한 찬반이었다.
나는 당시 IT부서 기자였다.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으나 IT를 취재하는 기자는 IT 외 다른 분야의 이슈를 잘 모른다. 물론 당시 나는 IT도 잘 모르는 IT 기자이긴 했다. 두산밥캣, 이름만 보면 반려동물 사료를 만드는 기업처럼 보이는 회사를 잘 알리가 없다. 반면 개고기 식용 금지 법제화에 대한 찬반은 다루기는 좋은 주제다. 토론 동아리에서 약 1년간 활동한 적 있는데 개고기 식용은 사형제 만큼이나 단골 주제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합병과 관련된 논제를 택했다. 대다수 지원자가 개고기 논제를 쓸 것이라고 봤다. 남들과 같은 주제로 경쟁하면 필패라고 생각했다. 논술 시험을 계속해서 준비한 지원자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두산밥캣 논제의 설명글을 읽어보니 대략 감이 잡혔다. LG화학으로부터 분할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과 결이 비슷했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노린다는 대주주 측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 간 입장이 대립된다는 얘기였다.
“금융은 자금의 융통이다. 자금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이 두산 그룹의 사업 효율화를 위해 두산로보틱스로 손쉽게 넘어간다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를 넘어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게 된다. 한 번 잃은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략 이런 식의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내용을 잘 모르니 원론적인 입장만 쓸 수밖에 없었을 테다.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쓴 글. 더구나 노트북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만큼 볼펜으로 1시간 내 논리정연한 글을 쓰기도 어려웠다. 시험에 붙을 리가 없다. 필기 시험에서 떨어졌다. 후에 듣기론 대부분 지원자가 예상대로 개고기 논제를 썼다고 한다. 새로운 회사 동기도 개고기 논제로 필기 시험에 붙었다고 들었다.
④구술면접
A회사 필기 시험에 떨어졌다. 크게 낙담할 건 없었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시험을 잘 볼 리 없다. 애당초 쉽게 회사를 옮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기자 일을 1년 했다고 해서 다른 지원자보다 특별히 잘 날 게 없다고 봤다. 같이 지원한 B회사도 내게 남은 카드였다. B회사는 필기 시험이 없는 대신 4일간 출퇴근하면서 실무 평가를 진행한다. 어쩌면 기자로 일했던 내게는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매해 여름은 무덥다. 작년에도 그랬다. B회사의 서류 합격 통보를 받은 건 예비군 훈련을 받던 때였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박달 예비군 훈련장은 위 아래로 길게 늘어서 있다. 산 중턱에 있어서 훈련 코스가 바뀔 때마다 오르막길을 걸어야만 했다. 무거운 방탄모 속 땀 줄기가 흘러내릴 때 오른쪽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12발 실탄 사격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9월 XX일 오전 9시까지 B회사로 와라. 2차 면접에 응할지 오후 6시까지 답변 부탁한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아무 생각없이 갔겠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골치가 아팠다. 사실 해당 일에 나는 경남 사천으로 가야 했다. 우주항공청이 개청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만약 개청식이 서울에서 진행됐다면 면접을 보고 부랴부랴 현장을 갈 수 있겠으나 사천은 불가능이었다. 오전 6시 비행기를 타고 아침 일찍 내려가야만 했다.
‘B회사를 포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됐다. 그런데 단순한 행사 하나 때문에 이직 기회를 포기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B회사는 필기 시험이 없는 몇 안되는 곳이라 내게는 승산이 있는 회사였다.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어떻게서든 반차를 써야 했다. 안면식도 없는 머나먼 친척 한 분을 저승길로 보내드려서라도. 다행히 친척 한 분을 저승길로 보내드릴 필요가 없었다. 행사날 사천에서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돼 서울에서 비교적 조촐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날짜도 변경됐다. 갑작스럽게 반차를 쓸 이유가 없었다.
2차 면접은 구술 면접이었다. 세 가지 논제에 1분간 답변하는 구조다. △금리 인하기에 들어섰는데 당신은 영끌해서 부동산을 사겠느냐 △당신이 예비 차량 구매자라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중 어느 차량을 사겠느냐 △어느 CEO 혹은 재벌 총수와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겠느냐. 총 세 가지 논제에 대략 이렇게 답변했다.
①영끌은 현명한 투자 방식이 아니다. 할 계획 없다. ②집 근처에 전기차 충전소가 없다. 전기차가 내겐 효용성이 없어서 내연기관차를 사겠다 ③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랑 먹겠다. 할아버지(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와 아버지(정몽준 회장)이 모두 대선에 도전한 만큼 정치 얘기하겠다. 정치랑 경제는 하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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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부장의 조언
작년 9월 회사를 옮겼다. 사실 원래는 이직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전 직장은 내게 어쩌면 벅찬 회사 중 하나였다. 학사경고를 두 번 받고 인턴·학보사 경험도 전무했던 내게 밥벌이 기회를 줬다. 회사에서 퇴사자가 많아져 6개월 동안 출입처가 3~4번 교체되고 어느 부장한테 육성으로 쌍욕을 먹고 온갖 짬처리를 당하고 부서장이 차장으로 강등되고 등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이 일을 경험하고 남들처럼 사회생활하면서 살고 있다.
실은 여러 선배들로부터 ‘열심히해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나름 좋은 회사다”, “업계에 나름대로 인지도도 있다”, “공채가 오래 회사를 다녀야 하는데 이리저리 나가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던 선배들은 술에 꽤나 취할 때가 되면 “빠르게 이직해라”고 진심을 털어놨다. 술 취하면 진심이 나오는 법이다. 나름대로 후배를 아끼는 그들만의 방식이겠다.
결정적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건 일요일 부서장과의 점심 식사에서다. 작년 이 맘때 쯤으로 기억한다. 몇 개월 전 부장에서 팀장으로 직급이 강등된 그는 그날따라 눈이 몹시 부어있는 상태였다. 흰자위과 빨갛게 충열돼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닌지 싶었다. 전날 크게 울었던 걸까, 무슨 병에 걸렸던 걸까. 가뜩이나 그가 편집국장으로부터 찍혔다는 말이 요 며칠새 회사 내에서 떠들석하게 돌았다.
‘박 기자는 기자 계속할 거야?’
잽인 줄 알고 앞에 있는 손으로 툭 받으려고 했는데 훅이 들어와 머리골이 띵한 상태랄까. 평상시에 혼잣말하면서 나름 심오한 생각들도 많이 했었는데 하필 이건 생각을 못했었다. 이 일을 계속할 건지에 대해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것 자체를 머릿 속에 떠올린 적이 없다.
다른 일을 하려면 기자 일을 관두고 취업 준비를 또 해야 하는데 취업난에 좀처럼 쉽겠나. 시간만 허비하고 이래저래 낭인처럼 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든다. ‘좋아서 만나냐, 만나고 있으니 만나지.’ 어느 집안 안주인께서 바깥양반과 헤어지지 않는 이유가 떠올랐다.
“넵. 그냥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뭐 이래저래 적성에도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고요.”
“그럼 딴 곳 알아봐.”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눈이 충열된 직장 상사. 회사에서 찍혔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점심식사 때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 말한다. ‘넵 알겠습니다’ 정도로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대화를 다른 주제로 넘기기도 애매했다. 조용히 순대국을 퍼 먹었다.
집에 돌아와 아랑 카페에 들어갔다. 언론판 사람인 혹은 링커리어로 이해하면 된다. 나는 원래 어느 사이트든 자동 로그인을 해 둔다. 오랜만에 들어가서인지 새롭게 로그인을 해야 했다. 채용정보방을 확인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곳에 무차별적으로 지원서를 남발하던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직장보다 더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곳, 급여 수준이 좋은 곳을 선택해 지원서를 썼다. 그중 하나가 지금 회사다.
②1년만 자소서 작성
다음 카페 아랑에서 채용 공고방에 들어갔다. 인턴이나 단기 계약직을 뽑는다는 공고가 게재돼 있었으나 직장에 다니고 있는 만큼 굳이 클릭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업계 인지도가 높거나 급여 수준이 높은 곳만 찾으면 됐다. 대체로 인지도와 급여 수준은 비례한다. 합집합(OR)과 교집합(AND)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A회사와 B회사의 수습기자 채용 공고문을 확인했다. 사이트에 들어가 자기소개서 문항을 확인하고 쓸 채비에 들어섰다. 뭐라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면접관은 기자 일을 멀쩡히 하고 있는 내가 수습기자로 입사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할테다. 기자 일을 왜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으면서 굳이 연차를 깎아 수습기자로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써야 한다.
물론 이유는 있다. ‘몇 시간 전 점심식사에서 빨간 눈의 부장이 이직하라고 했다. 까라면 까는 게 이 업계 문화 아닌가. 그래서 이직한다’고 쓰면 당연히 안 된다. 이런저런 말을 지어내야 했다. 다행히 당시 다른 회사 수습기자로 입사한 동기인 형이 한 명 있었다. 그 형에게 물어 자기소개서를 받았다.
내용은 대개 비슷하게 작성했다. 기자 일을 하고 있지만 한 가지 갈증이 있었다. 정말로 나는 일을 잘하고 싶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듯 그러기 위해 일 잘하는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A회사와 B회사는 좋은 선배가 있다. 그래서 지원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A회사는 경어로, B회사는 평어로 썼다.
두 곳 다 서류에 붙었다. 나름 1년 일한 게 도움이 됐겠거니 싶었다. 나름 우쭐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얼마 전 어느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언론사들은 웬만하면 서류를 다 붙여준다고 한다. 자기소개서를 깔끔하게 쓰기만 하면 된다는 후문이다. 평어로, 단문으로 쓰면 깔끔하게 보인다. GPT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아보자.
③필기시험 참패
조선미디어그룹의 온라인 경제매체인 A회사의 필기 시험은 8월 24일 토요일 진행됐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3000원짜리 손풍기를 들고 이마에 흐른 땀을 식히며 집에서 나섰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소는 서울역 인근의 어느 빌딩 5층과 6층이었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필기시험 논제를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언론사의 동료 기자를 만났다. 취재 현장에서 만났으면 자연스러웠을 사이였지만 이날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뭔가 어색했다. 간단히 서로의 건투를 빌었다. 여담으로 내가 건투를 빈 그 기자는 약 한 시간 뒤, 필기 시험이 시작된 지 약 5분이 흘렀을 무렵 자리를 떠났다. 신분증을 놓고 왔던 것.
필기 시험은 상식과 논술로 구성된다. 각 배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논술이 중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논술은 두 가지 논제 중 하나를 택해서 1000~1400자 분량으로 작성하는 거였다. 첫 번째 논제는 개고기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적절하느냐였고 두 번째 논제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에 대한 찬반이었다.
나는 당시 IT부서 기자였다.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으나 IT를 취재하는 기자는 IT 외 다른 분야의 이슈를 잘 모른다. 물론 당시 나는 IT도 잘 모르는 IT 기자이긴 했다. 두산밥캣, 이름만 보면 반려동물 사료를 만드는 기업처럼 보이는 회사를 잘 알리가 없다. 반면 개고기 식용 금지 법제화에 대한 찬반은 다루기는 좋은 주제다. 토론 동아리에서 약 1년간 활동한 적 있는데 개고기 식용은 사형제 만큼이나 단골 주제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당시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합병과 관련된 논제를 택했다. 대다수 지원자가 개고기 논제를 쓸 것이라고 봤다. 남들과 같은 주제로 경쟁하면 필패라고 생각했다. 논술 시험을 계속해서 준비한 지원자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두산밥캣 논제의 설명글을 읽어보니 대략 감이 잡혔다. LG화학으로부터 분할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과 결이 비슷했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노린다는 대주주 측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 간 입장이 대립된다는 얘기였다.
“금융은 자금의 융통이다. 자금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이 두산 그룹의 사업 효율화를 위해 두산로보틱스로 손쉽게 넘어간다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를 넘어 국내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게 된다. 한 번 잃은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략 이런 식의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내용을 잘 모르니 원론적인 입장만 쓸 수밖에 없었을 테다.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쓴 글. 더구나 노트북 글쓰기에 익숙해져 있었던 만큼 볼펜으로 1시간 내 논리정연한 글을 쓰기도 어려웠다. 시험에 붙을 리가 없다. 필기 시험에서 떨어졌다. 후에 듣기론 대부분 지원자가 예상대로 개고기 논제를 썼다고 한다. 새로운 회사 동기도 개고기 논제로 필기 시험에 붙었다고 들었다.
④구술면접
A회사 필기 시험에 떨어졌다. 크게 낙담할 건 없었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시험을 잘 볼 리 없다. 애당초 쉽게 회사를 옮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기자 일을 1년 했다고 해서 다른 지원자보다 특별히 잘 날 게 없다고 봤다. 같이 지원한 B회사도 내게 남은 카드였다. B회사는 필기 시험이 없는 대신 4일간 출퇴근하면서 실무 평가를 진행한다. 어쩌면 기자로 일했던 내게는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매해 여름은 무덥다. 작년에도 그랬다. B회사의 서류 합격 통보를 받은 건 예비군 훈련을 받던 때였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박달 예비군 훈련장은 위 아래로 길게 늘어서 있다. 산 중턱에 있어서 훈련 코스가 바뀔 때마다 오르막길을 걸어야만 했다. 무거운 방탄모 속 땀 줄기가 흘러내릴 때 오른쪽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12발 실탄 사격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9월 XX일 오전 9시까지 B회사로 와라. 2차 면접에 응할지 오후 6시까지 답변 부탁한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아무 생각없이 갔겠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골치가 아팠다. 사실 해당 일에 나는 경남 사천으로 가야 했다. 우주항공청이 개청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만약 개청식이 서울에서 진행됐다면 면접을 보고 부랴부랴 현장을 갈 수 있겠으나 사천은 불가능이었다. 오전 6시 비행기를 타고 아침 일찍 내려가야만 했다.
‘B회사를 포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됐다. 그런데 단순한 행사 하나 때문에 이직 기회를 포기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B회사는 필기 시험이 없는 몇 안되는 곳이라 내게는 승산이 있는 회사였다.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어떻게서든 반차를 써야 했다. 안면식도 없는 머나먼 친척 한 분을 저승길로 보내드려서라도. 다행히 친척 한 분을 저승길로 보내드릴 필요가 없었다. 행사날 사천에서 폭우가 내릴 것으로 예상돼 서울에서 비교적 조촐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날짜도 변경됐다. 갑작스럽게 반차를 쓸 이유가 없었다.
2차 면접은 구술 면접이었다. 세 가지 논제에 1분간 답변하는 구조다. △금리 인하기에 들어섰는데 당신은 영끌해서 부동산을 사겠느냐 △당신이 예비 차량 구매자라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중 어느 차량을 사겠느냐 △어느 CEO 혹은 재벌 총수와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겠느냐. 총 세 가지 논제에 대략 이렇게 답변했다.
①영끌은 현명한 투자 방식이 아니다. 할 계획 없다. ②집 근처에 전기차 충전소가 없다. 전기차가 내겐 효용성이 없어서 내연기관차를 사겠다 ③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랑 먹겠다. 할아버지(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와 아버지(정몽준 회장)이 모두 대선에 도전한 만큼 정치 얘기하겠다. 정치랑 경제는 하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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