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도 더 지난 어느날이었을 겁니다.
스타벅스에서 카공족 놀이를 하고 있던 저의 눈에 띈 풍경 하나.
이제 막 한 회사의 대리 직급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하나와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취준생의 미팅 자리였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작은 봉투를 조심스레 건네는 대학생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 봉투를 거만한 자세로 받아드는 대리는 얼굴에 는 가식적인 미소가 보였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답은 아니예요. 그래도 1차 면접은 통과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외부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내부인들만 아는 정보이니까요. 그나저나 이거 사례금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다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상황을 기억합니다.
1. 모 화장품 회사의 1차 면접을 앞둔 취준생이 수소문 끝에 해당 회사에 재직중인 사람과의 미팅을 주선
2. 사례금을 지불하고 취업 면접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취준생
3. 직장인 이라는 사람이 주는 정보는 사실 그 회사의 감사보고서만 뒤져봐도 알만한 내용들
왠만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제 길 가는 저에게 그날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날 제 시간을 완전히 망친 기억이 있네요. 뭔지 모를 분노가 속에서 끓어 오르는 순간이 지속되었습니다.
아마 그 날 이후부터 였을 겁니다.
‘취준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단순히 취준생들만을 타겟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금융쪽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들과, 같은 업무를 하는 주니어들/일부 시니어들도 글의 대상에 포함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때의 기억으로 시작한 글쓰기의 목적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나의 경험으로 남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되는 글을 써보자.’
최근 취준생으로 추정되는 분에게 본문에 있는 아래 질문을 받았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처음으로 올리던 그때를 떠올려 주는 순간이더군요.
글의 첫 시작을 그분의 질문과 저의 답변으로 시작되는 이유는 역시 위에서 이야기 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쓰기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사역에 한정한 글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 역시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심사역 직무 소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럼 시작.
최근에 후기를 썼던 자격증 ‘여신심사역’.
이 글을 보고 취업 준비생으로 추정되는 블로그 이웃께서 길고도 깊은 질문을 올려주셨습니다.
답글로 답변하기에는 가벼운 내용도 아니거니와, 그 성의와 열정에 감동하여 그분의 질문사항과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질문자에게는 사전 허락을 받았음)
질문은 원문 그대로 수정없이 올렸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1) 심사역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은행에서 심사역은 쉽게 말해 여신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업점에서 여신 업무를 담당하는 분들 모두 넓은 의미에서 심사역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필드에서는 본부 부서에서 거액 여신의 승인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대출금액 기준은 금융기관 내부 기준마다 다르나 일반적으로 최소 30억 이상입니다.
2) 제가 아는 심사역이 되는 과정은 여신 부분에서 경력을 쌓고 연수원에서 연수 후 심사역 자격을 취득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행원부터 시작해서 심사역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추가하면 자격증으로는 신용분석사와 여신심사역을 취득하게 되면 심사역 라이센스를 얻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심사역 관련된 국가공인자격증은 이 둘이 유이합니다. 다만, 이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심사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영업점에서 여신이나 외환업무를 최소 5년에서 10년정도 담당하며 여신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는게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매우 중요한 분야로 무엇보다도 많은 경험이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정말이지 현실 세계에서는 교과서에서 보지 많은 다양한 케이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입사 10년차 이상의 과장급들을 대상으로 사내에서 스카웃 하는 형태로 인력을 충원합니다만, 주니어의 경우 능력이 출중하거나 운이 좋으면 곧바로 심사역 업무를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여신심사역이라면 책상앞에서 서류와의 싸움으로 꼼꼼함 이러한 역량도 중요하겠지만, 현재처럼 가계, 소상공인, 기업에서 대출 신청이 급증하는 시기에 특별히 더 필요로 하는 역량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꼼꼼함과 동시에 중요한 게 스피드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내내 서류 검토하는 심사역과 은행을 고객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입니다.
더불어 통찰력 입니다. 숫자나 담보물의 가치에만 매몰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업종에 대한 사전조사도 필수적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 통찰력에 사람을 보는 눈이라는 것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매우 비재무적인 부분이지만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딜의 핵심은 사람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은행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입니다.
4) 새로운 정부 들어서 생산적 금융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정량적인 지표 재무제표보다 정성적인 요인에 더 비중을 두고 기업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사역께서도 기업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 그런경우들이 있으셨습니까? 또 심사역이 갖는 애로사항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먼저 이야기 하자면 심사역은 기본적으로 정량적 재무지표로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숫자와 지표는 객관적인 Evidence 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정성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실은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간과할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이 업체 좋아 보여’ 이런 식의 의견은 심사역이라면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는 이런 심사역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숫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현금 매출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현금 매출이 토대가 되어서 서울에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런 경우라면 질문자께서는 대출 차주가 상환력이 부족하다고 쉽게 대출 신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다만, 추상적인 표현은 안됩니다. 객관화 시킬것!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추가로 심사역이 갖는 애로사항입니다. 일단 매우 매우 매우 많습니다. 일단 지점장을 비롯한 프론트 인간들과 엄청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100억이나 200억이 넘어가는 여신을 승인할 때면 높으신 분들 앞에서 완벽하게 브리핑 할 수 있도록 준비해 가야 합니다. 간혹 가다보면 페이퍼는 잘 쓰는데 브리핑 못하는 친구들을 봅니다. 브리핑을 잘하는 것까지가 심사의 영역이라고 봤을때 하나라도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떨리겠죠? 그러니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확신을 가지고 대출을 승인했는데, 부실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감사부에 끌려 다니기도 하고 굉장히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갑자기 소주가 땡기…
5) 대출할 때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이건 좀 포괄적인 질문이네요. 한가지 분명한 건 ‘담보 여신이라 안전하고 신용 여신이라 위험하다’ 라는 이분법적인 단순한 사고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요새 트렌드는 현금흐름입니다. 담보가 아무리 좋아도 Cash flow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연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보다 보유 담보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부분이 현금흐름이지 않나 싶습니다.
6) 최근에는 벤처캐피탈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이에 따라 대기업 CVC 또한 활성화하자는 여론 또한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심사역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심사역이 여신 심사를 했던 역량을 활용해 벤처캐피탈의 투자 심사역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었는데요.
은행 내에서는 따로 투자부서를 두거나 계열사를 두고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투자부서를 두면 여신 심사역이 이에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또 여신심사역이 은행 내에서 벤처캐피탈의 투자 심사역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심사역이 VC의 투자심사역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답변: 이 질문은 현직자가 아닌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투자 심사역 업무도 심사역 업무 범주 중 하나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은행 내 IB 부서도 심사역 승인이 없이는, 그것이 벤쳐캐피탈이든 뭐든 간에 여신이나 투자를 실행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심사역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7) 코로나 여파로 대출 신청이 급증하는데, 상환 리스크에 대해서도 분명히 생각을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이 충당해야할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답변: 이것은 개별 은행의 전략 방향 및 수익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 라고 답하기 힘듭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교과서적으로 봤을 때는 맞으나, 실제 현실세계는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다는 걸 입사하시게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8) 7번에 이어서 앞으로 대출 진입 장벽을 오히려 높여야 하는지 아니면 기준을 다소 변경하여 조정하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명확하게 말씀드릴수 있는 건, 대출을 신청하는 차주의 업종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과거 연체율이 높거나 혹은 시장 상황이 과열된 업종에 대한 여신 기준은 높아지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지 월급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9) 개인이라면 요즘 부동산 정책 때문에 난리도 아닌데요. 주택 관련한 여신 대출 비율은 현장에서 느끼시기에 급증했습니까? 아니면 급감했습니까?
답변: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정부 대책 이후 가계여신 부분, 특히 주택담보대출 부분은 확실히 줄었거나 줄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 특히 은행은 정부의 입김이 너무나도 크게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주택 가격 추이에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여신도 출렁거릴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심사부서의 기본 여신 금액에서 볼 수 있듯이, 저희가 취급하는 여신의 대다수는 가계여신과는 별개의 기업여신 혹은 개인사업자 여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개인사업자 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제한을 가하면 영향을 받겠지만, 정책적인 부분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참고만!
10) 현직자의 입장에서 개인금융과 달리 기업금융 지원 시 어떤 역량을 강조해야 유리할까요?
우리나라 기업금융은 한마디로 High Risk High Return 이 너무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시장입니다.
당연히 안전성에 기반한 수익성 추구가 핵심이죠. 여기에 필요한 역량이라면 저는 무엇보다 많은 현장 경험과 영업력, 이 두가지라고 생각해요.
심사업무를 하는데 ‘영업력이 필요하다’ 고 말하니 조금 이해가 안 되실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게 진짜로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질문을 역으로 하나 드려봅니다.
부실이 없는 심사역이 좋은 심사역일까요? 부실이 없는 최고의 방법은 모든 여신에 대해서 ‘안된다’ 라고 거절하면 끝입니다. 혹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되겠죠. 하지만 시장에서 그렇게 해서는 금세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내가 지점장, 프론트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영업을 해봐야 심사역도 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 CPA 가 해도 됩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능력? 초등학교만 나왔다면 3개월이면 왠만한 사람들은 다 할 줄 압니다.
결국 KEY 는 ‘이 대출, 투자를 해줬을 때, 나는 얼마를 벌 수 있고 또 여신은 안전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점장들, 프론트의 마인드가 다 저럴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영업점에서 여신이나 외환 경험이 많은 직원들이 심사부에 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정리하겠습니다.
실은 저도 은행생활 이제 16년, 금융권 전체로 20년을 향해 가는 햇병아리입니다. 제가 햇병아리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세계는 정말 대단한 고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기꾼도 많습니다만.
암튼 여러가지 입장을 고려해서 생각해보자면 요새 드는 생각은 오랜 기간 이 금융업에서 큰 사고없이 버티고 있는 시니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긴 시간동안 부실없이 수익을 낸다는 것은 정말 Art 의 경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누군가 그랬습니다. 여신과 투자의사결정은 종합 예술이라고.
이제 새롭게 은행 생활을 시작하려는 취준생에게 이게 맞는 대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사역이 그리 매력적인 보직은 아닙니다. 굉장히 힘들거든요. 욕도 많이 듣습니다. 욕받이임. 다만, 배우는 건 정말 많은 파트는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본인이 하기 나름이지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일을 하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시며 일하시길 원한다면, 심사역을 추천드립니다.
다들 화이팅입니다!
고니파더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5efb803997f549b
5년도 더 지난 어느날이었을 겁니다.
스타벅스에서 카공족 놀이를 하고 있던 저의 눈에 띈 풍경 하나.
이제 막 한 회사의 대리 직급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하나와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취준생의 미팅 자리였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작은 봉투를 조심스레 건네는 대학생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 봉투를 거만한 자세로 받아드는 대리는 얼굴에 는 가식적인 미소가 보였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답은 아니예요. 그래도 1차 면접은 통과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외부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내부인들만 아는 정보이니까요. 그나저나 이거 사례금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다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아래와 같은 상황을 기억합니다.
1. 모 화장품 회사의 1차 면접을 앞둔 취준생이 수소문 끝에 해당 회사에 재직중인 사람과의 미팅을 주선
2. 사례금을 지불하고 취업 면접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취준생
3. 직장인 이라는 사람이 주는 정보는 사실 그 회사의 감사보고서만 뒤져봐도 알만한 내용들
왠만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제 길 가는 저에게 그날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날 제 시간을 완전히 망친 기억이 있네요. 뭔지 모를 분노가 속에서 끓어 오르는 순간이 지속되었습니다.
아마 그 날 이후부터 였을 겁니다.
‘취준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단순히 취준생들만을 타겟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금융쪽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들과, 같은 업무를 하는 주니어들/일부 시니어들도 글의 대상에 포함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때의 기억으로 시작한 글쓰기의 목적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나의 경험으로 남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되는 글을 써보자.’
최근 취준생으로 추정되는 분에게 본문에 있는 아래 질문을 받았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처음으로 올리던 그때를 떠올려 주는 순간이더군요.
글의 첫 시작을 그분의 질문과 저의 답변으로 시작되는 이유는 역시 위에서 이야기 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쓰기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심사역에 한정한 글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 역시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심사역 직무 소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럼 시작.
최근에 후기를 썼던 자격증 ‘여신심사역’.
이 글을 보고 취업 준비생으로 추정되는 블로그 이웃께서 길고도 깊은 질문을 올려주셨습니다.
답글로 답변하기에는 가벼운 내용도 아니거니와, 그 성의와 열정에 감동하여 그분의 질문사항과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질문자에게는 사전 허락을 받았음)
질문은 원문 그대로 수정없이 올렸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1) 심사역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은행에서 심사역은 쉽게 말해 여신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업점에서 여신 업무를 담당하는 분들 모두 넓은 의미에서 심사역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필드에서는 본부 부서에서 거액 여신의 승인을 담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대출금액 기준은 금융기관 내부 기준마다 다르나 일반적으로 최소 30억 이상입니다.
2) 제가 아는 심사역이 되는 과정은 여신 부분에서 경력을 쌓고 연수원에서 연수 후 심사역 자격을 취득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행원부터 시작해서 심사역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추가하면 자격증으로는 신용분석사와 여신심사역을 취득하게 되면 심사역 라이센스를 얻게 됩니다.
제가 아는 한 심사역 관련된 국가공인자격증은 이 둘이 유이합니다. 다만, 이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당연히 심사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영업점에서 여신이나 외환업무를 최소 5년에서 10년정도 담당하며 여신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는게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매우 중요한 분야로 무엇보다도 많은 경험이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정말이지 현실 세계에서는 교과서에서 보지 많은 다양한 케이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입사 10년차 이상의 과장급들을 대상으로 사내에서 스카웃 하는 형태로 인력을 충원합니다만, 주니어의 경우 능력이 출중하거나 운이 좋으면 곧바로 심사역 업무를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여신심사역이라면 책상앞에서 서류와의 싸움으로 꼼꼼함 이러한 역량도 중요하겠지만, 현재처럼 가계, 소상공인, 기업에서 대출 신청이 급증하는 시기에 특별히 더 필요로 하는 역량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꼼꼼함과 동시에 중요한 게 스피드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내내 서류 검토하는 심사역과 은행을 고객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입니다.
더불어 통찰력 입니다. 숫자나 담보물의 가치에만 매몰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업종에 대한 사전조사도 필수적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 통찰력에 사람을 보는 눈이라는 것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매우 비재무적인 부분이지만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딜의 핵심은 사람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은행이 따라올 수 없는 부분입니다.
4) 새로운 정부 들어서 생산적 금융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정량적인 지표 재무제표보다 정성적인 요인에 더 비중을 두고 기업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사역께서도 기업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제 그런경우들이 있으셨습니까? 또 심사역이 갖는 애로사항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먼저 이야기 하자면 심사역은 기본적으로 정량적 재무지표로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숫자와 지표는 객관적인 Evidence 입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정성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실은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간과할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이 업체 좋아 보여’ 이런 식의 의견은 심사역이라면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는 이런 심사역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숫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현금 매출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현금 매출이 토대가 되어서 서울에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런 경우라면 질문자께서는 대출 차주가 상환력이 부족하다고 쉽게 대출 신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다만, 추상적인 표현은 안됩니다. 객관화 시킬것!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추가로 심사역이 갖는 애로사항입니다. 일단 매우 매우 매우 많습니다. 일단 지점장을 비롯한 프론트 인간들과 엄청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100억이나 200억이 넘어가는 여신을 승인할 때면 높으신 분들 앞에서 완벽하게 브리핑 할 수 있도록 준비해 가야 합니다. 간혹 가다보면 페이퍼는 잘 쓰는데 브리핑 못하는 친구들을 봅니다. 브리핑을 잘하는 것까지가 심사의 영역이라고 봤을때 하나라도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떨리겠죠? 그러니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확신을 가지고 대출을 승인했는데, 부실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감사부에 끌려 다니기도 하고 굉장히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갑자기 소주가 땡기…
5) 대출할 때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이건 좀 포괄적인 질문이네요. 한가지 분명한 건 ‘담보 여신이라 안전하고 신용 여신이라 위험하다’ 라는 이분법적인 단순한 사고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요새 트렌드는 현금흐름입니다. 담보가 아무리 좋아도 Cash flow가 좋지 않으면 곧바로 연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보다 보유 담보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부분이 현금흐름이지 않나 싶습니다.
6) 최근에는 벤처캐피탈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이에 따라 대기업 CVC 또한 활성화하자는 여론 또한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심사역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심사역이 여신 심사를 했던 역량을 활용해 벤처캐피탈의 투자 심사역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었는데요.
은행 내에서는 따로 투자부서를 두거나 계열사를 두고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투자부서를 두면 여신 심사역이 이에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또 여신심사역이 은행 내에서 벤처캐피탈의 투자 심사역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심사역이 VC의 투자심사역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답변: 이 질문은 현직자가 아닌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투자 심사역 업무도 심사역 업무 범주 중 하나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은행 내 IB 부서도 심사역 승인이 없이는, 그것이 벤쳐캐피탈이든 뭐든 간에 여신이나 투자를 실행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심사역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7) 코로나 여파로 대출 신청이 급증하는데, 상환 리스크에 대해서도 분명히 생각을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이 충당해야할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답변: 이것은 개별 은행의 전략 방향 및 수익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 라고 답하기 힘듭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교과서적으로 봤을 때는 맞으나, 실제 현실세계는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다는 걸 입사하시게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8) 7번에 이어서 앞으로 대출 진입 장벽을 오히려 높여야 하는지 아니면 기준을 다소 변경하여 조정하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명확하게 말씀드릴수 있는 건, 대출을 신청하는 차주의 업종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과거 연체율이 높거나 혹은 시장 상황이 과열된 업종에 대한 여신 기준은 높아지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지 월급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9) 개인이라면 요즘 부동산 정책 때문에 난리도 아닌데요. 주택 관련한 여신 대출 비율은 현장에서 느끼시기에 급증했습니까? 아니면 급감했습니까?
답변: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정부 대책 이후 가계여신 부분, 특히 주택담보대출 부분은 확실히 줄었거나 줄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 특히 은행은 정부의 입김이 너무나도 크게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주택 가격 추이에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여신도 출렁거릴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심사부서의 기본 여신 금액에서 볼 수 있듯이, 저희가 취급하는 여신의 대다수는 가계여신과는 별개의 기업여신 혹은 개인사업자 여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개인사업자 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제한을 가하면 영향을 받겠지만, 정책적인 부분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참고만!
10) 현직자의 입장에서 개인금융과 달리 기업금융 지원 시 어떤 역량을 강조해야 유리할까요?
우리나라 기업금융은 한마디로 High Risk High Return 이 너무도 확실하게 드러나는 시장입니다.
당연히 안전성에 기반한 수익성 추구가 핵심이죠. 여기에 필요한 역량이라면 저는 무엇보다 많은 현장 경험과 영업력, 이 두가지라고 생각해요.
심사업무를 하는데 ‘영업력이 필요하다’ 고 말하니 조금 이해가 안 되실 것 같아서 부연설명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게 진짜로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질문을 역으로 하나 드려봅니다.
부실이 없는 심사역이 좋은 심사역일까요? 부실이 없는 최고의 방법은 모든 여신에 대해서 ‘안된다’ 라고 거절하면 끝입니다. 혹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되겠죠. 하지만 시장에서 그렇게 해서는 금세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내가 지점장, 프론트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영업을 해봐야 심사역도 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 CPA 가 해도 됩니다.
그것을 해석하는 능력? 초등학교만 나왔다면 3개월이면 왠만한 사람들은 다 할 줄 압니다.
결국 KEY 는 ‘이 대출, 투자를 해줬을 때, 나는 얼마를 벌 수 있고 또 여신은 안전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점장들, 프론트의 마인드가 다 저럴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영업점에서 여신이나 외환 경험이 많은 직원들이 심사부에 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정리하겠습니다.
실은 저도 은행생활 이제 16년, 금융권 전체로 20년을 향해 가는 햇병아리입니다. 제가 햇병아리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세계는 정말 대단한 고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기꾼도 많습니다만.
암튼 여러가지 입장을 고려해서 생각해보자면 요새 드는 생각은 오랜 기간 이 금융업에서 큰 사고없이 버티고 있는 시니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긴 시간동안 부실없이 수익을 낸다는 것은 정말 Art 의 경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니 누군가 그랬습니다. 여신과 투자의사결정은 종합 예술이라고.
이제 새롭게 은행 생활을 시작하려는 취준생에게 이게 맞는 대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사역이 그리 매력적인 보직은 아닙니다. 굉장히 힘들거든요. 욕도 많이 듣습니다. 욕받이임. 다만, 배우는 건 정말 많은 파트는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본인이 하기 나름이지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은행이나 금융기관에서 ‘일을 하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시며 일하시길 원한다면, 심사역을 추천드립니다.
다들 화이팅입니다!
고니파더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5efb803997f549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