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전문 법무법인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알게 된 점


스타트업에만 지원하던 나에게 스타트업 관련 미디어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트업 업계 자체에 관심이 있던 터라 채용 직무 설명(Job Description)을 보니 딱 내가 원하던 일들이었다. 그래서 흥미가 생겼지만, 회사 관련된 건 뉴스레터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가 전부였고 어떤 곳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지원을 미루던 중,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걸 발견한다. 이때쯤 가고 싶던 회사에 면접을 본 후 떨어지고, 별다른 진전이 없을 때라 서류라도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자소서 없이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만 넣어보자 하고 지원했다. 그리고 며칠 후 면접 제의가 왔다.


알고 보니 법무법인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일환으로 하는 업무였다. 뉴스레터를 살펴봤을 때 에디터가 별로 없는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정말 관련 업무만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그렇게 간단히 줌으로 1차 면접을 본 후, 2차는 회사로 갔다. 면접보다는 회의에 참여하는 형식이라 했건만.. 명백한 면접이었다. 물론 편안한 분위기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주위에 변호사라곤 전혀 없던 나에게 변호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나이도 지긋하며 고리타분한 이미지의 사람들이었다. 생각보다 젊은 변호사들이라 그런 위압감은 없었지만 8명의 변호사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건 꽤 부담스러웠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직종에 한 발 딛게 된다. 법무법인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생각하지만,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스타트업이 고객이다 보니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정말 따뜻했고, 서로 으쌰으쌰 하며 나아갔다. 꿈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대표님 덕분에 스타트업보다 더 스타트업 같은 환경 속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엔 그래도 에디터답게 뉴스레터와 미디어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글을 편집했다. 하지만 매우 전문적이 내용이었기에 내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은 미미했고, 좀 더 가독성 있게 다듬거나 교정 교열, 글에 맞는 이미지를 추가하는 작업뿐이었다(물론 이것도 편집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미지 작업 쪽에 더 힘을 싣게 된다.


미리캔버스로 시작해서 피그마, 포토샵, 인디자인 등으로 뉴스레터 굿즈, 행사 포스터, 현수막, 배너, 브로셔 각종 편집물 디자인 및 제작을 하고, 아임웹, super 등 노코드 툴부터 워드프레스로 미디어 홈페이지를 제작 및 관리를 하며 회사에서 2년을 보냈다. 아직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다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그러다 알게 된 점은 나는 기획보다 제작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두 나의 힘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지만.) 처음 직무 선택할 때를 돌이켜 봐도 나는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꼭 내가 기획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원하는 걸 구현해 내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회사 다닌 지 1년 정도가 되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직함은 에디터라 에디터로 불리지만, 내가 하는 일은 전혀 에디터가 아니었다. 디자이너에 가까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디자이너냐? 그건 더 아니었다. 어찌어찌하고 있지만 내 디자인 실력은 내가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그냥 콘텐츠 디자인을 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게다가 회사에는 나를 에디터로든 디자이너로든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변호사 10여 명과 행정 스탭 2명이 전부였으니. 회사에서 필요한 일을 혼자 어떻게 하긴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둘 다 전공도 아니니 주변에 관련 일을 하는 사람조차 한 명도 없었고.


그리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스타트업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떨어졌다. 그동안 스타트업의 이상만 봤었다면 현실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정말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사업가인 사람도 많았기에. 또, 내가 스타트업을 좋아하던 이유 중 하나는 지극히 내 기준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실무자가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좋았고, 그 과정에 함께하고 싶었던 거라는 걸. 물론, 이 부분은 변호사들을 보며 200% 충족되긴 했지만. 회사에서 주로 고객으로 보게 되는 사람들은 대표나 VC다 보니 그들을 위해 만드는 콘텐츠가 별로 공감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콘텐츠 자체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 열정도 떨어지는 고질병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점이, 콘텐츠 에디터가 “회사”에서 길러야 하는 능력과 연결됐다. 바로, 내가 만든 콘텐츠가 괜찮다는 믿음. 회사에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더라도 회사라는 탈을 쓰고 얻어낼 수 있는 건 분명 있으니까. 혹시 내가 콘텐츠를 잘 만들지 않았더라도 회사라는 이름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걸 마음껏 누려야 한다. 2년 동안 에디터라는 직함으로 일하며 얻지 못한 능력 중 이게 제일 아쉬웠다.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보조 에디터로 일할 땐 어떻게든 글을 써냈고, 실제로 팔렸으므로 내 콘텐츠에 자신이 없더라도 결과를 보고 뿌듯함을 느끼곤 했었으니까. 다시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내 글”을 쓰려니 겁이 나고, 이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맞는지, 좋아할 것인지 걱정이 앞섰다. 이건 그냥 계속 글을 써나가면서 극복하는 수밖엔 없겠지.


그래도 회사에서 했던 모든 경험 덕분에 지금 직접 로고도 만들고, 서버도 운영하고, 웹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한다. 물론 회사에서도 혼자 한 거였으니 지금이라고 못했겠냐마는, 한 번 해봤다는 전적은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못 할 게 뭐 있어라는) 용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딱, 글 쓰는 거 빼고 글을 담을 그릇만 열심히 빚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웃기지만, 모두 밑거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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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만 지원하던 나에게 스타트업 관련 미디어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트업 업계 자체에 관심이 있던 터라 채용 직무 설명(Job Description)을 보니 딱 내가 원하던 일들이었다. 그래서 흥미가 생겼지만, 회사 관련된 건 뉴스레터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가 전부였고 어떤 곳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지원을 미루던 중,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걸 발견한다. 이때쯤 가고 싶던 회사에 면접을 본 후 떨어지고, 별다른 진전이 없을 때라 서류라도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자소서 없이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만 넣어보자 하고 지원했다. 그리고 며칠 후 면접 제의가 왔다.


알고 보니 법무법인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일환으로 하는 업무였다. 뉴스레터를 살펴봤을 때 에디터가 별로 없는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정말 관련 업무만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그렇게 간단히 줌으로 1차 면접을 본 후, 2차는 회사로 갔다. 면접보다는 회의에 참여하는 형식이라 했건만.. 명백한 면접이었다. 물론 편안한 분위기긴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주위에 변호사라곤 전혀 없던 나에게 변호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나이도 지긋하며 고리타분한 이미지의 사람들이었다. 생각보다 젊은 변호사들이라 그런 위압감은 없었지만 8명의 변호사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건 꽤 부담스러웠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직종에 한 발 딛게 된다. 법무법인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생각하지만,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스타트업이 고객이다 보니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정말 따뜻했고, 서로 으쌰으쌰 하며 나아갔다. 꿈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대표님 덕분에 스타트업보다 더 스타트업 같은 환경 속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엔 그래도 에디터답게 뉴스레터와 미디어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글을 편집했다. 하지만 매우 전문적이 내용이었기에 내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은 미미했고, 좀 더 가독성 있게 다듬거나 교정 교열, 글에 맞는 이미지를 추가하는 작업뿐이었다(물론 이것도 편집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미지 작업 쪽에 더 힘을 싣게 된다.


미리캔버스로 시작해서 피그마, 포토샵, 인디자인 등으로 뉴스레터 굿즈, 행사 포스터, 현수막, 배너, 브로셔 각종 편집물 디자인 및 제작을 하고, 아임웹, super 등 노코드 툴부터 워드프레스로 미디어 홈페이지를 제작 및 관리를 하며 회사에서 2년을 보냈다. 아직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다 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좋았다. 그러다 알게 된 점은 나는 기획보다 제작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두 나의 힘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지만.) 처음 직무 선택할 때를 돌이켜 봐도 나는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꼭 내가 기획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원하는 걸 구현해 내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회사 다닌 지 1년 정도가 되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직함은 에디터라 에디터로 불리지만, 내가 하는 일은 전혀 에디터가 아니었다. 디자이너에 가까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디자이너냐? 그건 더 아니었다. 어찌어찌하고 있지만 내 디자인 실력은 내가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그냥 콘텐츠 디자인을 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게다가 회사에는 나를 에디터로든 디자이너로든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변호사 10여 명과 행정 스탭 2명이 전부였으니. 회사에서 필요한 일을 혼자 어떻게 하긴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둘 다 전공도 아니니 주변에 관련 일을 하는 사람조차 한 명도 없었고.


그리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스타트업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떨어졌다. 그동안 스타트업의 이상만 봤었다면 현실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정말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사업가인 사람도 많았기에. 또, 내가 스타트업을 좋아하던 이유 중 하나는 지극히 내 기준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실무자가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좋았고, 그 과정에 함께하고 싶었던 거라는 걸. 물론, 이 부분은 변호사들을 보며 200% 충족되긴 했지만. 회사에서 주로 고객으로 보게 되는 사람들은 대표나 VC다 보니 그들을 위해 만드는 콘텐츠가 별로 공감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쨌든 콘텐츠 자체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 열정도 떨어지는 고질병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점이, 콘텐츠 에디터가 “회사”에서 길러야 하는 능력과 연결됐다. 바로, 내가 만든 콘텐츠가 괜찮다는 믿음. 회사에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없더라도 회사라는 탈을 쓰고 얻어낼 수 있는 건 분명 있으니까. 혹시 내가 콘텐츠를 잘 만들지 않았더라도 회사라는 이름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걸 마음껏 누려야 한다. 2년 동안 에디터라는 직함으로 일하며 얻지 못한 능력 중 이게 제일 아쉬웠다.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보조 에디터로 일할 땐 어떻게든 글을 써냈고, 실제로 팔렸으므로 내 콘텐츠에 자신이 없더라도 결과를 보고 뿌듯함을 느끼곤 했었으니까. 다시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내 글”을 쓰려니 겁이 나고, 이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맞는지, 좋아할 것인지 걱정이 앞섰다. 이건 그냥 계속 글을 써나가면서 극복하는 수밖엔 없겠지.


그래도 회사에서 했던 모든 경험 덕분에 지금 직접 로고도 만들고, 서버도 운영하고, 웹페이지를 제작하고 관리한다. 물론 회사에서도 혼자 한 거였으니 지금이라고 못했겠냐마는, 한 번 해봤다는 전적은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못 할 게 뭐 있어라는) 용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딱, 글 쓰는 거 빼고 글을 담을 그릇만 열심히 빚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웃기지만, 모두 밑거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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