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경쟁, 의도치 않은 갈등
보통 회사의 전산 시스템을 통해 발주를 하면 각 품목별 본사 MD와의 계약을 통해 정해진 매익률로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외부에서 사입한 제품은 가격 메리트가 있지만 본사의 마진보다 적기 때문에, 회사가 가져가는 이익은 상당히 줄어든다. (한마디로 내가 택한 방식은 박리다매였다.)
이렇게 판매를 하다 보니 매출은 늘어났지만 이익 구조는 낮게 형성되었고, 본사 입장에서는 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탐탁지 않아 했다. 결국 행사 후 본사 MD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OO담당님, 이번 행사 때 엄청 팔으셨더라고요. 고생하셨는데, 너무 자주는 그렇게 판매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매장에서도 견제하기도 하고 저에게도 담당님 매장이 저렴하게 판매해서 못 팔았다고…”
경쟁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쟁 구도가 되어버려 근처 다른 매장에서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다. 점장님께서는 “일하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라고 하셨지만,
사회초년생에 경력 1년도 안 된 나는 멘털이 그리 강하지 못했다.
다른 매장의 담당님들 역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니 담당님, 그렇게 싸게 판매를 하면 어떡해요? 우리도 같은 제품을 파는데 고객들이 그쪽 전단지 들고 와서 여기는 저렴한데 왜 여기는 비싸냐고 클레임이 많았어요. 너무 그렇게 팔지 말아요. 저희도 힘들어요.”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본사 농산담당 MD가 행사 시작 몇 주 전에 상품리스트를 전국에 공유했을 때 나는 같은 규격·같은 품종이 아닌 다른 규격과 다른 품종으로 사전에 예약해 두었다.
겹치는 것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복숭아에도 품종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고객 눈에는 그냥 ‘복숭아’ 일뿐이었고, 예상보다 훨씬 심한 클레임이 이어졌다.
경쟁이 남긴 흔적과 깨달음
돌이켜보면, 그때 점장님이 다른 매장의 클레임에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셨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점장님은 워낙 강성이셨고, 다른 매장과 교류도 거의 없으셔서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같은 회사 내 리더들 간의 소통과 교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걸 눈치채신 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OO담당,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눈치가 보일 수도 있으니 그냥 일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변 클레임이 오면 내가 시켰다고 해. 나도 농산 MD 출신이니까.”
그 말은 내게 보호막처럼 다가왔다. 이후에도 나는 사입을 이어갔고, 매익률을 자체적으로 조정하며 매장의 손익은 조금 낮아졌지만 매출은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매장 담당자와 점장님들의 시선은 점점 곱지 않았고, 급히 재고가 떨어져 다른 매장에 물건을 빌리려 할 때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점장님이 시켰다’고 하기보다 다른 매장과 협업해 본사 MD와 가격을 맞추는 방식을 함께 고민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조직문화 담당으로 일하며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조직의 사일로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가 한 발짝만 더 사고를 넓히고, 구성원이 조금만 마음을 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POP 하나가 불러온 위기
여름이면 공산 쪽에서는 아이스크림 행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때 POP의 가격은 보통 ‘정상가에서 얼마 할인’ 형식으로 꺾기 디자인을 활용해 크게 눈에 띄게 걸어두고, 고객의 구매 욕구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행사에서 우리 매장은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는 2~3천 원에 판매하던 아이스크림을 ‘정상가 4천 원 → 할인 2천 원’처럼 잘못 표기한 POP를 붙여 놓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고객 한 분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 실수가 단순한 가격 오기 수준이 아니라 ‘허위 정상가격 표시’로 간주되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었다.
정상가란 반드시 실제 판매 이력이 존재하는 가격이어야 하고, 실제 판매된 적 없는 금액을 기준으로 한 할인 표시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부당 표시·광고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된다.
결국 이 일로 인해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었고, 매장 영업정지 조치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모든 POP 출력 전, 실제 판매 이력 기반의 정상가 여부를 확인하는 프로세스를 별도로 정비했다. 광고나 홍보물 하나하나가 모두 ‘공정의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매장 내 모든 직원들과 공유하게 되었다.
리더의 퇴장, 남겨진 허전함
하지만… 본사 조사를 거쳐 결국 점장님이 면직을 하시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셨고, 리더십을 피부로 가르쳐주셨으며,
사람을 관리하고 항상 깨달음을 주셨던 나의 리더였다.
점장님이 떠나시던 그날, 매장 안의 공기는 묘하게 비어 있었다. 발령서를 들고 계신 점장님의 씁쓸한 웃음, 과일 재고금액 1,200만 원이 남긴 무거운 숫자, 울먹이는 직원들의 눈빛… 모든 풍경이 내 마음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내 옆에 있던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진 것 같은 허전함과,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이 자리를 버텨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뒤섞였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앞으로 매장은 어떻게 될까? 나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고, 그날의 공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관리형 리더의 도래
새로운 점장님이 오셨다.
“이 매장은 매출은 보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밝은 얼굴로 본인의 소개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간단한 자기소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강조하신 건 ‘관리의 중요성’이었다.
POP 하나하나의 위치, 재고 금액의 철저한 계산, 신선제품의 상태 체크, 매장의 바닥과 진열대 청결도까지. 매장 안의 모든 요소가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매장의 품목 선정이나 행사 방향,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묻지도, 제안하지도 않으셨다.
시간이 약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매장은 명확한 ‘관리형 매장’이 되었다. 복장은 통일되고 청결 상태는 흠잡을 데 없었으며, 가격표는 정확했고 조명은 밝고 보기 좋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달랐다. 매출은 점점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직원들은 각자 본인의 일만 조용히 해나갔으며 매장 안에서 오가던 대화는 현저히 줄었다.
점장님은 매일같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예전에 어떤 성과를 냈고, 어떤 방식으로 매장을 살렸는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내일을 그려주지 못했고, 그저 화려했던 과거의 복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 시기, 나는 매장에서, 그리고 회사 안에서 내 방향성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관리가 아닌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
‘관리’라는 단어는 매장의 겉을 바꾸지만, ‘리더십’이라는 단어는 매장의 속을 바꾼다. 물론 그 점장님은 정말 꼼꼼하고 성실하신 분이었다. 청결, 재고, POP, 복장 하나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매장을 순회하며 흐트러짐이 없도록 챙기셨다. 하지만 매장의 공기는 점점 메말라갔다.
직원들의 대화는 줄었고,
“이거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엔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라는 말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그곳이 더 이상 ‘함께 일하는 공간’이 아니게 됐음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내 일만 하고 말수를 줄였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이 조직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 감각이 점점 흐려졌다.
그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고 싶은 리더’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은 배우면 된다. 매뉴얼을 익히고, 실수를 줄이고, 성실하게 반복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든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과의 관계는 스킬이 아니라 시선과 온도의 문제다.
조직에서 사람을 읽고 흐름을 느끼며 반응하는 일은 단순한 ‘잘함’을 넘어, 깊은 고민과 고찰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그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배운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조직문화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리더는 빛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빛을 나눠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과거의 업적을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그리게 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관리만으로는 매장을 ‘돌릴’ 수는 있어도, ‘살릴’ 수는 없다.
29살의 나는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 그때는 ‘조직문화’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직원의 행복은 단순히 월급이나 성과가 아니라, 동료와 유관부서,
그리고 리더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조직의 사일로를 허무는 힘은 제도나 규정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사람을 먼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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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은 경쟁, 의도치 않은 갈등
보통 회사의 전산 시스템을 통해 발주를 하면 각 품목별 본사 MD와의 계약을 통해 정해진 매익률로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외부에서 사입한 제품은 가격 메리트가 있지만 본사의 마진보다 적기 때문에, 회사가 가져가는 이익은 상당히 줄어든다. (한마디로 내가 택한 방식은 박리다매였다.)
이렇게 판매를 하다 보니 매출은 늘어났지만 이익 구조는 낮게 형성되었고, 본사 입장에서는 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탐탁지 않아 했다. 결국 행사 후 본사 MD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OO담당님, 이번 행사 때 엄청 팔으셨더라고요. 고생하셨는데, 너무 자주는 그렇게 판매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매장에서도 견제하기도 하고 저에게도 담당님 매장이 저렴하게 판매해서 못 팔았다고…”
경쟁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쟁 구도가 되어버려 근처 다른 매장에서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다. 점장님께서는 “일하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라고 하셨지만,
사회초년생에 경력 1년도 안 된 나는 멘털이 그리 강하지 못했다.
다른 매장의 담당님들 역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니 담당님, 그렇게 싸게 판매를 하면 어떡해요? 우리도 같은 제품을 파는데 고객들이 그쪽 전단지 들고 와서 여기는 저렴한데 왜 여기는 비싸냐고 클레임이 많았어요. 너무 그렇게 팔지 말아요. 저희도 힘들어요.”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본사 농산담당 MD가 행사 시작 몇 주 전에 상품리스트를 전국에 공유했을 때 나는 같은 규격·같은 품종이 아닌 다른 규격과 다른 품종으로 사전에 예약해 두었다.
겹치는 것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복숭아에도 품종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고객 눈에는 그냥 ‘복숭아’ 일뿐이었고, 예상보다 훨씬 심한 클레임이 이어졌다.
경쟁이 남긴 흔적과 깨달음
돌이켜보면, 그때 점장님이 다른 매장의 클레임에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셨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점장님은 워낙 강성이셨고, 다른 매장과 교류도 거의 없으셔서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같은 회사 내 리더들 간의 소통과 교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걸 눈치채신 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OO담당,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눈치가 보일 수도 있으니 그냥 일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변 클레임이 오면 내가 시켰다고 해. 나도 농산 MD 출신이니까.”
그 말은 내게 보호막처럼 다가왔다. 이후에도 나는 사입을 이어갔고, 매익률을 자체적으로 조정하며 매장의 손익은 조금 낮아졌지만 매출은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매장 담당자와 점장님들의 시선은 점점 곱지 않았고, 급히 재고가 떨어져 다른 매장에 물건을 빌리려 할 때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점장님이 시켰다’고 하기보다 다른 매장과 협업해 본사 MD와 가격을 맞추는 방식을 함께 고민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조직문화 담당으로 일하며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조직의 사일로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가 한 발짝만 더 사고를 넓히고, 구성원이 조금만 마음을 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POP 하나가 불러온 위기
여름이면 공산 쪽에서는 아이스크림 행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때 POP의 가격은 보통 ‘정상가에서 얼마 할인’ 형식으로 꺾기 디자인을 활용해 크게 눈에 띄게 걸어두고, 고객의 구매 욕구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행사에서 우리 매장은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는 2~3천 원에 판매하던 아이스크림을 ‘정상가 4천 원 → 할인 2천 원’처럼 잘못 표기한 POP를 붙여 놓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고객 한 분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 실수가 단순한 가격 오기 수준이 아니라 ‘허위 정상가격 표시’로 간주되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점이었다.
정상가란 반드시 실제 판매 이력이 존재하는 가격이어야 하고, 실제 판매된 적 없는 금액을 기준으로 한 할인 표시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부당 표시·광고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된다.
결국 이 일로 인해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었고, 매장 영업정지 조치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모든 POP 출력 전, 실제 판매 이력 기반의 정상가 여부를 확인하는 프로세스를 별도로 정비했다. 광고나 홍보물 하나하나가 모두 ‘공정의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매장 내 모든 직원들과 공유하게 되었다.
리더의 퇴장, 남겨진 허전함
하지만… 본사 조사를 거쳐 결국 점장님이 면직을 하시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셨고, 리더십을 피부로 가르쳐주셨으며,
사람을 관리하고 항상 깨달음을 주셨던 나의 리더였다.
점장님이 떠나시던 그날, 매장 안의 공기는 묘하게 비어 있었다. 발령서를 들고 계신 점장님의 씁쓸한 웃음, 과일 재고금액 1,200만 원이 남긴 무거운 숫자, 울먹이는 직원들의 눈빛… 모든 풍경이 내 마음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내 옆에 있던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진 것 같은 허전함과, 앞으로 내가 어떻게 이 자리를 버텨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뒤섞였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앞으로 매장은 어떻게 될까? 나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고, 그날의 공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관리형 리더의 도래
새로운 점장님이 오셨다.
“이 매장은 매출은 보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밝은 얼굴로 본인의 소개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간단한 자기소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강조하신 건 ‘관리의 중요성’이었다.
POP 하나하나의 위치, 재고 금액의 철저한 계산, 신선제품의 상태 체크, 매장의 바닥과 진열대 청결도까지. 매장 안의 모든 요소가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매장의 품목 선정이나 행사 방향,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묻지도, 제안하지도 않으셨다.
시간이 약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매장은 명확한 ‘관리형 매장’이 되었다. 복장은 통일되고 청결 상태는 흠잡을 데 없었으며, 가격표는 정확했고 조명은 밝고 보기 좋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달랐다. 매출은 점점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직원들은 각자 본인의 일만 조용히 해나갔으며 매장 안에서 오가던 대화는 현저히 줄었다.
점장님은 매일같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예전에 어떤 성과를 냈고, 어떤 방식으로 매장을 살렸는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내일을 그려주지 못했고, 그저 화려했던 과거의 복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 시기, 나는 매장에서, 그리고 회사 안에서 내 방향성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관리가 아닌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
‘관리’라는 단어는 매장의 겉을 바꾸지만, ‘리더십’이라는 단어는 매장의 속을 바꾼다. 물론 그 점장님은 정말 꼼꼼하고 성실하신 분이었다. 청결, 재고, POP, 복장 하나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매장을 순회하며 흐트러짐이 없도록 챙기셨다. 하지만 매장의 공기는 점점 메말라갔다.
직원들의 대화는 줄었고,
“이거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엔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라는 말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그곳이 더 이상 ‘함께 일하는 공간’이 아니게 됐음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내 일만 하고 말수를 줄였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이 조직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그 감각이 점점 흐려졌다.
그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같이 일하고 싶은 리더’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은 배우면 된다. 매뉴얼을 익히고, 실수를 줄이고, 성실하게 반복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든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과의 관계는 스킬이 아니라 시선과 온도의 문제다.
조직에서 사람을 읽고 흐름을 느끼며 반응하는 일은 단순한 ‘잘함’을 넘어, 깊은 고민과 고찰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그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배운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조직문화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리더는 빛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빛을 나눠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과거의 업적을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그리게 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관리만으로는 매장을 ‘돌릴’ 수는 있어도, ‘살릴’ 수는 없다.
29살의 나는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 그때는 ‘조직문화’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이미 체감하고 있었다.
직원의 행복은 단순히 월급이나 성과가 아니라, 동료와 유관부서,
그리고 리더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조직의 사일로를 허무는 힘은 제도나 규정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사람을 먼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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