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월 차 신입 마케팅 리서치 컨설턴트의 회고


2024년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간 비트윈잡스 기간을 보냈다.

(*비트윈잡스, between jobs는 일을 그만두고 다음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


수없이 많은 이력서와 자소사를 쓰고 인터뷰를 거친 후, 회사 한 곳에서 최종합격을 했고 올해 1월 초부터 출근하게 됐다. 한창 인터뷰 많이 보고 서탈과 인터뷰 탈락을 반복할때는 어디든 붙었으면 좋겠다, 나도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일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쓸때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그래서 평일 오전 9시 전에는 일부러 좋아하는 산책도 잘 안나가게 됐다. 그 시간대에는 잘 갖춰입고 출근중인 직장인들이 가득했고,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그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쟨 백수인가 보네”라는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나의 자격지심 이었겠지만).


최종합격전화를 받은 건 12월 말이다.

첫 출근은 1월 초여서 출근하기까지 약 2주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2024 연말은 집에서 뒹굴어도 죄책감이 엄청 느껴지지 않았달까? 나 이제까지 인터뷰 보러다니느라 고생 많았잖아… 그렇게 노력해서 원하는 직무에 합격이라는 보상을 받았잖아…곧 출근할거고, 회사생활 시작하면 이제 이렇게 띵가띵가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도 못할거잖아…하면서 정말 마음대로 쉬어버렸다.


아직 회사생활은 제대로 시작도 안했는데 상상만으로도 벌써 피곤한 느낌.

그토록 원하던 거였는데, 막상 진짜로 하게되니 하기 싫은 그런 느낌. 업무 적응하느라 초반 몇 개월은 얼마나 힘들까? 다양한 사람들과 팀이되어 같이 일하는 거 오랜만인데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써야할까 등등.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상당히 피곤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를 해가며 2주간 푸-욱 쉬고나니….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첫 출근.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도착을 해보니 나 말고 다른 신입분들이 꽤 보였다. 나는 기껏해야 나 말고 1~2명 더 있으려나? 했는데 나말고 8명이 더 있었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배치받고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룸에 모여앉아있는데 긴장감 반+설렘 반으로 서로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하나, 그 안에서 모두의 머릿속 생각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극도로 어색한 공기를 뚫고 활기차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도하는 사람도 있고, 수줍게 미소지으며 끄덕이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앞으로 매일 회사에서 마주치며 일하게 될 사람들이구나.

아쉽게도 9명 모두 제각각 다른 팀으로 흩어졌다. 내 자리에 배정을 받고 노트북과 키보드 등등 사무용품을 세팅하고, 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될까 내 주변에 앉은 팀원분들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낯설고, 긴장됐다. 혼자 앉아서 멍때리고 있는데 팀원 한 분이 다가오셔서 밝게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내주셨다. 그 첫 순간 덕분에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못하는 게 당연한거지?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는 마케팅 리서치 분야로, 통계분석이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즉, 기본적으로 엑셀, ppt, word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아주 많이 (매일. 항상.) 사용한다. 허나 나는 이 모든 프로그램에 익숙치 않았고 더더욱이 엑셀이라함은 피할 수 있으면 항상 피하는 쪽을 택했을만큼 정말 못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택한 일이고, 무슨일을 하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수는 없으니 해야지 뭐 어쩌겠어.

초반이라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을 순 없으니 주변 팀원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부여받은 업무는 보고서 데이터 검수. 엑셀에 빽빽히 가득찬 데이터를 보며 보고서에 데이터가 맞게 들어갔는지 검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살면서 엑셀에 이렇게 많은 양의 페이지와 숫자가 들어갈 수 있는지 처음알았다. 마우스로 한땀한땀 끙끙거리며 기능을 찾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옆에서 편한하고 스무스하게 키보드를 타닥타닥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니 잔뜩 주늑이 들었다. 과연 내가 저 경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출근 둘째날은 FGD 에 참석했다.

FGD는 Focus Group Discussion의 약자로,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소비자들을 한 룸에 모아두고 모더레이터의 진행아래 좌담회를 진행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정성적인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

사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그룹장님의 권유로 나도 같이 참여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정말 흥미로웠다. 소비자들의 생각을 이토록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니. 앞으로 일을하며 FGD는 내가 좋아할 업무 중 하나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백룸에서 좌담회를 들으면서 참석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는데, 나도 나름 열심히 받아적었다. 다들 나에게 큰 기대를 안 하신 것 같았고, 이미 노트테이킹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기에 나도 큰 부담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더랬다. 그리고 좌담회가 끝나고 담당 팀원분께 혹시 팀원분이 쓴 노트테이킹은 어떤지 내꺼랑 비교해보았는데, 왠걸, 정말 다르긴 달랐다…쓰면서 나는 내가 꽤 잘하고 있는 줄 알았지. 근데 웁스…


나는 아직 인턴인데요.

그리고 입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업무상 기밀이니 정확히 밝히긴 어렵다)

프로젝트 일정이 빽빽해서 모든게 바쁘고 빠르게 흘러갔다. 이때 느낀 건 회사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너 인턴이야 근데 뭐. 그래도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해야지. 이런 느낌이랄까. 내가 적응할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저 이 사람이 하루빨리 뭐라도 기여하길 바랄뿐이다.

사실 나도 3개월은 인턴 신분이니 적응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좀 널널하게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이런 생각자체가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없도록 가로막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인턴’이니까 이만큼만 해야지.’

‘나는 인턴인데 내가 감히 이런 제안을 해도 될까?’ 등등… 물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때는 컨펌을 받아야 하고 아직 부족한 것 투정이지만, 나 스스로를 ‘인턴’이라는 이름에 가둬서 나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필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업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너무 나대지는 않되, 적당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의 밸런스를 잘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무튼. 이 프로젝트는 IDI (In-depth Interview)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다보니 모더레이터로 내부 직원들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내’가 들어가 있는거다. 일주일밖에 안된사람이 갑자기 모더레이터를 한다고…? 더군다나 이 프로젝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걱정 투성이었다. 이땐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아직 인턴이고, 팀원들 매니저님들 다 앞에선 웃으시면서 천천히 해~ 말은 이렇게 해도 결국 난 이 한순간 한순간 다 평가받고 있겠구나 싶었다. 진짜 못하겠다고 했다간…3개월후엔 내 자린 없겠지?

모더레이터로 투입되기 전에는 두렵기(?)까지 했지만 진짜 도망갈 순 없으니. 그래 그럼 진짜 열심히 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잡혀있는 스케줄 며칠 전부터 한 두시간 더 일찍 출근해서 혼자 방에서 연습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 예감이 싸했다…왠지 예정된 스케줄보다 더 빠르게 모더로 투입될 것 같은 그런 싸한 느낌. 그리고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예정된 스케줄보다 일찍 모더로 투입이 되었고, 미리와서 연습하지 않았다면 진짜 망쳐버렸을 것 같다. 이땐 정말 나의 촉과 부지런함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처음 모더로 진행했을 때 많이 떨렸지만 차분하게 잘 해냈고, 처음을 잘 해내니 그 다음부터는 자신감도 붙어서 나중에는 여유를 갖고 착착착 잘 해나갔다. 또, 지방지역으로 추가 실사 진행하게 되어 출장도 다녀오게 되었다. 사실 2일간의 짧은 일정이라 나까지 갈 필욘 없어보였다. 근데 그래도 어헛, 출장이라고?라는 생각에 덥석, 담당 팀원분에게 가고싶다고 했다. 출장을 가본적 없는 나로썬 출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커리어우먼 느낌 나는 멋진 무언가이지만, 팀원분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경악스런 표정으로 쳐다봤다. “얘가 왜 고생을 사서하지…?”

준비없이 맡게 된 모더역할도 무사히 잘 마친 것 같고, 출장가서 서폿역할도 잘 하고, 무엇보다 약 한달간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앞으로 이 회사에서는 이런식으로 업무가 진행되는구나 대략적인 감을 익힐 수 있었으니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입사 후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7월 중순이다.

벌써 이 회사에 입사한지도 반년이 지났다. 입사 후 지금까지 벌써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쉴새없이 바쁘게 살았다. 리서치 분야에서 일한다는 건 야근이 많다는 뜻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

내 근태내역을 보면 한달에 250시간 이상 일한적도 있다. 정말 정말 바쁜 프로젝트에 투업되었을 땐 하루에 15시간 이상 사무실에 박혀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일하느냐고 한다면…

– 아직 일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해 남들이 10개 하는 동안 나는 3,4개 소화하는 수준이기 때문. (YES. I’m a slow learner)

– methodology가 많은 유별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기 때문. 그래서 일이 무지 많았음.

– 리서치 쪽은 원. 래 야근이 많음.

등등…

그리고 지금 한살이라도 어릴때 이렇게 갈리게 일을 하고 배우면 나중에 다 써먹을때가 있겠지 하는 희망섞인 생각. 그래. 살면서 한번쯤 이렇게 빡세게 일하는것도 좋은 경험이지 뭐.



Back to my routine

올해 초 입사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너무 바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회사 일 이외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반년정도 지나니 조금 정신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또 무엇보다 회사에 나의 에너지 100%가 소진되는 것이 싫었다. 적어도 20%정도는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정신차리고 다시 내가 예전에 하던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자.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걷고 읽고 공부하고 그런것들…

짧은 기간이지만 일을 하며 깨닫고 배운것들도 많다.

그동안은 회사나 체력이슈 핑계를 대며 계속 포스팅을 미뤄왔지만…앞으로는 시간을 내서 내가 배우고, 깨닫는 것들을 브런치에 나눠야겠다.


트위티 Tweety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weety


2024년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간 비트윈잡스 기간을 보냈다.

(*비트윈잡스, between jobs는 일을 그만두고 다음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


수없이 많은 이력서와 자소사를 쓰고 인터뷰를 거친 후, 회사 한 곳에서 최종합격을 했고 올해 1월 초부터 출근하게 됐다. 한창 인터뷰 많이 보고 서탈과 인터뷰 탈락을 반복할때는 어디든 붙었으면 좋겠다, 나도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일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쓸때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그래서 평일 오전 9시 전에는 일부러 좋아하는 산책도 잘 안나가게 됐다. 그 시간대에는 잘 갖춰입고 출근중인 직장인들이 가득했고,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그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쟨 백수인가 보네”라는 시선이 꽂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나의 자격지심 이었겠지만).


최종합격전화를 받은 건 12월 말이다.

첫 출근은 1월 초여서 출근하기까지 약 2주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2024 연말은 집에서 뒹굴어도 죄책감이 엄청 느껴지지 않았달까? 나 이제까지 인터뷰 보러다니느라 고생 많았잖아… 그렇게 노력해서 원하는 직무에 합격이라는 보상을 받았잖아…곧 출근할거고, 회사생활 시작하면 이제 이렇게 띵가띵가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도 못할거잖아…하면서 정말 마음대로 쉬어버렸다.


아직 회사생활은 제대로 시작도 안했는데 상상만으로도 벌써 피곤한 느낌.

그토록 원하던 거였는데, 막상 진짜로 하게되니 하기 싫은 그런 느낌. 업무 적응하느라 초반 몇 개월은 얼마나 힘들까? 다양한 사람들과 팀이되어 같이 일하는 거 오랜만인데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써야할까 등등.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상당히 피곤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를 해가며 2주간 푸-욱 쉬고나니….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첫 출근.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도착을 해보니 나 말고 다른 신입분들이 꽤 보였다. 나는 기껏해야 나 말고 1~2명 더 있으려나? 했는데 나말고 8명이 더 있었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배치받고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룸에 모여앉아있는데 긴장감 반+설렘 반으로 서로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하나, 그 안에서 모두의 머릿속 생각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극도로 어색한 공기를 뚫고 활기차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도하는 사람도 있고, 수줍게 미소지으며 끄덕이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앞으로 매일 회사에서 마주치며 일하게 될 사람들이구나.

아쉽게도 9명 모두 제각각 다른 팀으로 흩어졌다. 내 자리에 배정을 받고 노트북과 키보드 등등 사무용품을 세팅하고, 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될까 내 주변에 앉은 팀원분들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낯설고, 긴장됐다. 혼자 앉아서 멍때리고 있는데 팀원 한 분이 다가오셔서 밝게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내주셨다. 그 첫 순간 덕분에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못하는 게 당연한거지?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는 마케팅 리서치 분야로, 통계분석이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즉, 기본적으로 엑셀, ppt, word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아주 많이 (매일. 항상.) 사용한다. 허나 나는 이 모든 프로그램에 익숙치 않았고 더더욱이 엑셀이라함은 피할 수 있으면 항상 피하는 쪽을 택했을만큼 정말 못하고 싫어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택한 일이고, 무슨일을 하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수는 없으니 해야지 뭐 어쩌겠어.

초반이라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을 순 없으니 주변 팀원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부여받은 업무는 보고서 데이터 검수. 엑셀에 빽빽히 가득찬 데이터를 보며 보고서에 데이터가 맞게 들어갔는지 검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살면서 엑셀에 이렇게 많은 양의 페이지와 숫자가 들어갈 수 있는지 처음알았다. 마우스로 한땀한땀 끙끙거리며 기능을 찾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옆에서 편한하고 스무스하게 키보드를 타닥타닥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니 잔뜩 주늑이 들었다. 과연 내가 저 경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출근 둘째날은 FGD 에 참석했다.

FGD는 Focus Group Discussion의 약자로,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소비자들을 한 룸에 모아두고 모더레이터의 진행아래 좌담회를 진행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정성적인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

사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그룹장님의 권유로 나도 같이 참여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정말 흥미로웠다. 소비자들의 생각을 이토록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니. 앞으로 일을하며 FGD는 내가 좋아할 업무 중 하나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백룸에서 좌담회를 들으면서 참석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기록해야 하는데, 나도 나름 열심히 받아적었다. 다들 나에게 큰 기대를 안 하신 것 같았고, 이미 노트테이킹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기에 나도 큰 부담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더랬다. 그리고 좌담회가 끝나고 담당 팀원분께 혹시 팀원분이 쓴 노트테이킹은 어떤지 내꺼랑 비교해보았는데, 왠걸, 정말 다르긴 달랐다…쓰면서 나는 내가 꽤 잘하고 있는 줄 알았지. 근데 웁스…


나는 아직 인턴인데요.

그리고 입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업무상 기밀이니 정확히 밝히긴 어렵다)

프로젝트 일정이 빽빽해서 모든게 바쁘고 빠르게 흘러갔다. 이때 느낀 건 회사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너 인턴이야 근데 뭐. 그래도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해야지. 이런 느낌이랄까. 내가 적응할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저 이 사람이 하루빨리 뭐라도 기여하길 바랄뿐이다.

사실 나도 3개월은 인턴 신분이니 적응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좀 널널하게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이런 생각자체가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없도록 가로막는 걸 깨달았다. ‘나는 ‘인턴’이니까 이만큼만 해야지.’

‘나는 인턴인데 내가 감히 이런 제안을 해도 될까?’ 등등… 물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때는 컨펌을 받아야 하고 아직 부족한 것 투정이지만, 나 스스로를 ‘인턴’이라는 이름에 가둬서 나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필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업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너무 나대지는 않되, 적당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의 밸런스를 잘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무튼. 이 프로젝트는 IDI (In-depth Interview)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다보니 모더레이터로 내부 직원들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내’가 들어가 있는거다. 일주일밖에 안된사람이 갑자기 모더레이터를 한다고…? 더군다나 이 프로젝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걱정 투성이었다. 이땐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아직 인턴이고, 팀원들 매니저님들 다 앞에선 웃으시면서 천천히 해~ 말은 이렇게 해도 결국 난 이 한순간 한순간 다 평가받고 있겠구나 싶었다. 진짜 못하겠다고 했다간…3개월후엔 내 자린 없겠지?

모더레이터로 투입되기 전에는 두렵기(?)까지 했지만 진짜 도망갈 순 없으니. 그래 그럼 진짜 열심히 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잡혀있는 스케줄 며칠 전부터 한 두시간 더 일찍 출근해서 혼자 방에서 연습하고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 예감이 싸했다…왠지 예정된 스케줄보다 더 빠르게 모더로 투입될 것 같은 그런 싸한 느낌. 그리고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예정된 스케줄보다 일찍 모더로 투입이 되었고, 미리와서 연습하지 않았다면 진짜 망쳐버렸을 것 같다. 이땐 정말 나의 촉과 부지런함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처음 모더로 진행했을 때 많이 떨렸지만 차분하게 잘 해냈고, 처음을 잘 해내니 그 다음부터는 자신감도 붙어서 나중에는 여유를 갖고 착착착 잘 해나갔다. 또, 지방지역으로 추가 실사 진행하게 되어 출장도 다녀오게 되었다. 사실 2일간의 짧은 일정이라 나까지 갈 필욘 없어보였다. 근데 그래도 어헛, 출장이라고?라는 생각에 덥석, 담당 팀원분에게 가고싶다고 했다. 출장을 가본적 없는 나로썬 출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커리어우먼 느낌 나는 멋진 무언가이지만, 팀원분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경악스런 표정으로 쳐다봤다. “얘가 왜 고생을 사서하지…?”

준비없이 맡게 된 모더역할도 무사히 잘 마친 것 같고, 출장가서 서폿역할도 잘 하고, 무엇보다 약 한달간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앞으로 이 회사에서는 이런식으로 업무가 진행되는구나 대략적인 감을 익힐 수 있었으니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입사 후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7월 중순이다.

벌써 이 회사에 입사한지도 반년이 지났다. 입사 후 지금까지 벌써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쉴새없이 바쁘게 살았다. 리서치 분야에서 일한다는 건 야근이 많다는 뜻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

내 근태내역을 보면 한달에 250시간 이상 일한적도 있다. 정말 정말 바쁜 프로젝트에 투업되었을 땐 하루에 15시간 이상 사무실에 박혀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일하느냐고 한다면…

– 아직 일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해 남들이 10개 하는 동안 나는 3,4개 소화하는 수준이기 때문. (YES. I’m a slow learner)

– methodology가 많은 유별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기 때문. 그래서 일이 무지 많았음.

– 리서치 쪽은 원. 래 야근이 많음.

등등…

그리고 지금 한살이라도 어릴때 이렇게 갈리게 일을 하고 배우면 나중에 다 써먹을때가 있겠지 하는 희망섞인 생각. 그래. 살면서 한번쯤 이렇게 빡세게 일하는것도 좋은 경험이지 뭐.



Back to my routine

올해 초 입사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너무 바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회사 일 이외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반년정도 지나니 조금 정신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또 무엇보다 회사에 나의 에너지 100%가 소진되는 것이 싫었다. 적어도 20%정도는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정신차리고 다시 내가 예전에 하던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자.

글도 쓰고 운동도 하고 걷고 읽고 공부하고 그런것들…

짧은 기간이지만 일을 하며 깨닫고 배운것들도 많다.

그동안은 회사나 체력이슈 핑계를 대며 계속 포스팅을 미뤄왔지만…앞으로는 시간을 내서 내가 배우고, 깨닫는 것들을 브런치에 나눠야겠다.


트위티 Tweety님 글 더보러 가기 : https://brunch.co.kr/@tweety

Unpublish ON
previous arrow
next arrow