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적인 상사의 괴롭힘에도 퇴사하지 않았던 27세 대리는 왜 이직했을까. 경력도 살리지 않고 직무도 산업도 완전히 바꾸었으니, 이직보다는 ‘퇴사’라고 하는 게 맞겠다. 어떤 결심들이 모여 나를 ‘퇴사’하게 만들었는지 써보고자 한다.
결정을 내린 데에는 수십 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주요한 몇 가지를 떠올려보면 이렇다.
1. 제대로 된, ‘대규모’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높은 연봉 테이블과 좋은 복지 때문에 대기업 취업을 꿈꾼다. 또는 ‘대기업’이라는 네임밸류 때문에. 나는 연봉과 업무 강도에 불만은 없었지만, 처음 들어간 회사가 20여 명 남짓의 인원에 시스템적으로 체계가 갖춰진 것이 많이 없어서, 제대로 된 회사 체계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불편한 시스템을 경험할 때는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소규모 인원의 가족 같은 회사도 장점이 있겠지만, 사회인으로서 한 번쯤은 전형적인, ‘회사 같은’ 회사에 다녀보고 싶었다.
정식적인 채용 과정 없이 사장님 친구가 상무로, 사장님 친구 아들이 대리로 들어오는 것이 신기했다. 사장님 친구로 온 상무님은 나이가 많았고 일을 잘 못 해서 다른 직원들의 일을 늘렸고, 사장님 지인의 아들, 딸들은 이력서 채우기용 인턴 체험활동을 계속했다.
1인분의 몫을 잘 해낸다면 어떻게 채용되었냐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력과 전문성이 없어도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이사 자리를 지키며 책임은 다하지 않고 업무를 떠넘기는 분들을 보며 배울 점이 없다고 느꼈다. ‘저렇게 크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일을 잘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열심히 하는 회사 분위기라 신입인 나는 누구에게든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FM 스러운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제대로 된 사회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전 직원이 20여 명인 작은 회사에서 좀 더 나아가 최소 백여 명은 넘는 회사에서, 더 많은 사람을 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렇다. 이는 ‘성장 욕구’였던 것 같다. 성장 욕구가 큰 인간인 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왠지 불안하기도 했다.
2. 내가 하는 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어떤 조금의 의미나 재미, 보람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경제적 보상과 무탈히 완료했다는 처리에만 목표를 둘 뿐이었다.
지금은 일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게 불가할 수 있고, 꼭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은 내가 이 회사에 고용되어 이 업무를 하며 돈을 받지만, 이게 커리어가 될지, 성장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해야 할지, 또 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평생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할 수 있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이때는 회사 가는 게 너무 괴로워서 이 감정이 중요했다.) 그래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일단 마인드를 바꿔보고자, 원래 관심이 없던 해당 산업에 흥미를 갖기 위해 관련 뉴스도 찾아 읽고, 이 경력을 발판 삼아 나아갈 다른 직무를 찾아보기도 했다. 관련 분야의 자격증도 따보았지만 없던 흥미를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다니는 동안 관련 분야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꿈이나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최소 10년 이상 해야 하는 직장생활을, 내 인생의 80%를 보내야 하는 직장인데 꿈도 목표도 없이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만 계속하며, 주말과 퇴근만 기다리며 살기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전체를 봐도 그렇지만 일단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고 괴로웠다.
3. 업무 특성상 자유도가 낮았다
나도 몰랐는데, 나에게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했다. 내가 하는 일은 근무 시간의 80%는 정해진 시간에 모니터 앞을 지키고 상시대기 상태가 되어야 했다. 늘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었고, 언제 일이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긴장과 불안도 있었다. 빠른 속도와 동시에 정확성도 중요했는데 이는 나에게 꽤나 부담으로 작용했다. 또, 점심시간에는 당번을 정해 자리를 지켜야 했고 일과 시간 중 화장실을 갈 때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라고 동료에게 알린 후 자리를 비워야 했다. 강박적이고 수동적인 회사 일에 지쳐갈 때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 코로나에 걸려 해당 업무를 위임하고 재택으로 다른 업무 처리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다른 일을 하면 지금 이 일을 할 때보다 마음이 덜 불안할 수 있겠구나.’
나는 오직 이 회사만 다녀봤고, 이런 업무들만 해보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특성을 가진 회사와 직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와 더 잘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에서 다른 업무도 해봐야 겠다는 마음의 불씨가 타올랐다.
여름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sgd082
비상식적인 상사의 괴롭힘에도 퇴사하지 않았던 27세 대리는 왜 이직했을까. 경력도 살리지 않고 직무도 산업도 완전히 바꾸었으니, 이직보다는 ‘퇴사’라고 하는 게 맞겠다. 어떤 결심들이 모여 나를 ‘퇴사’하게 만들었는지 써보고자 한다.
결정을 내린 데에는 수십 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주요한 몇 가지를 떠올려보면 이렇다.
1. 제대로 된, ‘대규모’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높은 연봉 테이블과 좋은 복지 때문에 대기업 취업을 꿈꾼다. 또는 ‘대기업’이라는 네임밸류 때문에. 나는 연봉과 업무 강도에 불만은 없었지만, 처음 들어간 회사가 20여 명 남짓의 인원에 시스템적으로 체계가 갖춰진 것이 많이 없어서, 제대로 된 회사 체계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불편한 시스템을 경험할 때는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소규모 인원의 가족 같은 회사도 장점이 있겠지만, 사회인으로서 한 번쯤은 전형적인, ‘회사 같은’ 회사에 다녀보고 싶었다.
정식적인 채용 과정 없이 사장님 친구가 상무로, 사장님 친구 아들이 대리로 들어오는 것이 신기했다. 사장님 친구로 온 상무님은 나이가 많았고 일을 잘 못 해서 다른 직원들의 일을 늘렸고, 사장님 지인의 아들, 딸들은 이력서 채우기용 인턴 체험활동을 계속했다.
1인분의 몫을 잘 해낸다면 어떻게 채용되었냐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력과 전문성이 없어도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이사 자리를 지키며 책임은 다하지 않고 업무를 떠넘기는 분들을 보며 배울 점이 없다고 느꼈다. ‘저렇게 크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일을 잘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열심히 하는 회사 분위기라 신입인 나는 누구에게든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FM 스러운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제대로 된 사회 시스템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전 직원이 20여 명인 작은 회사에서 좀 더 나아가 최소 백여 명은 넘는 회사에서, 더 많은 사람을 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렇다. 이는 ‘성장 욕구’였던 것 같다. 성장 욕구가 큰 인간인 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왠지 불안하기도 했다.
2. 내가 하는 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어떤 조금의 의미나 재미, 보람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경제적 보상과 무탈히 완료했다는 처리에만 목표를 둘 뿐이었다.
지금은 일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게 불가할 수 있고, 꼭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은 내가 이 회사에 고용되어 이 업무를 하며 돈을 받지만, 이게 커리어가 될지, 성장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해야 할지, 또 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평생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할 수 있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이때는 회사 가는 게 너무 괴로워서 이 감정이 중요했다.) 그래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일단 마인드를 바꿔보고자, 원래 관심이 없던 해당 산업에 흥미를 갖기 위해 관련 뉴스도 찾아 읽고, 이 경력을 발판 삼아 나아갈 다른 직무를 찾아보기도 했다. 관련 분야의 자격증도 따보았지만 없던 흥미를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다니는 동안 관련 분야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꿈이나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최소 10년 이상 해야 하는 직장생활을, 내 인생의 80%를 보내야 하는 직장인데 꿈도 목표도 없이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만 계속하며, 주말과 퇴근만 기다리며 살기는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전체를 봐도 그렇지만 일단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고 괴로웠다.
3. 업무 특성상 자유도가 낮았다
나도 몰랐는데, 나에게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했다. 내가 하는 일은 근무 시간의 80%는 정해진 시간에 모니터 앞을 지키고 상시대기 상태가 되어야 했다. 늘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었고, 언제 일이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긴장과 불안도 있었다. 빠른 속도와 동시에 정확성도 중요했는데 이는 나에게 꽤나 부담으로 작용했다. 또, 점심시간에는 당번을 정해 자리를 지켜야 했고 일과 시간 중 화장실을 갈 때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라고 동료에게 알린 후 자리를 비워야 했다. 강박적이고 수동적인 회사 일에 지쳐갈 때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 코로나에 걸려 해당 업무를 위임하고 재택으로 다른 업무 처리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다른 일을 하면 지금 이 일을 할 때보다 마음이 덜 불안할 수 있겠구나.’
나는 오직 이 회사만 다녀봤고, 이런 업무들만 해보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특성을 가진 회사와 직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와 더 잘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에서 다른 업무도 해봐야 겠다는 마음의 불씨가 타올랐다.
여름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sgd0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